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
이규보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선생(先生)이 자호(自號)한 것이다. 그 이름을 숨기고, 그 호(號)를 드러낸 것이니, 그 자호(自號)한 이유의 뜻은 선생(先生)의 백우어록(白雲語錄)에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집안의 쌀독이 자주 비고, 불에 익혀 먹는 음식도 잇지 못하였으나, 거사(居士)는 스스로 이연(怡然)하였다. 성품은 방광(放曠)하고 검속됨이 없으니, 육합(六合)을 협소하다 여기고, 천지(天地)를 비좁다고 여겼다. 일찍이 술을 마시며 스스로 혼미해졌으니, 사람들 중에 초대하는 자가 있으면, 흔연(欣然)히 곧 찾아가서는 금새 취하여 되돌아오니, 아마도 옛날 도연명(陶淵明)의 무리일 것이다.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이로써 스스로 회포를 풀어냈다. 이는 사실 그대로를 적은 것이다. 거사(居士)는 취하여서는 읊어대니, 스스로 이 전(傳)을 짓고, 또 스스로 찬(贊)을 지었으니, 찬(贊)에 이르기를, “뜻은 본시 육합(六合:온 세상, 온 천하)의 밖에 있으며, 천지(天地)에 구애되지 않으니, 장차 기(氣)의 근원(自然 또는 道)과 함께 무하유(無何有)의 고향에서 소요(逍遙)하며 놀 것이다.” 라고 하였다.
<원문>
白雲居士(백운거사), 先生自號也(선생자호야). 晦其名顯其號(회기명현기호), 其所以自號之意(기소이자호지의), 具載先生白雲語錄(구재선생백운어록). 家屢空(가누공), 火食不續(화식불속), 居士自怡怡如也(거사자이이여야). 性放曠無檢(성방광무검), 六合爲隘(육합위애), 天地爲窄(천지위착). 嘗以酒自昏(상이주자혼), 人有邀之者(인유요지자), 欣然輒造(흔연첩조), 徑醉而返(경취이반), 豈古陶淵明之徒歟(기고도연명지도여). 彈琴飮酒(탄금음주), 以此自遣(이차자견). 此其實錄也(차기실록야). 居士醉而吟(거사취이음), 自作傳自作贊(자작전자작찬). 贊曰(찬왈), 志固在六合之外(지고재육합지외), 天地所不囿(천지소불유). 將與氣母(장여기모), 遊於無何有乎(유어무하유호).
* 無何有
「莊子(장자)」 “逍遙遊(소요유)”에 “今子有大樹(금자유대수), 患其無用(환기무용),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하불수지어무하유지향), 廣莫之野(광막지야), 彷徨乎無爲其側(방황호무위기측), 逍遙乎寢臥其下(소요호침와기하).”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無何有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道家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경지를 뜻한다. “지금 그대는 큰 나무를 가지고, 그 쓸모 없음을 걱정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無何有의 고향인 광막한 들판에 그것을 심고, 그 곁에서 방황하며 無爲하고, 그 아래에서 逍遙하며 눕지 아니하는가?”
해설
청년 이규보가 천마산에 은거(隱居)했을 시기에, 그의 심경(心境)을 서술한 자서전적(自敍傳的)인 전기이다. 현실을 버리고 자연세계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정신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확고한 인생관으로 현실도피(現實逃避)사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오히려 이 시기에 현실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자기 수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 이규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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