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여승, 백석 [현대시]

Jobs 9 2023. 5. 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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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작자 소개

백석(白石 ; 1912∼?) 시인. 본명은 기행. 평북 정주 출생으로 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 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1936년 시집 <사슴>을 출판하였다. 1947년을 전후하여 '적막 강산' 등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백석의 시는 평북 지방의 방언을 통해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백석의 시 세계 백석의 시 세계의 주인공은 공동체의 품속에 깊이 잠겨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세계에 잠겨 있는 만큼 그러한 공동체적 세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현실의 자신과 모순되어 있는 상태를 심화시킨다. 바로 이 모순이야말로 백석의 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창조적 힘인 것이다.

'고향'은 타관에서 떠도는 자의 절절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백석의 향수는 단지 고향의 풍물이나 인정 세태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적 소재들은 보다 깊고도 지속적인 고향의 삶의 역사와 관련을 맺으려 할 때에만 선택된다. 풍속이나 이야기로서의 설화가 시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풍속과 이야기야말로 유랑자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바로 그에게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유랑자에게 있어서 가장 그리워지는 대상은 가족공동체인데, 백석은 유랑의 여로 속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고 있다. <신범순, '백석의 공동체적 신화와 유랑의 의미'에서> 

성격 : 애상적, 감각적 
특징: (1) 감각적 어휘의 구사 
        (2)시상의 압축, 절제 
구성 : 역순행적 구성  
         (1)여승의 현재(1연) 
         (2)여승의 삶의 궤적(2~4연) 
제재: 한 여자의 일생 
주제: 여승의 비극적 삶(가족 공동체의 삶) 
                    

이해와 감상

4연 12행의 비교적 짧은 시 속에 한 많은 여자의 일생이 사실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형태상 시적 화자인 ‘나’가 시적 대상인 ‘여승’의 삶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 시의 주된 내용은 시적 화자와는 거리가 유지되고 있는 여승을 중심으로 한 어느 가족의 삶이다.

이 시의 주인공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딸아이이다. 이들은 농사를 짓고 살다가,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금광의 광부로 간 후 소식이 끊겼고, 아내는 옥수수 행상을 하면서 남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남편은 찾지도 못한 채 딸을 돌무덤에 묻었고, 자신은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이 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하여 일제 강점기 농촌의 몰락과 ‘섶벌’처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민족의 현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가을밤같이 차게’ 울면서 자식을 묻은 어머니의 슬픔을 형상화한 것이나,  ‘도라지꽃’으로 비유된 죽은 아이의 형상은 돋보이는 표현이다. 
                     

참고 자료

백석의 시에 나타난 '고향'의 이미지

백석의 시에서 '고향'의 모습은 그 자신의 유년 시절 체험을 통해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그려진다. 그는 어린 소년을 시적 자아로 내세우고, 시적 자아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고향과 고향 사람들과 풍습(민속)을 다양하게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재현된 백석의 '고향'은 '여우난 곬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친족 간의 우애와 정이 넘치는 공동체적인 제의(祭儀)의 공간으로 나 타난다. 뿐만아니라 그 '고향'은 인간과 자연, 귀신과 사람들까지도 화해롭게 공존하고 있는 동화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화해와 공존의 세계를 그려 내기 위해서 그가 흔히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적인 제의인 것이다. 따라서 백석의 시에는 이러한 제의와 관련된 풍성한 음식, 놀이, 민속 등 현대화의 과정에서 상실된 민중들의 민족적인 생활 세계의 모습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어구풀이

 ․합장(合掌) : 부처에게 배려할 때 두 손바닥을 마주 합침

 ․가지취 : 취나물의 일종

 ․어늬 : '어느'의 방언

 ․금덤판 : 금광의 일터, 금전판

 ․파리한 : 몸이 몹시 여위거나 핏기가 없고 해쓱한

 ․따리며 : 때리며

 ․섶벌 : 재래종의 꿀벌

 ․돌무덤으로 갔다 : 딸의 죽음. 은유법

 ․마당귀 : 마당의 한 귀퉁이

 ․산꿩도 설게 울은 : 감정이입.

 ․머리 오리 :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 이미 속세의 번뇌를 잊은 듯한 여승의 모습을 그린 시구이다. 후각적 이미지. 고독한 여인의 내면 의식 환기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 나와 여인의 첫 만남이다. 금광으로 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으려 옥수수 행상을 하면서 금점판을 도는 여인과의 만남이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 남편을 찾는 고생 속에 투정을 부렸던 어린 딸을 울면서 때리는 여인의 슬픈 한(恨)을 표현하고 있다. 감각적이고 명료한 이미지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 원래는 농부였을 법한 지아비가 생계 문제로 금광에 간 뒤 귀가하지 않은 지 십 년이 됐으므로 여인이 십 년 동안 과부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고, 이로 미루어 크게 고생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보편적인 민중고의 실상이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 일제 강점기 가정의 파괴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 어린 딸도 죽어 도라지꽃이 많이 피어 있는 돌무덤에 묻혔다. 여인이 더욱 외로운 처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의 미화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 떨어진 날이 있었다. : 여인이 삭발하는 모습은 곧 여승이 되는 날이 되는 모습이다. 가족 공동체의 붕괴가 여승이 되게 한 것이다. 산꿩의 울음을 여인의 울음으로, 떨어지는 머리 오리를 여인의 눈물 방울로 대치시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슬픔을 초월하는 여인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감정의 객관화(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눈물방울로 대치시켜 객관적으로 묘사함)

 

■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시간적 순서로 구성하지 않고 소설의 플롯과 같이 역순행적으로 배열하고 있다. 감각적인 어휘의 사용으로 시상을 압축하여 표현한 시구를 찾아 보자.

 시의 내용을 둘로 나누면 제1연은 여승의 현재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제2,3,4연은 여승이 되기까지의 그녀의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보고 있다.

이 시의 여승의 일대기를 재구성하여 상상해 보거나 산무으로써 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성격 : 애상적, 감각적, 서사적 구성*(단순한 시간적 흐름이 아닌 역순행적 구성), 사실주의적.

▶ 성격 : 서술 시점상의 특징 : 객관적 서술(소설의 1인칭 관찰자 시점)

      ※ 비교 - 서정주 시 <신부>도 서사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 서정시이지만 서술 방식은 3인칭 전지적 서술이므로 <여승>과는 구별됨.

▶ 어조 : 회상적

▶ 특징 : ① 감각적 어휘의 구사, ② 시상의 압축, 절제, ③ 비유적 표현이 두드러짐(독특함) ④ 역순행적 구성

▶ 구성 : 역순행적 구성

          ① 여승의 현재(제1연)

          ② 여승의 삶의 궤적(제2~4연)

            -제2연 : 시적 화자의 여인과의 만남

            -제3연 :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외로운 처지의 여인

            -제4연 : 한 많은 여인이 여승이 됨

 

▶ 제재 : 한 여자의 일생

▶ 주제 : 여승의 비극적 삶.(가족 공동체의 상실)

 

■ 연구 문제

1. 이 시를 소설의 서사 구조에 견주어 볼 수도 있다고 한다면, 그 시점(視點)과 구성 방법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모범답>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 역순행적 구성

 

2. 지은이는 해금 시인(解禁詩人)이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이 20년대 프로 시의 한계였던 이념 편향성을 극복, 30년대에 보여 준 시의 새로운 면모를 100자 정도로 기술해 보라.

 <모범답> 일제 강점기 속에서 농촌이 몰락하고, 가족 구성원이 상실되는 우리 민족의 삶의 현실을 토속적인 시어로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목적 문학에서 벗어나 리얼리즘 시로서의 발전을 보여 주고 있다.

 

3. 백석(白石)의 시 작품들이 다른 시인들의 작품에 비해 독특한 스타일로 쓰여져 더욱 높이 평가받고 있다면, 어떤 점을 들 수 있는지 4가지로 써 보라.

<모범답> ① 토착어의 적절한 활용과 토속 풍경을 배경으로 한 원초적 삶의 조명

         ②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 구상적 표현

         ③ 전통적 율격과 접목하여 산문시의 가능성을 보여 준 점

         ④ 삶의 리얼리티를 통한 민족 공동체적 연대감 형성

 

4. ㉠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어떤 시어나 시구를 통해 그러한 의미를 유추해 내고 있는지 120자 정도로 써 보라.

 <모범답> 이미 여승이 된 위치에서, 지난날의 고생과 번민을 회상해 보며, 지친 삶 속에 찌들린 처절한 모습을 ‘파리한 여인’,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돌무덤’ 등으로 표현하여 현재의 늙음을 유추해 내고 있다.

 

■ 시구해설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취나물의 일종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산생활을 오래했다. 화자가 여인에게서 연민 이상의 사랑을 느끼는 이유

                   ┌직유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이미 여승이 된 위치에서, 지난날의 고생과 번민을 회상해 보며, 지친 삶 속에 찌들린 처절한 모습을 '파리한 여인',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바비', '돌무덤' 등으로 표현하여 현재의 늙음을 유추해 내고 있다.

    ⇒지친 삶속에서 찌들은 처절한 모습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시적 자아와 여승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부분. 객관적 거리감 유지

▶ 여승의 현재의 모습(현재)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금광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첫만남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여인의 한                            └'파리한'과 함께 청색의 차가운 이미지 - 창백하고 가녀린 비감

▶ 화자와 여인과의 첫만남(과거)

  ┌일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가난 때문에 돈벌러 간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 청색의 차가운 이미지. 죽음마저 미감으로 처리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어린 딸의 죽음 - 더욱 외로움

▶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딸의 죽음(과거)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여인의 울음. 감정이입법

                                     ┌머리카락                  ┌중이 되던 날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모퉁이             └슬픔을 초월하는 여인의 정서

▶ 삭발하고 중이 되는 여인(과거)

※ 이 시에 나타난 서사의 3요소(시간, 행동, 의미)는?

    1)시간 : 역순행

    2)행동 : 남편이 집을 나감

                   ↓

             남편을 찾아 나선 여인이 아이와 함께 옥수수를 팔고 다님

                   ↓

             홀로 남은 여인의 딸이 죽음

                   ↓

             여인은 머리를 자르고 여승이 됨

    3)의미 : 곧 주제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한 여자의 일생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한 여인의 일생, 가족 구성원들이 상실되면서 일어나는 삶의 비애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 가족은 지아비와 지어미 그리고 딸아이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농삿일을 했을 법한 지아비는 광부가 되어 집을 나가고, 아내는 남편을 찾아 금점판을 돌며 옥수수 행상을 하고, 그 고생에 못 이기어 딸은 죽어 돌무덤에 묻히고, 자신은 산 속 절간에서 삭발을 하여 여승이 되었다.

 절제된 시어와 직유의 표현 기법으로 일제 강점기의 민족 현실을 전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섶벌’처럼 일터를 찾아 나간 지아비, ‘가을밤같이 차게’ 울면서 자식을 때리는 어미, ‘도라지 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간 어린 딸, 온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 산꿩의 울음이 곧 여인의 울음이요, 여인의 머리오리가 곧 눈물인 것이다. 이 여인의 삶의 역정을 생각하면서 화자는 불경처럼 서러워한다. 이 시는 사회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리얼리즘 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해와 감상 2

 백석이 가지고 있던 공동체적인 공간에 대한 시적 관심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가족적인 유대나 유년기의 체험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민중들의 생활 세계를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함으로써 민중들의 삶을 위협하는 현실의 모순을 파헤치는 커다란 힘으로 고양되기도 한다. 이 <여승>과 <팔원>은 바로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백석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시로 거론되고 있다.

 이 시는 한 여승의 비극적 삶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인해 파괴된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를 찾아 ‘금점판’을 떠돌다가 급기야는 어린 딸마저 잃고 여승이 되어 버린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을 4연 12행의 짧은 구성으로 밀도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가족 공동체마저 철저히 파괴해 버린 식민지 현실과 민중들의 고난은 백석의 시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유년의 체험과 공동체적 향수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가족 사이의 유대와 사람과 사물 사이의 친화 관계가 완전히 해체된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해체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의 경과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힘, 즉 일제의 식민지 지배라는 파행적 역사 과정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나 그를 찾아 떠돌다 끝내 자식마저 잃어버리고 여승이 된 여인이나 모두 그러한 역사 과정에서 희생당한 민중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역행적 구성 방법으로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는데, 1연은 여승의 현재 모습이며, 2~4연은 그녀가 여승이 되기까지의 삶의 궤적을 더듬고 있는 부분이다. 거의 모든 시행을 하나의 문장으로 배치함으로써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하고 있으며, 짧은 작품 구조로써 그녀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표현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비록 불교에 귀의한 여인이지만, 화자인 ‘나’의 눈에 비추어진 여승의 모습은 여전히 현실적 고뇌를 극복하지 못한 서글픈 모습으로, 마지막 두 시행에서 보여 주고 있는 ‘섧게 우는 산꿩’이나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여인의 머리오리’가 바로 그녀의 내면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해와 감상 3

 이 시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과, 그에 대한 시인의 정회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여승은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삶을 살았던 여인의 한 사람이다. 지아비와 딸아이와 함께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을 여인이, 집을 떠나 옥수수 행상으로 깊은 금점판을 떠돌며 남편을 찾아 헤매다, 딸이 죽어 돌무덤에 묻히자 삭발을 하고 가지취와 불경을 만지면서 여생을 보내는 여승이 된 것이다. 곧, 이 여승은 농촌의 몰락으로 가난하고 한스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여승의 모습에서 불경처럼 서러워지는 시적 자아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시의 시상은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고, 소설의 플롯처럼 재구성되어 전개된다. 곧, 1연에서는 산사에서 여승을 만나는 장면을, 2연에서는 옛날 평안도 어느 금점판에서 옥수수 행상을 만난 것을, 3연에서는 그 여인의 기구한 삶과 여승이 된 과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놓고 있다.

 

■ 이해와 감상 4

 여승은 백석의 초기 시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초기 시에서 그는 풍경이나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를 보여주고 있는 데 이 시에서도 한 여인의 삶에 대한 감정을 절제한 묘사가 돋보인다. 그 절제된 감정은 백석의 깔끔하고 정결한 선비다운 성격을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이 시에는 한 여인의 삶에 대한 애처로운 시선과 섬세한 감정이 드러나고 있다. 백석 시에는 가난하고 못난 것에 대한 애처러운 마음이 자주 드러나는 데 그것은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연에서 시인은 한 여승과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인은 합장하고 인사하는 그 여인에게서 가지취의 냄새가 난다고 말하고 있다. 가지취는 취나물의 일종이다. 취나물은 쌉쌉하고 담백한 맛과 향을 가진 산나물이다. 여인을 산 속의 취나물에 비유함으로써 시인은 세속과 인연을 끊은 이 여인의 가지취 맛이나 향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초탈한 것 같은 그러나 다소 쓸쓸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느낌은 다음 행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시인은 세속을 떠난 것 같은 그 여승에게서 산 속의 가지취처럼 쓸쓸한 낯빛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쓸쓸한 낯이 녯날처럼 늙었다"라는 말은 쓸쓸한 얼굴이 옛날처럼 늙어 보인다는 것이다. 옛날은 현재에 비해 오랜 과거이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오늘에 비해 늙었다고 할 수 있다. 여인의 쓸쓸해 보이는 얼굴은 그 여인이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오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여곡절을 생각하게 해주며 또한 아직도 과거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그 번뇌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는 것은 여인이 외고 있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는 뜻이다. 불경이 서럽다고 한 것은 인간의 번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비원을 담고 있는 것이 불경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두 번째 연부터 마지막 연까지는 여인이 절에 들어오기까지의 삶에 관한 것이다. 백석은 평소에 여기 저기 여행을 많이 하고 떠돌아 다녔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 시의 여승도 여행 중에 만났던 여인이다. 언젠가 시인은 여행 중에 평안도 어느 금판에서 안색이 파리한 여인에게 옥수수를 샀던 일이 있었는데 여인은 어린 딸을 때리며 가을밤처럼 차게 울었었다고 말한다. 파리한 안색은 여인의 가난한 삶을 말해주는 지표이다. "아이를 때리며 차갑게 우는 여인"에서 우리는 우는 아이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어서 아이를 때리면서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차갑게 울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여인을 볼 수 있다.

 3연에서 그 여인의 지아비가 집을 나갔고 집을 나간 지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지아비도 없이 1930년대 식민지 유랑의 시대에 어린 딸을 데리고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10년을 지아비를 기다리며 겨우 겨우 살아왔지만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죽어 버리고 말았다.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는 것은 그 딸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도 백석의 섬세한 마음이 드러난다. 불쌍한 어린 것의 죽음을 앞에 놓고 죽었다는 말을 쓰지 못하고 그 죽음을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고 돌무덤 주변의 도라지꽃에 환유적으로 비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앞서의 여승이 바로 이 여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지아비는 행방불명이고 못 먹고 병든 딸마저 잃은 여인은 세상에 대한 더 이상의 욕구를 잃고 머리를 깎게 되는 것이다. 산꿩의 울음은 꿩, 꿩 하고 두 마디 큰 소리로 운다. 꿩, 꿩 하는 거칠고 큰 소리 다음의 적막이 있어서 꿩 울음은 고적하고 슬픈 느낌을 준다. 산꿩의 울음은 지아비가 집을 나가고 딸이 죽은 여인의 자신의 기구한 삶에 대한 울음이기도 하다.(유재천. 2000. 5, 31)

 백석이 가지고 있던 공동체적인 공간에 대한 시적 관심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가족적인 유대나 유년기의 체험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민중들의 생활 세계를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함으로써 민중들의 삶을 위협하는 현실의 모순을 파헤치는 커다란 힘으로 고양되기도 한다. 이 <여승>과 <팔원>은 바로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백석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시로 거론되고 있다.

 이 시는 한 여승의 비극적 삶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인해 파괴된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를 찾아 '금점판'을 떠돌다가 급기야는 어린 딸마저 잃고 여승이 되어 버린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을 4연 12행의 짧은 구성으로 밀도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가족 공동체마저 철저히 파괴해 버린 식민지 현실과 민중들의 고난은 백석의 시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유년의 체험과 공동체적 향수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가족 사이의 유대와 사람과 사물 사이의 친화 관계가 완전히 해체된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해체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의 경과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힘, 즉 일제의 식민지 지배라는 파행적 역사 과정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나 그를 찾아 떠돌다 끝내 자식마저 잃어버리고 여승이 된 여인이나 모두 그러한 역사 과정에서 희생당한 민중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역행적 구성 방법으로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는데, 1연은 여승의 현재 모습이며, 2∼4연은 그녀가 여승이 되기까지의 삶의 궤적을 더듬고 있는 부분이다. 거의 모든 시행을 하나의 문장으로 배치함으로써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하고 있으며, 짧은 작품 구조로써 그녀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표현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비록 불교에 귀의한 여인이지만, 화자인 '나'의 눈에 비추어진 여승의 모습은 여전히 현실적 고뇌를 극복하지 못한 서글픈 모습으로, 마지막 두 시행에서 보여 주고 있는 '섧게 우는 산꿩'이나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여인의 머리오리'가 바로 그녀의 내면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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