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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白奭,백기행, 백석 시 모음,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 언어 구사 모더니스트

Jobs 9 2022. 2. 7.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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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

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

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

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

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정주성(定州城)                                        


산(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려 조을던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팔원(八院) - 서행 시초(西行詩抄) 3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흰 밤                                                     

 

옛 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여우난골족(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려(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엄매 사춘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 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 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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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난골족 : 여우난 골 부근에 사는 일가 친척들.

*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 아버지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 포족족하니 : 빛깔이 고르지 않고 파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 매감탕 : 엿을 고거나 메주를 쑨 솥을 씻은 물로 진한 갈색.

* 토방돌 : 집의 낙수 고랑 안쪽으로 돌려가며 놓은 돌. 섬돌.

* 오리치 : 평북 지방에서 오리 사냥에 쓰이는 특별한 사냥 용구.

* 반디젓 : 밴댕이젓.

* 저녁술 :저녁 숟가락 또는 저녁밥.

* 숨굴막질 : 숨바꼭질.

* 아르간 : 아랫간. 아랫방.

* 조아질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 아이들의 놀이 이름들.

* 화디 : 등장을 얹는 기구. 나무나 놋쇠로 만듦.

* 홍게닭 : 새벽닭.

* 텅납새 : 처마의 안쪽 지붕.

* 무이징게 국 : 민물새우에 무를 넣고 끓인 국.

 

벌 : 매우 넓고 평평한 땅

고무 : 고모, 아버지의 누이

안간 : 안방.  

조아질 :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리며 해찰을 부리는 일. 평안도에서는 아이들의 공기놀이를 이렇게 부르기도 함.

쌈방이 : 주사위

바리깨돌림 : 주발 뚜껑을 돌리며 노는 아동들의 유희.

호박떼기 : 아이들의 놀이

제비손이구손이 : 다리를 마주끼고 손으로 다리를 차례로 세며, '한알 때 두알 때 상사네 네비 오드득 뽀드득 제비손이 구손이 종제비 빠땅' 이라 부르는 유희

사기방등 : 흙으로 빚어서 구운 방에서 켜는 등.

텅납새 : 턴납새. 처마의 안 쪽 지붕이 도리에 얹힌 부분. 부고장 같은 것이 오면 방 안에 들이기를 꺼려 이곳에 끼워 넣는 풍속이 있었음.

동세 : 동서(同壻).

무이징게국 : 징거미(민물새우)에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인 국.

 

국 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

나서 텁텀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기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적 큰 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기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

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끊는 아루?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

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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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가재미: 북쪽 지역의 김치를 넣어 두는 창고, 헛간
* 양지귀: 햇살 바른 가장자리
* 은댕이: 가장자리
* 예대가리밭: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 산멍에: 이무기의 평안도의 말
* 분틀: 국수 뽑아내는 틀이라 한다.
* 큰마니: 할머니의 평안도의 말
* 집등색이: 짚등석, 짚이나 칡덩쿨로 짜서 만든 자리
* 자채기: 재치기
* 댕추가루: 고추가루
* 탄수: 석탄수
* 삿방: 삿(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를 깐 방 // 아르?: 아랫목 //
* 고담(枯淡): (글, 그림, 글씨, 인품 따위가) 속되지 아니하고 아취가 있음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

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

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거

랑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짖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갖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장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

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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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 개니빠디 : 개의 이빨.

* 너울쪽 : 널빤지쪽.

* 짖 : 깃.

* 개터럭 : 개의 털.

* 재당 : 재종(再從). 육촌.

* 문장 : 한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

* 몽둥발이 : 딸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물건.

 

 

 가즈랑집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

려 오는 집

 닭 개 짐승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촌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에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산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아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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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즈랑집 : '가즈랑'은 고개 이름.'가즈랑집'은 할머니의 택호를 뜻함.

* 쇠메 : 쇠로 된 메. 묵직한 쇠토막에 구멍을 뚫고 자루를 박음.

* 깽제미 : 꽹과리.

* 막써레기 : 거칠게 썬 엽연초.

* 구신집 : 무당집.

* 구신간시렁 : 걸립(乞粒) 귀신을 모셔놓은 시렁. 집집마다 대청 도리 위 한  구석에 조그마

한 널빤지로 선반을 매고 위하였음.

* 당즈깨 : 당세기. 고리버들이나 대오리를 길고 둥글게 결은 작은 고리짝.

* 수영 : 수양(收養). 데려다 기른 딸이나 아들.

* 아르대즘퍼리 : '아래쪽에 있는 진창으로 된 펄'이라는 뜻의 평안도식 지명.

* 제비꼬리 - 회순 : 식용 산나물의 이름.

* 물구지우림 : 물구지(무릇)의 알뿌리를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

* 둥굴레우림 : 둥굴레풀의 어린 잎을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

* 광살구 : 너무 익어 저절로 떨어지게 된 살구.

* 당세 : 당수. 곡식가루에 술을 쳐서 미음처럼 쑨 음식.

* 집오래 : 집의 울 안팎.
 

 

1. 고 야 ( 古 夜 )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산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로는 어느 산골짜기에서 소를 잡어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 아래 고래 같은 기와 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산 어느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즐어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 고무가 고개 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샅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발거먹고 은행여름을 인두불에 구어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위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어 굴면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 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 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내빌날이 들어서 내빌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내빌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여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위에 떡돌 위에 곱새담 위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내빌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 세기물을 내빌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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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리꾼 : 농한기나 그밖에 한가할 때 소나 돼지를 잡아 내장은 즉석에서 술안주로 하는 밀도살꾼.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 멍석에 널어말리는 곡식을 멍석 채 훔쳐간다는.

니차떡 : 이차떡. 인절미를 말함.

청밀 : 꿀.

조마구 : 옛 설화 속에 나오는 키가 매우 작다는 난장이.

재밤 : 깊은 밤.

자즈러붙어 : 자지러붙어. 몹시 놀라 몸을 움츠리며 어떤 물체에 몸을 숨기는 것.

치장감 : 혼삿날 쓰이는 옷감.

삿귀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의 가장자리.

쇠든 밤 : 말라서 새들새들해진 밤.

여름 : 열매.

인두불 : 인두를 달구려고 피워 놓은 화롯불.

광대넘이 : 앞으로 온몸을 굴리며 노는 유희.

천두 : 천도 복숭아.

쩨듯하니 : 환하게.

놀으며 : 높은 압력에 솥뚜껑이 들썩들썩하는.

무르끓고 : 끓을 대로 푹 끓고.

죈두기송편 : 진드기 모양처럼 작고 동그랗게 빚은 송편.

 

2.나와 지렝이

 

내 지렝이는

커서 구렝이가 되었습니다

천년 동안만 밤마다 흙에 물을 주면 그 흙이 지렝이가 되었습니다

장마 지면 비와 같이 하늘에서 나려왔습니다

뒤에 붕어와 농다리의 미끼가 되었습니다

내 리과책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지렝이의 눈이 보고 싶습니다

지렝이의 밥과 집이 부럽습니다

 

3. 여승

 

女僧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平安道의 어늬 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4.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

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

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

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

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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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 : 개의 이빨.

재당 : 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갓사둔 : 새사돈.

붓장사 : 붓을 파는 직업의 장사꾼.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7. 집게네 네 형제

 

어느 바다가

물웅덩이에

깊지도 얕지도 않은

물웅덩이에

집게 네 형제가

살고 있었네

 

막내 동생 하나를

내어놓은

집게네 세 형제

그 누구나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웠네

 

남들 같이

굳은 껍질쓰고

남들 같이

고운 껍질 쓰고

뽐내며 사는 것이

부러웠네

 

그래서

맏형은

굳고 굳은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했네

 

그래서

둘째 동생은

곱고 고운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했네

 

그래서

셋째 동생은

곱고도 굳은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했네

 

그러나

막내동생은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하고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 했네

 

그런데

어느 하루

밀물이 많이 밀어

물웅덩이 밀물에

잡겨버렸네

 

이때에 그만이야

강달소라 먹고 사는

이빨 센 오뎅이가

밀물 다라

떠들어 와

강달소라 보더니만

우두둑 우두둑

깨물었네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하던

맏형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난데없는 낚시질꾼

주춤주춤 오더니

물웅더이 기웃했네

 

이때에 그만이야

망둥이 미끼하는

배꼽조개 보더니만

낚시질꾼

얼른 주워

돌에 놓고 돌로 쳐서

오지끈 오지끈

부서졌네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하던

둘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부리 굳은 황새가

진창 묻은 발 씻으러

물웅덩이 찾아왔네

 

이때에 그만이야

황새가 좋아하는

우렁이 하나

기어가자

황새는 굳은 부리

우렁이 등에 쿡 박고

오싹 바싹

쪼박냈네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하던

셋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러나

막내동생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해서

오뎅이가 떠와도

겁 안 나고

낚시질꾼 기웃해도

겁 안 나고

항새가 찾아와도

겁 안 났네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하는

막내동생 집게는

평안하게 잘살았네

 

11.가무래기의 樂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빗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빗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웃즐댄다 그무슨 기쁨에 웃즐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 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벼개하고 누어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무래기 : 모시조개. 새까맣고 동그란 조개

가무락조개 : 가무래기. 모시조개. 대합조개과에 딸린 바닷물 조개. 특히 애도에서 물이 빠진후 많이 잡힌다.

뒷간거리 : 가까운 거리에. 가까운 거리를 뜻함.

능당 : 능달(응달). 해가 들지않아 그늘진곳

락단하고 : 즐거워서 손뼉을 치고.

그즈런히 : 가지런히

 

12 고향(故 鄕)

 

나는 北關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침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들이워

먼 �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도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곧이라 한즉

그렇면 아무개氏 고향이란다

그렇면 아무개氏를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슴을 띄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즛이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다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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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

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

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

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

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

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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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修羅) : 싸움을 일삼는 귀신.

싹기도 : 흥분이 가라 앉기도.

 

15.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 안으로 가면 뒤울 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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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력 : 오금, 무릎의 구부리는 안 쪽.

디운귀신 : 지운귀신, 땅의 운수를 맡아본다는 민간의 속신.

조앙님 : 조왕님, 부엌을 맡은 신, 부엌에 있으며 모든 길흉을 판단함.

데석님 : 제석신, 무당이 받드는 가신제의 대상인 열두 신, 한 집안 사람들의 수명, 곡물, 의류, 화복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본다 함.

굴통 : 굴뚝.

굴대장군 : 굴때장군, 키가 크고 몸이 남달리 굵은 사람. 살빛이 검거나 옷이 시퍼렇게 된 사람.

얼혼이 나서 : 정신이 나가 멍해져서.

곱새녕 : 초가의 용마루나 토담 위를 덮는 짚으로, 지네 모양으로 엮은 이엉.

털능귀신 : 철륜대감. 대추나무에 있다는 귀신.

연자간 : 연자맷간. 연자매를 차려 놓고 곡식을 찧거나 빻는 큰 매가 있는 장소.

연자당귀신 : 연자간을 맡아 다스리는 신.

회리서리 : 마음 놓고 팔과 다리를 휘젓듯이 흔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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