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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원내대표, 1965년, 인천, 연수, 인하대, 회계사, 교수

Jobs 9 2025. 6. 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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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제11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朴贊大 | Park Chan-dae

 

출생

1965년 5월 10일1

경기도 인천시 남구 용현동

(現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거주지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 한별렉스힐

본관

반남 박씨

현직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제22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연수구 갑 지역위원장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민주연구원 이사장

 

 

대한민국의 회계사, 교수 출신 정치인.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및 제20-22대 3선 국회의원을 역임 중이다.

 

 

생애

 

1965년 5월 10일,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박찬대가 태어나기 직전 인천으로 터전을 옮겼다. 용현동에서 자라면서 인천용현초등학교(25회), 인천대건중학교9(33회), 동인천고등학교10(21회)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 내내 미술반을 다닐 정도로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고 소질도 있었으나 집안 사정 때문에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용현동에 있는 인하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과에 84학번 정석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 전두환 정부, 6월 민주항쟁 시기와 맞물려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인하대학교 졸업 후 1988년 9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31보병사단에서 행정병(일반행정 특기)으로 복무하였고, 1990년 12월 27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군 전역 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였고 1998년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학원 재학 중 1997년 대한민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던 세동회계법인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박찬대는 신입연수를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받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나라 다국적 기업에 대한 많은 고객들을 상대로 일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삼일회계법인 국제부, 금융감독원 기업공시국·회계감독국 등지에서 공인회계사로 근무했고, 한미회계법인을 설립해 부대표와 경인지역본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인하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겸임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인천광역시청 산업단지계획 심의위원, 인천환경공단·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인천광역시 체육회 등지의 감사 등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그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본인의 말을 따르자면, 2009년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막연히 가지고 있던 정치에 대한 생각을 결심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후 본인의 지역 인천광역시에서 관련 인물들과 관계를 이어가다가 조언을 듣고 국회의원이 될 결심을 하며 더불어민주당 계열로 들어가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 활동

 

그러나 그도 정치 활동이 처음부터 마냥 꽃길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고 자란 용현동이 포함된 남구 을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여성 우선 공천 원칙이 적용되면서 연수구에서 지역구를 옮긴 안귀옥 후보에게 공천장을 내주고 말았다. 본인도 반발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당의 방침을 따르면서 19대 총선에서는 대신 인천시당 대변인을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당내 공부모임인 사단법인 돌바내(돌아보고 바라보고 내다보고)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4년 경선 끝에 사고지역구였던 연수구 지역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사실 이것도 갈 곳이 없어지자 당에서 이 지역에서 활동이라도 한번 해 보라고 권유한 것이라고 한다. 성실한 활동 끝에 당 조직을 재건하면서 당의 신망을 사게 되었는데, 이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에서 호재로 작용했다.

 

연수구는 그 동안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분구 이래로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당선자를 단 한 명도 낸 적이 없는 그야말로 험지 중 상험지였는데, 인구가 송도국제도시 개발로 늘어 선거구가 2개로 증가하였다.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지역 조직을 재건하고 입지를 다진 공을 인정받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순위로 단수공천으로 출마가 확정되면서 일찌감치 선거 준비에 아무 탈 없이 착수할 수 있었다. 마침 이 지역의 터줏대감 격이던 현역 황우여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으로 인해 서구 을로 떠나면서 무주공산이 된 상황이었다. 출구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정승연 후보에 밀린 2위로 나왔던데다가 비록 국민의당과 표가 갈리기는 했지만, 그간 지역구를 잘 다져놓은 결과 214표 차이로 신승하면서 민주당 계열의 사상 첫 연수구 승리라는 기록의 주인공이 되며 금배지를 차지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원의 세금탈루 의혹제기에 맞서 후보자 스스로 해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후보자가 활짝 미소를 보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였고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세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후보자가 아무리 꼼꼼히 준비하였다 하더라도 실무를 하는 회계사, 세무사 정도가 아니면 적절하게 해명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찬대 의원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가며 후보자를 변호해주었다.

 

2019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으로 지명되며 첫 당직을 맡게 되었다.

 

제20대 국회에서는 전반기 정무위, 후반기에는 교육위에서 활동하였으며 임기를 마치며 상임위·본회의에 전부 개근한 4명의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2020년 ~ 2023년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단수공천을 받았다. 미래통합당 정승연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넉넉한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와중 정승연 후보가 유승민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온 상황에서 '인천 촌구석'이라는 자폭성 발언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날 아침 첫 행보로 부평구 가족공원에 있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제 시계는 0416, 1616, 2번의 알람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 반드시 바뀔 것입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겼다.

 

제21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도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당선 감사인사를 꾸준히 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2020년 5월 14일, 제21대 국회의원 등록을 마치고 전반기 상임위원회는 교육위원회에 보임되어 더불어민주당 간사위원을 맡았다.

 

제21대 국회의원으로서의 1호 법률안으로 제20대 국회 때 회기 만료로 통과시키지 못한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안'18을 발의했고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또한 코로나19로 제대로 학기를 치르지 못한 채 학비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대학생들을 위해 등록금 반환에도 앞장섰다. 결국 3차 추경안에 관련 예산이 반영되어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1년 모교인 인하대학교가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결과 일반 재정지원 대학에서 탈락하자 이를 국정감사에서 문제 삼겠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를 맡아 정부 재정지원을 받는 대학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2022년도 교육부 예산안을 통과시켜 사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예비)후보의 수석대변인을 맡았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는 감사 중간에 교육위원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로 상임위원회를 이동, 화천대유 건으로 국민의힘의 공격을 받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를 방어하는 데 투입되었다. 

 

2022년 4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청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자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비난했다. 그러자 다음 발언 차례였던 박찬대 의원은 "이렇게 나대시는 것" 등의 발언으로 배현진 의원을 비판했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대표발의 법안 26개 중 16개를 통과시켰으며 이는 전체 지역구 의원 중 2위에 해당한다. 높은 상임위 출석률을 보여주는 등 의정활동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2022년 박홍근 전 원내대표의 수석부대표로 임명되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부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친명계 인사로 분류되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의원직 후보로 출마하여 3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2024년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정승연 후보와 세번째 매치에서 승리해 3선 고지에 올랐다.

 

2024년 4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재명 전 대표와 워낙 가까운 관계다보니 이재명 전 대표가 사실상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다른 후보들이 자진 사퇴하면서 사실상 단일 후보 추대 가능성이 커졌다. 5월 3일 단독 출마, 찬반 투표 끝에 제22대 국회의 더불어민주당 1기 원내대표19로 선출됐다. 당선 소감에서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운영위원회를 더불어민주당 몫으로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원내부대표를 많이 인선해서 22명의 원내대표단을 꾸려 개혁기동단이라 이름 붙였다.

 

2024년 5월 9일, 언론 인터뷰에서 "아무리 비싼 집이라도 1주택이고, 실제 거주한다면 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며 '실거주 1주택 종부세 폐지론'을 주장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그 문제와 관련된 정책적 검토는 없었다"며 "현재로서는 박 원내대표의 개인적 견해라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했다. 

 

2024년 6월 10일 열린 본회의를 통해 제22대 국회 전반기 운영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또한 이재명 전 대표가 연임 도전을 이유로 6월 24일 사퇴하면서 차기 대표 선출때까지 당대표 직무대행을 겸임하게 됐다.

 

2024년 8월 18일 이재명 전 대표가 연임에 성공함에 따라 원래 직인 원내대표로 돌아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이에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에 대표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그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도 더불어민주당을 대표해 제1 대표 발의자로서 이름을 올렸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에 참석한) ◯◯◯ 의원! 어서 돌아오십시오!

어서 빨리 돌아와서 국회의원의 본분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4년 12월 7일, 김건희 특검법 및 윤석열 탄핵소추안 1차 표결이 진행됐는데, 특검법은 2표가 모자라 부결된 데다가 탄핵소추안은 특검법 투표 이후 안철수를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퇴장해버려 정족수 미달로 사실상 부결되었다. 그러자 남은 의원들과 함께 퇴장한 의원들을 호명하며 의사당으로의 복귀를 호소했다. 이 연설이 큰 호평을 받았고 호소가 통한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예지 의원이 복귀하여 투표를 하였고, 이후 김상욱 의원도 복귀하여 투표했다.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 2차 표결이 진행됐는데, 대표발의 의원으로서 다시 제안설명 연설을 맡았다. 탄핵 가결이 가시화된 만큼, 연설은 20여분 동안 지속되었으며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대한 불법성, 반헌법성을 밝히며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이 주가 되었다. 연설 내용 중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는가?" 라는 소년이 온다를 집필할 당시 한강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습니다.” 라고 답문 형식으로 연설했는데, 이 부분이 5.18 민주화운동의 본거지인 호남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는 평이 많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가결 204표로 가결되고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내란 상설 특별검사를 임명하지 않고 이미 여야가 합의한 헌법재판관 임명 및 내란 특검법 공포에 미온적이자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의결정족수를 가지고 표결 중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간에 충돌이 있었는데 권성동 원내대표가 의장석을 찾아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자 같이 뛰어올라가 권성동에게 “내란세력들이 뭐하는 거야, 지금!“ 하고 호통쳤다.

 

탄핵 정국 및 조기대선 정국을 맞아 국회 원내 제1당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로서 활발히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게 되자 대선 후보 등록을 위해서 사퇴한 이재명 전 대표를 대신해서 다시금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아서24 대선 정국에서의 더불어민주당을 지휘하게 되었다. 본인이 미는 것은 찬대 원대당대직대총대썰렁하다25.

또한 대선이 6월이라 원래 5월에 치르던 원내대표 선거를 미루기로 되어 자연스럽게 임기가 연장되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가족 중에서는 박찬대 본인이 중학교 시절 때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교 3학년 때 다른 가족들도 박찬대와 같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6년에 집사 안수를 받았고, 본인만의 표어이자 정치 본령으로 삼는 구절은 로마서 12장 - "즐거워 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라고 한다. 이에 정청래가 붙여준 별명은 교회 오빠. 이 별명이 맘에 드는지 자주 언급하고 있다.

실학자 박지원의 집안인 반남 박씨 가문에 속해있다. 다만 직계는 아니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20대 국회의원 임기중 4년간 국회의원 월급을 모아 1억원이상 기부하여 아너 소사이어티에 등재되었다. 또한 매달 210만원 씩 모교인 인하대학교에 장학금으로서 기부하였다고 한다.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밝히길 국회의원으로서의 수입이 회계사 때의 20분의 1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외손자라고 여러 매체에서 언급된 바 있다. 2019년 6월 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석주 이상룡 제87주기 추모식()과 2023년 6월 10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석주 이상룡 제91주기 추모식()에 모두 석주 이상룡 선생의 외손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다만, 엄밀히 말하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외손자는 아니므로,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보기는 어렵다. 박찬대 의원의 외조부는 이동봉(李東鳳)으로, 석주 이상룡 선생과 같은 고성 이씨 참판공파(參判公派) 30세 희(羲) 동(東) 항렬26이긴 하나, 20촌 지간으로 사실상 남남이다.

취미가 상당히 많은데, 앞서 언급했듯이 학창시절에 미대 지망생이었을 정도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인하대학교 동아리 화우회의 멤버였고, 노래 또한 수준급이다. 트럼펫을 잘 다루며 서예, 판소리, 자전거, 심지어는 춤까지 즐기는 취미가 매우 다양하다.

국민의힘 이혜훈 전 의원과 친분이 있다. 이혜훈 전 의원 본인도 "서로 다른 정당이고 정견이 다른 경우가 많지만 서로 화합이 잘된다"며 "여야가 이렇게 화합이 잘된다면 대한민국 국회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2019년 7월 15일, KBS의 퀴즈쇼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에도 함께 출연했다. 

동료 국회의원 및 보좌관 사이에서 평판이 매우 좋은 편인데, 자당의 정청래 의원은 "내가 아는 국회의원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은 박찬대이며 중앙당 당직자 중에는 한민수"라고 말한 바 있다.

국회 보좌진들에 따르면, 같이 일하기 좋다는 화이트 리스트 의원 중 하나이며 이는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국회 보좌진들로부터 굉장히 같이 일하고 싶은, 일하기 좋은 의원으로 평이 자자하다"라며 언급한 바 있다.

딕션과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 한다. 덕분에 선거운동에서 노래솜씨가 큰 도움이 되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당내 행사나 국민보고대회의 사회를 자주보고 있다. 11월 12일 촛불집회에 앞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대국민보고대회에선 뮤지컬 영웅의 한 대목을 훌륭하게 소화해 불러 청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2024년 전당대회에서도 이룰 수 없는 꿈을 불렀다. 정치인이 되기 전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인지 오인할 정도.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동안이다. 박 의원을 처음 보거나 이름 석자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나이를 대략 40대 중반 정도로 추측하지만, 사실은 무려 65년 생으로, 2025년에 세는나이로 환갑을 맞았다. 그래서 서류상 67년 생이지만 대학도 빨리 입학했기 때문에(84학번) 실질적으로는 65년 생들과 친구로 지내서 양문석, 부승찬 등이 박찬대를 사석에선 형이라고 부른다.

20-22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상대하게 된 국민의힘 정승연 후보는 박찬대 의원이 나온 인하대학교 경영대학27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인이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에다 겸임교수를 맡았던 적이 있으니 참 기묘한 인연인 셈이다.

인하대학교 내 미술동아리 ‘화우회’ 출신으로 당선 후에도 2016년 동아리 동창회 회식에 온 바 있다.

2022년 8월 제주도 4.3 평화공원을 방문했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의 광대뼈 쪽에 붙은 이물질을 떼는 순간이 사진으로 찍혔는데, 이게 마치 이재명의 코를 파주는 모습처럼 찍혔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천 파동 때 해당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SNS에 이재명 전 대표의 사진 영상을 풀어주는 경우가 많다.

이낙연, 송영길, 전현희, 정청래, 심지어는 이재명마저 인정한 아재개그 달인이다.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가 아재개그를 창시해내며 특히 본인 이름을 이용한 아재개그에 매우 능하다. 이에 셀프 작명한 본인 별명만 해도 ’알찬대‘, ’긷동찬대‘, ’찬대원대‘, ’대찬대‘, ’가열찬대‘, ’보람찬대‘, ‘일찬대’, ‘기찬대’ 등등 수십가지에 이른다. 옆에 있던 이재명 대표가 질색팔색할정도. 이 재능을 선거철마다 잘 활용하는데 대표적으로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 ‘민주당 표가 ’모자’라다‘ 며 지원유세할때 챙모자를 쓰고 돌아다닌다거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선거 때 ’무한대(무조건 한표는 박찬대)‘ 구호를 만들고 원내대표 선거 때 연설 마지막에 ‘찬대를 원대로!’ 고 외치는 등 정말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이재명 대표가 21대 대선 경선에 참여하려고 대표직을 사퇴한 100차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오늘로 회의가 백찬대요, 이제부턴 박찬대가 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재명 정부 출범일 날 우원식이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비빔밥을 회식 메뉴로 선정했다고 하자 유쾌해야 통합이 잘 된다며 메뉴로 육회비빔밥이 어떠냐는 언급도 헸다. 

2024년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탄핵안 제안 설명 중 "◯◯◯ 의원! 돌아오십시오!" 하는 모습이 밈이 되었다.

인천 토박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태어나서 성장했고, 성인이 되고 결혼한 후에도 서구 마전동, 당하동, 청라동 등 인천에서만 거주하다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연수구에 정착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회의원 당선 후에도 서울로 가지 않고 인천에서 출퇴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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