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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큰누님 박씨 묘지명

Jobs 9 2022. 10. 2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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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누님 박씨 묘지명

박지원

 

유인(孺人) 휘(諱) 모(某)는 반남(潘南) 박씨(朴氏)인데,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가 다음과 같이 묘지명을 쓴다.

유인(孺人)은 열여섯에 덕수(德水) 이씨 택모(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을 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두었는데, 신묘년(辛卯年, 1771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나이 마흔 셋이었다. 남편의 선산은 까마귀골인데, 장차 그 곳 경좌(庚坐) 방향의 묏자리에 장사지내고자 하였다.

백규(伯揆)는 어진 아내를 잃은데다가 가난하여 살아갈 도리가 없자 어린 자식들과 계집종 하나를 이끌고 솥과 그릇, 상자 따위를 챙겨서 배를 타고 산골짜기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함께 출발했다. 나는 새벽에 마포(麻浦)에서 그를 전송하였는데 배에 올라 통곡하다가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얼굴을 단장하시던 일이 마치 엊그제 같다. 나는 그 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벌렁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다가 새 신랑의 말을 흉내 내어 더듬더듬 정중하게 말을 하니, 누님은 그 말에 부끄러워하며 빗을 그만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나는 골이 나 울면서 분에다 먹을 섞고 침을 발라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자그만 오리 모양의 노리개와 금으로 만든 벌 모양의 노리개를 꺼내 나를 달래며 울지 말라고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강가에 말을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이 펄럭이고 배 그림자는 아득히 흘러가는데, 강굽이에 이르자 나무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강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은 검푸른 빛이 마치 누님이 시집가는 날 쪽진 머리 같았고, 강물 빛은 당시의 거울 같았으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울면서 그 옛날 누님이 빗을 떨어뜨리던 걸 생각하니, 유독 어릴 적 일이 생생히 떠오르는데 그 때에는 또한 기쁨과 즐거움이 많았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사이에 늘 이별과 근심, 가난이 떠나지 않아 꿈결처럼 훌쩍 시간이 지나갔거늘 형제와 함께 지낸 날은 어찌 그리도 짧은지.

떠나는 이가 반드시 다시 오마 기약해도
보내는 자는 눈물로 옷깃을 적시는 법이거늘
이 외딴 배 지금 가면 어느 때나 돌아올까?
보내는 자가 쓸쓸하게 강가에서 돌아가네.

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孺人十六, 歸德水李宅模伯揆,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夫之先山曰鴉谷, 將葬于庚坐之兆. 伯揆旣喪其賢室, 貧無以爲生, 挈其穉弱婢指十, 鼎鎗箱簏, 浮江入峽, 與喪俱發. 仲美, 曉送之斗浦, 舟中慟哭而返. 嗟乎, 姊氏新嫁, 曉粧如昨日, 余時方八歲, 嬌臥馬전 , 效婿語口吃鄭重, 姊氏羞, 墮梳觸額. 余怒啼, 以墨和粉, 以唾漫鏡, 姊氏出玉鴨金蜂,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立馬江上, 遙見丹旐翩然, 檣影逶迤, 至岸轉樹, 隱不可復見, 而江上遙山, 黛綠如鬟, 江光如鏡, 曉月如眉. 泣念墮梳, 獨幼時事, 歷歷又多歡樂. 歲月長, 中間常苦離患憂貧困, 忽忽如夢中. 爲兄弟之日, 又何甚促也. 去者丁寧留後期/ 猶令送者淚沾衣/ 扁舟從此何時返/ 送者徒然岸上歸.
  -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핵심 정리
-갈래: 묘지명
-성격: , , 애상적 회고적 추모적
-제재: 큰누님의 죽음
-주제 큰누님에 : 대한 그리움과 추모
-특징
▪ 과거를 회상하며 누이와의 추억을 돌이켜 봄.
▪ 새벽 강가의 풍경을 시집가던 날 큰누이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함.
▪ 죽은 큰누이에에 대한 애틋한 정과 추억을 솔직하게 표현함.
▪ 시를 통해 화자의 쓸쓸한 감정을 표현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몇 차례의 개작을 통해 완성한 것으로, 서정적 묘지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박지원은 ‘지금 사람들의 비지류(碑誌類)의 글들은 모두 판에 박은 듯, 의례적이고 상투적이어서 작품 하나만 지어 놓으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 가며 써먹을 수 있으니 그러고서야 그 사람의 정신과 감정 및 전형(典型)을 어디에서 상상해 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당대 묘지명의 상투적 글쓰기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당대의 관행과는 다르게 죽은 큰누님에 대한 애틋한 정과 추억을 담아 이 글을 완성했다.   
이 글의 핵심은 상여가 실린 조각배를 떠나보내고서 큰누님이 시집가던 날의 개인적인 일화를 회상하는 대목과 조각배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 새벽 강가의 풍경을 시집가던 날 큰누님의 모습에 빗대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죽은 큰누님에 대한 애틋한 정과 추억을 절실하게 묘사해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작품 풀이
[전반부]-지(誌) :고인의 성씨·본관·일생 등을 산문으로 기록한 것
 돌아가신 큰누님의 이름은 아무개로서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 중미(연암의 자)가 묘지명을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누님은 나이 열여섯에 덕수(본관) 이씨 택모 백규(택모의 자)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다. 신묘년(1771년, 영조47) 구월 초하루에 돌아가 사십 삼 세를 살았다. 남편의 선산이 아곡이라 그곳의 경좌(서남쪽을 등진) 방향 자리에 장사를 지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백규가 어진 아내를 잃은 데다가 가난하여 생계를 꾸릴 방도가 없는지라, 아예 어린 자식들과 계집종 하나를 데리고 솥과 그릇가지, 옷상자와 짐 보따리를 챙겨서 배를 타고 그 골짜기로 들어가 버렸다.(*큰누님의 남편이 큰누님이 죽은 후 생계가 어려워 이주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남편의 무능력과 가난을 드러내어 당대의 서술상의 관행에서 벗어남) 상여와 함께 일제히 떠나는 새벽,(*시간적 배경) 나는 두모포에서 배 타고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고 통곡을 하고서 돌아섰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는 날 새벽에 몸단장하던 모습이 흡사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겨우 여덟 살이라, 벌렁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면서 새신랑이 말을 더듬으며 점잔 빼는 말투를 흉내 냈다.(*글쓴이가 자신의 나이와 행위를 통해 과거의 철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 누님은 부끄러워하다가 그만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때렸다. 나는 화가 나서 울음을 터트리고는 분가루에 먹을 뒤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문질러 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오리와 금으로 만든 벌 노리개를 꺼내어 주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나를 달랬다. 지금으로부터 스물여덟 해 전 일이다. (*누님이 화가 난 남동생을 달래기 위해 노리개를 꺼낸 일화를 제시해 당대의 상투적인 서술상의 관행에서 탈피함)
  강가에 말을 세우고 저 멀리 바라보니(*공간적 배경) 붉은 명정(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이 바람에 펄럭이고 돛대는 비스듬히 미끄러지는데, 강굽이에 이르러 나무를 돈 뒤에는 모습을 감추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강가 멀리 앉은 산은 시집가던 날 누님의 쪽 지은 머리처럼 검푸르고, 강물 빛은 그날의 거울처럼 보이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처럼 보였다.(*조각배가 떠나는 새벽 강가의 풍경을 시집가던 날 큰누님의 모습에 빗대는 내용으로 모두 당대의 서술상의 관행에서 벗어나 죽은 큰누님에 대한 개인적인 정과 추억을 담고 있음) 빗을 떨어뜨리던 그날의 일을 눈물 속에서 생각하니 유독 어릴 적 일만이 또렷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또 그렇게도 즐거운 일이 많았고, 세월은 길게만 느껴졌다. 
  그사이에는 늘 이별과 환난에 시달려야 했고 빈궁에 시름겨워했다. 그 일들이 꿈속인 양 황홀하게 스쳐 지나간다. 형제로 지낸 날들은 어찌도 그렇게 짧았단 말인가? (*큰누님과 더 이상 대면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드러냄)

[후반부]-명(銘): 글 전체를 운문(시)으로 개괄한 것
           떠나는 이 간곡하게 뒷기약을 남기기에 
           보내는 이 도리어 눈물로 옷깃을 적시네.
          *사별의 정서와 관련된 구체적 행동을 드러냄
          조각배는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올까?
          *스스로 묻는 방식으로 더 이상 누님을 대면할 수 없는 상황을 나타냄
          보내는 이 쓸쓸히 강 길 따라 돌아서네.
          *상여를 실은 조각배가 떠난 후 돌아서는 자신의 모습을 제시함

[부기(附記)]: 원문에 덧붙여 적은 기록
  인정(人情)을 따른 것이 지극한 예(禮)가 되었고, 눈앞의 광경을 묘사한 것이 참문장이 되었다. 문장에 어찌 일정한 법이 있던가? 이 글을 옛사람의 문장을 기준으로 삼아 읽는다면 당연히 이상(異相)하다는 말이 없겠지만, 지금 사람의 문장을 기준으로 읽으면 의아(疑訝: 의심스럽고 이상함)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자 속에 감추어 두기 바란다. - 중존(仲存: 연암의 처남 이재성의 자)
*당시의 비지체 문장의 일반적 법식과 어긋남을 의식함
←당시의 비지체(碑誌體: 묘비墓碑와 묘지명墓誌銘을 아우르는 갈래 명칭)는 어휘가 순실하고 고고하여야 하며, 음향의 결합이 굳세고 튀어올라야 하며, 색조가 고아하고 소박하여야 하며, 짧은 어구로 응축적이며 묵중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보았음 
*조선 시대 여성의 묘지명을 서술하는 당시의 상투적인 관행(불출의 원리, 종인의 원리, 의가의 원리)에서 벗어나 작가는 고인과의 일화 등을 통해 개인적인 정과 추억을 담은 글이 가치 있다고 보았음.
~당시 묘지명은 고인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고(불출의 원리), 남편의 뜻을 따르는 수동적 언행을 제시하며(종인의 원리), 고인의 행적 중 살림을 잘해 사후에도 가족들을 풍족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가문에 공헌한 것을 골라서 칭송하여(의가의 원리) 서술해야 한다고 보았음.

 



 Q  다음 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얼굴을 단장하던 일이 마치 엊그제 같다. 그때 나는 막 여덟 살이었는데, 발랑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다가 새신랑의 말을 흉내 내 더듬거리며 점잖은 어투로 말을 하니, 누님은 그 말에 부끄러워하다 그만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나는 골이 나 울면서 분에다 먹을 섞고 침을 발라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자그만 오리 모양의 노리개와 금으로 만든 벌 모양의 노리개를 꺼내 나에게 주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하였다. 지금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강가에 말을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이 펄럭이고 배 그림자는 아득히 흘러가는데, 강굽이에 이르자 그만 나무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강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은 검푸른 빛이 마치 누님이 시집가는 날 쪽 찐 머리 같았고, 강물 빛은 당시의 거울 같았으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그 옛날 누님이 빗을 떨어뜨리던 걸 생각하니, 유독 어릴 적 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 박지원, 큰누님 박씨 묘지명 에서 -

※ 명정: 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

 

① 자연물을 통해 누님의 모습을 연상하고 있다.
② 누님과의 영원한 이별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③ 과거와 현재의 장면을 겹침으로써 상실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④ 누님의 결혼과 죽음에 대한 화자의 기쁨과 슬픔을 대조시켜 표현하고 있다.

【해설】 정답 

‘나’는 죽은 누님의 상여를 싣고 떠나는 배를 바라보며 누님이 시집가던 날을 떠올리고 있다. 누님의 죽음으로 인한 화자의 슬픔은 드러나 있지만, 누님의 결혼에 대한 기쁨은 드러나 있지 않다.

① ‘나’는 ‘멀리 보이는 산’, ‘새벽달’을 통해 누님의 생전 모습을 연상하고 있다.

② 강가에서 말을 세우고 죽은 누님의 상여를 싣고 떠나는 배를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누님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드러나고 있다.

③ 현재 강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을 과거에 시집가던 누님의 쪽진 머리, 강물 빛은 당시의 거울,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다며 누님에 대한 상실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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