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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토 확대, 스페인령 플로리다, 스페인령 루이지애나, 핑크니 조약(Pinckney's Treaty)

Jobs 9 2021. 5. 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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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토 확대

 

스페인령 식민지와의 국경선 정리

 

AD 1794년 스페인령 식민지(스페인령 플로리다, 스페인령 루이지애나)와의 불분명한 국경선을 정리하기 위하여 전(前)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지자인 토머스 핑크니가 스페인으로 파견되어 스페인의 실권자인 마누엘 고도이 데 파리아와 협상을 벌였다. 그리고 미국과 스페인령 식민지 사이의 경계선을 공동 측량하였고 스페인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면서 미국의 북쪽 경계선으로부터 북위 31도선까지를 기준으로 미시시피 강 중앙선에 스페인령 루이지애나의 일부를 양도받았다. 또한 양국 선박의 미시시피 강에 대한 자유 항해권을 보장하고 타국의 선박을 임의로 구속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를 정리하여 AD 1795년 10월 27일 조약이 체결되는데 이를 '핑크니 조약(Pinckney's Treaty)' 또는 '산로렌조 조약(Treaty of San Lorenzo)', '마드리드 조약(Treaty of Madrid)'이라고 부른다.

 

 

신규 주들의 편입

 

미국의 건국 이후 영토가 꾸준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국에 편입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있었던 버몬트가 AD 1791년 3월 미국의 14번째 주인 '버몬트 주(State of Vermont)'로 편입되었다. AD 1792년 6월에는 버지니아 주의 일부가 분리된 후 '켄터키 주(Commonwealth of Kentucky)'로 승격되면서 미국의 15번째 주가 되었다. 또한 오하이오 강 남서쪽은 AD 1790년 5월의 '남서부 조례(Southwest Ordinance)'에 의해 '남서부 준주(Southwest Territory)'로 지정되었으나 AD 1796년 6월 미국의 16번째 주인 '테네시 주(State of Tennessee)'로 승격되었다.

 

AD 1787년 7월 '북서부 조례(Northwest Ordinance)'에 따라 '노스웨스트 준주(Northwest Territory)'로 지정된 오하이오 강 북서쪽으로 백인 미국인들이 대거 이주하였다. 이에 반발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북서 인디언 전쟁(Northwest Indian War)이 벌어졌지만 AD 1794년 8월 폴른 팀버스 전투(Battle of Fallen Timbers)에서 미국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이듬해인 AD 1795년 8월 인디언 부족 연맹과 '그린빌 조약(Treaty of Greenville)'을 체결하고 오늘날의 오하이오 주 전체와 인디애나 주의 일부를 차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AD 1800년 7월 노스웨스트 준주의 서부가 '인디애나 준주(Indiana Territory)'로 분리되고 나머지 노스웨스트 준주는 AD 1803년 3월 미국의 17번째 주인 '오하이오 주(State of Ohio)'로 승격된다.

 

 

조지 워싱턴의 3선 출마 거부와 정계 은퇴

 

AD 1796년이 되자 조지 워싱턴의 2번째 대통령 임기도 마지막 해가 도래했다. 이 당시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연임을 제한하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조지 워싱턴에게 종신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은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무소속이었지만 실제로는 친(親) 연방당 성향을 보인 것 때문에 들어야 했던 계속된 민주공화당의 비난에 지쳐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종신 집권은 독재의 위험이 있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3선 출마를 거절했다. 이에 따라 미국 대통령의 연임은 두 차례로 제한한다는 불문율을 만들었고 이는 프랭클린 D.(델러노) 루즈벨트가 무려 4선(AD 1932년, AD 1936년, AD 1940년, AD 1944년)에 성공할 때까지 이어졌다가 AD 1951년 수정 헌법 제22조를 통해서 성문화된다.

 

이후 조지 워싱턴은 AD 1796년 9월 19일 '고별 연설(Farewell Address)'을 남겼는데 여기에서 헌법과 연방 정부의 권위를 존중해 줘야 함을 강조하고 공업 지대 위주의 북부와 농장 지대 위주의 남부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우려하여 통합의 중요성을 피력하였다. 이렇게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채 AD 1797년 3월 마운트버넌의 사저로 돌아가면서 은퇴하였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자 미국이 초기 위기에서 벗어나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게 해준 뛰어난 지도자로서 미국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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