聞慶새재(鳥嶺)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에 있는 고개. 고갯길 최고점의 높이는 해발 632m. 백두대간(중 소백산맥)에 있는 1,017m 높이의 조령산을 넘는 것이 고비다. 새재는 조령(鳥嶺)을 우리 말로 읽은 것으로, '나는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지금도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계이기도 하다.
현재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명승 제32호와 사적 제147호(새재에 설치된 관문들('문경 조령 관문'))로 지정되어 있다.
문경새재의 험준함은 예로부터 유명해서, 삼국시대 때는 신라 초기에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을 막는 국경선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신립이 충주 탄금대가 아닌 이곳에서 결진하여 매복했다면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더 효과적으로 막았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파견 온 명나라 장군 이여송은 문경새재의 지형을 보고 "이 험준한 고개를 지킬 생각을 못 하다니 신 총병도 참 지략없는 사람이다."하고 신립을 비웃었다고 한다. 그가 조령에서 적을 막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탄금대 전투 문서의 6번 문단으로.
한양과 동래를 연결하는 영남대로의 중추로 추풍령(좌로), 죽령(우로)과 함께 낙동강 유역(영남)과 한강 유역(기호지방)를 잇는 가장 중요한 경로였다. 전근대 시절에는 죽령은 자체가 험한데다 단양의 남한강 협곡때문에 한산했고, 추풍령은 우회길인데다 옥천과 영동사이에 있는 금강의 협곡들 때문에 각광을 받지 못했으나, 조령은 고개가 험한 것을 빼면 한성과 영남을 직선거리에 가깝게 이었고 협곡과 같은 방해물이 적었다. 그 덕분에 청주에서 회인과 보은을 거쳐 상주로 가는 고개인 화령과 함께 주요 고개로 자주 이용이 되었다.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화령과 함께 그야말로 사랑해 마지않았는데, 죽령으로 향하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 낙엽처럼 떨어지는 데 반해, 문경새재를 넘으면 말 그대로 경사를 전해듣고(聞慶) 새처럼 비상하리라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 후삼국시대 견훤과 왕건의 격돌이 있었던 격전지 가운데 하나이며(929년 가은성 공방) 지금도 복원이 잘 되어있어 꽤 준수한 트레킹 코스로 3개 관문(주흘, 조곡, 조령관)이 있다.
교통
오늘날 충주 - 문경간의 교통은 이화령을 지난다. 서울 - 부산의 지름길인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 나들목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3번 국도와 34번 국도가 지나가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화령을 넘어간다.
그런데 중부내륙선 철도는 이화령이 아니라 조령산을 직접 돌파한다. 처음에는 이화령으로 계획됐으나 지질 조사 결과 문경새재를 직접 돌파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그래서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에 교각을 세우고 있다.
문경새재의 인지도가 워낙에 높은지라 이화령을 지나는 도로에도 문경새재 이름을 붙이고 있다. 과거에는 매우 붐볐으나 이제는 한산한 자전거 도로이자 트레커들의 코스가 된 3번 국도(신작로)의 이화령 고갯길이 새재 자전거길로 불리며, 중부내륙고속도로의 터널도 이화령을 지나는데 문경새재터널로 이름지어졌고, 근처에 있는 나들목의 이름 역시 문경새재 나들목이다.
3관문에서 수안보와 충주로 가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고, 막차가 17:10에 있는데 실제로는 5분 일찍 도착하여 출발하므로 막차 시간에 주의를 요구한다. 그 외 소조령(확장되기 전 2차선 3번 국도)까지 나가면 '신혜원'이라는 정류장이 있는데 여기서 괴산군에서 수안보를 오가는 군내버스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