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한몸이 되어 만들어진 말이다. 습도가 높아 찌는 듯한 더위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비가 오지 않아 습기가 없고 타는 듯이 더운 것은 ‘강더위’이다. 흔히 ‘땡볕더위’, 또는 ‘불볕더위’라고 하는 것이 바로 강더위이다. 무더위와 강더위는 둘 다 몹시 더운 날씨를 말하지만, 습도가 높아 찌는 듯한 더위냐, 그렇지 않으면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타는 듯한 더위냐 하는 뜻 차이가 있다.
우리말 ‘강더위’와 상대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강추위’이다. 기상예보에서 아주 강한 추위를 가리켜 ‘강추위’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자 ‘굳셀 강’ 자를 붙여 말하고 있는 것이지, 본래부터 쓰던 순 우리말 ‘강추위’와는 뜻이 다른 말이다. 순 우리말 ‘강추위’의 ‘강’은 아무 것도 끼어들지 않은 순수한 것을 나타낼 때에 붙이는 접두사이다. ‘강더위’가 비가 오지 않고 타는 듯이 더운 날씨를 말하는 것처럼, ‘강추위’라고 하면 눈이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추운 날씨를 가리킨다. 아무리 추워도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면 강추위가 아니었는데, 요즈음엔 한자 ‘굳셀 강’ 자가 달린 변종이 나타나 “눈보라 치는 강추위”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을 ‘강술’이라고 한다. 소주를 안주 없이 마시면 ‘강소주’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된발음으로 ‘깡술’, ‘깡소주’라고 하는데, ‘강술’, ‘강소주’가 표준말이다. ‘강’이 “다른 첨가물이 없이 오직 그것만으로 된”이라는 뜻을 보태 주는 순 우리말이기 때문에, 두부나 호박 같은 재료를 넣지 않고 빡빡하게 끓이는 된장을 ‘강된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강된장’을 일부 지방에서는 ‘깡장’이라 말하기도 한다. ‘강’이 붙는다고 모두 한자말 ‘굳셀 강’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이렇게 순 우리말 ‘강’이 따로 있다.
‘물더위’ 설은 ‘무더위’가 습기를 듬뿍 담고 있는 더위라는 점, 치경음 ‘ㄷ’ 앞에서 ‘ㄹ’이 탈락하는 규칙에 따라 ‘물더위’가 ‘무더위’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물더위’ 설은 무엇보다 ‘무더위’가 명사 ‘물더위’에서 변형된 것이 아니라, 형용사 ‘무덥-’에서 파생된 명사일 가능성이 있어 의심스럽다. ‘덥-’에서 ‘더위’가 파생되어 나오듯, ‘무덥-’에서 ‘무더위’가 파생된 것은 자연스럽다.
또한 ‘무덥다’의 ‘무’가 ‘水’의 ‘물’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도 ‘물더위’ 설을 의심케 한다. ‘물더위’ 설을 따른다면 ‘무덥다’의 ‘무’도 ‘물(水)’의 변형이어야 한다. 만약 ‘무덥다’의 ‘무’가 ‘물(水)’과 관련된다면, 중세국어에서 ‘물(水)’이 ‘믈’이었으므로 ‘무덥다’는 ‘므덥다’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15세기 문헌에는 ‘무덥다’만 나타날 뿐 ‘므덥다’는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무덥다’의 ‘무’가 ‘물(水)’과 관련이 없는 단어인 것이 드러난다. 여기에 ‘무덥다’의‘무’와 ‘水’의 ‘믈’의 성조(聲調)가 서로 다른 점도 두 단어 사이의 관련성을 희박하게 한다.
‘무더위’에 쓰인 ‘무’의 어원은 정확히 밝히기 어렵다. 다만 ‘무덥다’와 ‘무더위’에 대응된 한자어에서 그 의미를 추정할 뿐이다. 중세국어 ‘무덥다’에는 ‘蒸鬱(증울)’이 대응돼 있고, 현대국어 ‘무더위’는 ‘蒸暑(증서)’와 함께 쓰인다. 이로써 ‘무덥다’와 ‘무더위’의 ‘무’는 ‘蒸’에 대응돼 ‘찌다’의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다. ‘찌다’는 의미의 동사 ‘무-’ 또는 ‘물-’이 있었지 않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