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센 조약,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동프랑크 왕국), 프랑스(서프랑크 왕국, 870년
메르센 조약
메르센 조약으로 로타링기아 왕국은 서프랑크 왕국과 동프랑크 왕국에 양분되었다.
메르센 조약(독일어: Vertrag von Meerssen, 프랑스어: Traité de Meerssen)은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2세와 서프랑크 왕국의 카를 2세가 870년 8월 8일 메르센(오늘날 네덜란드 남부 림뷔르흐주에 있는 도시)에서 맺은 국경획정조약이다.
프랑크 왕국은 루도비쿠스 1세(재위: 814년 ~ 840년) 사후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세 아들 로타르 1세, 루트비히 2세와 카를 2세에게 분할되어 중프랑크 왕국, 동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으로 나뉜다. 큰 아들 로타르 1세(재위: 818년 ~ 855년)가 통치하던 중프랑크 왕국은 그가 죽은 후 855년 프륌 조약으로 다시 그의 세 아들 루도비쿠스 2세, 로타르 2세, 프로방스의 샤를에게 삼분되었다. 그중 로타링기아를 다스리던 둘째 아들 로타르 2세(재위: 855년 ~ 869년)가 869년에 적자 없이 죽자, 삼촌인 루트비히 2세와 카를 2세는 그 영토를 나누어 갖기 위해 메르센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로타링기아 지역은 동서로 분할되어 각각 동프랑크와 서프랑크에 편입되게 된다. 새로운 국경선은 대략 뫼즈강, 모젤강, 마른강, 손강 및 쥐라산맥을 따라서 그려졌다.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아헨, 홀란드, 알자스를 포함하는 로타링기아의 동쪽 부분은 동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되어, 후에 루트비히 2세의 아들인 루도비쿠스 3세의 영지가 된다.
이 조약의 본문 및 부대 계약서는 독일, 프랑스 쌍방의 속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내용이 부자연스러운 베르됭 조약보다는 훨씬 독일, 프랑스 양국 성립의 시발점에 가깝다고 여겨진다.[2] 이 조약으로 그려진 새로운 국경선은 몇 번의 변동을 거쳐 880년 리베몽 조약으로 확정되었으며, 중세의 독일(동프랑크 왕국)과 프랑스(서프랑크 왕국)를 분리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베르뎅 조약이 체결된지 37년후인 870년 8월 메르센 조약(Treaty of Meerssen)이 체결된다. 이 조약으로 인해 생긴 국경이 오늘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굳어지는 기원이 된다.
중프랑크 영역이었던 로트링겐의 알사스-로렌지역은 오랫동안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역으로 남게 된다. 알사스-로렌은 1738년 빈 조약에 의해 합스부르크에서 프랑스로 이양되고, 1871년 프로이센의 프랑스 침공 이후 독일 영토가 되었다가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프랑스 땅이 되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일시 점령했지만, 전쟁이 끝난후 다시 프랑스로 되돌아갔다. 알사스-로렌의 비극은 멀리 1천년전 베르뎅 조약에서 그 출발점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