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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먼, Richard Feynman, 노벨 물리학상, 미국 이론 물리학자, 양자전기역학(QED; Quantum ElectroDynamics), 양자역학에서의 경로적분, 입자물리학에서 양자전기역학의 정식화와 쪽입자 모형의 제..

Jobs9 2023. 7. 2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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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필립스 파인먼, 양자전기역학(QED; Quantum ElectroDynamics)
Richard Phillips Feynman
1918년 5월 11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퀸스
이론 물리학자, 이학 교수

10대 이전부터 물리에 재능을 보여 신동이라 불리고, 70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끊임없이 학문에 대해 연구해 물리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양자역학에서의 경로적분, 입자물리학에서 양자전기역학의 정식화와 쪽입자 모형의 제안, 과냉각된 액체 헬륨의 초유동성 연구, 재규격화 이론, 헬만-파인만 정리, 파인만-카츠 공식, 양자 교란 등으로 잘 알려졌고, 1958년에 이미 나노머신의 등장을 예견하고 개념을 정립하였으며, 양자전기역학의 기초론을 정립한 공로로 줄리언 S.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아원자입자의 행동을 지배하는 수학적인 기술을 표현하는 직관적인 도형 표기를 개발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파인만 다이어그램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1981년에 쓴 논문에서는 양자 컴퓨터의 기초 작동 원리를 고안하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에서 나오는 천재처럼 특유의 유머러스한 성격과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대중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문학, 운동, 예술분야에 걸치는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유명하고,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인 쟁점이나 비 과학분야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널리 알려 본인의 유명세에 기여하였다.

 


뉴욕 퀸스의 파 라커웨이(Far Rockaway)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2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그런 파인만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파인만을 과학자로 만들고 싶어해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한편 자식을 유대교 주일학교에 보내 히브리어까지 배우게 했다. 파인만은 이렇게 주위의 열성적인 의지하에 유대교 학교에 다녔으나 13살 이후로 종교에 대해 거부하고 유대인들이 선택받은 자라는 선민의식을 버렸다.# 어렸을 적 이후 파인만은 줄곧 무신론자였으며 자신에게 유대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거나 남을 유대인 등의 인종으로 분류하는 것을 싫어했다. 또한 유대인들이 자연현상보다 토라해석에 더 열을 내는 모습을 보고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정신적 유산까지는 거부하지 않은 그였기에 칼텍 런치 포럼에서 기독교와 과학의 싸움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서구 문명은 두 가지 위대한 유산을 고수하고 있다. 하나는 모험을 추구하는 과학정신-언젠가는 밝혀질 미지의 세계 또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스테리로 남을 세계를 향한 모험-말하자면 지적인 겸손함이다. 다른 하나의 위대한 유산은 기독교 윤리-사랑과 형제애, 개인의 가치에 관한 기초-말하자면 정신적인(spiritual) 겸손함이다.  

이 두 가지 유산은 논리적으로, 완전히 일관된다. 하지만 논리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발상에 따르려면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종교로 돌아가자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근대의 교회가 신의 존재를 회의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를 주는가? 오늘날의 교회가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제공해주고 있는가? 이 두가지 유산들은 지금까지 서로를 상처내오는데만 주력하지 않았는가? 이런 것들은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인가? 이 두 가지 유산, 서구 문명의 두 기둥이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완전한 활기를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어린 시절 그는 라디오 수리에 많은 관심을 뒀으며 동네의 라디오 수리를 도맡아 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생각만으로 라디오를 고치는 소년'이라고 불렀다. 기계를 다루는 데에 재능이 있어 초등학교 때 그는 부모님이 집을 나간 사이 집에 강도 경보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는 15세 때 (한국 나이 16~17세) 삼각함수, 대수, 무한급수, 해석 기하학, 미분과 적분을 익힌 상태였는데,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도 스스로 고안해 낸 수학 기호들을 사용하여 문제를 풀었다. 

그의 직설적인 화법은 때때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였는데, 고양이의 신경계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사서에게 “'고양이 지도'(a map of the cat)에 관한 책이 있으면 빌려주세요"라고 물었다가 큰 웃음을 들었다고 한다. 웬 이상한 생물학과 학생이 고양이 지도를 찾는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파 락어웨이 고등학교를 1935년에 졸업하고 그 해에 MIT에 입학하여 1939년에 졸업하였다. 그 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때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국의 원자폭탄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일하였으며 이후 코넬 대학교 이론물리학 조교수로 재직하였고, 1950년쯤부터 칼텍의 교수가 되어 계속 재직하였다.

기존의 틀을 깨는 타입인데, 강연을 해주는 조건이 "싸인을 열세 번만 하겠다"라고 말하거나, 노벨상 수상자리에서 왕에게 뒷면을 보이면 안 된다는 관례에 '그러면 뒤로 깡충깡충 뛰면서 입장해야지!'라고 결심하거나, 로스 알라모스에서는 편지 검열제도에 도전하는 등 이런 탈권위적인 태도를 평생 보여주었다. 천재들이 모인다는 멘사도 매우 싫어해서 자신의 IQ 검사 결과가 125로 나왔을 때 멘사의 가입 권유를 자연스럽게 거절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반면, 학생들이나 물리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관대했던 듯하다.

상당히 겸손하다. 노력과 실력에 대해 말하면서도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한다. 운에 대한 생각이 깊은데 보통 로또같은 그런 행운들을 말하고, 좀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노력하는 것도 운이라고 보는데, 리처드 파인만은 흥미 갖는 것 자체도 운의 일종으로 보았다. 아마 과학계에서 인간의 존재는 '단지 우연한 존재'라는 의견에 동감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물리학자가 된 것은 '어쩌다가 과학에 흥미 생겨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다른 재능으로 아인슈타인같은 거물에게 세미나할 때 보통 사람처럼 손이 덜덜 떨렸지만 물리에 집중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세미나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는데, 이런 집중력도 행운의 일종으로 보았다. 그런 집중력이 삶에서 여러번 있었는데 자신이 정말 행운아라고 하였다. 또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맞는 것을 맞다'고 말하는 것을 행운아였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고 하였다.

또 권위는 별거 아니라는 태도를 평생 가졌다. 이것은 아버지의 직업인 제복 세일즈맨에서 유래한다. 대통령이나 교황도 결국엔 옷 입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왈, "교황이 평신도와 다른 것은 그가 쓰고 있는 모자뿐이란다." 또한 대학원 시절이나 로스 알라모스 시절 물리학계의 거장들과 '권위따위는 모르겠고'라는 태도로 치고받고 싸우거나, 역시 로스 알라모스 시절에 비밀을 유지하려는 정부나 군에 맞서 노동자나 계산원에게까지 이것이 어떤 프로젝트인지 알려서 근로의욕을 고취시킨 일화가 좋은 예다.

파인만의 업적은 물리학 분야에서 지대한 족적을 남겼고, 파인만이 남긴 학술적 유산들은 현재에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나 정작 그가 아인슈타인 이후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이 된 것은 그의 유머러스한 성격 덕이 컸다. 사실 파인만의 연구 분야나 주요 업적들은 대중들이 이해할 만한 게, 설명할 만한 게 아니다. 애초에 자신의 연구를 대중에게 설명한다는 것 자체에 파인만 스스로도 부정적이었다.

 

물리학자의 특이한 행적
대중들이 파인만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의 친구 랄프 레이튼이 펴낸 그의 일화에 대한 책과 비슷한 몇몇 책의 영향이 크다. 실로 악마적인 장난을 고안해 내는 데에도 천재적인 인물인데, 몇몇 일화를 들면 다음과 같다. 
웨이트리스(접객원)에게 팁을 줄 때 파인만은 물잔에 물을 가득 채운 뒤 그 안에 동전을 넣고 카드로 물잔을 막고 나서 물잔을 뒤집어 테이블에 세운 뒤 카드를 빼냈다. 팁을 얻기 위해서는 물잔을 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막상 물잔을 들면 물이 쏟아져 나오니 접객원은 매우 화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물잔을 2개나 준비했는데 그 이유가 하나만 있으면 물이 쏟아지고 끝이지만 2개라면 한 번 당한 뒤 고민할 거라는 것이다. 이에 화난 웨이트리스가 다음 날 따지자, 파인만은 "나 같으면 물바가지를 준비한 후 책상을 기울여 조금씩 조금씩 컵을 움직이고 쏟아지는 물은 물바가지에 받겠다"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그날도 똑같이 뒤집은 컵에 팁이 들어있는 것을 본 웨이트리스는 파인만이 조언한 대로 했지만, 이번에는 빈 컵이었다. 결국 다음 번에 파인만이 그 식당에 갔더니 담당 웨이트리스가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MIT 학부생 시절, 수학 스터디 동아리의 '문 열지 마시오'라는 경고문과 매번 조금의 소음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부원들의 예민함이 짜증났던 파인만은 아예 그 문을 떼서 숨겨버렸다. 이에 동아리 모임이 소집되었고, 이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모두가 심각한 회의를 진행했다. 다들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는 분위기에서 파인만 차례가 되자 "당신은 충분히 똑똑하고 지적으로 우월합니다. 자, 우리가 인정했으니 이제 문을 돌려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연히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에 동아리 회장은 한 명 한 명에게 '네가 문을 훔쳐갔나?'라고 묻기 시작했다.

 

회장: 앨런, 네가 문을 훔쳐갔나?
앨런: 아니요, 저는 문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회장: 조지, 네가 문을 훔쳐갔나?
조지: 아니요, 저는 문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파인만의 차례가 다가오자...
회장: 리처드, 네가 문을 훔쳐갔나?
파인만: 네, 회장님. 제가 문을 훔쳐갔습니다.
회장: 장난치지 마, 리처드! 상황 파악 좀 해. 그럼 다음은... 마이클, 네가 문을......

 

나중에 진짜 파인만이 문을 훔쳐갔다는 걸 알게 된 부원들이 파인만을 향해 "넌 거짓말을 했다."라고 따졌지만, 파인만은 "난 진실을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단지 자신은 대부분 진실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믿고 싶지 않을 때 진실을 말한다고 했다.
로스 앨러모스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도 이런 장난은 계속되었다. 동료 물리학자의 자료가 필요해 방에 들렀는데 친구가 없는 걸 보자 간단히 자물쇠 번호를 유추해 열어 서류를 꺼냈다. 하지만 그대로 나오기 아쉬웠던 그는 살짝 장난을 쳤는데, 첫 번째 서랍부터 세 번째 서랍까지 차례대로 '이것도 다른 것만큼 열기 쉽군 - 현명한 사람', '서류 빌려간다 - 금고털이 파인만', '번호가 다 똑같으면, 다른 것도 열기 쉽다 - 같은 사람'이라는 세 장의 메시지를 넣어 두었다. 
이윽고 친구가 도착하자 파인만은 친구의 놀라는 얼굴이 보고 싶어 같이 방에 들어갔는데, 문제는 그가 세 번째 서랍부터 열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메시지를 본 친구는 산업 스파이에게 서류를 도둑맞은 줄 알고 기겁했다. 파인만은 이때를 "사람이 놀라면 진짜 얼굴이 초록색으로 변했다가 회색빛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그 다음에 연 건 또 첫 번째 서랍. 친구는 진짜로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고, 두 번째 서랍을 열기 전에 파인만은 재빨리 복도로 빠져나왔다. 진짜 진지하게 맞을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고. 다행히 친구는 두 번째 서랍을 연 후, 분노보다 안도감이 더 커서 그냥 얼싸안고 말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이후로 시설 내 보안이 개선되었다. 자물쇠를 푼 걸 보여줌으로써 보안을 높이도록 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 양반이 장난끼가 워낙 많아 진위불명이다. 

 


핵 잠수함의 특허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로스 알라모스 시절 군에서 핵 관련한 각종 아이디어를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파인만은 "갖다붙이는 대로 다 가능한데 뭐 그런 걸 특허로 내냐..."며, 원자로를 잠수함에 붙이면 원자력 잠수함이 되고, 로켓에 붙이면 원자력 로켓이, 비행기에 붙이면 원자력 비행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그 아이디어를 그대로 특허신청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원자력 로켓과 비행기의 특허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계기는, 한 기업이 진짜로 원자력 비행기를 만들려 했는데 이에 대해 아는 기술자가 없어서 파인만을 찾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특허들은 1달러만 받고 정부에 팔게 되어 있었다. 형식적인 것이라 실제로 주는 돈 따위는 없었는데, 파인만은 진짜 현금을 달라고 떼를 썼고, 귀찮아진 군 관계자가 자기 지갑에서 1달러 지폐를 꺼내줬다. 파인만은 그 돈을 받아 과자와 사탕을 산 후 연구실에 뿌리면서 "특허 하나에 1달러다!"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자 그렇게 특허를 팔았던 동료들이 너도나도 1달러를 받으러 갔고, 결국 그 군 관계자는 과학자들의 과자 살 돈을 감당하지 못하는 바람에 따로 예산을 신청해야 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학자들이 고작 과자 하나 사 먹겠다고 정부를 귀찮게 군 것처럼 보이지만, 파인만의 성향을 볼 때 이는 권력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정부를 향해 한 방 먹이려는 일종의 시위였을 가능성이 높다.  

 

술집에서 술집 안의 여자들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다면서 싸움질하다가 얼굴이 퉁퉁 부은 일도 있었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에서 이때의 일화를 서술한 것이 걸작이다. 코넬 대학교에 강의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이곳저곳 둘러보기로 했다고 한다. 택시기사에게 바를 좀 추천해 달라고 해서 알리바이 룸을 가게 되었고, 매주 목요일 밤마다 드나들며 단골이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화장실에서 취한 남자가 시비를 거는 바람에 잇몸 찢어질 지경으로 한 판 붙었다. 나중에 돌아왔을 때 그 취한 남자의 친구가 왜 우리 친구를 건드리냐며 적반하장격으로 굴었으나 파인만은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따져 보면 될 일 아니냐고 반문했고, 결국 그 친구는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 사람이 계속 따지고 들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결국 파인만이 술집에서 나가면 해코지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다행히 어느 낯선 사람이 파인만한테 아는 척을 하며 시비를 건 사람에게 아는 사람이니 그냥 화해하자며 일단락시키고, 이후 바로 파인만을 내보낸 덕분에 더 이상 해코지는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강의에 퉁퉁 부은 눈을 하고 들어가서는 거친 목소리로 한 첫 말이 "질문 있습니까?"였다. 마침 이때가 종강 날이라서 그 술집에는 완전히 발을 끊었다가 10년 정도 뒤에 다시 가 봤는데 분위기 자체가 (다소 안 좋은 의미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You asked me if an ordinary person, by studying hard, would get to be able to imagine these things like I imagine — of course! I was an ordinary person who studied hard. There's no miracle, people.
여러분이 제게, 평범한 사람이 열심히 공부해서 제가 상상하는 것들을 똑같이 상상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물론이죠!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한 평범한 사람이에요. 기적은 없어요, 여러분.


취미들 또한 다양하여 봉고 연주, 마야 문자 해독, 회화, 금고 따기, 그림 그리기, 춤 추기 등의 취미를 갖고 있었으며, 전부 보통 이상은 한 모양이다. 
마야 문자 해독에 관해서는 해설서의 오류를 지적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맨 처음 마야문자서를 샀을 때 왼쪽에는 마야 문자가. 오른쪽에는 간단한 해석이 있었는데. 파인만은 해석을 보지 않고 풀어보겠다고 생각했다. 몇날 며칠을 생각한 결과 그는 이게 화성의 공전주기와 일치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오른쪽 해설서를 보니까 수치가 맞지 않는 부분도 많고, 천문학적인 이해력이 떨어진 사람이 작성한 듯했다고 한다. 이 고문서가 천문에 관한 내용이라, 물리학자인 그는 몇몇 수치들의 내용이 천문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유리했다고 한다. 고문서에 기록된 일식이나 월식, 혜성 등의 천문기록들은 과거의 연대 추산에 도움을 주고 있다. 결국 이 고문서와 그 해독에 관한 내용으로 동료 물리학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도 했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데 강사가 과학자인 상황에 이를 계획한 담당자가 인문학 지상주의자였는지 속이 좀 상했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마야문자책도 해독하려고 샀는데 예전 책하고 같은 수치가 나와서 이게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금고 따기는 취미처럼 즐겼다. 당시 기밀시설이었던 로스 알라모스의 높으신 분의 금고를 열고 보안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장난스런 메모를 남기곤 했다. 상세한 장난 내용은 위를 참조. 파인만은 이 금고 따는 법에 대해 한 챕터를 할애해 상세히 말하고 있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기계적 기본 원리에 인간적인 허술함, 거기에 어중간한 보안의식의 조합이 얼마나 취약해지는지 알 수 있다. 지금 보면 초보적인 수준의 비번 털기처럼 보이지만 당시엔 비밀번호라는 것 자체를 일반인이 사용할 일이 거의 없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해 보면...
사실 그의 일화를 잘 보면 당시 보안상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당시 사무실에 있던 금고는 1부터 100까지 있는 다이얼 3개를 맞추는 방식이었다. 즉 단순 조합 방법은 100만 개. 그런데 기술이 딸렸는지 다이얼 숫자에 2 오차가 있어도 열렸고, 이로써 다이얼 숫자가 20까지만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돼서(숫자 5개가 1개로 줄어든다) 실질적 조합은 8천 개였다. 거기다 사람들이 보통 일할 때 금고를 열고 지냈는데, 파인만은 이렇게 열린 금고의 다이얼 중 2자리를 자신의 기술로 역으로 알아내 노트에 정리해두었다. 이로써 조합은 20가지로 줄었다. 당연히 손쉽게 열릴 수밖에... 때문에 나중에는 아예 "파인만이 사무실에 온 적이 있으면 금고 번호를 바꾸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그 뒤로는 다른 사람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더 압권인 에피소드가 있는데, 나중에 고위직용으로 훨씬 크고 튼튼하고 파인만의 방법도 안 통하는 금고가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자가 없는 사이에 그런 금고를 열 일이 생겼다. 파인만에게 연락이 오자 그건 못 연다고 했는데, 잠시 후 연구소에서 수리공으로 일하던 사람이 열었으니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연히 어떻게 열었을지 호기심이 동한 파인만은 비법을 알려고 그 수리공에게 몇 달 동안 천천히 접근하여 친분을 쌓았고, 어느 날 비법을 가르쳐 달라는 말을 하면서 정체를 밝혔는데, 수리공은 놀라면서 금고털이로 유명한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하면서 자기는 기술 같은 건 없다고 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열었는가 물으니, 금고를 구입할 때 맞춰져서 나오는 기본 암호를 썼더니 열렸다고 한다. 즉 기껏 돈 들여 더 튼튼한 금고를 샀으면서 비밀번호도 안 바꾸고 써서 금고를 산 의미가 전혀 없었다는 소리다. 더 기절초풍할 사실은 이후 다른 금고에도 기본 암호를 써봤더니 다섯 중 하나는 먹혔다고. 이 후 파인만은 아래와 같은 명대사를 남겼다고 한다.
The only reason you think they're safe in there is because civilians call it a 'safe.'
당신은 그것이 금고(safe)라 불리기 때문에 안전(safe)하다고 믿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성취'가 떨어지는 회화도 그림을 팔거나 개인 전시회까지 개최했다. 파인만이 자주 다니는 어떤 술집은 파인만이 판 그림을 걸어두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 그림의 주인이 물리학자라고 하면 술집 주인이 그림을 사지 않을까봐서 가명을 쓰고 화가를 자칭했다고 한다.
봉고 연주는 물론 전문적인 음악가와 함께 하긴 했지만 세계 대회에 나가는 무용수의 반주를 맡을 정도였고, 이 무용 팀은 세계 대회 1등을 눈앞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2위를 했다. 왜 2위를 했는지 공연 팀이 심사위원에게 살짝 물어보니 '음악이 좀 아쉬웠다'라고 답변했다. 파인만은 이 일화에 "파리까지 가서야 발각되었다(Found out in Paris)"라고 제목을 붙였다. 또 브라질에 안식년차 갔을 때는 프리지데이라라는 브라질 전통 악기를 배워 삼바 페스티벌에 나갔다. 연습하는 내내 "또 저 미국인이야!(O Americano, Outra Vez!)"라고 잔소리 듣기는 했지만 이것 역시 웬만한 현지 기수 이상으로 한 모양인지 파인만이 참가한 팀이 삼바 페스티벌을 우승했다. 현지인들에게도 꽤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삼바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도 당시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암기에만 치중하는 브라질 과학 교육의 문제를 지적했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요'를 보면 이 부분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을 수 있는데, 사정없이 까댄다. 발표 회장에서 암기에 치중하여 본질적인 의미는 뒷전인 브라질 과학 교육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그래도 학생 두 명과 교수 한 명은 실력이 있는 것을 보았으니 아주 엉망은 아닌 것 같다고 마무리를 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학생 두 명은 브라질 교육을 받지 않고 외국에서 공부하다 그 해에 브라질에 왔으며, 그 교수는 브라질에서 공부하긴 했는데 책으로 독학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전쟁 중이라 교수들이 전부 대학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해명은 덤으로... 즉 그의 생각보다 더 막장이었다는 것이다. 이를 미 국무부에서 '외교 문제가 될 뻔했다'라고 얘기가 나왔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깠다. 그나마 '이 사람이 정말 과학을, 교육을 사랑해서 까는구나' 라고 인식이 되니까 넘어갔다.
운동만큼은 재능이 전혀 없었는지 학창시절 운동장을 지나갈 때면 운동하던 사람들이 놓친 공을 주워 던져달라고 부탁할까봐 잔뜩 긴장해서 멀찌감치 돌아갔다고 한다. 본인이 표현하길, 공을 던질 때면 항상 목표점에서 1 라디안 정도 비껴나간 곳을 향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10m 밖에서 공을 던져주면 10m 약간 덜 되게 빗나갔다는 소리. 물론 어느 정도는 과장이었겠지만 보통 운동치가 아니었나 보다.



양자전기역학(QED; Quantum ElectroDynamics)

 

그의 과학적인 성취도 그의 접근 방식이 특이한 데서 얻어진 것이 크다. 노벨상을 수상하게 한 양자전기역학도 다른 공동수상자들은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접근했지만, 그는 '파인만 다이어그램'이라는 것을 만들어 철저하게 직관적으로 접근했다. 양자 역학 항목에서도 나오듯 골때리는 양자 역학을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라는 듯하다. 그의 접근 방식인 경로적분은 입자의 경로가 모호해지는 것을 입자는 가능한 궤적을 모두 동시에 지나간다는 것으로 기술한 것이다. 

이 창의적인 도구들을 활용하여 세운 업적이 바로 양자전기역학(QED; Quantum ElectroDynamics)을 완성한 것이다. 이걸 다르게 표현하자면 양자역학으로 기술되는 전자기학을 완전하게 만들었다는 정도. 의외의 사실로, 전자기 상호작용이 제대로 양자역학적으로 기술되기까지는 양자역학이 태동하고나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심지어 처음 '양자화'가 시도된 대상이 빛의 알갱이, 즉 광자인데도 말이다. 사실 막상 알갱이로 놓긴 했어도 이에 대한 이론적인 배경은 굉장히 부실했었다. 일단 왜 E=hν가 성립해야 하는가 하는 것도 모르고. 그리고 전자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적 방정식은 슈뢰딩거 방정식, 디랙 방정식이 있긴 해도 막상 빛을 포함한 보손과 전자를 포함한 페르미온 모두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할수 있는 방정식은 없었다. 사실 후에 밝혀지기로 맥스웰 방정식이 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긴 하지만 이 방정식에 대한 제대로 된 양자역학적인 접근 방식이 등장하려면 파인만, 슈윙거, 도모나가 등이 QED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여담으로 파인만과 슈윙거가 처음 QED를 발표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슈윙거는 엄청나게 어려운 수학을 동원해가며 발표를 하는 통에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거의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파인만은 자신의 직관이 서린 독특한 방식으로 '쉽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이때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이에 대해 엄청 따졌다고. 결국 이 업적을 인정받아 이 세 사람은 196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쿼크 모델이 창안되는 과정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사실 쿼크 모델의 단순화된 모델을 제시한 셈인데, 이 모델에 따르면 양성자를 비롯한 강입자들은 '파톤(parton)'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쿼크 모델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쪽은 좀 더 뭉뚱그린 느낌. 이 모델을 통해 양성자에 전자 같은 더 작은 입자를 부딪혔을 때 어떤 걸 볼 수 있는지 제시하기도 했다. 나중에 실험으로 양성자가 내부 구조를 가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파톤 모델이 아닌 쿼크 모델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지만 '파톤'이라는 이름은 살아남아 학계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사실 쿼크와 글루온들을 한데 묶어 부를 일이 많은데, '파톤'이라는 이름이 이럴 때 적절하기 때문에. 실제로 주어진 강입자(거의 대부분의 경우 양성자) 내부에 있는 쿼크와 글루온의 분포를 가리켜 파톤 분포함수(PDF; parton distribution function)이라고 부른다. 

또한 나노머신 이론을 최초로 제창한 사람도 이 사람이다. 1959년 12월 29일 디너 모임에서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며 어떤 책 한쪽을 2만 5천분의 1로 축소해 전자현미경으로 읽을 수 있게 하는 첫 번째 사람과 한 변이 0.4mm인 정육면체 크기의 모터로 외부에서 제어할 수 있는 회전 전기 모터를 처음 만드는 사람에게 각각 1천 달러를 주겠다고 내기를 걸었다. 내기를 건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1960년 칼텍 졸업생 윌리엄 H. 매클레런이 두 번째 내기에서 요구한 모터를 만들어 상금을 받았고, 25년 후인 1985년 스탠퍼드 대학교 학생 톰 뉴먼이 전자빔으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축소시켜 상금을 받았다.

또한 양자컴퓨터의 고안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동기도 심히 물리학자답다. 양자역학을 다루기 위해 보통 파동함수를 계산하든가 시뮬레이션을 하든가 하는데, 그 방식은 지금도 그렇지만 슈뢰딩거 방정식 같은 걸 일일이 직접 풀어서 수행하는 식이다. 그리고 파인만이 이 문제를 고민한 1980년대도 그렇고 심지어 지금도 양자역학 문제에서 나타나는 방정식이라든가 확률 분포 문제를 쉽게 푸는 방법은 없다. 파인만이 깨달은 건, 결국 우리가 쓰는 계산기가 고전적인 탓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계산기를 양자역학적으로 구동하도록 만든다면 양자역학 문제들이 훨씬 더 쉽고 빠르게 풀릴 것으로 파인만은 기대했다. 이런 식의 아이디어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는 동기 중 하나를 파인만이 마련하게 된 것이다.

본업에서도 좀 무서운 경험을 했는데,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생 때 첫 논문 발표회 때 나타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다. 지도교수가 아인슈타인을 비롯해서 온갖 유명한 사람들이 온다고 했는데, 참석자들의 이름을 듣고 얼굴빛이 심하게 안 좋아졌는지 급히 교수가 파인만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다음은 그때의 에피소드.
파인만이 자신의 첫 논문을 발표하는 그 자리에는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유진 위그너, 볼프강 파울리까지도 와 있었다. 그런데 발표가 끝나고 논평이 오가는 와중에;
파울리: 아인슈타인 박사님, 파인만의 저 이론은 여차저차해서 틀린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인슈타인: 노오오오~(Noooo~.)
- '파인만 씨 과학을 웃겨주세요',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 중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파인만은 과학자로서의 명성도 엄청나지만 교육자로서의 명성도 엄청나다. 사실 연구를 이끄는 능력과 강의를 이끄는 능력은 아무리 저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정비례 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아예 '별개의 관계'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면 대학 시절 강의를 들었던 교수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누가 봐도 학력과 경력, 업적은 능력자인데 막상 강의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교수자리에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교수가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특히 프라이드만 강하고 아날로그에만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실제로 업적만 따져도 백과사전 수준인 아이작 뉴턴이나 요하네스 케플러도 강의력 자체는 의외로 별로였다고 한다. 그러나 파인만은 연구만큼이나 강의를 이끄는 능력도 뛰어났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이공계의 공부는 딱딱하고 어렵기로 악명 높은데, 파인만은 그렇게 생각되는 물리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도있을 뿐만 아니라 유머러스하게 학생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강의가 담긴 빨간 책은 수많은 물리학도와 공학도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파인만 본인도 주입식 교육을 싫어하고 스스로 깨치는 교육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책의 단순한 빨간색 표지는 원래 드럼을 좋아하는 파인만이 자신만의 신조인 과학과 실생활을 결합을 뜻하게 드럼을 그려두고 그 위에 음파나 수식을 뜻하는 여러 가지 과학기호 등을 넣고 싶었으나, 출판사에서 현재와 같은 표지로 정하고 저자소개란에 봉고를 치는 파인만 사진을 넣어서 '드럼'을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을 조금 살리는 디자인으로 완성하였다.



앞서 말했지만, 로스 알라모스에서 핵무기 개발계획인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닐스 보어 같은 여러 거장들을 만나게 된다. 파인만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닐스 보어는 이미 물리학의 거두였던 자신의 앞에서 어떤 반대 의견도 내놓지 않는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크게 실망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인만은 그런 권위 따위는 모르는 천성을 지닌지라 물리학에 대해 토론할 때만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으면서 계속 치고받았다는데,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보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보어에게 '싸가지 없이' 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보어가 생각(파인만이 보기에 이상한 의견)을 내놓으면 그걸 들은 파인만은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 이 때 보어는 이름만 동료일 뿐 자신의 권위를 두려워하는 작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이런 파인만의 태도를 아주 신선하고 흡족하게 여겼다. 자세한 건 Richard P. Feynman, '발견하는 즐거움', 승영조 옮김, 승산, 2001 참고 

당시 일화. 후에 닐스 보어는 역시 물리학자인 그의 아들(오웨 보어, Aage Bohr)에게 "저 녀석은 나중에 정말 크게 될 놈이니 잘 지켜보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보어라고 까지 않는 건 아니다. 아무튼 그는 맨하탄 프로젝트에서 한스 베테와 같이 현재도 기밀에 속하는 베테-파인만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파인만은 핵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던 아인슈타인과는 달리 그다지 죄책감 같은 건 안 느꼈다고 한다. 이 부분은 로스 엘러모스에서 만났던 존 폰 노이만의 영향이 크다고 자서전에서 썼다. 폰 노이만과 함께 산책을 하면서 "자기가 사는 세상에 자기가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폰 노이만의 사상에 물들어 버렸다고 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그의 책에서 나타난 히로시마 원폭 투하 순간의 행동이다. 파인만은 레스토랑에 앉아 '지금쯤 터졌을 거야' 짐작하고 신나게 폭발 반경을 계산하면서 들뜨는 것은 물론 봉고도 쳤다. 일부 과학자들이 투하 자체에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최소한 작전 관련자들이 대규모 파괴무기의 사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 

그래도 파인만도 아주 충격을 안 받은 건 아니었는데, 죄책감보다는 허무감을 느껴서 잠시 멍~ 해졌다고 한다.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전후 복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어차피 핵 한 방이면 다 터지는데 다시 만들어서 뭐하나." 같은 생각이 들었고, 자서전에 따르면 '그것에 대한 생각을 그만둔' 부류가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생각을 더하던 부류는 핵이 성공리에 터지고 연구원들 파티할 때 구석에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다가 대부분은 반전, 반핵운동으로 빠졌다고 한다. 더불어 아직까지 그런 일(핵폭발 때문에 기껏 복구한 것이 허사가 된 것)이 다시 없어서 다행이라고도 썼다. 

그가 이렇게 핵에 대한 태도를 일찌감치 자기완결을 지은 것은 평상시의 캐주얼한 태도와도 연결된다. 파인만은 명쾌한 결론과 끝맺음이(설사 그것이 제3자나 피해자가 보기엔 도덕적 책임감을 외면한 것처럼 보여도) '쿨'한 것을 선호했고, 계속해서 되짚어보거나 큰 판단을 재검토, 재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핵에 대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동료들을 '궁상'으로 표현한 것을 보아도 그가 신속하게 결론내리지 못하는 행동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았음이 묻어난다.

덤으로 맨눈으로 핵폭발을 보면 눈이 먼다는 도시전설이 거짓말임을 몸으로 증명했다. 이전까지 높으신 분들은 핵 실험을 참관할 때 모두 이런 모양의 고글을 끼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봤었다. 그러나 파인만은 자동차 안에서 맨눈으로 보았고 정말 멀쩡했다. 이는 핵폭탄이 터질 때 발생하는 빛 중 가시광선보다 자외선이 더 해롭기 때문인데, 이를 알았던 파인만은 자외선만을 막기 위해 차 안에서(자외선은 유리를 통과하지 못한다) 실험을 참관했다. 남들이 10km 거리에서 얼굴도 못 들고 후폭풍이랑 싸울 때 자신은 30km 밖에서 저 앞에선 머리도 못 들고 있겠지~하면서 구경했다고 한다.


만년엔 환각 탱크를 이용한 환각체험을 하는 등 신비스러운 것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과학과 합리적인 생각이 그의 습관이기에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맹신하는 말도 안 되는 것은 화물 신앙(Cargo Cult)라고 부르며 별로 안 좋아했다. 그런 사고방식을 고수하면서 철학계의 뻘짓도 깠는데, 이는 당시 상대성이론을 두고 (특히 유럽 쪽) 철학계가 뻘짓한 게 좀 크다. 쉽게 말해서 상대성 이론을 제목만 보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생각하여 막 써먹었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는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철학계의 오해를 비판하는 데 제법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그룹은 훗날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으로도 한방 물을 먹기도 했다. 

로스 알라모스 시절에 피폭된 방사능으로 인해 암투병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과학적인 생각은 죽지 않아서 1986년 1월 발생한 STS-51-L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의 조사위원회에 초청되어 활동했으며, 혼자서 나머지 조사위원 11명을 올킬하는 위엄을 보인다. 폭발이 물리적으로는 저온 상태에서 탄성이 저하된 O자 형태의 고무링(줄여서 O링이라 부른다.)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보신주의 문화와 관료체계에 쩔어있는 NASA의 문화에 있음을 밝혀냈다. 이때 조사 결론 발표장에서 간단하게 입증했던 실험이 O링 테스트다. 고무링을 꼬아서 고정시킨 뒤 얼음물에 넣으면 탄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보인 것이다. 실험 영상 단, 알려진 것처럼 파인만 혼자서 이 사실을 알아낸 것은 아니다. 파인만 본인이 나중에 말했지만, 이미 나사의 현장 엔지니어들은 O링이 문제였을 거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었지만 쓸데없이 입을 열었다가 보복을 받기 싫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파인만의 자서전이나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챌린저: 마지막 비행 등에 다르면 당시 조사위원회는 로널드 레이건의 지시를 받은 위원장의 영향으로 최대한 나사의 입장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친정부에 속하지 않았던 한 명이었던 공군 소장 도널드 쿠티나에게 샐리 라이드가 비밀리에 O링과 낮은 기온 간의 문제 가능성을 쪽지로 전달했고, 쿠티나는 샐리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의심을 받지 않을 방법을 고심한 끝에 매우 교묘하게 파인만에게 정보를 흘린다. 파인만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아끼는 자동차 보러 오시겠음?' 라는 식으로 넌지시 파인만을 초대했고 파인만에게 '엔진에 쓰이는 O링이 날씨가 추우니까 문제가 생기는지 엔진이 자꾸 새더라' 식으로 암시를 흘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파인만은 이후 O링을 붙들고 늘어지며 이게 문제였음을 사람들 앞에서 알리게 된다. 2013년 BBC에서 제작한 TV 영화 <The Challenger Disaster>에서 이 모습이 교묘히 나타난다. 작중 배경을 잘 모르던 사람은 막판 반전을 깨닫고 무릎을 탁 칠 정도.

파인만은 신장 투석까지 받아가며 사건의 규명에 매달렸다. 쿠티나 장군의 조교 행각은, 나쁘게 말하면 파인만을 이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게 보는 건 너무 삐딱한 시각이고,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면서도 친구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한 사람의 현명한 결정 정도로 생각하자. 파인만 본인 역시 이 장교의 합리적인 사고방식, 검소한 생활 등을 매우 좋아했고 그와 친하게 지냈다.

여담으로 이 조사위원회 위원 중에는 달 착륙으로 유명한 닐 암스트롱도 있었는데, 파인만은 암스트롱에게 굳이 싸인을 얻으려 했다. 주위 사람들은 파인만의 성격을 알아서 파인만이 싸인을 딸아이에게 주기 위해 저런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른 사정이 있었다. 한 택시기사가 파인만에게 암스트롱의 싸인을 받아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 택시기사는 파인만이 노벨상 받은 슈퍼스타 과학자인지도 모르고 그냥 높으신 분이라고만 알았다.

 

 

저술과 구술서
그의 이야기를 구술한 책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Surely You're Joking, Mr.Feynman!)'이나 '남이야 뭐라 하건!(What Do You Care What Other People Think?)'은 물리학자의 일대기를 쓴 책답지 않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의를 좋아했지만 그의 강의 관련 자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학부생을 위해 물리학을 정리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Lecture on Physics)'만 알려져 있는 편이다. 표지가 빨개서 일명 빨간 책. 원래부터 학부생 대상의 강의록을 편집한 것이고 국내의 모 대학은 1학년 물리 교재로 쓰기도 했으나 첨단과학을 접하기 전에 잡다한 것만 해서 물리에 질려버리는 학부생 기준이라 일반적인 학부생에게는 쉽지 않은 책. 그가 여기서 사용한 그만의 이론적으로도, 실제로도 의미가 있는 비유들은 현재 사용되는 교재들에도 영향을 줬다. 물론 유머를 제외하고. 본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업적은 바로 저 빨간 책을 낸 것이라고 한다. 칼텍에 가면 파인만의 빨간 책 원문을 무료로 볼 수 있다.
 
관련된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두 개의 전자가 서로 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을 때, 전자기력은 이들을 서로 밀쳐내고 중력은 이들을 서로 잡아당기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두 가지 힘의 상대적 비율은 전자 사이의 거리와 무관하며, 자연계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상수이다. 중력을 전기력으로 나눈 값은 1/(4.17 X 10^42)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전기력의 세기가 중력의 4.17 X 10^42 배 라는 뜻이다. 이렇게 큰 숫자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것은 벼룩의 부피를 지구의 부피로 나눈 것처럼 우연히 나타난 숫자가 아니다. 우주의 근본을 이루는 전자의 두 가지 성질을 비교하면서 얻어진, 필연적인 숫자인 것이다. 이 환상적인 숫자는 자연에 내재된 근본적인 상수이므로, 무언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훗날 우리가 범우주적인 방정식을 찾아낸다면, 이 방정식의 근들 중 하나가 4.17  X 10^42 일 것이다" 라며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괴물같은 숫자를 근으로 갖는 방정식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그중 하나는 이 숫자를 우주의 나이와 연관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영역에서 엄청나게 큰 숫자를 또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주의 나이를 '년(year)' 단위로 헤아리는 것이 과연 옳은 발상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1년이라는 시간은 오직 지구라는 행성에서만 통용되는 단위일 뿐, 결코 범우주적인 시간 단위가 될 수 없다. 이보다 좀 더 자연적인 시간의 척도로서, 빛이 양성자를 가로지르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약 10^(-24)초이다 현재 알려진 우주의 나이는 대략 2 X 10^10년[인데, 이 값을 10^(-24)초로 나누면 그 결과 역시 10^(42)이다. 0의 개수가 42개로 같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력 상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주는 지금도 계속해서 나이를 먹고 있으므로, 우주의 나이를 10^(-24)초(빛이 양성자를 가로지르는데 걸리는 시간)로 나눈 값도 점차 커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중력 상수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물론, 이 변화는 엄청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수십 년 사이에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력 상수도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CHAPTER 7 중력


애처가에서 카사노바로
결혼은 여러 번 했지만, 처음 결혼했던 부인 알린 외의 부인들에 관해서는 비중있게 언급되지 않는다.
첫 아내인 알린은 16살 때부터 파티장에서 만나 사귀었고 대학교 즈음에 결혼했지만, 학사 과정을 밟는 나이 때쯤 로스 알라모스에서 일할 때쯤에 폐결핵으로 사별했다.

여동생인 조앤 파인만의 진술에 따르면, 결혼할 때에 알린이 폐결핵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파인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병이 전염될 것을 우려한 파인만의 어머니가 결혼을 거세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결혼에 골인했으나 끝내는 사별했으니, 파인만이 유독 슬퍼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때 남들에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내는 죽었어. 자, 일이나 하자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변 사람들 역시 파인만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해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라는 걸 깨달은 뒤 그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사망 한 달 후 옷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진열되어 있는 옷 중 하나를 보고 '알린이 저 옷을 좋아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 길거리에서부터 집에 갈 때까지 미친듯이 울었다고 한다. 
(…) I have met many girls and very nice ones and I don’t want to remain alone — but in two or three meetings they all seem ashes. You only are left to me. You are real.
(전략) 난 여러 여자를 만났고 그 중에는 멋진 아가씨들도 있었지. 나도 계속 혼자이고 싶은 건 아냐. 하지만 두세 번 만나면 다들 재가 돼 사라지는 것 같아. 내게는 당신만이 남아 있어. 당신만이 진짜야.
(중략)
PS Please excuse my not mailing this — but I don’t know your new address.
추신. 이 편지를 부치지 못한 걸 용서해 줘. 하지만 난 당신의 새 주소를 알지 못하는걸.
아내가 죽고 16개월 뒤, 1946년 10월 17일에 쓴 편지

그 반동인지 아내 사망 후에는 물리학계의 카사노바로 진화했다. 본인이 스스로 인증했을 정도다. 술집과 카지노에서 라스베가스의 유명 선수와 어떻게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 그가 여성을 꼬시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전수해줘서 그걸 몇 번 써 먹었다고 한다. 

비결은 별거 없고, 그냥 나쁜 남자가 되라는 것인데, 절대로 같이 자기 전에는 밥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말고, 영화표도 사주지 말고, 뭐 해달라고 해도 거절하면, 너와 잘 거고 그 다음은 니가 알아서 하세요 식 조언. 사실 아래에도 나와있지만 진짜 있던 일인지도 의심스러운 일화이고, 진짜 있던 일이라 하더라도 파인만의 잘생긴 외모와 사회적 배경을 보고 다가오는 여자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했던 조언이라는 추정도 있다. 파인만의 끊임없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에게 다가간다면 정말로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진위가 의심스러운 일화이므로 가볍게 넘어가도록 하자. 

나중에 남부 여성에게도 한 번 써먹은 뒤 자신과는 안 맞아서 그만 뒀다고 하지만 12명 넘는 여자에게 프로포즈 받았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다. 뭐 그런데 저 라스베가스에서 선수에게 사사한 일화는 조금 의심스럽기도 한 게 사진을 보고 일화를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잘생긴 외모와 유머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여자 꼬시는 데에 굳이 선수의 가르침까지 얻을 정도로 쑥맥이지는 않았다. 

여하간 일단 라스베가스로 여름휴가를 매번 떠나거나 토플리스 댄스 클럽( 한마디로 스트립 클럽)에 자주 가는 등 호색한이 아닐까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를 존경하는 로렌스 크라우스가 쓴 퀀텀맨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술과 섹스에 탐닉했다'라고 묘사하기까지 한다. 여하튼 간에 여자 좋아한 건 사실인 듯.

두 번째 아내 메리 루이스 벨과는 결혼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파인만 스스로 '사람이 외로워지면,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그리워지고, 그 사람을 만나서 몇 번 만남을 가지고 잠을 자고 하다 보면 명백히 성격이 안 맞고 오래 갈 수 없다는 게 분명해도 이 사람과 사는 게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그녀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라고 말한 걸 보면 어지간히 성격이 안 맞았던 모양이다. 메리 루이스 벨의 이혼 소송 중 발언도 재미있는데 '그 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계산을 시작하고, 차를 몰면서도 계산하고, 거실에 앉아 있을 때도, 침대에서도 계산한다' 라는 말이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당혹스러운 일화는 1954년 엔리코 페르미가 죽은 직후 시카고 대학교에서 있었다. 시카고 대학교는 마침 빈 교수자리를 칼텍의 파인만으로 채우려고 엄청난 급여를 제안했다. 하지만 파인만은 이렇게 쿨하게 답했다.
"그 돈이면 저는 멋진 정부를 하나 얻어서 아파트랑 비싼 물건도 살 수 있겠군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합니다. 밖에선 그 여자를 생각하고 집에서는 아내와 다투겠죠. 그럼 저는 당연히 불행해질 테고, 물리 연구는 전혀 못 하게 되겠죠.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겁니다."  

처음엔 파인만의 순애보나 성실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일화가 전혀 다르게 읽히는 걸 볼 수 있다. 여하간 아내에겐 비밀로 했다고 한다. 

결국 스위스에서 세 번째 아내를 맞았다. 미국에 와서 가정부 해주면 돈 좀 주겠다고 했단다. 마침 세계여행을 계획 중이던 귀네스 하워드는 솔깃한 제의에 혹했고, 그것에 낚여서 가정부 일을 하다 결혼하게 되었다. 처음 왔을 때 옷이 한 가지 종류 밖에 없어서 놀랐다고 한다.

 

철학에 대한 경멸
파인만은 물리철학(philosophy of physics)에 매우 뛰어났다.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입자와 장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이후 양자장론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반물질이 시간을 역행하는 입자일 수도 있다는 설을 제시하는 등(사차원주의, 시간 여행 등에서 중요한 논제이다) 물리적 실재에 대한 조예가 깊다. 또한 여러 인터뷰에서 교육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드러내는 등 실용주의적 통찰이 있었다. 많은 물리철학자들은 파인만이 물리철학에 조예가 깊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인 실재론자로서 이들을 제외한 모든 철학을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폄하했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나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등의 저서를 보면 파인만이 철학, 특히 형이상학적 탐구에 대한 철학을 거의 경멸에 가깝게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종교에 대한 경멸도 드러내며, 비실용적 가치탐구 전반에 대해 '그까이꺼' 에 가깝게 경시하고 있다. 패러다임이라도 존재하는 과학에 비하여 기본적 근간 자체를 항상 재정의하려고 드는 철학은 태생적으로 실용적 혹은 합리주의적 카테고리로 묶는 것이 '진보되었다' 라고 간주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는 영미(과학)철학계와 유럽철학계의 성향차이에도 기인한다. 특히 미국은 철학계도 기존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강화, 심화시키는 이른바 '깊이'에의 천착이 현저한 편이라, 일상언어의 재정의를 통한 낯설게하기까지 마구 쓰는 유럽, 특히 프랑스 철학계와는 양극단과도 가깝다. 

핵에 대한 입장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드러난다. 일본에 핵이 투하되어 도시가 궤멸하는 도중 봉고를 두들겼다는 일화나, 핵무기에 대해 되돌아보았지만 금방 머릿속에서 지우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양심의 정리 이야기 등에서 특정 가치 여부를 결정한 후(노력과 지성을 쏟아부은 연구의 결과물이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앞으로는 핵이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재고하지 않고, 자꾸만 다시 돌이키는 동료들을 궁상 떤다고 표현한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재적 지식을 생산하지 않는 모든 것을 배척했다.

인문학계에서 소칼의 경우 충분한 근거와 결정적 열쇠를 쥐고, 비판 대상을 특정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행태로 삼음으로써 인문학자들 충분한 공감대를 불러일으켰지만 파인만의 경우에는 그저 '철학 싫어하는 한 개인' 이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노벨상에 대한 일화
196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사실 그는 노벨상을 받는 것을 매우 귀찮아 했다. 유명해지는 것과 권위를 얻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안 받으려 했지만, 타임지의 기자에게 오프 더 레코드로 '안 받고 싶은데 어쩌면 좋겠냐'라고 상담하자, 그 기자가 "노벨상을 안 받으면 그걸로 더욱 유명해질 겁니다."라고 충고해줘서 마지못해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스위스 대사관에서 노벨상 수상을 알리기 위해 파인만에게 전화해서 "축하합니다! 이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셨습니다."라고 말하다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파인만은 "지금이 몇 신지 아시오!"라며 끊었다. 그 뒤로도 유명세 때문에 갖은 홍역을 치러서 꽤나 피곤했던 듯하다.

노벨상 수상 후에는 학생들을 위한 강연에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죄다 몰려오는 게 너무 싫어 일부러 전혀 유명하지 않은 교수 이름으로 강연회 등록한 후 본인이 나타나서 강의를 하는 방식을 취했다. 물론 나중에 들통나고, 학교에서는 '파인만 선생님이 오시는 거면 더 큰 데를 빌리고 했어야지!' 하며 담당 학생들을 쪼고, 파인만은 결국 학생들을 변호해야 하고... 뭐 이런 후폭풍을 겪은 듯. 후에 BBC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미 상을 받았으며 그 상은 바로 발견하는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했다.

 


9살 연하의 여동생 조앤 파인만은 천문학자로, 태양풍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2020년 7월 21일에 향년 93세로 별세하였다.

한때 취미로 일본식 시조인 하이쿠를 짓기도 했다. 하이쿠는 길이가 짧고 영어에 적용가능한 규칙이 있기 때문에 의외로 미국에서도 자주 창작되는 문학 종류다. 의외로 인문 쪽 취미에 발가락 담근 미국 과학자들이 남긴 하이쿠가 많다. 

원래는 생선을 싫어했는데, 강연 때문에 일본에 가서도 질색했으나 먹은 생선이 맛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생각한 뒤 미국에 가서도 즐겁게 생선을 먹으려 했으나, 미국의 생선은 여전히 맛이 없었고 파인만은 그제서야 생선은 신선하지 않으면 맛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거의 똑같은 레퍼토리로 굴 이야기도 한 걸 보면 일본에서 신선하고 맛있는 해산물 맛을 알게 된 듯.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1964년 코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은 양자역학을 배울 때 양자역학의 의미에 대해 파고들기 보다는 일단 받아들이는게 좋다는 권고차원에서 한 말이다. 

유언은 "두 번은 못 죽겠다. 너무 지루하거든. (I'd hate to die twice. It's so boring.)" 말년에 병이 심해져 자리보전하던 무렵에는 가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뜨면서 "나 아직 안죽었어." 하고 농담하기도 했다. 

유명한 공감각자이다. 수식마다 색깔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주장을 듣게 되면 근거들이 동그란 공의 표면에 뭔가 솟아올랐다가 모양이 바뀌는 식으로 느끼다가, 마지막에 모양이 영 아니면 틀린 주장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수학자들과 위상기하학에 대해 논쟁하다가 썼던 방식이라고 한다. 

큰 수를 가리킬 때 "천문학적"이란 표현을 경제학적으로 바꾸자고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문서 참고.

말년에 친구와 소련 투바 자치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인 키질(Кызыл, Kyzyl)에 영어 모음이 없다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암에 걸려 그 직후 사망한다. 결국 2009년 딸인 미셸 파인만이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을 방문하여 공화국 국가수반인 숄반 카라올을 만났다. 

세상이 멸망하고 모든 지식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딱 한 문장만 전할 수 있다면 무엇을 전하겠냐는 질문에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All things are made of atoms')라는 내용을 전하겠다고 답했다. 

울프럼알파의 개발자로 유명한 스티븐 울프럼의 박사 학위 논문 심사위원이기도 했다.

경로적분
양자전기역학
베테-파인만 방정식
파인만 알고리즘
파인만 다이어그램
파인만 포인트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나노머신
양자컴퓨터
STS-51-L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크거나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의 경우 그의 삶 자체가 타인의 관심을 끌고 호기심을 유발할 때가 많다. 거기에 평소 남들과 다른 특이한 생각과 행동으로 괴짜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인물이라면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가 된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는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기상천외하고 유별난 일화들을 소개하며 호기심 있는 한 인물의 인생담을 보여준다. 국내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감이 있지만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정립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발명해 더욱 유명해진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다. 또한 그는 장난기가 가득한 익살꾼으로도 명성이 높다.  

파인만과 함께 드럼을 치던 친구 랠프 레이튼이 그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엮은 이 책은 소년시절부터 프린스턴 대학원 시절,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 등이 소개되고 있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는 미국에서 이미 10여전 전에 출간되어 리처드 파인만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스테디셀러이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 꾸준히 읽힐 만큼 미국 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국내 독자들에게는 이제 뒤늦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는 전통적인 영국 풍속인 '티타임'에서 차에 크림과 레몬을 넣어 달라는, 상식을 뛰어 넘는 그의 자유분방한 주문에 대해 상대방이 대답한 말이다. 

기상천외한 사고방식으로 항상 주변 사람들을 웃겼던 파인만은 어린 시절부터 유별난 아이였다. 소년시절부터 자신만의 실험실을 꾸며 라디오를 분해하고 조립하던 그는 '생각으로 라디오를 고치는 소년'으로 불리기도 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수학공식을 풀어내던 영특한 소년이었다. 또한 완두콩을 쉽게 자르기 위한 장치를 고안하다 손을 베이고, 한꺼번에 접시를 나르는 방법을 실행하다 접시를 깨뜨려 야단을 맞기도 했던 엉뚱한 소년이기도 했다. 

파인만은 후일 노벨상을 받는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인정받지만 자신의 업적에 대한 공을 사물을 바라보는 끊임없는 호기심과 실험정신으로 돌린다. 

"사물을 가지고 노는 것은 쉽다. 내가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만들고,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은 흔들리며 날아가는 접시를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한 일에서부터 나왔다." 

사람도 냄새로 물건을 알아맞힐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바닥에서 코를 킁킁대며 기어다니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남자답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술집에서 주먹질을 해 눈가에 시퍼런 멍이 든 채 수업을 진행할 정도로 괴짜였던 파인만은 임종을 앞둔 순간에도 "난 아직 죽지 않았어!"라며 익살을 부렸다고 한다. 또한 물리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예명으로 그림을 그려 팔고, 기밀문서가 담긴 금고를 십 분만에 뚝딱 열어버릴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리처드 파인만의 행동과 사고가 미국에서 누렸던 그의 인기만큼 국내의 독자들에게 먹히지는 않겠지만 기상천외하고, 독특한 일화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임이 틀림없다. 다만 지나치게 신변잡기적으로 나열된 글들은 파인만의 삶을 너무 가볍게 들여다볼 뿐 물리학자로서 그가 갖고 있던 학문관이나 인생을 살아나가며 체득한 삶의 철학 등에 대해 보여주지 않는다. 개인의 삶과 그에 대한 해석을 다루는 자서전을 쓰려 했던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과학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나 깊이 있는 메시지들이 없다는 점은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은 세상을 하나의 수수께끼 상자로 보고 모든 현상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또한 풀어나갔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진솔한 삶의 풍경이다. 목적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즐기며 살아온 그의 삶은 단순히 과학자로서의 삶을 넘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될 듯하다. 



MIT 시절에 나는 사람들을 놀리기를 좋아했다. 한번은 기계 제도 시간이었는데, 어떤 실없는 친구가 운형자(곡선을 그릴때 사용하는 구불구불한자)를 들고 말했다. '이곡선에 어떤 공식이 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있지 이 곡선은 아주 특수한 곡선이야. 내가 보여주지' 그러고 나서 내 운형자를 들고 천천히 돌리면서 계속 말했따. '운형자의 곡선은 어떤 방향으로 돌려도 가장아랫부분의 접선이 수평이 되게 만들어져 있어'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운형자를 들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가징 낮은 점에 수평으로 대어 봐서 접선이 수평임을 확인 했다. 미적분 시간에 모든 곡선이 최소점에서의 도함수(접선)가 0(수평)이라는 것을 <배워>놓고도 모두들 이<발견>에 흥분했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 것이다.  
--- p. 44
하루는 젊은 율법학자 두세명이 와서 말했다

'우리는 현대 세계에서 과학을 모르고 랍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교수님께 몇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과학에 대해 배울 곳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문제를 궁금해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이 말했다

'예를 들어, 전기는 불입니까?'
'아닙니다, 하지만...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그들이 말했다.
'탈무드에 따르면, 우리는 토요일에 불을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우리가 토요일에 전기를 사용해도 됩니까?'
--- p.187

 

하루는 사촌 프랜시스와 함께 일을 꾸몄는데, 동생 조안에게 꼭 들어야 할 특별 프로그램이 있다고 말해서 그녀가 아래층에 있게 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방송을 시작했다. 

-나는 돈 아저씨에요. 뉴브로드웨이에는 조안이라는 착하고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있죠. 그 아이의 생일이 다가오는데, 오늘은 아니고 모월 모일이죠. 그 애는 참 예쁜 아이랍니다. 그런다음 우리는 노래를 불렀고, 음악을 흉내냈다.

-디릿디, 두두두,디리디리디리, 두루루루....

다 끝난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동생에게 물었다.

-어땠어? 좋았어?

-좋긴 한데..왜 오빠들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지?
--- p.19-20

 

이렇게 서너 연을 반복하면서 이탈리아어 방송에서 들은 모든 감정을 쏟아부었고,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온통 난리였다. 잔치가 끝난 뒤 스카웃 지도자와 학교 선생이 나에게 와서 자기들이 그 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은 그 시가 이탈리아어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은 라틴어라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이 말했다.

'어느쪽이 맞아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애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은 말 자체를 그대로 이해했으니까요'
--- p.55
나는 주방에서 채소를 썰기도 했다. 완두콩은 1인치 크기로 잘라야 한다. 완두콩을 써는 법은 이렇다. 한 손에 완두콩 두 개를 들고 다른 손에 칼을 들고 썬다. 잘못하면 손을 벨 수도 있고, 일도 느린 편이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주방밖에 나무 탁자를 내놓고, 무릎에 큰 접시를 올려놓고, 아주 날카로운 칼을 앞으로 45도쯤 기울여서 탁자에 붙였다. 그 다음에는 탁자 양쪽에 완두콩을 잔뜩 쌓고, 양손에 완두콩 하나씩을 들고 칼에 잘릴 정도로 빠르게 휘두른다. 잘린 조각은 내 무릎 위의 접시로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차레로 완두콩을 썰었다. 

<칙, 칙, 칙, 칙, 칙>모든 사람들이 내게 완두콩을 가져왔고, 내가 맹렬한 속도로 일할 때 사장이 왔다. '너 뭐하는 거니?' '이것 좀 보세요. 완두콩을 자르는 새로운 방법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완두콩 대신에 손이 베였고, 썰어 놓은 완두콩에 피가 흘렀다. 사장은 화가나서, '이것 봐, 완두콩을 다 버렸잖아! 왜 이렇게 멍청하게 일을 해?' 그래서 나는 다시는 이 방법을 개선하지 못했다. 보호대를 붙이거나 하는 개선책이 있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 p.33
나는 종종 선배인 두 룸메이트들이 이론 물리학 공부를 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는 그들이 내가 보기에는 자명해 보이는 주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날라이 방정식을 써 보지 그래요?" "그게 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내가 뜻하는 바를 설명했고, 이 경우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문제르 풀어주었다. 내가 말한 것은 베르누이 방정식이었는데, 이것을 누구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백과사전에서 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발음하는지 몰랐다.

어쨌든 룸메이트들은 이 일에 자극 받아서, 다음부터는 물리 문제들을 나에게 물어왔다. 나도 이 문제들을 잘 풀지 못했지만, 다음 해에 이 과목을 들을 때 빠르게 진보했다. 선배들의 문제들을 풀고 그걸 어떻게 발음하는지 배우는 것은 교육적으로 참 훌륭한 일이었다.
--- pp.41-42
나는 이 연구 이후의 역사를 추적해 보았다. 다음 실험도. 그다음 실험도, 영의 실험을 언급한 것은 없었다. 그들은 영이 밝힌 회랑에 모래를 까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 주의 깊게 실험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예전과 똑같은 방법을 사용했고....................... 그러나 이런 실험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카고 컬트 과학의 특성이다. 
--- p.271(2권)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잔꾀를 쓰지 않는다.~~하지만 이 경우는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중요했고,~우선 그의 방이 어디인지 알아냈는데,~그래서 처음에는 저녁에 그의 문을 지나 내 사무실로 갔다.그것이 전부이다. 나는 그냥 지나가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서 나는 '안녕하세요'라고만 했다.~이렇게 몇주가 지났고,~우리는 점점 더 얘기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드디어 때가 왔다. 그가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다음날 나는 그 물건을 만지기 시작했다.~그에게 구멍을 보여주고 내가 한 요령을 설명했다.~하지만 아직은 자물쇠와 금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 p.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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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파인만은 1918년 미국의 파라커웨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MIT와 프린스턴 대학원을 졸업하고 코넬 대학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교수 생활을 지내다가 1988년 2월에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그는 물리학자였고 1965년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것은 여느 인물 사전에나 나올만한 파인만의 약력이다. 한편 그는 어린 시절엔 라디오를 잘 고치기로 소문난 기술자였고, 금고와 자물쇠 여는 것이 취미였으며, 뛰어난 드러머와 화가로서도 활약했다.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고 잘 생겼고 웃기고, 예술적 감각도 뛰어나서 드럼도 잘치고 그림도 잘 그리며 여자 친구도 많았던 파인만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다보면 정말 한 세기에 몇 명의 인생이기 대문에 뭔가 하나의 구심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막연하긴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독자 개개인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추천평
일반인들에게 과학을 전달하는 사람은 사실 많은데 이 사람은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냥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중요한 순간에 그 과학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면서 우주비행사와 고등학교 선생님도 사망하여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왜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에 유일하게 과학자로 참여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는 생방송 현장에서 얼음물이나 동그랗게 생긴 링을 가지고 실험하면서 왜 추운날 우주선을 날리면 밸브에 문제가 생겨서 폭발할 수 밖에 없는가를 시청자들 앞에서 보여준 것이다. 

오락프로그램에서 과학자가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사람이다. ('TV, 책을 말하다' 162회 출연, 눈물나는 과학책에 이 책을 꼽으면서) 




천재 물리학자는 한가지에서 독특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양자역학, 천문학, 수학, 생물학, 철학,.....

그들은 욕심쟁이, 우훗~~~ 그들의 학문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자기만의 실험실에 박혀 사람들과의 소통도 없이 외롭고 지루한 싸움을 하는 전사 같았다.

그러나 이런 편견을 깨는 물리학자를 만났다. 20세기가 낳은 또 한 명의 천재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당대 저명한 물리학자는 많은데, 이 분이 더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알았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이 책 한 권으로 열 일 하시는 듯......

생각만해도 딱딱하고 어려운 물리학이란 학문이 조금이나마 친밀하게 느껴졌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딱, 리처드 파인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싶다.

어렸을때부터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더니 동네의 모든 멀쩡하지않은 라디오는 파인만의 손에 들어가기만하면 멀쩡한것으로 재탄생되어졌다. 파인만의 눈에 띈 것, 손에 들려진 것은 무엇이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의 호기심들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관심을 받기도 하며, 그 친화력은 파인만의 특별한 매력임을 알 수 있다. 진지한 듯 하면서도 엉뚱하고,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함께 한 사람들을 겸연쩍게 만들기도 한다. 고매하고 고상하고 고지식한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부류였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그의 화려한 경력과는 다르게 살아온 삶이 오히려 그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 것 같다. 그의 삶은 매번 모험이었다. 책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는 그의 화려한? 무용담이 펼쳐져있다. 유명한 물리학자이기 이전에 오롯이 평범하고 잘 웃고 시크하면서 실수도, 불평도 하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메샤츄세스공대(MIT), 프린스턴 대학원에서의 일화가 전혀 생뚱맞지않게 다가왔다. 

파인만이라서 가능!!!

블랙코미디 같은 천재 물리학자의 유머는 더욱 그럴듯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때론 그 농담들이 수준이 높아 이해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모른 척 웃어도 파인만씨는 왠지 함께 웃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의 기행을 다룬 특별한 말투는 읽는 내내 발칙한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과 겹쳐보이는 듯 했다.

물리학자 파인만과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이 함께 만나 얘기하면 왠지 대박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 마지막에 '금고털이가 금고털이를 만나다' 이야기에서는 그의 번뜩이는 재치와 지식, 엉뚱함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어렸을 땐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더니 커서는 주변 금고의 자물쇠 비밀번호 조합을 꿰맞추고 알아내어 그의 천재성을 한번더 빛나게 해준다. 진짜 금고털이도 파인만이란 작자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알고 싶을 정도로 그의 머릿속에 꽂힌 일들은 그 자신이 전문가가 되야 될 정도로 빠져든다. 놀라운 집중력과 끈기는 타의추종 불허다. 반면, 진짜 금고털이를 만난 파인만의 허탈함이 풍선에서 바람이 쑥~ 빠져나가듯...... 천재도 일상성 앞에 별 수 없구나!!! 때론 일상성이 삶의 깊은 통찰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주 친절하게? 재밌게 알려준다. 

금고털이는 금고 여는 법을 모른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금고를 드릴로 뚫는 법까지 모른다.

단지 그는 공장에서 나올 때 금고번호가 대개 같은 숫자 3개로 맞춰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귀찮아서  금고번호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것이란 사람들의 심리를 알았다.

진짜 금고털이에게 한 수 배웠다는 가짜 금고털이 파인만의 머쓱해진 어깨가 보인다.

 

파인만을 통해 20세기초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물리학자들의 명성과 이력들을 잠시나마 보았다.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범상치않은 파인만의 기이한 스토리들이 너무 재밌다.

정말 골 때리는 분이다. 햐아.... 그의 농담들이 유쾌하다. 농담을 진솔하게 하시니 그의 삶이 또 의외로 평탄치 않았음을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된다. 학문적으로 알려진 것 외에 (나와 같은 사람들은) 파인만의 사소한 삶을 더 많이 알고 싶다. 그래서 물리학자든 어느 계통의 학자든 그 소속되어있는 고정된 편견들을 부수어 그 사람 자체를 알고 싶은것이다. 파인만 씨, 농담 잘 들었습니다.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

Many science buffs, I'll wager, are going to be unnerved by this book. After all, here is Richard Feynman - adjudged by most of his peers to be the world's best theoretical physicist - prancing around like a naughty schoolboy, sniffing his own footprints on all fours to see if he can follow his tracks as well as his dog can, being offered ''cream or lemon'' at a Princeton tea and blithely accepting both. Mr. Feynman presents himself as rude, crude and socially unacceptable. He sticks out his tongue at some of our most cherished scientific institutions, from the atomic bomb project at Los Alamos to the Nobel Prize (which he grudgingly accepted in 1965 only because he thought it would be more trouble not to). In this collection of conversations with his long-time friend Ralph Leighton, he portrays himself as the scientist stripped of his distinguished mantle, the physicist as bongo-playing maniac chatting aimlessly about pedestrian subjects like picking up girls in bars. It's not only unseemly; it's embarrassing. Compared with the distinguished figure of Einstein, this fellow seems a cruel hoax.
Text: 

Surely, Mr. Feynman is joking. He is putting us on. It is something he very much likes to do. But the reader should beware: one of Mr. Feynman's favorite ploys is to fool people by telling the simple truth. He's often funniest when he's most serious. While the man presented in this book may look distressingly like a cartoon caricature of a great man, in fact there's a message written in these lines.

And very funny lines they are. Mr. Feynman is a storyteller in the tradition of Mark Twain. He proves once again that it is possible to laugh out loud and scratch your head at the same time. He is a master at summing up a complex situation in a few well-chosen

K.

C. Cole's most recent book is ''Sympathetic Vibrations: Reflections on Physics as a Way of Life.'' words, just as his famous Feynman diagrams simplify complex subatomic encounters in a few squiggles and lines. He cuts right to the core, dispensing with the ''gorp,'' as he calls it - ''ninny-pinny dopey things.'' Here is Mr. Feynman describing how he came to be judged ''mentally deficient'' by the Army: ''There are three desks, with a psychiatrist behind each one, and the 'culprit' sits across from the psychiatrist in his BVDs and answers various questions. . . . Then at some point near the end (a psychiatrist) says, 'How much do you value life?' '' Mr. Feynman answers: ''Sixty-four.''

He can mimic any language, including the mumble of the philosophy professor who speaks ''wugga mugga mugga wugga wugga.'' His humor often comes from calling a spade a spade, or a zoological chart a ''map of the cat,'' as the case may be. He sums up an interdisciplinary conference as ''worse than a Rorschach test: There's a meaningless inkblot, and the others ask you what you think you see, but when you tell them, they start arguing with you!'' Humanities do not fare well here. 

You would never guess that while he's up to his tricks he is also up to physics, revealing the nature of the bonds that hold atoms together. But in truth, the way he talks about cracking top secret safes at Los Alamos is not so unlike the way he talks about cracking the secrets of nature. 

For example, he is a master at guesswork and has the persistence to outwait, as well as outwit, almost any problem: ''I tried all kinds of things. I was desperate. . . . I was always practicing my obsession. . . . The only way to solve such a thing is patience!'' He knows the value of trying a radically different approach: ''If he's been trying the same thing for a week, and I'm trying it and can't do it, it ain't the way to do it!'' 

Picking locks is a form of play for Mr. Feynman. But then, so is his best physics. He writes about a period during which he felt ''disgust'' for physics, and wondered why: ''I used to enjoy doing physics. Why did I enjoy it? I used to play with it.'' Within a week, he was watching some guy in the Cornell University cafeteria throwing a plate in the air. He began to work out the equations connected with the plate's wobble. ''There was no importance to what I was doing,'' he writes, ''but ultimately there was. The diagrams and the whole business that I got the Nobel Prize for came from that piddling around with the wobbling plate.'' 

Los Alamos is treated mostly as a laughing matter, but Mr. Feynman does manage to make some serious points about the absurdity of censorship and the hazards of secrecy, especially when it comes to keeping people in the dark about their jobs. Such an obsession created a situation that might have resulted in an explosion at the uranium enrichment plant at Oak Ridge because no one was told the exact nature of what they were doing; and it led to ridiculously slow progress by a group of young calculators working on the bomb project. ''All that had to be done was to tell them what it was,'' Mr. Feynman says. The result? ''Complete transformation!''

MR. FEYNMAN is always barging in where he doesn't belong, bringing his insatiable interest and his obsession to get it right to drawing (and discovering, while he's at it, ''what art is really for''), playing drums in a Brazilian samba band, learning Japanese, analyzing his dreams, taking ''out-of-body'' excursions in John Lilly's sensory deprivation tanks, evaluating science textbooks (''UNIVERSALLY LOUSY!'') or figuring out how to get women to go to bed with him. 

Many things seem off-key in this book, such as the way being rude to women seems to win their affections, or the way his wife's death gets sandwiched between a tale about tires and a tale about clocks. But in the end, one winds up not only forgiving him, but admiring him: his morality is as unflinching as it is unorthodox. True, the nicest bits are often tucked away like the messages Mr. Feynman liked to hide in those top secret safes he had broken into, and this book reflects only one side of this multifaceted man. But if there's a lot more to Mr. Feynman, fortunately there's also a lot more of Mr. Feynman to read: His ''Character of Physical Law'' is accessible to anyone; and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are well worth going through even for those who will skip 90 percent of the often difficult text. 

At his best, Mr. Feynman tells us what science is really all about. He is amazed that we still inhabit such an unscientific world, where faith in witch doctors has been replaced by equally baseless beliefs ''such as that we have some knowledge of how to educate.'' Science turns out to be essentially ''a long history of learning how to not fool ourselve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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