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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 1962년, 브라이언 존스, 믹 재거, 키스 리처즈, 퇴폐성, 자유

Jobs 9 2025. 3. 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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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

 

결성

1962년 7월 12일 (결성 62주년)

잉글랜드 런던

데뷔

1963년 6월 7일

(데뷔일로부터 +22562일, 61주년)

싱글 Come On

데뷔 앨범

The Rolling Stones

멤버

믹 재거 (보컬, 1962 ~ )

키스 리처즈 (리듬 기타, 1962 ~ )

찰리 와츠 (드럼, 1963-2021)†

로니 우드 (리드 기타, 1975 ~ )

전 멤버

브라이언 존스 (기타 외, 1962-1969)†

이언 스튜어트 (피아노, 1962-1963)†

빌 와이먼 (베이스, 1962-1993)

믹 테일러 (리드 기타, 1969-1974)

장르

록, 팝, 로큰롤, 블루스 록, 하드 록, 루츠 록, 컨트리 록

레이블

롤링 스톤스, EMI, 런던, 데카, 폴리도르, 컬럼비아, 애틀랜틱 레코드, ABKCO

 

 

 

 

롤링 스톤스는 1962년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록 밴드이다.

 

‘구르는 돌’이라는 이름답게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 레드 제플린, 퀸 등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밴드였다. 이들은 블루스 음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여 하드 록, 블루스 록 등 록 음악의 하위 장르를 개척해 나갔으며, 이에 안주하지 않고 삼바, 디스코, 레게, 컨트리 뮤직, 펑크, 더 나아가 80년대에는 팝 스타일과 일렉트로니카를, 90년대에는 현대적인 록 사운드를 흡수해 나가는 행보를 보였다.

 

롤링 스톤스 음악의 특징은 섹스, 마약, 심지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내용까지도 스스럼없이 노래하는 특유의 퇴폐성과 음악 전반에 깔린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 흥겹고 풍부하고, 때로는 직설적이고 풍자적인 가사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대중음악에서 음악가들과 평론가들이 꼽는 록 음악의 정신이 '자유', '저항', '퇴폐' 등으로 요약되므로 어쩌면 가장 록다운 록을 들려주는 밴드라고 평가할 수 있다. 롤링 스톤스는 이러한 행보를 록 음악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1960년대 중반부터 보여왔기에, 록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밴드라고 평가받고 있다.

 

거친 흑인 스타일의 블루지한 보컬 믹 재거의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노래하는, 속된 말로 '깡패 창법'은 고음과 괴성이 아닌 진정한 보컬의 표현력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롤링 스톤스의 상징이다. 또 다른 핵심 멤버 키스 리처즈의 화난 듯 거침없이 긁어대는 기타 사운드와 전설적인 리프들 역시 롤링 스톤스 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비틀즈가 공연장보다는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에 집중한 것과 달리 롤링 스톤스는 공연장에서 수많은 퍼포먼스를 시도하면서 소위 말하는 ‘관객 조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 라이브 공연 중 하나인 코파카바나 해변 공연에서는 150만에 가까운 인파를 휘어잡는데, 롤링 스톤스는 이러한 행보를 1960년대부터 보여왔었다.

 

단순히 비평적으로 성공한 것을 넘어서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하였다. 공식적인 음반 판매량이 무려 2억 장 이상인데, 이는 록 밴드로만 한정할 시 6위에 달하는 수치이다. 현재에도 비틀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퀸, 너바나, AC/DC, 메탈리카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이며, 록씬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또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해체 없이 활동 중이기에 팬덤의 세대 또한 베이비 부머 세대부터 밀레니엄 세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워낙 처참하다보니 롤링 스톤스의 음악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패션 업계에서도 이름이 높은 밴드다.

 

 

 

1962년 브라이언 존스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이후 몇 번 멤버 교체를 겪다가 1963년 찰리 와츠가 드러머로 영입되고 이안 스튜어트가 퇴출되면서 최종적으로 밴드가 완벽하게 결성되었다.

 

당시의 수많은 록 밴드들처럼 초창기에는 고전 블루스 혹은 로큰롤 곡들을 커버하거나 비틀즈가 써준 곡을 발매하는 등 소위 말하는 ‘아이돌 밴드’의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1965년 키스 리처즈의 자작곡인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작사 작곡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워서 발매한 Aftermath가 미국에서 히트를 치면서 더 후와 함께 1960년대 중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끄는 밴드가 되었다.

 

이후 1960년대 후반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들을 발매하면서 상업적, 음악적 양쪽 모두 세계 최고의 록 밴드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후 1970년대 중반 잠깐 침체기를 겪었으나, 1970년대 후반에 Some Girls를 발매하며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이후 80년대와 90년대, 현재까지 이르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상징

 

밴드 명

 

대중들이 현재 알고 있는 5인조 밴드로 자리잡기 전 롤링 스톤스는 아직 이름이 없는 상태였다. 브라이언 존스가 구인 광고를 내걸고 밴드 멤버들을 모집하긴 했으나, 당시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 그리고 믹 테일러가 소속된 밴드였던 ‘더 블루 보이스’의 모든 멤버들이 가입했기 때문에 밴드명은 그대로 더 블루 보이스로 갈 가능성도 있었다.

 

더 블루 보이스 전체가 브라이언 존스의 밴드로 들어오긴 했으나 구인 광고를 내걸고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 사람은 브라이언 존스였기에 밴드의 명명권은 브라이언 존스에게 있었다.

 

한편 브라이언 존스를 포함한 밴드의 모든 멤버들은 블루스 음악, 특히 머디 워터스를 굉장히 좋아했다. 키스 리처즈가 전화를 하고 있던 브라이언 존스에게 밴드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근처에는 머디 워터스의 앨범이 있었다. 그렇기에 브라이언 존스는 머디 워터스의 곡인 ‘Rollin’ Stone’을 밴드 이름으로 정했고, 나머지 멤버들도 이에 찬성하여 밴드의 이름은 이를 살짝 변형시킨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가 되었다.

 

밴드 명이 롤링 스톤스이기 때문에, 각각의 멤버들을 ‘롤링 스톤’이라 부르기도 한다. 멤버들 중 가장 유명한 롤링 스톤은 프론트맨/리드 보컬인 믹 재거다.

 

 

로고

 

롤링 스톤스 심볼

롤링스톤스 로고

 

입술 로고

 

 

AC/DC, 건즈 앤 로지스, 레드 제플린 등과 더불어 로고가 엄청나게 유명한 밴드중 하나이다. 이 입술 로고는 세계적으로 의류와 캐릭터 상품으로서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의류 로고로 굉장히 유명하기에, 록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단번에 아는 수준이다. 그래서 록 음악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국내에서는 롤링 스톤스를 밴드가 아닌 의류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으며, 더 나아가 이 입술 로고가 롤링 스톤스라는 밴드의 로고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롤링 스톤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입술 로고는 영국의 디자이너인 ‘존 파시(John Pasche)’가 디자인했다. 이 로고는 단돈 50파운드에 제작되었는데, Sticky Fingers 발매 시기인 1971년부터 밴드의 로고로 사용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로고가 믹 재거의 입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인 칼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로고이다. 인도 신화에서 칼리는 툭 튀어나온 입과 뾰족하고 큰 혀를 갖고 있다고 묘사되는데, 로고에 이러한 점을 담아낸 것. 또한 반권위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로고에 담아냄으로써 ‘악동’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롤링 스톤스의 특징을 잘 담아냈다는 해석 또한 존재하며, 믹 재거는 이 로고에 섹스에 대한 이미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글자 로고는 상단에 제시된 글자 로고가 대표적이지만, 이 외에도 여러 개의 글자 로고가 존재한다. 사실 그 중 일부는 실제로 밴드에서 썼던 것은 아니었는데, 밴드의 로고가 패션 상품으로 활발하게 소비되면서 여러 디자이너들이 자체적으로 글자 로고를 제작한 것이다.

 

 

 

롤링 스톤스의 구성 멤버

 

믹 재거 Mick Jagger

출생

1943년 7월 26일 ~ (81세)

출신지

잉글랜드 켄트 다트퍼드

활동

1962년 - 현재

포지션

리드 보컬, 하모니카, 기타

 

 

키스 리처즈 Keith Richards

출생

1943년 12월 18일 ~ (81세)

출신지

잉글랜드 켄트 다트퍼드

활동

1962년 - 현재

포지션

기타

 

 

로니 우드 Ronnie Wood

출생

1947년 6월 1일 ~ (77세)

출신지

잉글랜드 미들섹스 힐링던

활동

1975년 - 현재

포지션

기타

 

 

찰리 와츠 Charlie Watts

생몰

1941년 6월 2일 - 2021년 8월 24일 (향년 80세)

출신지

잉글랜드 런던 홀본 블룸스버리

활동

1963년 - 2021년

포지션

드럼

 

 

빌 와이먼 Bill Wyman

출생

1936년 10월 24일 ~ (88세)

출신지

잉글랜드 런던 루이셤

활동

1962년 - 1993년

포지션

베이스 기타

 

 

브라이언 존스 Brian Jones

1942년 2월 28일 - 1969년 7월 3일 (향년 27세)

출신지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첼트넘

활동

1962년 - 1969년

포지션

기타, 하모니카, 시타르 등

 

 

믹 테일러 Mick Taylor

출생

1949년 1월 17일 ~ (76세)

출신지

잉글랜드 웰린가드시티

활동

1969년 - 1974년

포지션

기타

 

이언 스튜어트

 

 

비틀즈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록 밴드로 평가받는 밴드답게 멤버들의 역량 또한 훌륭했다. 비록 ‘인간 흉기들의 모임’이라고 평가받는 크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레드 제플린, 더 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멤버들의 역량은 매우 뛰어났으며, 이에 따라 각 멤버들은 후대의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물론 위에서 서술한 밴드들은 하드 록 성향이 강한 반면, 롤링 스톤스는 좀 더 직선적인 연주를 지향하고 복잡한 연주를 지양하는 로큰롤 성향이 더 강한 밴드라는 것을 고려하자.

 

리더인 믹 재거는 록 프론트맨의 이미지를 최초로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아티스트다. 그는 1960년대 당시 폭발적인 무대 매너를 통해 보수적이었던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서 진보적인 사회를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으며, 이러한 무대 매너로 흔히 말하는 ’관중 조련’을 하고 무대를 장악하는 등의 시대를 앞서간 활약으로 인해 대중 음악 역사상 최고의 프론트맨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특유의 막 부르는 듯한 거칠고 투박한 보컬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는 후대의 여러 록 밴드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또한 재거-리처즈의 일원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송라이팅에서도 엄청난 두각을 드러냈는데, 동료인 키스 리처즈가 작곡을 잘 했다면 믹 재거는 작사에 매우 능했다. 흔히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이라고 불리는 Sympathy for the Devil, Gimme Shelter, Rocks Off 같은 곡들은 전부 그가 작사했는데, 이 곡들은 록 역사를 넘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사들로 뽑힌다. 다만 아쉬운 점은 Some Girls 이후부터는 이런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가사들을 지양하게 되었다는 것.

 

키스 리처즈는 피트 타운젠드, 말콤 영과 더불어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듬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다. 그는 뛰어난 리프 작곡 능력을 선보여서 록씬에서 리프 중심의 음악을 유행시키고 리듬 기타리스트라는 개념을 확립하였는데, 오늘날 록 밴드에서 리드 기타리스트뿐만 아니라 리듬 기타리스트의 역할 또한 매우 중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록씬에 미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포지션 자체가 리듬 기타리스트다 보니 그의 기타 솔로는 상당히 단조롭고 여백이 많은 편이지만, 2015년 라이브 등 여러 라이브를 보면 이 사람이 집중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펜더 텔레캐스터를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그의 대부분의 곡들이 오픈 g튜닝 혹은 오픈 e튜닝으로 작곡되어있다. 브라이언 존스와 같이 리듬 기타와 리드 기타의 경계를 허무는 기타 연주 방식인 기타 위빙(guitar weaving)을 만들었고 이 방식은 롤링 스톤스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게되었다.

 

찰리 와츠는 록 음악 최고의 드러머 중 한 명이자 더 나아가서 영국 록씬을 상징하는 드러머이다. 재즈 드러머였기 때문에 찰리 와츠 특유의 리듬, 그루브나 비트는 흉내내기 매우 까다로우며, 이러한 특유의 개성적인 비트는 롤링 스톤스 음악의 그루브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당장 록씬에서 그의 드럼 연주를 능가하는 드러머는 존 본햄, 키스 문 정도밖에 없다고 평가받을 정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래는 명망 높은 재즈 드러머였으나 브라이언 존스로 인해 록 드러머로 전향했다.

빌 와이먼은 밴드 조력자로서의 베이스 연주를 지향한 베이시스트였다. 그는 무대를 장악하는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의 뒤에서 묵묵히 베이스를 연주하며 곡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다만 그의 베이스 실력 또한 매우 상당한 수준인데, 록 베이시스트로만 한정하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다. 록씬 3대 핵이빨 중 한 명인 키스 리처즈가 빌 와이먼의 베이스 실력을 칭찬할 정도. 이러한 베이스 실력으로 그는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같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과 함께 세계 투어를 다니기도 할만큼, 롤링 스톤스라는 거대 밴드에 어울리는 훌륭한 베이시스트로 평가받는다. 다만 고령으로 인해 현재는 밴드를 탈퇴했다.

창립자이자 초대 리더였던 브라이언 존스는 프린스, 폴 매카트니, 존 폴 존스, 게디 리와 더불어 대중 음악 역사상 최고의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를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전설적인 멀티 플레이어이다. 이 중에서도 브라이언 존스는 원조라고 평가받는다. 그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수도없이 많았는데, 마림바같은 타악기부터 기타같은 현악기, 심지어 시타르 같은 동양의 전통 악기들까지 다룰 수 있었다. 특히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에 특화되었다고 평가받는데, 그는 밴드음악에서 보틀넥 주법을 최초로 도입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그는 롤링 스톤스의 곡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으나, 키스 리처즈와의 음악 및 여자 문제와 약물중독으로 인하여 밴드 멤버들에게 해고당하고 얼마 안 가 사망했다.

 

믹 테일러는 롤링 스톤스의 전설적인 전성기를 이끌은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평가받으며, 무수한 명반들을 쏟아내던 당시의 밴드에서 뛰어난 기타 솔로를 선보였다. 비록 롤링 스톤스를 탈퇴하고 이후의 커리어가 아쉽긴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전성기 시절에는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리치 블랙모어, 데이비드 길모어 등과 더불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평가받았으며, 지미 헨드릭스도 그의 기타연주를 극찬 했을 정도라고 한다.# 롤링 스톤스 음악에서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속주 연주, 그리고 라틴 음악과 블루스에서 영향을 받은 연주가 유명했다. 보틀넥 주법도 브라이언 존스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가 재적하던 시절의 밴드는 앞의 브라이언 존스 재적 시기 혹은 뒤의 로니 우드 재적 시기보다 음악적으로나 인기로나 더욱 절정에 다랐었다. 또한 지미 페이지와 더불어 깁슨 레스폴을 즐겨 쓰는 인물이기도 하다.

 

멤버 대부분의 나이가 70세가 넘는다. 데뷔한지 60년이 되는 밴드이다 보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가장 어린 멤버가 2023년 기준 76세인 로니 우드. 여담으로 밴드의 프론트맨인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는 유치원 동문이라고.

 

전성기 시절에는 리드 기타리스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후두암으로 사망한 찰리 와츠, 고령으로 은퇴한 빌 와이먼을 제외하면 초창기 라인업들이 밴드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리드 기타리스트는 1960년대 후반까지는 브라이언 존스, 1970년대 중반까지는 믹 테일러, 그리고 현재까지는 로니 우드가 맡고 있다.

 

 

 

인기

 

미국 베이비 부머 세대를 상징하는 밴드이기에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하드 록 장르의 시초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동시에 하드 록 외에도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장 인기있는 록 밴드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젊은 세대는 레드 제플린이나 밴 헤일런같은 밴드들처럼 악기를 통해 롤링 스톤스에 입문한다기 보다는 비틀즈처럼 영향력 때문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1960년대에 롤링 스톤스의 인기는 어마어마해,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대표 주자를 말할 때 비틀즈 다음으로 바로 언급되는 수준이며 60년대 전체를 씹어먹던 비틀즈의 유일한 대항마였다. 이들이 1965년에 발매한 싱글인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발매된 Aftermath도 북미에서 인기를 끌면서 마찬가지로 1965년에 침공을 시작한 더 후와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었다.

 

록 음악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리는 1970년대에도 롤링 스톤스의 인기는 1960년대 못지않게 강했는데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 차트 경쟁력을 가진 후배 밴드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롤링 스톤스는 1971년에 Sticky Fingers로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롤링 스톤스의 침체기에 나온 Goats Head Soup, It's Only Rock 'n Roll, Black and Blue 세 앨범도 미국과 영국 양쪽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하는 등의 무시무시한 행보를 보였다. 앨범 이외에도 Brown Sugar, Angie, Miss You라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곡들로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세곡이나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펑크 음악과 디스코 음악의 강세로 수많은 록 밴드들이 1980년대까지 인기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롤링 스톤스는 Tattoo You와 Start Me Up이라는 초대형 히트곡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Voodoo Lounge라는 앨범으로 그해 그래미 최우스 록 앨범을 수상하였고 그 인기는 21세기까지 이어진다. 21세기에는 음반 작업을 하기보다는 투어를 더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2021년에는 2위 해리 스타일스를 크게 제치고 투어 수익 1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롤링 스톤스의 음반 판매량은 약 2억 장으로 약 3억 장 이상을 판매한 레드 제플린이나 약 2억 5천만 장 이상을 판매한 핑크 플로이드에 비해서 음반 판매량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사실 이는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가 각각 헤비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밴드들인데, 이 두 장르는 팬층이 두터운 록 음악 중에서도 특히나 더 팬층이 두터운 장르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롤링 스톤스는 컨셉 앨범이나 유기성을 중요시한 음반을 거의 발매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Let It Bleed나 Sticky Fingers 같은 롤링 스톤스의 대표작들은 유기성,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중요시한 앨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링 스톤스는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퀸, 하드 록의 상징인 AC/DC,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이글스와 거의 비슷한 음반 판매량을 올렸다. 또한 2019년 빌보드 선정 올타임 앨범 차트에서 비틀즈에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싱글도 많이 발매했던 만큼 판매량은 록 밴드 중에서는 비틀즈 다음으로 높고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한 곡들도 8개나 있다. 투어 수익은 후배 밴드인 U2와 메탈리카를 누르고 1위를 오랫동안 차지하였지만 최근에 U2에게 따라잡혀 2위가 되었다.콩라인?

 

1960년대에 결성된 밴드라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만 인기가 높을 것 같지만,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하드한 사운드를 선호하는 현 젊은 세대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비틀즈, 레드 제플린, 퀸,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현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록 밴드 top 5 안에는 꼭 들어간다. 미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의 록 밴드를 묻는 투표에서 롤링 스톤스는 2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8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음반 판매량, 유튜브 및 음원 조회수, SNS 등을 종합한 통계 산출을 통해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록 밴드' 순위를 산정했는데, 롤링 스톤스는 여기서 5위를 기록했다.

 

서구권 록 밴드 중에서는 드물게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롤링 스톤스 사랑이 가장 유명하고 각별하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의 한 지역에는 롤링 스톤스를 숭배하는 ‘롤링가’라는 부족들까지 존재한다고 하며, 아르헨티나인들도 본인들이 롤링 스톤스 공화국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피켓을 만들어 롤링 스톤스가 투어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들 또한 대부분 롤링 스톤스의 팬이며, 심지어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롤링 스톤스의 전용기를 타고 러시아로 갔다고 한다. 밴드 멤버들도 이런 아르헨티나의 사랑을 잘 아는지 인스타그램에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정을 담은 게시글을 자주 올리기도 한다. 또한 고향인 영국에서도 인기가 당연히 좋으며, 의외로 중국과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밴드다.

 

높은 인기와는 별개로 의외로 안티들도 많은 밴드이다. 물론 진지하게 음악적으로 비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방탕한 사생활, 키스 리처즈의 독 때문에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존재하는 듯하다. 또한 베이비 부머 세대를 상징하는 밴드가 지금까지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지는 젊은 세대들도 많으며, 특히나 최근에는 PC주의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 레드 제플린과 더불어 여성혐오 밴드라고 디스당하기 일쑤이다. 물론 사생활적인 이미지나 독설 같은 부분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일반적으로는 나머지 주장들은 헛소리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롤링 스톤스는 힙스터들에게 유독 찬밥 신세를 받는 밴드이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Rate Your Music 차트를 보면 롤링 스톤스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는 Sticky Fingers로 고작 145위이다. 이는 힙스터들이 블루스, 하드 록을 선호하지 않는 취향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봐야한다. 이와 비슷하게 레드 제플린 또한 유독 RYM에서만 평가가 박하다. 가장 높은 앨범이 Led Zeppelin IV로 43위이지만 다른 앨범들은 롤링 스톤스처럼 100대 후반으로 떨어진다. 다른 예시로 더 후 역시 취급이 좋지 않으며 에어로스미스는 아예 차트에도 없다.

 

 

한국에서의 인지도

 

한국이 워낙에 록 불모지이지만,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롤링 스톤스처럼 전 세계적인 인지도와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심하게 차이나는 밴드 혹은 뮤지션은 없을 것이다. 당장 국내 인지도가 해외에 비해 많이 떨어져 내한 공연조차 한번도 안온 프린스나 마돈나만 해도 이들의 이름이나 각종 히트곡들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만, 롤링 스톤스는 밴드 인지도는 커녕 히트곡 인지도도 거의 제로에 가까우며, 로고만이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로고마저도 음악가의 로고가 아니라 롤링 스톤스라는 패션 브랜드의 로고로 잘못 알려져 있으며(…), 더 심한 경우에는 잡지 롤링 스톤을 롤링 스톤스와 혼동하기도 한다.

 

롤링 스톤스 외의 다른 밴드 중에서는 U2 정도가 세계에서의 인지도와 한국에서의 인지도의 괴리감이 롤링 스톤스만큼 심한 편이다. 물론 U2의 히트곡도 기본적으로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보노같은 경우에는 사회 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U2는 얼마전에 내한 공연을 했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는 내한 공연을 한 번도 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80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내한 공연을 올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롤링 스톤스의 내한 공연과 관련된 충격적인 통계가 존재하는데, OECD 38개국 중에서 한번도 공연하지 않은 나라는 코스타리카,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대한민국 이렇게 7개국뿐인데, 이중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6개국은 인구가 수십만명에서 많아봐야 600만명을 넘지 않는 나라들이다. 한마디로 인구와 경제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대국 중 롤링 스톤스의 공연이 열리지 않았던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국이 음반 판매량이 높은 국가는 기본적으로 아니지만 유독 롤링 스톤스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나라라는 점은 이토록 분명하다. 실제로 롤링 스톤스는 동아시아 투어에서는 다른 록 밴드들처럼 일본까지밖에 가지 않았기에 밴드 멤버들도 한국에서는 본인들의 인지도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지금 시대보다 록 음악의 인기가 높았던 70, 80년대에 해외 록 음악을 향유하던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다. 그나마 Angie나 As Tears Go By 같은 부드러운 발라드 곡이나, 베트남 전쟁을 다루던 영상 매체에서 단골로 쓰였던 Paint It Black 정도만 유명하다. 그러나 영미권에서는 록 음악을 듣지 않는 세대들까지 다 아는 60년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Honky Tonk Women이나, 불후의 명곡이며 이들의 삐딱한 태도를 대표하는 (I Can't Get No) Satisfaction 같은 곡들마저도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는 팬들이나 심지어 평론가들에게도 평가 절하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롤링 스톤스는 일반적으로 비틀즈, 밥 딜런과 비슷한 수준의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음악가들 다음 가는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는 국내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20세기 최고의 뮤지션을 뽑았는데 롤링 스톤스는 여기서 고작 8위를 기록했고,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아예 순위에도 없었다. 그나마 한국의 7080 뮤지션들 중에서는 인지도가 낮진 않았는데, 조용필이 Jumpin' Jack Flash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았거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배철수가 이들을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 뽑았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처참할 정도로 낮은 인지도는 스트리밍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음악을 향유하는 젊은 세대들 대부분은 RYM과 포스트락 갤러리로 새로운 음악과 과거 거장들의 음악을 접하는데, RYM 유저들 자체가 롤링 스톤스의 음악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또한 포스트락 갤러리에서는 허구한 날 틀내난다고 욕먹는다. 요약하면 한국에 로큰롤 붐이나 블루스 붐이 오지않는 이상 롤링 스톤스의 이미지가 반등해 내한 공연까지 진행되는건 영원한 꿈인듯 싶다. 그래도 마룬5의 Moves Like Jagger 같은 곡이나 여러 일화들로 믹 재거와 롤링 스톤스의 이름이 조금이나마 알려졌고, 유튜브에 롤링 스톤스의 플레이리스트와 가사 영상들도 올라오는 등 인지도가 조금씩 오르고 있기는 하다. 여담이지만 신해철은 롤링 스톤스의 실황 다큐 샤인 어 라이트 시사회를 진행하면서 "롤링 스톤즈가 거쳐간 나라와 안 거쳐간 나라의 음악 수준이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굿 보이즈 비틀즈까지는 받아들였지만 배드 보이인 롤링 스톤즈를 겪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음악계가 이렇게 후지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에서 롤링 스톤스의 인지도가 유독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롤링 스톤스의 블루스 음악이 한국 감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교한 연주와 신비주의적인 이미지가 아닌 그루브한 연주와 가벼운 이미지는 한국인들과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영미권과 라틴 지역은 춤추는 문화가 발달되었고 5,60년대부터 대중음악을 접해 블루스와 로큰롤이 익숙하지만, 한국의 5,60년대는 6.25 전쟁으로 모든게 박살난 상태라 잊혀진 기억이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나라가 박살난 상태고 정부는 경제만을 살리기 위해 급급한데 이 상태에서 록 음악이 발달하고 로큰롤 음악과 블루스 음악을 즐기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픈 역사가 아니더라도 블루스 음악의 끈적끈적한 리듬과 쾌락적이고 퇴폐적인 감성이 한국인의 성향과 맞았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난 항상 그대를이나 취중진담, 빗속에서같이 블루스 음악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어 대성공한 히트곡들은 몇 개 있긴하지만, 90, 00년대의 주류 음악은 댄스 혹은 록발라드였으며, 현대에도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이 대세이며 블루스 음악은 극히 생소한 음악이다. 한국이 록 불모지이지만 펑크나 메탈, 얼터너티브같은 록의 세부 장르들의 계보가 끊기지 않고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에서 블루스 음악은 비주류인 록 음악 중에서도 가장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또한 록 팬들은 롤링 스톤스의 방탕한 사생활로 인한 악동 이미지, 그리고 쾌락적인 내용이 많은 가사들이 한국같은 비교적 보수적인 국가들과 안 맞아서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에 버금가는 막장적인 사생활과 쾌락적인 내용의 가사들로 가득한 레드 제플린은 한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편이며, 방탕한 사생활과 수위 높은 가사들로 유명한 각종 흑인 힙합 아티스트들도 국내에서 인기가 많기에 이는 너무 나간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북한 측에서 롤링 스톤즈의 북한 공연을 거절한 이유가 그들이 너무 퇴폐적이라는 일화를 생각해보면 보수적인 국가들이 롤링 스톤스를 싫어하는 것은 지나치게 퇴폐적인 이미지도 한 몫 할지도 모른다.

 

 

유명한 팬들

 

비틀즈

두 밴드는 서로의 팬으로 상호간 영향력을 주고 받았다.

레드 제플린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가 롤링 스톤스를 극찬한 것은 매우 유명하며, 마찬가지로 믹 재거도 레드 제플린의 팬이라고 한다.

마틴 스콜세지

롤링 스톤스의 광팬이다.

밥 딜런

조안 바에즈나 우디 거스리같은 선배 뮤지션들이 아닌 동시대 뮤지션들이나 후배 뮤지션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편이지만 유독 롤링 스톤스한테는 항상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고로 또 다른 위대한 밴드인 비틀즈에게는 "그들은 뛰어나다 하지만 로큰롤을 하지 않는다."라는 평가를 내린적이 있고 또 다른 위대한 밴드인 레드 제플린의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인사를 하자 짧은 정적 후에 "내가 당신과 할 말이 있어 여기 왔나?" 라고 차갑게 반응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 60년대 음악의 광팬으로 비틀즈 못지않게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좋아해 그의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언급되었다고 한다.

이기 팝

그중에서도 믹 재거의 광팬이며 그의 무대 매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답게 엄청난 팬으로 유명하다.

장뤽 고다르

68 혁명 시절에 롤링 스톤스에 관한 다큐를 찍은 적이 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이나 그레이트풀 데드 같은 다른 미국의 히피 밴드의 다큐를 찍을 수도 있었지만 음악을 더 좋아해서 결정했다고 한다.

잭 니콜슨

피트 타운젠드

롤링 스톤스를 정말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믹 재거의 엄청난 팬이다. 참고로 198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때 그가 연사를 맡았었다. 재밌게도 영혼의 파트너인 로저 달트리는 타운젠드와는 달리 롤링 스톤스보다 레드 제플린을 더 좋아한다고.

스티브 잡스

Some Girls를 최애 앨범으로 뽑은 적이 있다.

해리 스타일스

노엘 갤러거

노엘 갤러거는 비틀즈나 섹스 피스톨즈같은 영국의 락밴드들의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롤링 스톤스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지 스트래들린

건즈 앤 로지스의 리듬 기타리스트로 롤링 스톤스의 광팬이며 그중에서도 키스 리처드를 본인의 우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음악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지 스트래들린이 작곡한 patience라는 곡이 롤링 스톤스의 느낌이 묘하게 나는 어쿠스틱 곡이다. 참고로 건즈의 또다른 기타리스트인 슬래시는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의 광팬이었기에 이지 스트래들린과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고.

액슬 로즈

이지 스트래들린과 마찬가지로 롤링 스톤스의 광팬이다. 또한 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앨범을 뽑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Exile on Main St.가 들어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에어로스미스

다만, 데뷔초에 툭하면 롤링 스톤스와 비교하고 카피캣으로 매도하는 기레기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에어로스미스도 아메리칸 하드록 역사상 중요한 밴드로 뽑히고 그들을 롤링 스톤스의 카피캣으로 매도하는 대중이나 평론가는 거의 없다.

스티브 메리엇

스몰 페이시스의 초대 보컬이고 키스 리처즈가 그의 광팬이었던 만큼 스티브 메리엇도 롤링스톤즈의 팬이었다. 롤링 스톤스의 노래를 자주 커버하였으며 특히 스몰 페이시스를 나가고 차린 밴드인 험블 파이시절에 Honky Tonk Woman을 커버했던 것이 가장 유명하다.

톰 페티

더 버즈와 밥 딜런 그리고 롤링 스톤스의 음악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닐 영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스티븐 킹

롤링 스톤스가 비틀즈보다 낫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

레드 제플린과 롤링 스톤스의 음악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롤링 스톤스와 같은 무대에 서기도 한다.

신해철

조용필

점핑 잭 플래시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은 적이 있다.

임진모

배철수

데이비드 보위

U2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Bad를 부를 때, 보노가 후반부에 Ruby Tuesday와 Sympathy for the Devil을 반주에 맞게 편곡해서 몇 소절씩 불렀다.

 

 

 

세션 멤버

 

이하의 멤버들은 비록 정규멤버는 아니지만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을 비롯하여 전성기 시절에 기여한 공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들의 팬들이라면 무조건 알고 있는 이름들이다. 특히 바비 키스, 니키 홉킨스, 짐 프라이스 등은 지금까지도 본인들 분야의 원탑 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의 이름들이다. 가히 롤링 스톤스 음악의 특급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안 스튜어트

롤링 스톤스의 정규 멤버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매니저의 푸대접에도 굴하지 않고 1985년 47세로 요절하기 전까지 롤링 스톤스의 여러 곡에서 피아노 세션으로 참여한 멤버이다. 그렇기에 롤링 스톤스 팬들한테는 정규 멤버 못지않게 존경을 받고 있다. 팬들뿐만 아니라 멤버들에게도 존중을 받았는데, 로큰롤의 시스티나 경당으로 추앙받는 롤링 스톤스 이동식 스튜디오를 그의 주도로 설립하였으며, 대표적으로 키스 리처즈는 ‘나는 아직도 롤링 스톤스가 그의 밴드라고 생각한다’라는 주장까지 했다. 심지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정규 멤버들과 같이 이름을 올렸다. 이안 스튜어트는 니키 홉킨스처럼 화려한 스타일은 안 보여주었지만, Let It Bleed의 타이틀곡처럼 그루브있고 개성있는 부기 우기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다른 밴드와도 교류를 자주 하였는지 당시 롤링 스톤스와 친했던 레드 제플린과도 같이 작업한 곡이 꽤나 많다.

지미 밀러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에 모두 참여한 롤링 스톤스의 핵심 프로듀서. 후에 프로듀싱을 배우게 된 재거-리처즈에 의해 해고되지만,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시절의 믹싱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프로듀서지만 드럼 세션으로 참여한 곡들도 많다.

바비 키스

Sticky Fingers와 Exile on Main St.에 참여했었던 관악기 세션 멤버이다. 롤링 스톤스의 라이브에도 같이 참여하면서 미친 관악기 연주를 보여주었다. 키스 리처즈가 그를 특히 잘 챙겨주었다고 하며 믹 재거가 둘 사이를 은근히 질투했다고 전해진다. 이후에 공연을 앞두고 마약을 하다 지각해서 밴드와 인연이 끊기지만, 화해를 했는지 1994년에 같이 무대에 서게 된다.

니키 홉킨스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시절에 자주 참여했었던 전설적인 피아노 세션 멤버이다. Let It Loose와 Loving Cup에서 미친듯한 피아노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만성적인 크론 합병증으로 활동 내내 고생했으며, 결국 1994년 50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롤링 스톤스와 투어를 하는 도중에도 크론 합병증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고 전해진다. 스톤즈 이외에도 킹크스, 더 후 등의 밴드에서 피아노 세션으로 참여하였다.

짐 프라이스

바비 키스와 더불어 같이 관악기 세션으로 자주 참여하였던 세션 멤버이다. 바비 키스가 색소폰으로 참여하였다면 짐 프라이스는 트럼펫으로 자주 참여하였다.

 

 

기타 관련 인물

 

알랙시스 코너

영국 클럽에서 블루스를 연주하던 뮤지션. 롤링 스톤스와 에릭 클랩튼, 야드버즈를 비롯한 후배 블루스 록 아티스트들이 모두 그의 밑에서 블루스를 연마하였다.

타지 마할

메인스트림 뮤지션은 아니기에 국내에서는 잘 알려진 뮤지션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나름 지명도 있는 뮤지션이다. 지금까지도 롤링 스톤스와 꽤 오랜 친분을 유지하는 블루스 뮤지션으로 Shine A Light를 커버하기도 하였다. 롤링 스톤스 로큰롤 서커스에도 같이 참여하였으며, 최근에 밴드가 단체로 생일 축하 영상을 인스타에 올리기도 하였다.

앨런 클라인

롤링 스톤스 팬들뿐만 아니라 비틀즈 팬들에게도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는 인물로, 롤링 스톤스와 여러 계약 문제가 얽혀 여기에서도 팬들에게 죽일 놈 취급받는 음반제작자이다. 앨런 클라인은 이들과 소송도 여러번 치렀으며, Let It Bleed 이전 곡들에 대한 배급 권리는 아직도 그의 회사인 ABKCO에 있다. 실제로 롤링 스톤스의 Let It Bleed 이전 곡들은 그들의 채널이 아닌 ABKCO의 채널에 업로드된다. 팬들도 이제 체념한지 오래이며, 자막 업로드 영상이나 열심히 올려서 돈이나 벌라는 반응이다.

로버트 프랭크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작가로, 전성기 시절 롤링 스톤스의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사진과 영상을 찍었었다. Exile on Main St.를 밴드가 녹음하던 시절 밴드에게 무작위의 사진을 마구 찍은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게 지금의 앨범 커버가 되었다고 한다. 밴드가 본인들이 작업하던 음악 스타일과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지만 그들의 공연 뿐만아니라 적나라한 성생활까지 찍힌 다큐멘터리 Cocksucker Blues 개봉을 두고 밴드와 갈등이 깊어져 인연이 끊기게 되고 소송까지 치렀다.

그램 파슨스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시절에 같이 어울려다녔던 컨트리 록의 전설 뮤지션이다. 블루스 음악 애호가인 재거-리처즈가 컨트리 음악에 탐닉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키스 리처즈와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마약을 했다고 하는데 Exile on Main St.를 녹음 할때 키스 리처즈의 마약을 모두 가져가서 그와 인연이 끊겼다고 한다. 그 후 요절하였으며, 롤링 스톤스 멤버들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였다. Sweet Virginia와 Torn And Frayed가 그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곡이다.

앤드류 올드햄

롤링 스톤스의 초기 매니저로 롤링 스톤스의 악동 이미지를 처음으로 구상하였다고 전해진다. 재거-리처즈의 첫 자작곡인 As Tears Go By의 탄생 비화가 있는데, 재거-리처즈에게 곡을 써오라고 방에 가둬놨다고 한다(…). 후에 토사구팽 당하듯이 밴드에서 쫓겨나는데, 재거-리처즈와 갈등이 깊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근황이 전해졌는데 브라이언 존스 티셔츠를 입고있는 모습이 찍혀 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브라이언 존스가 롤링 스톤스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미 페이지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이자 레드 제플린의 리더로, 1960년대부터 롤링 스톤스 멤버들과 절친한 사이였다. 당시 롤링 스톤스와 레드 제플린은 어마어마한 사생활로 유명했는데, 이것의 중심에는 키스 리처즈와 지미 페이지가 있었다. 지미 페이지는 심심하면 키스 리처즈, 믹 재거와 함께 코카인과 헤로인을 투여했으며, 에릭 클랩튼과 함께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 각종 술과 마약을 하면서 그루피들과 성관계를 하는 난장판식 퇴폐 파티를 열기도 했다. 음악 활동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 발매된 롤링 스톤스의 미공개 곡이자 싱글인 Scarlet의 리드 기타리스트가 바로 지미 페이지이다. 6집 작업 도중 심심해서 스톤스 멤버들과 놀다가 리드 기타리스트를 맡은 것이라고(…). 또한 1980년대 초반에는 밑의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빌 와이먼, 찰리 와츠와 함께 월드 투어를 돌기도 했다.

에릭 클랩튼

야드버즈, 크림의 기타리스트이자 솔로 블루스 음악가로, 1960년대부터 롤링 스톤스 멤버들과 절친한 사이였다. 위의 지미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마약과 그루피들로 이어진 인연이었는데, 상술했다시피 지미 페이지, 믹 재거, 키스 리처즈와 함께 그루피들을 대동하고 광란의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들 모두와 엮어있는 여자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롤링 스톤스 로큰롤 서커스에도 더티 맥 소속으로 참가하였으며, 1980년대에도 스톤스 멤버들과 함께 투어를 다니면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와 헤어진 후에 믹 재거에게 애인을 NTR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참고로 이 애인이란 사람은 바로 카를라 브루니. 그러나 현재까지 잘 지내는 것을 보면 화해하고 넘어간 모양이다.

아니타 팔렌버그

모델 활동을 하였으며 괴작 영화 바바렐라의 '검은 여왕' 역을 맡은 적이 있다. 브라이언 존스의 애인이자 그와 헤어지고 키스 리처즈와 부부 생활을 이어나갔다. 키스 리처즈의 일방적인 NTR로 알려져 있지만, 키스 리처즈와 사귀기전에도 셋이 잘 어울렸다고 한다. 브라이언 존스의 편집증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에 지쳐 키스 리처즈와 단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그와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잘못된 만남 롤링 스톤스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인데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기주장 강한 여자, 롤링 스톤스의 오노 요코라고도 표현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항적이고 양성적인 스톤즈의 스타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라고도 평가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지 롤링 스톤즈 팬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밴드 애인으로 2위 마리안느 페이스풀을 제치고 1위로 선정되었다. 2017년에 타계하였으며 스톤즈의 태도와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녀를 팬들이 추모하였다.

마리안느 페이스풀

믹 재거의 전 애인. Wild Horses나 Sister Morphine같이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쓴 곡도 많고 래드랜즈 바라는 그녀가 연루되었던 사건이 너무 유명해서 대외적으로는 가장 유명한 믹 재거의 전 애인이다. 물론 래드랜즈 바라는 사건이 터무니없는 루머라고 밝혀졌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언론의 공격과 대중들의 억측에 많이 고통받았다. 롤링 스톤스 팬들도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그녀를 정말 존경하고 좋아한다.

 

제리 홀

원래 록시 뮤직의 브라이언 페리의 애인이었지만 페리가 투어를 하고 있는 동안 믹 재거와 눈이 맞았고 그 후 믹 재거와 결혼 생활을 짧게 나마 이어 나갔다.

 

 

 

해외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롤링 스톤스의 광팬인 것으로 유명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자체가 록 음악 덕후지만 그중에서도 롤링 스톤스의 음악이 자신의 갱스터 영화들과 정서가 어울리다고 느꼈는지 자주 삽입하였다. 특히 Gimme Shelter는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 그리고 디파티드까지 총 3번이나 나왔으며, 카지노 한 영화에서만 롤링 스톤스의 노래가 5번이나 나왔다.  그리고 스코세지는 후에 ‘샤인 어 라이트’라는 롤링 스톤스의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까지 제작을 맡게 된다.

사실 스코세이지의 롤링 스톤스에 대한 선호도를 넘어, 두 아티스트는 분야는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스코세이지의 데뷔가 좀 늦지만 둘다 50년을 넘어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둘다 이방인 출신이지만[ 각각 컨트리와 블루스로 대변되는 미국의 전통적인 록 음악과 미국의 작가주의 뉴욕파 영화를 상징한다는 점도 그렇다. 또한 작품이 다소 마초적인 성향을 띈다는 것도 많이 비슷하다.

1963년, 즉 비틀즈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프론트맨 듀오인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의 나이가 상당히 어린 편이다. 이 둘은 1943년 생인데, 동료 밴드인 비틀즈의 막내인 조지 해리슨과 동갑인 것이다.

 

 

 

롤링 스톤스에 대한 언사

 

롤링 스톤스는 최후에는 진정 가장 위대한 로큰롤 밴드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메탈, 랩, 펑크, 뉴 웨이브, 팝 록, 어떤 것이든 당신은 모두 롤링 스톤스의 영향력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아무도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밥 딜런

 

나는 롤링 스톤스에게 어떠한 경쟁 심리도 느끼지 않는다. 롤링 스톤스는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으며, 믹의 가사는 그냥 놀라움 그 자체이다.

지미 페이지

 

롤링 스톤스는 영국 음악계에서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에게 여러 음악을 선사해 준 주된 선구자이자 공급자이다.

로버트 플랜트

 

롤링 스톤스가 다녀온 나라들은 롤링 스톤스가 공연을 한 이전과 이후의 음악 수준이 확연히 바뀔 정도인데, 한국이 굿 보이 비틀즈는 받아 들였지만 배드보이 롤링 스톤스는 못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 음악이 후진 것이다.

신해철

 

롤링 스톤스는 나의 밴드에 대한 기준을 만든 밴드이다. 하지만 난 그들처럼 투어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 무릎이 버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 본 조비

 

롤링 스톤스는 우리가 한 번도 같이 연주를 하지 않은 밴드지만 항상 같이 연주를 하고 싶었던 밴드이다.

라스 울리히

 

많은 뮤지션들은 본인들이 롤링 스톤스라도 된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하면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조니 마

 

적어도 펑크가 도래할 때까지 아무도 그들처럼 몰아(沒我)의 에너지로 철저히 록을 한 사람들은 없었다.

로버트 크리스트가우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자랐다면 당신은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그리고 롤링 스톤스의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음악이 항상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크리스 코넬

 

롤링 스톤스의 일부 노래들은 기절초풍(Stunner) 그 자체이다 .

존 라이든

 

비틀즈, 필 스펙터, 그리고 롤링 스톤스 이들이 저의 우상입니다.

브라이언 윌슨

 

어린 시절 나의 우상들인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다.

로버트 스미스









롤링 스톤스

 

평가와 영향력

 

음악 성향

 

" 요즘 록 음악의 문제점은 밴드들이 록(Rock)은 잘하지만 롤(Roll)은 못하는데 있다."

— 키스 리처즈

 

" 당신이 블루스를 모른다면 록 음악을 기타를 잘 다루지 못할 것이며 로큰롤뿐만아니라 그 어떤 대중음악도 연주하지 못할 것이다. "

— 키스 리처즈

 

"롤링 스톤스라는 밴드가 원래 하려던 음악은 ‘로큰롤(Rock & Roll)’이었으나, 아무래 노력해도 흑인 특유의 ‘롤’을 못 살려서 차선책으로 ‘록’을 추구했더니 지금의 음악이 되었다."

— 키스 리처즈

 

롤링 스톤스의 음악은 고전 블루스와 로큰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밴드 초창기에는 고전 블루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으며, 1960년대 초반 영국의 블루스 음악을 주도하던 알렉시스 코너 밑에서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같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밤새도록 블루스 음악을 연마하였다. 실제로 롤링 스톤스 커리어 초기는 고전 블루스 곡들을 그 당시 영국 사운드에 걸맞게 커버하는 블루스 커버 밴드였다. 이는 당시 재거-리처즈보다 영향력이 높던 브라이언 존스의 음악 성향에서 비롯된것이다. 그렇기에 롤링 스톤스가 작사 작곡에 눈을 뜨기 전에는 이렇게 고전 블루스 혹은 로큰롤 음악들을 커버하거나, 비틀즈가 써준 곡을 발매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블루스 커버 활동을 이어가다가 재거-리처즈 콤비의 시너지를 알아본 당시 매너지 앤드류 루그 올드햄에 의해 브라이언 존스에서 재거-리처즈로 권한이 많이 넘어가게 되었고 밴드의 음악 성향도 로큰롤 비중이 상당히 커진다. 롤링 스톤스는 당시 고전 블루스를 로큰롤과 같이 거칠게 재해석하는 음악을 계속하여 블루스 록과 하드 록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게 되고 펑크 록의 탄생에도 기여하게 된다. 이외에 비틀즈의 영향과 당시 시대에 큰 영향을 받아 사이키델릭적인 실험에도 롤링 스톤스는 동참하였다. 그러다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다시 그들의 뿌리인 블루스로 돌아오게 되고 당시 유행하던 시카고 블루스를 넘어 블루스의 원형인 델타 블루스까지 파고들게 된다. 그 앨범이 Beggars Banquet이다. 블루스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는 인기가 아예 없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사랑받는 음악장르인 컨트리 뮤직과 소울에도 탐닉하게 된다. 블루스애호가인 롤링 스톤스에게는 의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컨트리 뮤직과 잘 맞아 롤링 스톤스는 컨트리 록을 개척하게 된다. 또한 사이키델릭처럼 충동적인 실험에 그치지않고 후기 앨범들까지도 컨트리 뮤직을 넣으면서 블루스, 로큰롤과 더불어 컨트리 뮤직은 롤링 스톤스의 새로운 뿌리가 된다. 이 선택이 신의 한수가 되어 후에 블루스, 컨트리 뮤직, 소울, 로큰롤음악이 한데 뭉친 음악을 지칭하는 루츠 록이라는 용어를 만들게 된다. 또한 영국 밴드들을 푸대접하고 블루스, 컨트리 뮤직, 소울등의 미국음악 편식이 심한 롤링 스톤의 지지를 당시부터 지금까지 받게 된다. 후에 롤링 스톤스와 같이 음악을 시작하던 밴드들이 해체하고 난 뒤에도 디스코음악과 팝음악을 블루스, 로큰롤 스타일로 재해석해 앨범을 만들게 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생존하게 된다.

 

또한 롤링 스톤스 음악의 특징이라면 테크닉보다는 그루브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 세대까지 인기 있는 레드 제플린, AC/DC, 퀸 등의 밴드들은 각각 로버트 플랜트, 본 스콧/브라이언 존슨, 프레디 머큐리라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진 보컬, 그리고 지미 페이지, 앵거스 영, 브라이언 메이라는 훌륭한 테크닉을 가진 기타리스트를 보유한 밴드라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는 제시된 밴드들과는 달리 화려한 솔로 플레잉을 즐겨하는 멤버는 믹 테일러 정도밖에 없었으며, 이 또한 후술할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이 발매됐을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만 활동했다. 보컬인 믹 재거는 기교가 거의 없는 투박한 보컬 스타일을 갖고 있었으며, 키스 리처즈는 솔로잉보다는 리프메이킹에 치중한 리듬 기타리스트였다. 찰리 와츠 또한 폭발적인 드러밍이 아닌 그루브를 중시하였으며, 베이시스트인 빌 와이먼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상술한 믹 테일러가 활동한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는 당시에 유행했던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아 롤링 스톤스도 화려한 기타 솔로를 자주 넣었다. 신작들의 수록곡들에 웬만하면 기타 솔로가 들어갔고, 라이브 공연에서도 원래는 기타 솔로가 없던 여러 곡들에서 믹 테일러가 화려한 솔로를 연주하기도 했다. 또한 음원보다 더 빠른 속도와 더 풍부한 기타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의 하드 록 열풍에 따라 롤링 스톤스가 더더욱 인기를 끌 수 있던 요인이 되기도 했다.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Beggars Banquet

Let It Bleed

Sticky Fingers

Exile on Main St.

 

주로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이라고 하면 위의 4개의 앨범을 가리킨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이라는 것은 “세계 X대”라는 말을 좋아하는 일본에서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롤링 스톤스의 커리어에는 이 네 음반들 외에도 Aftermath, Some Girls라는 음악적 평가가 높은 또다른 명반들이 더 존재한다. 즉 전 세계적으로 통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음반들의 공통점으로는 모두 연달아 나왔으며, 브라이언 존스의 영향력이 거의 없거나, 브라이언 존스의 탈퇴 후에 제작된 앨범이라는 것이다. 즉 브라이언 존스는 롤링 스톤스의 초기 리더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4대 명반들은 브라이언 존스의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또한 4개 중 Beggars Banquet를 제외한 나머지 세 앨범에 모두 믹 테일러가 참여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리고 또한 롤링 스톤스 음악의 최고 조력자인 위대한 프로듀서 지미 밀러가 모두 참여한 앨범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는 지미 밀러에게 프로듀싱을 맡기지 않아서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롤링 스톤스가 자주 사용하는 악기들 피아노, 관악기, 리듬 기타, 리드 기타, 흑인 코러스 등의 다양한 사운드를 촘촘하지만 어지럽지않게 밀도있게 믹싱하는 그만의 사운드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평가 및 음악적 영향력

 

올뮤직 데이터

 

롤링 스톤스는 진정한 가장 위대한 로큰롤 밴드로 최후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메탈, 랩, 펑크, 뉴 웨이브, 팝 록, 어떤 것이든 당신은 모두 롤링 스톤스의 영향력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아무도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밥 딜런

 

올뮤직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롤링 스톤스는 대중음악 사상 3번째로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음악가이다. 록밴드로만 한정지었을 시에는 비틀즈에 이어 2번째이다. 이러한 공로 때문인지 비틀즈, 비치 보이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영어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밴드이기도 하다. 사실 음악가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으나, 롤링 스톤스 만큼은 비틀즈, 더 후 등과 더불어 현역 당시나 현재나 똑같이 평가가 높은 밴드 중 하나이다. 특히 록 음악 중에서도 로큰롤 음악과 블루스 음악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상징으로 평가받을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에서 25위권 안에 든 영국 밴드는 단 3개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롤링 스톤스이다. 나머지 두 밴드가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이니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이 중에서도 롤링 스톤스는 4위이며, 순수 록밴드로만 한정지었을 시에는 위의 올뮤직의 분석 결과와 마찬가지로 2위이다. 즉 영국 출신이지만 미국 평론가들 또한 매우 높게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영국 록밴드인 것이다. 사실 이렇게 고평가를 할 만한것도 한 것이, 로큰롤 장르를 록 음악으로 발전시킨 비틀즈와 더불어 롤링 스톤스는 로큰롤과 블루스 장르를 록 음악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록이라는 장르의 정체성과 근본을 더욱 더 탄탄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당장 블루스 록의 시초로 꼽히는 곡은 롤링 스톤스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며, 하드 록의 시초 또한 더 후와 더불어 롤링 스톤스가 거론된다. 블루스 록과 하드 록이 이후 음악계를 이끌게 되는 메탈과 얼터너티브 록의 뿌리인 것을 감안하면 롤링 스톤스는 록 음악을 형성한 밴드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렇게 롤링 스톤스가 록 음악이라는 장르의 정체성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후대에 펑크 록이나 글램 록, 그런지 등의 정체성 강한 록의 세부 장르가 등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펑크 음악의 시초라고 평가받는 뉴욕 돌스와 이기 팝이 비주얼적이나 음악적으로 강하게 보이기 때문에, 롤링 스톤스가 펑크 음악의 전신이였다는 말은 과장이 아닌듯 보인다.

 

이처럼 전체 음악 장르가 아닌 ‘록 음악’이라는 장르에만 한정지었을 시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보다도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가령, 보컬과 기타의 분업체계를 롤링 스톤스가 먼저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에 집중했던 비틀즈와는 달리 롤링 스톤스는 수많은 공연 경험으로 라이브 실력을 쌓았다. 국내외의 여러 록 커뮤니티와 록 평론가들에게 비틀즈 이상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여기에 하드웨어 적으로는 롤링 스톤즈 이동식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다른 밴드에게 이를 빌려주었고, 여기서 탄생한 음악도 매우 유명하다.

 

 

 

음악 외적으로 미친 영향

 

음악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외적인 스타일로도 록 음악가의 이미지를 형성했다고 평가받는다. 현세대에서 락스타 하면 떠올리는 거칠고 섹시하며 반항적인 이미지를 최초로 내세운 음악가가 바로 재거-리처즈 듀오였다. 물론 장발에 치렁치렁한 가죽옷을 입고 헤드뱅잉하면서 샤우팅과 현란한 속주를 한다는 락스타의 이미지는 레드 제플린의 플랜트-페이지가 최초이긴 했으나, 플랜트-페이지가 동시에 내세운 거칠고 섹시한 이미지는 재거-리처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이는 후대의 록 음악가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기에 건즈 앤 로지스의 액슬-슬래시,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조 페리 등의 수많은 퇴폐적이고 섹시한 프론트맨 듀오를 앞세운 록밴드들을 양산했다.

 

또한 더 후와 더불어서 대중들이 흔히 말하는 ‘관객 조련’을 최초로 한 밴드이기도 하다. 롤링 스톤스의 프론트맨인 믹 재거는 관객 조련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60년대 중반에 무대 위를 마구 뛰어다니거나 막춤을 추고 관객의 환호성을 유도하는 등의 뛰어난 무대 장악력을 통해, 악기를 신나게 부수거나 윈드밀 등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호응을 유도한 더 후와 함께 관객 조련을 시도하였다. 즉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무대 매너라는 개념의 시초자가 바로 롤링 스톤스라는 것이다. 이는 마찬가지로 후대에 큰 영향력을 끼쳐 프레디 머큐리, 앵거스 영 등 후배 프론트맨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현재까지도 '록 스타'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론된다.

 

롤링 스톤스는 라이벌인 비틀즈처럼 대중음악을 넘어 다른 대중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록밴드로 평가받는다. ‘악동’이라는 이미지를 최초로 내세운 연예인답게 롤링 스톤스는 1960년대 중후반 당시 반문화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다. 더 위로 올라가면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데뷔초에 기성 세대의 비위를 건드렸던 반문화의 아이콘이 있지만 그는 베트남 전쟁 참전 이후에는 격렬한 로큰롤 곡보다는 잔잔한 발라드곡을 부르며 보수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롤링 스톤스는 영화 배우 제임스 딘 같이 대중문화 최초의 반문화의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엘비스와 비교하면 롤링 스톤스는 데뷔초부터 60년이나되는 지금까지 기성세대, 메인스트림과 타협하려는 시도자체를 거의 하지않았다. 비록 60년대 중후반에 보여주었던 진보적인 정치성향이 보수적인 정치성향으로 바뀌었더라도 그들은 입에 발린말이나 메인스트림, 대중들이 원하는 말, 가식적인 행동 따위를 거의 하지 않았다. 또한 영화감독과의 협업도 많은데 68 혁명 시절에 프랑스 누벨바그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장뤽 고다르가 롤링 스톤스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으며 미국 역사상 최고의 영화감독중 한명이자 롤링 스톤스의 광팬으로 유명한 마틴 스코세이지가 이들의 공연 실황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재거-리처즈의 록스타로서의 이미지는 많은 대중문화의 오마주 대상이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믹 재거를 대놓고 오마주한듯한 캣츠의 럼텀 터거와 키스 리처즈를 오마주하였고 후에 키스 리처즈가 직접 참여하기도한 잭 스패로우가 있다. 이렇듯, 재거-리처즈보다 순전히 음악을 잘하는 록스타들은 많지만 그들이 록스타라는 이미지, 영향력면에서 압도적인 넘버원이라는 것은 다른 대중매체에서도 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정치, 사회적 영향력 또한 매우 컸다. 비틀즈의 멤버들, 특히 존 레논이 진보적인 정치 성향으로 영미권에서 신좌파주의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잡았던 반면, 롤링 스톤스의 성향은 보수주의, 즉 우파였다. 믹 재거는 강성 보수당 지지자이며, 키스 리처즈는 노동 계급 출신이지만 이라크 전쟁과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으로 보아 보수 성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멤버들은 정치 성향을 밝힌적이 없다. 그러나 재밌게도 롤링 스톤스는 Gimme Shelter, Paint It Black, Street Fighting Man 등의 곡들을 통해 히피들과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을 피력하면서 히피를 대표하는 밴드로 인식받고 있다. 오히려 68혁명에 대해 보수 우파의 의견을 대변한 것은 비틀즈였다. 이렇기에 당시 히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그냥 지지 정당만 보수당이고 실제 성향은 진보나 리버럴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중산층을 혐오하고 매우 진보적인 성향으로 유명한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인 쟈니 로튼은 중산층 출신의 믹 재거를 죽이고 싶다고 발언한 적 있다.

 

 

롤링 스톤스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들

 

고전 블루스 및 로큰롤 음악가들

 

로버트 존슨 : 블루스를 좋아하던 멤버들이 특히나 더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였다.

머디 워터스 : 델타 블루스 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믹 재거와 브라이언 존스가 특히 그를 존경하였다. 실제로 롤링 스톤스라는 밴드 이름은 그의 음악 롤링 스톤에서 따온 것이다.

하울링 울프

척 베리 : 키스 리처즈의 음악적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키스 리처즈에게 큰 영향력을 주었다. '실제로 롤링 스톤스의 음악은 내 거울처럼 느껴지며 나는 그걸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한다.' 라는 발언을 한적이 있다.

리틀 리처드

존 리 후커

지미 리드

 

컨트리 뮤직, 컨트리 록 아티스트들

 

버즈(그램 파슨스)

에벌리 브라더스 : 키스 리처즈 특유의 오픈 튜닝은 에벌리 브라더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아티스트들

 

비틀즈 : 초창기에는 비틀즈가 써준 곡들을 발매하였으나, 이후에는 상호간 영향을 주고 받았다.

더 후 : 1960년대 중반부터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함께 한 밴드로서 무대 매너와 음악성 등 여러 방면에서 상호간 영향을 주고 받았다. 피트 타운젠드 특유의 풍차 돌리기 퍼포먼스를 키스 리처즈가 먼저 시도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더 후 특유의 악기 부수기 퍼포먼스와 호텔 박살내기(…) 등의 퍼포먼스를 롤링 스톤스가 1970년대에 그대로 따라했다.

스몰 페이시스 : 키스 리처즈가 스몰 페이시스의 보컬인 스티브 매리엇의 광팬이었다.

야드버즈(레드 제플린) : 마찬가지로 블루스 록의 선구자라고 평가받는 밴드답게 서로 음악적 영향력을 주고 받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레드 제플린 멤버들과 롤링 스톤스 멤버들 모두 서로의 데뷔 전부터 알렉시스 코너의 밑에서 블루스를 공연하면서 같이 알고 지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존 폴 존스는 브라이언 존스의 영향을 받아 보틀넥 주법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1970년대 롤링 스톤스의 음악은 당시 유행하던 레드 제플린에게 영향을 받아 좀 더 하드해 졌다는 특징도 있다.

크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 크림과 지미 헨드릭스는 롤링 스톤스와 함께 1960년대 후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함께 이끌면서 상호간 영향력을 주고 받았다.

 

소울 음악 아티스트들

 

오티스 레딩 : 오티스 레딩이 관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키스 리처즈가 Sticky Fingers에 도입하였다고 한다.

템테이션

 

 

 

롤링 스톤스가 영향을 준 아티스트들

 

더 후와 레드 제플린이 하드 록, 헤비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면, 롤링 스톤스는 블루스, 로큰롤 같은 록 음악의 전통적인 장르와 펑크, 글램 록, 그런지, 루츠 록 등의 록의 세부음악 파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블루스, 로큰롤에 있어서는 롤링 스톤스의 영향력을 뛰어넘는 아티스트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포크 음악의 전설이지만 로큰롤 숭배자인 밥 딜런이 롤링 스톤스보다 뛰어난 로큰롤 밴드는 전에도 없고 앞에도 없다고 평가했으니 말 다했다.

퀸 : 음악적으로는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나, 멤버들은 롤링 스톤스의 영향력 또한 언급하였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가 프론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상하는데 로버트 플랜트와 더불어 믹 재거도 많이 참조하였다고 한다.

이기 팝 : 음악성 및 무대 매너의 측면에서 롤링 스톤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펑크 록 아티스트이다.

레너드 스키너드

뉴욕 돌스

에어로스미스 : 이쪽도 퀸과 마찬가지로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아메리칸 하드 록 밴드이지만, 블루스를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롤링 스톤스의 영향 또한 받았다.

섹스 피스톨즈 : 존 라이든은 현역 시절에는 믹 재거를 죽이고 싶다고 했으나, 컨셉질 할 필요가 없는 현재에는 롤링 스톤스의 영향력을 언급하였다.

펄 잼

마돈나 : 믹 재거의 섹슈얼한 프론트맨으로서의 이미지에 많은 것을 영향받았다.

프린스 : 롤링 스톤스의 Honky Tonk Women을 커버하였고 믹 재거의 섹슈얼한 프론트맨으로서의 이미지에 많은 것을 영향 받았다. 다만 키스 리처즈는 그가 맘에 안들었는지 악담을 퍼부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 : 시기로 보면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에 가깝지만 음악 자체는 그런지의 영향도 크다.

건즈 앤 로지스 : 롤링 스톤스보다는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밴드였지만, 리듬 기타리스트인 이지 스트래들린이 롤링 스톤스, 특히 키스 리처즈의 광팬이었다. 그렇기에 지미 페이지 스타일을 추구하던 슬래시와 스타일 면에서 충돌하여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밴드가 롤링 스톤즈의 Wild Horses와 Sympathy for the Devil을 커버한 적이 있으며 보컬 액슬 로즈도 Exile on Main St.를 가장 좋아하는 앨범 5개 중 하나로 뽑은 적이 있다. 액슬 로즈와 이지 스트래들린은 후에 롤링 스톤스와 같은 무대에서기도 한다.

오아시스 : 믹 재거가 리암 갤러거를 디스하여 리암 갤러거가 믹 재거에게 맞짱 신청을 한 일화는 유명하지만, 비틀즈만큼 롤링 스톤스의 영향도 받은 밴드라고 한다.

BIGBANG : 음악 외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특히 T.O.P이 롤링 스톤스, 그중에서도 믹 재거의 영향력을 언급하였다.

차승우

엘비스 코스텔로 : 블루스 시절보다는 브라이언 존스 시절 스톤즈에 더 영향을 받았다.

슈퍼그래스 : 엘비스 코스텔로와 마찬가지로 브라이언 존스 시절 스톤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패티 스미스

그린 데이 : Rip This Joint 등 여러 곡들을 커버하였고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레타 반 플릿 :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건 레드 제플린이지만, 기타리스트인 제이크 키스카는 키스 리처즈의 영향력 또한 언급하였다.

더 스트럿츠

영블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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