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기름
Lard
쇠기름에 대응하여 한자어로 돈지(豚脂), 돈유(豚油)라고도 한다. 원래는 돼지의 콩팥 주변 지방조직에서 추출한 기름만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현재는 돼지에서 추출한 기름을 모두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우리가 잘아는 도넛이 과거 이 돼지기름으로 튀겨진 음식이었다. 그래서 심슨 가족이 사는 스프링필드에 있는 도넛 가게 이름이 Lard Lad, 즉 돼지기름 꼬마이다.
돼지 기름은 약간 산패되더라도 튀김을 했을 때 그럭저럭 괜찮을 만큼, 의외로 맛이 깔끔한 편에 속하는 기름이다. 발연점도 꽤 높은 편이라 튀기거나 볶는 것에 크게 부담이 가지도 않는 요긴한 기름. 버터에 비해 고소하고 달달한 풍미가 없어 콩라인 느낌도 있다.
1980년대 말 우지 파동으로 인해 이미지가 나빠진 것이 40년 가까이 영향을 받았다고 오해하지만 라드의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우지파동과는 별개의 이유였다. 1980년대 중반, 당시의 비위생적인 라드 쇼트닝 제조과정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작업용 장갑과 포장용 폐비닐 등 이물질이 원료인 비계에 섞인 채 유통, 제조되는 과정이 밝혀져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보도 이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중국요리점들은 "저희 업소에서는 쇼트닝, 라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중국집의 라드 사용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위생 문제 이외에도 라드 사용으로 인한 하수구 배관 막힘 등의 문제가 있었기에 일부 노포를 제외하고는 라드는 콩기름 등의 식물성 식용유로 대체되었다. 나쁜 기름 인식을 받으나, 사실은 (특히 저질 팜유)쇼트닝이나 마가린 따위와 비교가 어려운 고급 식재료다.
버터의 비교적 저렴한 대체재로 요긴하게 쓰인다. 버터는 발연점이 낮은 편이라 뭔가를 볶거나 지지는 식의 요리를 할 때는 버터가 타기 십상이다. 단, 상온에서의 질감이 매우 묵직하고 버터에 비해 풍미가 밋밋하여 제빵에 쓰는 건 힘들다. 하지만 제과에는 큰 어려움 없이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이에 크러스트를 만들기 위해 라드를 쓰기도 하고, 중국 과자 월병도 라드를 써서 만든다. 라드의 대체재로 쇼트닝을 쓰기도 하는데, 문제는 쇼트닝은 몸에 나쁜 포화지방산 함량이 높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맛이 떨어진다. 라드는 김치와의 조합이 특히 뛰어나서, 김치 볶을 때 쓰면 다른 기름에 볶는 것보다 맛있어서 인기가 좋다. 고깃집에서 삼겹살 불판에 김치를 올리는 것도 라드와 다름없는 삼겹살 기름과 김치의 조화 때문이다.
돼지고기 조리 시 사용하면 고기의 맛을 더욱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의외로 깔끔한 맛이 나기 때문에 풍미로는 요즘 나오는 웬만한 식물성 식용유들보다 낫다. 한때는 동물성 지방이 건강에 나쁘다는 속설과, 돼지고기의 부산물이라는 특징상 생산 관리가 복잡한 문제 때문에 다소 기피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돼지고기 유통도 안전하게 되고 있고, 한식 요리에 잘 맞는 기름이기도 해서, 김치를 사용하는 요리나 삶은 고기와 섞어 쓰는 용도로 넣어도 된다.
돼지기름은 사람의 체온(36.5도) 정도에서는 액체로 존재하는 몇 안 되는 동물성 지방이기도 하다. 덕분에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실온 상태에서는 고체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 때문에 돼지기름으로 요리를 한 후 그릇을 설거지하면 돼지기름이 하수관에 달라붙어 결국 관이 막히는 원인이 된다.
알고 보면 이게 요즘 돼지 기름을 안 쓰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집들이 돼지 기름 대신 콩기름이나 옥수수유 같은 식물성 기름을 쓰는 이유로 가격 문제도 있지만, 사실 대용량은 큰 가격차가 나는 건 아니다. 결국 주 원인은 바로 하수관 막힘 탓이다. 거기다 배달음식에 돼지 기름을 쓰면 배달하면서 식으면 하얗게 굳기 때문에 돼지 기름을 쓰지 못한다. 이렇게 돼지 기름을 쓰지 않게 됨에 따라 중국집 음식 맛이 예전과 꽤 달라졌다. 이를테면 돼지 기름을 쓴 볶음밥과 식물성 기름을 쓴 볶음밥은 풍미가 많이 다르다. 비계를 갈아 넣고 만드는 유니짜장은 물론 기름으로 볶는 짬뽕, 간짜장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맛 차이가 나며, 튀김으로 가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하수구에서 기름 덩어리가 떡지는 것이 워낙 골치 아픈 탓에, 돼지기름을 다량으로 사용하는 일본 라멘 전문점은 기름을 따로 포집하는 전용 하수 설비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런 걸 모아다 정제하여 공업용 윤활유로 제조하는 업체도 있다. 기름으로 굳은 하수관을 청소하는 건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전용 장비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해서 그 비용이 상당히 비싸다. 고층 아파트에서 겨울철에 "돼지기름을 개수대에 버리지 말라"는 공지가 자주 붙는 건 막힌 데 찾아내고 뚫는 기술 용역 비용이 비싸고, 그게 관리비 증가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돼지기름이 식어 굳어버리면 설거지 하기에도 상당히 번거로운데, 돼지기름을 씻어내는 데에는 온수가 효과적이다. 인간의 체온 정도만으로도 돼지기름은 액체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손을 담갔을 때 조금 따뜻하게 여겨질 정도의 온수만으로도 녹아내린다. 온수와 주방세제를 함께 사용하면 쉽게 씻겨 내려간다. 그럼에도 녹은 돼지기름이 하수관에 들러붙을 수 있으니 설거지가 끝난 후에도 온수를 일정량 흘려 보내주면 어느 정도 방지는 할 수 있다. 아예 기름 상태라면 뜨거운 물로 설거지할 때에도 주방세제 원액을 섞어 휘저어 뿌옇게 만든 후에 흘러 보내야지, 그대로 씽크대 하수구에 부으면 뜨거운 물을 부어도 물이 식는 어딘가에서 결국 굳어서 막혀버린다.
일반 가정집에선 어차피 자주 돼지기름이 나오진 않기 때문에 어쩌다 삼겹살 등을 굽고 많은 돼지기름이 남아 있을 경우 싱크대 하수구에 버리지 말고 다시 기름을 포집해서 다른 요리를 할 때 사용하거나, 혹은 휴지가 어느 정도 차 있는 휴지통이나 쓰레기 봉투에 버리는 것이 환경 오염도 막고 휴지가 기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깔끔하게 처리가 가능하다. 단 뜨거운 상태의 기름을 바로 부을 경우, 비닐 봉투가 녹아 라드가 바닥에 흘러 어지럽히거나 살에 튀어 화상 입을 위험성이 있어서 어느 정도 식은 액체 상태일 때 버려야 한다. 간단한 방법으로 알루미늄 호일로 간이 그릇을 만든 다음 여기에 삼겹살 기름을 부으면 시간이 흐른 후 기름이 굳는데 이것을 알루미늄 호일째로 그냥 비닐랩에 감싸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방법이 있다. 프라이팬에 남은 기름도 키친타월로 닦아내고 설거지 하는 게 좋다.
생 비계는 보존성이 꽤나 나쁜 축에 속하기 때문에 냉동을 해서 신선하게 유통할 수밖에 없는데, 삼겹살 등으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지, 역설적으로 불포화 지방산의 산패를 방지해서 풍미와 건강 등 기름의 종합적인 질로 치자면 식용유 중에서는 가히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우지, 버터와 동등 또는 그 이상)
시중 가공식품 중에는 우지와 함께 돈지가 들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분말 크림스프, 인스턴트 고형/분말 카레에 들어가며 소시지, 햄버거 패티 같은 돼지고기 가공품에는 50%까지도 들어간다. 육즙이 터진다고들 하는 돈육 가공식품의 육즙의 많은 부분을 돈지가 맡고 있는데, 육즙 터진다는 중국식 찐만두 같으면 그 육즙 절반 이상이 돈지다.
구매팁
국내에서는 대부분 13~14kg짜리 통(한 말 들이 통)으로 유통한다. 중국집이나 치킨집에서 사용하는 사각 깡통식용유와 똑같은 통에 판매하며 보통 원재료명에 돈지라 써있다. 소량의 팜유 또는 우지(소기름)와 혼합된 형태가 대부분. 위와 같은 대용량 깡통라드는 콩기름 대용량과 비교해도 가성비가 나쁘지 않으나, 정작 가정에서 쓰기 좋게 700g짜리 유리병에 담아놓은 것을 파는 곳들은 있긴 하나 적기도 하고, 가격도 비싸다. 14kg 깡통에 비하면 가성비가 너무 안 좋아서 오히려 라드가 버터보다 비싼 괴현상이 나타난다. 덕용이 더 싸고 소분한 것이 가격이 더 높은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일반 식용유 계열의 덕용 vs 가정용을 비교해도 라드는 너무 차이가 큰 편인데 아무래도 가정용 소용량은 수요가 적어 바가지가 붙는 것.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외국에서도 10kg가 넘는 대용량 포장과 250g-500g 정도 되는 가정용 포장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초월적인 단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라드를 요리에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면 좀 귀찮아도 14kg 깡통라드와 소분 병들을 사는 것이 좋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1kg에 4~5천원 내외로 주문할 수도 있고 정육점에서 A지방이 있냐고 물어보면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보다 더 싸게 살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덤으로 그냥 주기도 한다.
단, 라드는 동물성 기름이다 보니, 개봉 이후엔 식물성 기름과 달리 상온에 오래 두면 맛이 더 쉽게 변하고 상할 수 있다. 단기간에 처리하면 상온도 큰 문제는 없지만 오래오래 상태 좋게 쓰기 위해선 최소한 냉장, 연단위의 초장기로는 냉동보관이 요구되기에 단순히 산다는 것 이외에도 보관공간 확보도 생각해야 한다. 대용량은 1L들이 병이라도 열개가 넘게 소분해야하므로 냉장고에 넣을 충분한 공간이 없다면 빼박 소용량을 살 수 밖에 없다. 소량으로 산다면 하다못해 2개 세트로 사는 게 좋다. 혹은 인터넷에 100g당 450원이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선에서 가공되지 않은 돼지비계를 판매하고 있으니 찾아 보는 것도 좋다. 또는 친지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공동구매를 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슬라브 요리에도 살로(Сало)라고 해서 돼지비계를 소금에 절인 음식이 있다. 절인 뒤 살짝 발효시켜서 먹는데,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한 매우 소중하고 유용한 음식이라고 한다. 보드카에 어울리는 최고의 술안주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게 러시아군에서는 전투식량에 포함되어 있다. 원조격인 우크라이나에서는 살로라고 부르고 러시아, 벨라루스 등에서는 살라라고 부른다.
빵에 발라 먹는 라드
유럽에서는 가공하여 버터처럼 포장하여 판매하는데, 버터처럼 빵에 발라 먹기도 한다. 보통 생 라드를 발라먹지는 않고, 비계를 녹여서 기름만 뽑아내어 정제한 라드에, 양파와 마늘같은 향신 채소와 베이컨 조각 따위를 섞어 하얗게 굳힌 가공 라드를 스프레드처럼 발라 먹거나, 녹인 것에 말린 빵조각을 찍어먹는다.
오히려 기름 맛 자체는 버터보다 깔끔하지만, 버터 특유의 고소하면서 달달한 풍미는 없어 버터 이상으로 느끼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기름맛이지만, 부드러운 빵을 주로 소비하는 동양과 달리 매우 딱딱하고 퍽퍽한 빵을 주로 소비하는 서양에서는 오히려 버터보다 나은 점도 많아 꽤나 인기가 많다. 기름맛이 꽤나 깔끔(?)한 덕분에 버터 대신 요리에 쓰기도 한다.
유럽식 원조 빵이 아니라 달달한 한국식 빵에도 맛있다고 잘 발라 먹는 한국인도 있는 것을 봐서 개인의 취향이다. 한국 사람들은 삼겹살로 돼지 기름 맛에 익숙하니 버터와는 좀 다른 다소 어색한 느낌만 넘어선다면 크게 불편할 건 없다.
가정에선 삼겹살에서 뽑은 라드를 많이 쓴다. 그게 적당히 많이 나오면서 풍미도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단 삼겹살이 인기 때문에 가장 비싼 부위라서, 가격대 성능 비로는 매우 좋지 않다. 삼겹살을 아주 바싹 굽는 쪽을 좋아하는 경우에 한해 구이를 하면서 부산물로 나오는 기름을 받아서 불순물을 가라앉히고 걸러 쓰는 정도로 하면 된다. 삼겹살 1 킬로그램을 구우면 적어도 그 1/4은 지방, 라드 무게라 바짝 구우면 기름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아예 빵과 베이컨을 함께 먹는 조합도 유명한 만큼, 의외로 딱히 특별할 것은 없는 맛이 난다. 김소희 셰프의 말로는 청양고추 좀 썰어서 넣으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맛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고추를 첨가한 스프레드용 라드도 있다.
유럽에선 기름이 잔뜩 나오면서 맛도 그럴싸한 삼겹살의 비계에서 추출해 가공한다. 유럽에선 삼겹살 부위는 주로 베이컨 가공 용 이나 라드 추출용으로 사용되는 부위였다. 전세계적으로 돼지고기는 국가마다 특정 부위만 소비되고 나머지는 잘 먹지 않던 탓에 국가간 남는 부위 서로 바꿔먹는 일이 가장 많은 종류의 육류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생산된 라드를 최대 소비처인 대한민국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한국의 저가의 백반집이나 고깃집에서 사용되는 네덜란드나 덴마크산 식재료는 삼겹살 밖에 없다.
해외 여러 지역 들에서는 돼지껍데기를 라드 혹은 기름에 튀긴 스낵도 있다. 영어로는 포크 라인드(Pork Rind), 혹은 Crackling이라고 불리며 스페인어권에선 치차론, 태국 에서는 캡무 등 으로 불린다. 과거에는 고지방, 고열량 이라는 특성 으로 인해 몸에 해로운 식품 으로 인식 되기도 했지만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으로 인해 지방에 대한 인식이 변화가 온 이후 부터는 오히려 (상대적) 건강 식품으로 그 평가가 전환 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군인 비상 전투식량 중에는 라드덩어리가 통째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적당히 빵에 발라먹든지 하는 용도. 버터 보다 저렴하면서 보존면에서도 그나마 더 유리하고, 기름 덩어리 답게 고열량이고, 기름이니 나름 먹는 재미도 있어 꽤 쓸만한 군량이다. 물론 기름은 산패되는 만큼, 염장하더라도 그리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괜히 옛날 유럽 군함들에서 조리장의 특권이 요리 후 남은 기름 일부를 차지할 권리였던 게 아니다. 주로 로프 등에 방수용으로 바를 것을 일부 남기고 나머지를 정박하는 항구에 팔아 부수입을 올렸는데, 간혹 수병들이 조리장이 선심 써서 준 것 혹은 몰래 빼돌린 것을 건빵 등을 튀겨 먹는 데 쓰기도 했다.
로마군도 전투식량으로 돼지기름을 지급받았다. 추울 땐 살이 트지 않게 바셀린처럼 몸에도 발랐다. 지금도 바셀린의 좀더 비싼 대용품으로 쓰인다. 바셀린 자체가 라드 같은 천연 기름 덩이를 대체하기 위해 석유로 만든 물건이다.
대한민국에서도 과거에 바셀린 용도로 쓰기도 했다. 동의보감에도 "겨울철 튼살에 돼지족발 등을 끓이고, 물에 뜬 기름을 식힌 후 기름이 굳으면 그걸 살에 바르면 좋다." 정도로 나와 있다. 예전에는 돼지기름이 다른 기름들보다 몸에 안 좋다는 편견이 있어서 사용을 꺼리기도 했었다.
옛날 말갈족들은 한겨울에도 하의만 입고 웃통은 다 벗고 다녔는데, 이 돼지기름을 수 cm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게 두껍게 발라 추위를 피했다고 한다.
소든 돼지든 버리는 부위 없이 다 뽑아 먹는 대한민국에서는 희한하게도 라드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간접적으로 돼지기름을 섭취하는 편인데, 전(한국 요리) 빈대떡, 삼겹살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특히 삼겹살을 구울 때 나오는 기름으로 김치나 마늘을 구워먹으면 상당히 맛이 좋다. 김치찌개를 할 때, 라드를 몇 숟갈 넣거나 라드를 충분히 넣고 김치를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면 좋다. 라드가 없다면 비계만 넣고 끓여도 맛이 훨씬 좋아진다. 녹두전의 경우 돼지기름으로 지져낸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서 음식점에서도 일부러 돼지기름으로 녹두전을 부쳤음을 선전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음식에 적극적으로 돼지기름을 사용해왔다. 특히 라멘의 경우는 당연하게 사용해온 식재료이며 유명한 라멘집으로 알려진 이치란라멘에서 출시한 인스턴드 버전 라면에는 이 기름이 별첨되어 있다. 기호에 맞게 넣지 않으면 너무 느끼해진다.
등심과 가까운 부위의 비계를 주로 이용하며 背脂(せあぶら, 세아부라)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유저육이라 해서 라드에 돼지고기와 비계를 넣어 저장하는 요리가 있다. 비계에 비계를 첨가하는 것이 좀 괴악해 보이나, 막상 요리 후에는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정육왕이 이 레시피를 한국식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유럽권에서도 오리 기름에 저온으로 요리한 통 오리를 기름 그대로 저장하는 콩피라는 조리법이 있다. 애초에 주사기 같은 걸로 직접 고기 안에 기름을 주입하지 않는 이상 치밀한 근육질인 살코기 안에 기름이 더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러한 조리법을 사용한다고 고기 맛이 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육즙이 기름에 막혀 빠져나오지 못하므로 요리의 수분 보존에는 이 쪽이 더 유리하다.
돼지 기름 추출하는 방법
재료: 두꺼운 냄비, 약간의 물, 돼지비계
비계에 고기가 붙어 있으면 기름의 산패가 빨라진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때 A지방을 달라고 하면, 고기에 덤으로 얹어주거나, 싼 값에 판매한다. A지방은 돼지의 등쪽에 있는 비계로 라드로 만들기에 적당한 비계만이 있는 부위이며, 다른 부위의 비계에 비해 질이 좋다. 껍질이 붙은 판 통삼겹을 살 경우에 껍질 바로 아래에 붙은 지방이다.
1. 두꺼운 냄비에 약간의 물을 깐다. 그냥 비계만 넣으면 일정량의 기름이 배어나오기 전까지는 삼겹살마냥 타 버린다.
2. 돼지비계를 넣고 약불에서 돼지비계를 녹여낸다. 이 때 비계를 5mm 정도로 얇게 썰어서 넣으면 빨리 추출되고, 남은 찌꺼기도 처리/이용하기 편하다.
3. 추출한 기름을 덜어 놓고 요리에 사용한다.
기름이 일정량 정도 나오면 이걸 덜어낸 다음에 계속 추출한다. 뜨거울 때 병에 7/8까지 넣고 밀봉한 다음 건냉한 곳에 보관한다. 장기간 보관을 위해 병조림 전용 찜기를 사용하거나, 냉동보관하기도 한다. 밀폐 유리병에 담아 냉장실에 넣고 깨끗한 숟가락으로 퍼내며 쓰면 반 년쯤은 문제 없다.
뽑아 낸 기름에 통후추, 로즈마리 같은 향신료를 넣어 가열해 향을 더하면 서양요리에 쓰기 좋은 라드가 되고, 통마늘이나 마른 고추를 넣으면 한국요리에 좋은 라드가 된다. 간단하게 하려면 라드 뽑아낼 때 용기에 향신료를 던져 넣으면 된다. 타면 안 되니 조심해야 한다.
추출이 끝나면 지방 덩어리에 붙어있었던 돼지 껍데기랑 미량의 고기는 튀긴 베이컨처럼 갈색으로 바삭바삭해진다. 훈연향이 없고 간이 안 되어 있을 뿐 베이컨 가루와 쓰임은 거의 같다. 절구에 빻거나 기계로 갈아서 샐러드에 뿌려 먹어도 되고 샌드위치 소스 위에 뿌려도 좋다. 크림스프에 넣어 먹어도 그렇듯하다. 김치찌개 끓일 때 넣어도 된다. 이를 이용한 그람멜이란 음식도 있다. 비계를 자체 기름으로 튀겨서 만든 음식. 물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야 먹을만 하므로 귀찮으면 그냥 먹지 않고 버려도 무방하다. 참고로 개한테 주면 잘 먹는데 기름이 많아 많이 먹이면 탈 나니 조금씩 줘야 한다.
비계가 타지 말라고 물을 넣지만, 물이 남아있는 동안은 기름이 잘 나오지 않는다. 라드가 있다면 라드를 약간 까는 게 훨씬 빠르다. 화력에 따라 라드 나오는 속도 차이가 크지만 강불에선 눈을 잠시만 떼면 순식간에 숯이 된다.
프라이팬으로 추출할 때 온갖 이유로 기름이 펑펑 터지니까 팬 뚜껑과 앞치마, 장갑은 필히 사용하는게 좋다.
간단하게 추출하는 방법
1. 내열용기에 돼지비계를 넣고 뚜껑을 닫는다.
2. 전자렌지로 약 10분간 가열시켜 기름에 지방이 뜰 정도로 빠지면 기름을 따라낸다.
3. 남은 비계를 5분 정도씩 더 가열해서 기름을 짜낸다.
에어프라이어로 160도 15분씩 돌려가면서 기름을 빼도 된다.
라드유·MSG·커피·백설탕
명예 회복 나선 '식품 빌런'들
라드유, 인공 조미료(MSG), 커피, 흰 설탕. 오랫동안 건강에 해롭다며 비난받아온 식품업계의 대표적 ‘빌런(악당)’들이다. 소비자들은 이 식품들을 외면하거나, 먹게 되더라도 불안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탄수화물 섭취는 최소화하고 지방은 많이 먹는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대세가 되고, 그간 금기시돼 온 식재료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이 깨지면서 이 네 가지 ‘식품 빌런’이 명예를 회복하고 있다.
'맛 비법’으로 명성 되찾은 라드유
“저희는 기름을 라드유로 쓰거든요. 돼지 지방을 녹여서 기름으로 만들어서 써요.” 지난해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연돈’ 김응서 사장이 “라드유가 돈가스 풍미를 높여준다”며 비법을 배우러 온 돈가스집 주인에게 한 말이다. 연돈은 골목식당을 통해 전국구 맛집으로 등극한 돈가스 전문점. 음식평론가 박정배씨는 “예전 같으면 실제 사용하더라도 숨겼을 것”이라며 “라드유를 포함한 동물성 기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뀌었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라드유는 돼지 지방을 녹여 정제한 식용유의 일종이다. 라드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식물성 기름은 좋고, 동물성 기름은 나쁘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 식물성 기름은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이 풍부한 반면, 동물성 기름은 각종 성인병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포화지방이 많다고 알려지면서다. 하지만 라드유는 100g당 포화지방이 39g인 반면, 불포화지방은 56g(단일불포화지방 45g, 다불포화지방 11g·미국 농무부 자료)으로 오히려 더 많다.
게다가 포화지방보다 트랜스지방이 더 해로우며, 트랜스지방은 식물성 기름에 수소를 첨가해 생산하는 마가린이나 쇼트닝에 다량 함유됐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라드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100g당 하루 권장량의 4배가 넘는 비타민D를 함유한 건강한 기름으로까지 소개되고 있다. 식재료 전문가인 간편식 유통·개발업체 ‘요리반상회’ 김왕민 연구소장은 “유명 맛집 요리사들의 맛 비법이란 이야기가 퍼지면서, 라드유가 서서히 옛 영화를 되찾고 있다”며 “10여 년 전보다 외식업계에서 사용량이 3~4배 증가한 듯하다”고 했다.
MZ가 열광하는 MSG 라면·팝콘
국내에서 MSG(Monosodium Glutamate·글루탐산나트륨) 유해 논란은 1990년대 초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한 식품업체가 첨가물업계에 진출하면서 차별화 전략으로 ‘무첨가 마케팅’을 하면서 MSG를 ‘화학조미료’라고 공격했다. 2012년부터 방영된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마치 MSG를 사용하면 ‘나쁜 식당’, 사용하지 않으면 ‘착한 식당’이란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유해 논란은 더 커졌다.
위기는 의심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매체에서 검증에 나서면서 MSG에 대한 오해가 풀리기 시작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2010년 MSG는 평생 섭취해도 안전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최근에는 MSG의 긍정적 기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2017년 국제아미노산과학연구회는 MSG가 헬리코박터파일로리균 감염에 의한 위 손상으로부터 위 점막을 보호해 위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발표했다.
소비자 인식도 변하고 있다. 대상그룹은 2020년 ‘미원맛소금팝콘’을 출시해 한 달 만에 30만개 이상 팔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선보인 ‘미원라면’은 한 달여 만에 판매량 50만개를 돌파했다. “MSG가 건강에 유해하다는 건 대표적 불량 지식이자 오해”라고 알려온 식품공학자 최낙언씨는 “MSG를 당당히 내세웠음에도 시비는커녕 인기인 걸 보면 세상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라고 했다.
커피·백설탕, 해롭지 않다
커피는 신경을 흥분시키는 카페인을 다량 함유해 하루 1잔만 마시거나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연구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가 밝혀졌다. 하루 3~5잔 정도 커피는 건강에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이란 것. 일본 규슈대 의대 연구팀은 커피의 폴리페놀 성분들이 간암 예방과 함께 간 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커피의 폴리페놀은 홍차나 녹차, 포도주보다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까지 많다. 당뇨병 개선, 노화 방지, 치매 예방 등 순기능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흰 설탕은 여러 설탕 중에서 가장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심지어 표백 처리를 한다는 오해도 있다. 사탕수수를 분쇄하고 압축하면 나오는 액즙을 탄산으로 처리·여과해 농축하면 원당(原糖)이라는 결정이 탄생한다. 이 원당을 녹여 각종 착색 물질과 불순물을 제거하면 순수한 백설탕이 된다. 갈색 흑설탕은 사탕수수를 설탕으로 정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시럽인 당밀, 캐러멜 등을 백설탕에 첨가해 색을 입힌 제품으로 영양 성분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돼지기름, 사실 몸에 좋다
돼지에 대해 편견을 가졌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전 세계인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명제가 있다. 바로 ‘돼지기름은 맛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들이 삼겹살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이자, 동시에 돼지기름인 ‘라드’가 중화요리사와 제빵사에게 있어 환상적인 재료인 이유다.
실제로 돼지기름은 사람의 체온(36.5도) 정도에서는 액체로 존재하는 희소성 있는 동물성 지방이기도 하다. 덕분에 요리가 다소 식은 후에도, 입 안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는다. 덕분에 중국요리에 라드를 쓰면 그야말로 입에서 녹는 듯하다. 제빵에서도 버터 대신 라드를 쓰면,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중후함과 눅진한 맛이 소비자들의 혀를 잡아끈다.
서양에서는 심지어 돼지비계를 버터처럼 빵에 발라먹기도 한다. 생각보다 한국인들 입맛에도 맞는다고 하니, 용감한 한국인들은 시도해봐도 좋을듯 하다.
좌우지간, 세상 만사 모두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맛있는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원칙이다. 하지만 돼지기름의 유해성은 생각보다 더욱 과장된 면이 크다.
물론 돼지기름의 칼로리와 콜레스테롤 함량은 여타 고기들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아라키돈산, 리놀산과 같은 특수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정상적으로 섭취할 경우 우리 몸에 콜레스테롤이 몸에 쌓이지 않고 배출된다.
아울러 돼지기름에는 비타민 D역시 풍부해, 1인분 요리에 들어갈 분량인 20g이면 하루 권장량의 5배에 달하는 비타민 D를 섭취할 수 있다.
또한 돼지 비계는 쉽게 상한다. 따라서 시장에 유통되는 돼지비계는 매우 관리가 잘 되는 편인데, 그 덕분에 불포화지방산이 산패되지 않은, 매우 신선하고 깨끗한 기름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돼지기름은 때로 약으로 쓰일 정도다. 세계 문화유산인 한국의 <동의보감>에서도 ’돼지족발 등을 끓여 식힌 기름을 바르면 추위에 갈라진 피부에 좋다’고 언급되어 있다.
고대 로마군도 돼지기름을 보급받아 비슷한 용도로 사용했다. 이는 동시에 식량이기도 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바셀린도 라드의 저렴한 대체품으로서 등장한 것으로, 지금도 바셀린의 상위호환 제품으로 대용품으로 쓰인다.
육류 기름에 대한 오해
반면, 돼지기름을 위시한 육류 기름(비계)이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 그리고 관련 연구는 미국 설탕협회(Sugar Association)등의 설탕 관련 기관들의 로비와 후원으로 진행된 것이다. 미국 내과학회지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은, 이런 연구들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육류 기름(포화지방)의 위험을 과장해, 설탕의 위험함을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다시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재조명되고있는 MSG(인공 조미료), 사카린(인공 감미료)이 받던 과거의 오해들 역시 설탕협회의 작품이다.
또한 돼지 하면 연상되는 매우 뚱뚱하고, 더럽고, 멍청한 이미지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이 같은 인식은 수익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매우 비인간적인 축산 환경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돼지는 지능지수(IQ)가 70 수준이며, 화장실 역시 따로 구분할 정도로 깔끔하다. 또한 일반적인 체지방률은 15% 수준으로, 보통 성인 남성 10%~20%, 여성 20%~30%의 체지방률을 보인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보다 훨씬 날씬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았던 돼지껍데기 튀김도 같은 맥락이다. 포크 라인드(Pork Rind), 혹은 Crackling이라고 불리는 이 식품은, 저탄고지 다이어트의 대표적인 식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오늘날 돼지기름이 식용으로 그렇게 널리 쓰이지 않는 이유가 확실히 있긴 하다. 돼지기름은 실온 상태에서 고체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 때문에 돼지기름이 싱크대 하수구로 들어가면 막히기 일쑤다. 게다가 돼지기름의 가격 역시 저렴한 편은 아니였고, 결정타로 여기에 ‘돼지기름은 건강에 나쁘다’라는 인식까지 생겨나며 돼지기름은 식용 기름의 자리에서 점점 밀려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