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일기(東溟日記)
연안 김씨
행여 일출(日出)을 못 볼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여, 새도록 자지 못하고, 가끔 영재를 불러 사공다려 물으라 하니,
“내일은 일출을 쾌히 보시리라 한다.”
하되, 마음에 미쁘지 아니하여 초조하더니, 먼 데 닭이 울며 연(連)하여 자초니, 기생과 비복(婢僕)을 혼동하여 어서 일어나라 하니, 밖에 급창(及唱)이 와,
“관청 감관(官廳監官)이 다 아직 너모 일찍 하니 못 떠나시리라 한다.”
하되 곧이 듣고, 발발이 재촉하여, 떡국을 쑤었으되 아니 먹고, 바삐 귀경대(龜景臺)에 오르니 달빛이 사면에 조요(照耀)하니, 바다이 어제 밤도곤 희기 더하고, 광풍이 대작(大作)하여 사람의 뼈를 사못고, 물결치는 소래 산악이 움직이며, 별빛이 말곳말곳하여 동편에 차례로 있어 새기는 멀었고, 자는 아해를 급히 깨와 왔기 치워 날치며 기생과 비복이 다 이를 두드려 떠니, 사군(使君)이 소래하여 혼동 왈,
“상(常)없이 일찌기 와 아해와 실내(室內) 다 큰 병이 나게 하였다.”
하고 소래하여 걱정하니, 내 마음이 불안하여 한 소래를 못 하고, 감히 치워하는 눈치를 못하고 죽은 듯이 앉았으되, 날이 샐 가망이 없으니 연하여 영재를 불러,
“동이 트느냐?”
물으니, 아직 멀기도 연하여 대답하고, 물 치는 소래 천지 진동하여 한풍(寒風) 끼치기 더욱 심하고, 좌우 시인(左右侍人)이 고개를 기울여 입을 가슴에 박고 치워하더니, 마이 이윽한 후, 동편의 성쉬(星宿ㅣ) 드물며, 월색(月色)이 차차 열워지며 홍색(紅色)이 분명하니, 소래하여 시원함을 부르고 가마 밖에 나서니, 좌우 비복(左右婢僕)과 기생들이 옹위(擁衛)하여 보기를 죄더니,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만경창패(萬頃蒼波ㅣ) 일시에 붉어 하늘에 자옥하고, 노하는 물결 소래 더욱 장하며, 홍전(紅氈) 같은 물빛이 황홀하여 수색(水色)이 조요(照耀)하니, 차마 끔찍하더라.
붉은 빛이 더욱 붉으니, 마조 선 사람의 낯과 옷이 다 붉더라. 물이 굽이져 치치니 밤에 물 치는 굽이는 옥같이 희더니, 즉금(卽今) 물굽이는 붉기 홍옥(紅玉) 같하야 하늘에 닿았으니, 장관을 이를 것이 없더라.
붉은 기운이 퍼져 하늘과 물이 다 조요(照耀)하되 해 아니 나니, 기생들이 손을 두드려 소래하여 애달와 가로되,
“이제는 햬 다 돋아 저 속에 들었으니, 저 붉은 기운이 다 푸르러 구름이 되리라.”
혼공하니, 낙막(落寞)하여 그저 돌아가려 하니, 사군과 숙씨(叔氏)셔,
“그렇지 아냐, 이제 보리라.”
하시되, 이랑이, 차섬이 냉소(冷笑)하여 이르되,
“소인(小人) 등이 이번뿐 아냐, 자로 보았사오니, 어찌 모르리이까. 마누하님. 큰 병환 나실 것이니, 어서 가압사이다.”
하거늘, 가마 속에 들어앉으니, 봉의 어미 악써 가로되,
“하인들이 다 하되, 이제 해 일으려 하는데 어찌 가시리요. 기생 아해들은 철모르고 즈레 이렁 구는다.”
이랑이 박장(拍掌) 왈,
“그것들은 바히 모르고 한 말이니 곧이듣지 말라.”
하거늘, 돌아 사공(沙工) 다려 물으라 하니,
“사공셔 오늘 일출이 유명하리한다.”
하거늘, 내 도로 나서니, 차섬이, 보배는 내 가마에 드는 상보고 몬저 가고, 계집 종 셋이 몬저 갔더라.
홍색(紅色)이 거록하여 붉은 기운이 하늘을 뛰노더니, 이랑이 소래를 높이 하여 나를 불러,
“저기 물 밑을 보라.”
외거늘,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앗고 큰 실오리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우흐로 적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 호박(琥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도곤 더 곱더라.
그 붉은 우흐로 훌훌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白紙) 반 장 넓이만치 반듯이 비치며,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 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赤色)이 온 바다에 끼치며, 몬저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 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황홀(恍惚)히 번득여 양목(兩目)이 어즐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하여 첫 홍색을 헤앗고, 천중(天中)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렛바퀴 같하야 물 속으로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붙으며, 항,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 혀처로 드리워 물 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으더라. 일색(日色)이 조요(照耀)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일광(日光)이 청랑(淸朗)하니, 만고천하(萬古天下)에 그런 장관은 대두(對頭)할 데 없을 듯하더라.
짐작에 처음 백지 반 장만치 붉은 기운은 그 속에서 해 장차 나려고 우리어 그리 붉고, 그 회오리밤 같은 것은 진짓 일색을 빠혀 내니 우리온 기운이 차차 가새며, 독 같고 항 같은 것은 일색이 모딜이 고온고로 보는 사람의 안력(眼力)이 황홀(恍惚)하여, 도모지 헛기운인 듯싶은지라.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
어휘풀이
* 조요하니-환하게 비치어 빛나니 * 밤도곤-밤보다 * 사뭇고-사무치고 * 말곳말곳하여-말똥말똥하여 * 상(常)없이-분별없이 * 실내-남의 아내를 일컫는 말, 여기서는 자기 아내(작자)를 간접적으로 지칭한 말 * 끼치기-밀려 들기 * 좌우시인-주위에 모시고 시중 드는 사람 * 마이-매우 * 성쉬-별이 * 진홍대단-짙붉은 비단 * 필(疋)-일정한 길이로 피륙을 하나치로 셀 때 쓰는 단위 * 홍전-붉은 색깔의 모직물 * 끔찍하더라-놀랍고 대단하더라 * 낙막하여-마음이 쓸쓸하여 * 숙씨-시아주버니, 남편의 형제 * 이렁-이렇게 * 드는 상-드는 모양 * 거룩하여-매우 아름다워 * 통랑하기는-환하게 트이어 밝기는, 투명하기는 * 가새여-흔적이 차차 없어지며 * 소혀처로-소의 혀처럼 * 대두-맞대어 견줌 * 우리어-내비치어 * 진짓-진짜의, 참된 * 빠혀-빼어, 뽑아 * 모딜이-몹시
핵심정리
* 지은이: 의유당 김씨
* 갈래: 고대수필, 기행문
* 문체: 묘사, 서사, 대화를 이용한 구체적, 묘사적, 사실적 문체이며, 고대 산문에서 흔히 보이는 운문체가 아닌 산문체
* 성격: 묘사적, 사실적, 주관적
* 주제: 귀경대에서 본 일출의 장관
* 출전: 의유당 관북유람 일기
* 표현상의 특징
-여성적인 섬세한 필치가 돋보임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써서 사실적인 묘사를 함
-사실적인 묘사에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여 한글 산문의 모범이 됨
-양반집 부인의 품위와 꼼꼼함을 보여 주는 문체.
해설 1
이 글은 순조 32년에 발표한 내간체 기행 수필로서, 필자의 문집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에 전하는 것이다.
작자가 기축년(1829년 순조 29년?) 8월에 남편에게 여러 차례 부탁하였다가 겨우 신묘년(1831년)에야 허락을 받아 해돋이 구경을 갔으나, 구름이 끼어 구경을 못 하고 돌아오면서, 악사들의 풍류와 기생들의 춤을 즐기다 돌아왔었다. 그러나 동해의 일출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워 다시 남편을 졸라 이듬해(1832년)에 날을 받아 일출의 장관을 구경하고, 조선 태조의 고적지도 샅샅이 구경하여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이 때의 일출 감회를 기록한 글이다.
“9월 17일에 가서 18일에 돌아와 22일에 기록하노라.” 하고 이 글을 맺었는데, 이렇게 말미에 정확하게 일시를 기록한 것은 기행문의 격식을 갖춘 것이라 하겠다.
해설 2
이 작품은 조선 영조 때 의유당 김씨가 함흥 판관으로 부임해 가는 남편을 따라가 그 곳의 명승 고적들을 살피고 느낀 바를 적은 순 한글 기행 수필로, 귀경대의 일출을 구경하기까지의 여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데, 전반부의 일출의 장관에 대하 호기심과 기대, 일출을 기다리는 과정이, 후반부에서는 해돋이 광경을 여성 특유의 세심한 관찰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치밀한 필치가 드러나 있다. 이렇듯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그것을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동명 일기'는 기록 문학이 어떻게 문학성을 띠는 가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우리 국어 구사력의 뛰어남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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