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돈
신생대 에오세 후기에 지금은 인도-유라시아판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사라진 원시 바다인 테티스해에 서식했던 초기 고래의 일종. 속명은 그리스어로 창을 뜻하는 '도리(δόρυ, dóry)와 이빨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 '오돈(ὀδών, odṓn)'을 합쳐 만든 '창 이빨'이라는 뜻으로, 이 생물의 뾰족한 이빨 모양에 착안해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W. 깁스(Robert W. Gibbes)가 1845년 도루돈이라는 이름으로 이 녀석의 존재를 학계에 처음 선보일 당시 모식종으로 동정된 세라투스종(D. serratus)의 모식표본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할리빌층(Harleyville Formation)에서 발견된 상악골 일부 및 이빨 화석 몇 점으로만 이루어져있었다. 다만 그는 이빨 형태에서 당시 제우글로돈(Zeuglodon)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곤 했던 바실로사우루스의 것과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하였으며, 이후 모식표본이 확보된 장소를 다시 찾아 추가 발굴 작업을 진행한 결과 하악골과 미추골 몇 점을 발견한 뒤에는 이 녀석이 독자적인 속이 아니라 바실로사우루스의 어린 개체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존에 부여한 학명을 철회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848년에 고생물학자 장 루이 R. 애거시즈(Jean Louis R. Agassiz)의 분석 결과 다시금 바실로사우루스와는 구분되는 별개의 속으로 분류되긴 했지만, 이후로도 도루돈속은 여러 차례 바실로사우루스속의 동물이명으로 통합되었다가 복권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모식종 또한 이 와중에 바실로사우루스속의 세라투스종(B. serratus)으로 재명명되거나 아예 브라키스폰딜룸종(B. brachyspondylum) 같은 다른 종의 동물이명으로 흡수되는 등의 부침을 겪었는데, 여기에는 지금까지 축적된 모식종의 화석 자료가 상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애시당초 화석 표본이 발굴된 사례 자체가 적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중 미추골이나 두개골 일부 등은 아예 소실되어버렸고, 현재 확인된 골격 부위에서 나타나는 해부학적 형질만으로는 바실로사우루스나 지고리자(Zygorhiza)처럼 비슷한 시기에 공존한 여타 원시 고래들과 구별지을만한 뚜렷한 특징을 뽑아내기가 어렵다고 평가되기 때문.
이처럼 모식종이 사실상 모식종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현 시점에서 알려진 도루돈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이집트의 비르켓카룬층(Birket Qarun Formation)에서 발굴된 아성체 화석 표본을 토대로 명명된 아트록스종(D. atrox)에 관한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1906년 학계에 최초로 소개될 당시에는 프로제우글로돈(Prozeuglodo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이후 한동안은 같은 지층에서 발굴된 바실로사우루스속의 이시스종(B. isis)의 어린 개체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시스종에서 떨어져나와 지금처럼 모식종과 함께 도루돈속의 유이한 구성원으로 재동정된 것은 1990년대 초엽의 일로 아트록스종의 새끼 화석 표본 같은 자료가 지속적으로 추가된데 따른 것이며, 여기에 한때 별개의 종으로 여겨졌던 스트로메리종(D. stromeri) 등을 흡수하면서 현재는 전신골격 거의 대부분이 파악 가능할 정도가 되어 원시고래아목에 속한 여러 고생물 중에서도 골격 보존률이 매우 양호한 경우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과거 많은 고생물학자들이 이 녀석을 바실로사우루스의 일종 또는 어린 개체라고 여겼던 것이 나름 이유가 있었다 싶을 정도로 바실로사우루스와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되는데, 당장 두개골부터 살펴보면 현생 고래류에 비해 윗턱뼈가 압축된 정도가 덜한 편이고 코뼈도 비교적 주둥이 가까이 붙어있어서 멜론 기관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었으리라 추정된다는 점과 위쪽을 향해 나 있는 콧구멍의 존재가 확인된다는 점이 비슷하다. 또한 주둥이에 돋아난 40여 개의 이빨도 전상악골과 전하악골에 나있는 이빨들의 경우 뾰족한 원뿔형인 반면, 그 뒤에 늘어선 삼각형 이빨들은 가장자리에 뾰족뾰족한 치상돌기가 돋아나 날카로운 형태였다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이 외에도 현생 물개 같은 기각류와 마찬가지로 팔꿈치 관절의 존재가 확인되는 앞다리를 가졌고, 뒷다리가 단순히 크기만 작아진 것이 아니라 아예 골반뼈가 척추와 연결되어있지 않아서 움직임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었으리라 추정된다는 것도 바실로사우루스와 닮아있는 부분이다.
사지보다는 주로 꼬리의 상하 운동에 의해 발생한 추진력을 이용해 헤엄쳤을 것으로 보이는 이 녀석의 수영 속도를 학자들이 분석해봤더니 대충 시속 40km 정도 되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 이를 이 녀석의 이빨 형태와 몸집 등의 정보와 함께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주로 작은 물고기나 두족류, 조개 같은 연체동물을 먹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성체의 몸길이 추정치가 5m에 몸무게 추정치는 1~2.2톤 정도로 비교적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갓 태어난 새끼나 아성체의 경우 당시 바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바실로사우루스나 거대한 상어인 카르카로클레스속(Carcharocles)의 소콜로비종(C. sokolovi) 등에게는 좋은 먹잇감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느 새끼 도루돈의 두개골 화석 표본에서 바실로사우루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빨 자국이 남아있는 상태로 발견된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었을 정도.
바실로사우루스
신생대 에오세 후기에 지금은 인도-유라시아판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사라진 원시 바다인 테티스해(Tethys Sea)에 서식했던 초기 고래의 일종. 속명은 '군주 도마뱀'이라는 뜻인데, 엄연히 포유류인 이 녀석에게 파충류에게나 어울릴 법한 이런 이름이 붙여진 원인은 아래 내용을 참조할 것. 이름에 '사우루스(saurus)'가 들어가는 단궁류(포유류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단궁류) 중에서는 가장 나중에 생겨난 동물이기도 하다.
가장자리에 여러 개의 치상돌기가 돋아나있어 날카로운 형태를 하고 있는 어금니를 가졌고 뒷다리뼈와 엉치척추뼈 등이 극단적으로 퇴화되거나 아예 없어졌다는 점 같은 몇몇 해부학적 형질을 공유하는 여러 원시 고래류를 아우르는 분류군인 바실로사우루스과(Basilosauridae)의 대표격으로, 계통분류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현생 고래류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나온 친척뻘이긴 하지만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화석 표본 갯수가 50건을 넘길 정도로 꽤 많은 화석 자료가 확보되었고, 발굴지 또한 미국의 미시시피 주와 앨라배마 주를 비롯해 아칸소 주, 루이지애나 주 같은 북아메리카 일대는 물론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서사하라, 서아시아의 요르단 등 다양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건대 당시 생태계에서 꽤나 번성한 녀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과 같은 속명을 정식으로 부여받은 것은 1834년 고생물학자이자 의사 리처드 할란(Richard Harlan, 1796 ~ 1843)에 의해서였는데, 그는 척추뼈에서 플레시오사우루스의 것과 유사한 부분이 여럿 확인된다는 이유로 이 녀석의 정체가 중생대에 살았던 해양 파충류의 일종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크기로 미루어보건대 당시 잘 알려져있던 메갈로사우루스나 이구아노돈 등의 거대한 중생대 공룡들조차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인 30m가량의 몸길이를 자랑하는 녀석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으며, 그리스어로 한 무리의 수장이나 왕 또는 황제를 뜻하는 단어인 '바실레우스(βᾰσῐλεύς, basileús)'를 활용해 바실로사우루스라는 속명을 지어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오언(Richard Owen, 1804 ~ 1892)은 할란이 조개의 일종으로 여겼던 화석이 사실 이 녀석의 이빨임을 밝혀내고, 뿌리 부분이 두 갈래로 갈라진 형태로 보건대 이 녀석의 정체는 파충류가 아니라 포유류라고 주장하였다. 오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녀석의 이빨 생김새에서 착안해 그리스어로 굴레나 멍에 따위를 지칭하는 '제우글레(ζεύγλη, zeuglē)'와 이빨을 뜻하는 '오돈(ὀδών, odṓn)'을 합쳐 '멍에를 진 이빨'이라는 뜻의 제우글로돈(Zeuglodon)이라는 속명과 '고래를 닮음'이라는 뜻의 케토이데스(cetoides)라는 종명으로 이루어진 "제우글로돈 케토이데스(Z. cetoides)"라는 학명을 제안하였다. 바실로사우루스라는 속명을 처음 제안한 할란 또한 이 견해에 동의하면서 이 녀석의 속명은 별 문제 없이 변경되는 듯 했으나,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먼저 명명된 학명이 우선권을 갖는다는 원칙 때문에 현재 제우글로돈은 바실로사우루스의 동물이명으로 쓰이고 있다.
머리부터 꼬리지느러미까지의 길이는 대략 모식종이 17~20m, 아이시스종이 15~18m 가량으로, 몸길이만 따질 경우 현생 이빨고래류 중 가장 거대한 향유고래 수컷과도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몸무게는 최대 57t 가까이 나가는 향유고래에 비하면 훨씬 가벼웠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총 70개가량 되는 이 녀석의 척추뼈를 살펴보면 경추골을 제외한 나머지가 현생 고래들의 것보다 훨씬 길쭉하고 가느다란 형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생 고래류의 척추뼈가 속이 꽉 찬 구조였던 것과는 달리 이 녀석의 척추뼈에서는 살아있었을 당시 다량의 골수가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빈 공간이 발견되는데, 해당 공간이 뼈 무게를 낮춰주는 동시에 힘을 과하게 쓰지 않고도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걱정 없이 적절한 수심에서 헤엄칠 수 있을 정도의 부력을 제공했으리라 추정된다는 점도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해준다.
이에 따라 이 녀석은 현생 고래류보다 훨씬 날씬한 체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이 녀석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한동안은 고래라기보다는 오히려 과거 모사사우루스과 해양 파충류를 묘사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곰치나 바다뱀처럼 길게 뻗은 몸을 구불거리며 헤엄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마치 장어처럼 가늘고 긴 몸매를 갖고 있긴 했지만 유연성까지 비슷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녀석의 흉추골을 비롯해 요추골과 천추골, 미추골의 길이가 서로 엇비슷한 수준인 데다 고래류 특유의 가로로 뻗은 꼬리지느러미를 감안하면 몸체의 가동 범위가 좌우보다는 상하 방향이 더 넓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속이 비어있는 척추뼈 구조가 깊은 수심에서 활동하기에는 영 적합하지 않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 녀석은 아마 주로 수면 근처나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위아래로 물결치듯 헤엄치면서 활동했을 것이다.
넓적한 지느러미 형태를 이루고 있었을 앞다리는 물개 등의 현존하는 기각류와 마찬가지로 팔꿈치 관절의 존재가 확인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며, 상완골 길이가 50cm 정도로 견갑골보다도 더 컸다. 이는 동시대 또는 이전 시기에 등장한 원시 고래들의 앞다리에 비하면 분명 큰 것이긴 하지만, 이 녀석의 거구를 감안하면 물 속에서 헤엄칠 때 그리 긴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뒷다리는 앞다리보다 크기도 더 작고 발가락 갯수도 3개로 줄어드는 등 극단적으로 퇴화한 데다 엉치뼈와 결합되지도 않아서 운동 능력이 극히 제한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마 헤엄치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짝짓기를 할 때 서로의 몸을 밀착시킨 채로 붙잡아두는 등의 부수적 기능 정도만 담당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길이가 최소 1m 이상 되는 두개골을 살펴보면 이 두개골 구조 비교도에서 볼 수 있듯이 현생 고래류보다 전상악골과 상악골이 훨씬 덜 압축되었고 코뼈가 비교적 주둥이 쪽에 가깝게 붙어있다는 차이가 확인된다. 특히 콧구멍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이로 미루어보건대 이마 또는 정수리 근처에 자리잡은 분수공의 근육을 이용해 호흡하는 현생 고래류와는 콧구멍의 위치나 갯수는 물론 호흡 방식도 상이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또한 멜론 기관이 자리잡기에 충분할 정도의 공간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마침 이 녀석의 뇌 또한 현생 고래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었음을 고려하면 아마 현생 고래들과 비슷하게 무리를 짓는 등의 사회적인 생활방식을 영유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둥이에는 40개가 넘는 이빨이 돋아나 있었는데, 앞부분에 돋아난 이빨이 먹잇감을 놓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데 적합한 원뿔형인 반면 뒷부분의 경우 가장자리에 뾰족뾰족한 치상돌기가 돋아난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이어서 살점을 자르거나 뜯어내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2015년에는 이시스종의 두개골 화석을 토대로 CT 스캔을 비롯한 여러 실험을 진행했더니 1.6~2t의 힘으로 물 수 있었으리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거대한 덩치와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강력한 치악력으로 무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릴처럼 작은 플랑크톤 따위를 주식으로 삼는 수염고래류보다는 이빨고래류, 그중에서도 특히 현생 범고래와 매우 유사한 식성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동시대에 공존했던 대형 상어인 카르카로클레스속(Carcharocles)의 소콜로비종(C. sokolovi) 등과 함께 에오세 후기 해양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을 듯. 실제로 성체의 몸길이가 5m 남짓한 소형 원시 고래류인 도루돈의 아성체 화석 표본 중 두개골에서 이 녀석의 치흔이 확인된 사례가 있는데다, 뱃속에 상어를 비롯한 여러 물고기와 도루돈의 골격 따위가 미처 다 소화되지 못한 채로 화석화된 경우도 있었다.
상당한 몸길이와 뱀처럼 길게 뻗은 체형 때문인지 이 녀석이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여러 바다괴물의 정체 또는 모티브가 아닌가 추정되기도 하는데, 심지어 1845년에는 알베르트 코흐(Albert Koch)라는 사람이 바실로사우루스 여러 개체의 화석에 그 외 여러 동물의 골격을 짜깁기해서 몸길이가 40m에 육박하는 거대한 생물의 표본을 만들어낸 뒤 "히드라르코스 하를라니(H. harlani)"라고 학명까지 붙여주는 일도 있었다. 지금도 신비동물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챔프나 캐디 따위의 바다나 호수에서 목격되는 여러 크립티드의 정체가 이 녀석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 부터 무려 3300만 년 전인 에오세 후기 무렵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뒤 후세대의 지층에서 화석 자료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만큼 신빙성이 없다.
물론 화석을 보고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당장 용골문서나 그리폰문서를 보면 공룡 화석이 고대인들에게 크나큰 인상을 주었기에 바실로사우루스도 꼭 예외일 이유는 없다. 바실로사우루스의 이미지를 차용한것으로 추정되는 환상종은 이집트의 고대민담중 하나인 "조난당한 선원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이름불명의 아름다운 섬에 살고있는 날개달린 거대한 뱀이 있다. 바실로사우루스말고도 원시 이빨고래들이 길쭉한 체형을 하고있어 고대인들에 의해 거대한 뱀의 화석으로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