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누린내
고기는 맛있는 식재료로 손꼽히지만 의외로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가며 제대로 손질하지 않으면 차마 못 먹을 물건이 되어버리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이유가 바로 냄새 때문. 육류에서 나는 냄새는 흔히 누린내라고 불리며, 육류를 먹을 때 식욕을 빼앗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누린내는 일반적으로 후각에만 영향을 미치며 맛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기 때문에 참고 먹으면 못 먹을 일도 없지만, 정도가 심할 경우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굉장한 고역이 된다. 게다가 안 그래도 고가에 속하는 고기를 식사로서 먹을 때에는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즐기기 위해 먹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여기에 좋은 냄새가 아닌 지독한 누린내를 참고 먹어야 한다면 보통 고역이 아닐 수가 없다.
누린내는 특정 물질 하나만으로 나는 것이 아니며 여러 물질이 종합적으로 관여한다. 참고로 이 물질들 중에는 똥냄새의 주요 성분인 스카톨도 있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싫어하지만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심한 사람은 곱창, 대창, 막창, 돼지국밥, 순대국밥, 양고기, 닭곰탕[5] 등을 아예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당 근처를 지나가는 것조차 고역이다. 누린내 잘 잡는다는 평을 받는 식당이라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반면 '누린내가 있어야 고기를 먹는 느낌이 난다', '누린내가 고소하다' 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누린내가 뭔지 모를 만큼 둔감한 사람도 있다.
누린내를 없애는 방법은 다양한데, 맛술, 청주같이 휘발성이 강한 재료와 같이 끓여 날려버리거나 후추, 허브 같은 향신료로 누린내를 없애거나 덮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값싸면서 간편한 방법으로 과일주스에 재우거나 끓이는 것이 있다. 아예 도축 단계에서부터 피를 빼는 과정을 철저하게 하여 피비린내로 인한 누린내를 상당히 줄이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런 시도를 하는 게 할랄 푸드나 코셔 푸드 인증을 위해 도축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슬람교나 유대교가 아님에도 해당 방식으로 도축된 고기의 육질이 부드럽고 누린내가 적다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누린내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 → 쇠고기 → 닭고기 순으로 강렬하며, 3대 육류 이외에 누린내로 유명한 고기로는 염소고기와 양고기가 꼽힌다. 이 외에 곰고기와 개고기 등과 같은 육식동물의 고기 또한 누린내가 심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누린내가 심한 고기일수록 요리할 때 이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해진다. 국내 한정이지만, 노루, 고라니처럼 심한 누린내 때문에 먹지를 못해 번성하는 동물도 있다.
누린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든 누린내를 없애거나, 그냥 누린내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 물론 말이 쉽지, 누린내에 익숙한 사람은 매우 소수로 대부분은 코를 아예 막고 먹지 않는 이상 견디기 어렵다. 누린내를 없애는 방법으로는 요리 전에 많은 수고를 들여 어떻게든 누린내를 없애거나 비교적 냄새가 덜한 어린 개체를 도축하여 냄새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 있으며, 양고기가 대표적으로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또한 양고기를 많이 먹는 이슬람의 경우 고기에서 냄새를 빼기 위해 피를 모두 제거하는 등 많은 노력을 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냄새가 덜한 양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구권에서 이슬람을 상징하는 냄새로 양고기 냄새를 꼽는 걸 보면 역시 선천적인 누린내는 어쩔 수 없는 모양. 반면 육류를 요리할 때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일반적인 유목민족, 대표적으로 몽골 요리는 피도 빼지 않고 요리하기 때문에 심한 누린내로 악명이 높은데 한국인은 처음엔 입도 못 댈 정도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전반적으로 냄새 나는 고기에 약한 편이라, 냄새를 가릴 진한 양념을 안 하고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상한선이 돼지고기 정도이다. 비교적 냄새가 덜한 양꼬치도 냄새 때문에 못 먹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고기 요리를 할 때 냄새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으로 요리 시에 다른 재료와 함께 요리를 하거나 첨가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와인이나 청주, 맛술 등을 조리 시에 넣어 냄새를 잡거나 마늘, 양파, 대파 등의 채소나 고추장, 간장, 된장 등의 양념이나 강한 향신료 등으로 잡기도 한다. 훈제로 만들어 냄새를 잡기도 한다.
이런 야생동물 냄새를 영어로 “gamey”(게이미)라고 한다. 여기서 game은 사냥감을 의미한다.(프랑스어로는 gibier(지비에)) 사냥해서 잡은 동물의 냄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