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나치(Neo-Nazi), 신나치주의자, 국가사회주의자, 유럽 극우, 총선, 반유대주의, 반이스라엘
네오-나치(Neo-Nazi), 신나치주의자
네오-나치(Neo-Nazi) 혹은 신나치주의자는 자신들을 ‘나치의 후계자’라고 자칭하며 민족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보통 극도의 국수주의, 제노포비아와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백인이 주류인 서방권에선 백인우월주의와 결합하는 때가 많으며, 몽골이나 일본처럼 유색인국가에서 네오나치를 표방할 경우 해당 국가의 내셔널리즘과 결합된다.간혹 나치의 아리아 우월주의의 영향으로 해당 네오나치가 속한 자민족이나 인종이 아리아인의 일부이거나 아리아인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대표격 국가인 독일,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뿐만 아니라 같은 추축국이었던 이탈리아, 일본 및 이들과 연루된 인도, 이란을 비롯해 추축국과 적대적인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몽골 등등을 포함해 전세계에 걸쳐 골고루 분포하며, 심지어는 이스라엘(...)에서도 그 존재가 확인된 바가 있다.(...)오히려 독일, 오스트리아보다 미국, 러시아 같은 나라에 훨씬 더 많은게 함정이다.(...)
사실, 실제 나치들과 마찬가지로 본인들도 "나치"라고 불리는 건 싫어하고 정식명칭인 국가사회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우연히도 바이에른의 뮌헨 지방에서 농부 이름으로 흔한 이름 이그나츠(Ignatz)의 약칭이기도 해서 수구꼴통을 뜻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고 난 뒤 유럽 국가들은 전쟁의 여파로 피폐했고, 이에 빠른 시일 내로 과거의 생활수준으로 복귀하러 재건에 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막 전쟁에서 벗어난 직후인지라, 임금이 비싼 국가의 인력을 고용할 여력이 없었던 유럽 국가들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가의 인력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흔히 유럽인들이 '멸시'하던 민족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특히 서유럽과 가까운 터키와 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노동력이 부족하던 초기에는 큰 문제는 없었지만, 점차 국가가 안정화 되자 기업들은 점차 자사의 노동자 수를 줄여서 대규모 실직 사태가 일어났고 이들의 분노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향했다. 한편, 외국인 노동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살며 고유문화를 유지했고, 이로 인한 문화간의 충돌로 현지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었다. 이들이 돈만 벌고 나가주기만 하면 그래도 기분 나쁜 손님 정도로 생각할 텐데 장기거주로 기러기 아빠화 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다며 가족 초청을 요청하고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 이걸 받아주면서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대로 눌러 앉았다.
결국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현지인들은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들었던 외국인 노동자를 향해 그 분노를 표출하였고, 나중으로 가서는 '자신보다 열등한'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자신들의 영토에 눌러앉아 평화적인 정복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상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 수가 불어나더니, 점차 대규모 단체화해 흔히 알려진 외국인 혐오성향의 '극우 세력'을 형성했다.
다만 모든 네오 나치가 저학력에 육체노동자 출신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극우정당의 당수나 간부급이라면, 나름대로 실력을 갖춘 경우가 많다. 최초의 네오 나치 정당을 만든 인물부터 오토 에른스트 레머 장군이다. 오스트리아자유당도 번듯한 학력과 군경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미국에서도 '터너의 일기'라는 백인우월주의 소설로 논란을 일으킨 윌리엄 루터 피어스는 콜로라도 대학교/볼더 캠퍼스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인물이었으며, 이후로도 대안우파의 일부 인물들처럼 네오 나치 성향을 가진 인물들은 나름의 지성을 갖춘 엘리트 고학력자인 경우도 적잖다.
보통은 이주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저 유색인종 외국인 노동자가 나만 있으면 되는 내 땅을 대신 차지하고 있다."'라는 피해의식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화이트칼라는 물론이고 3D 직종에서 일해도 외국인 노동자라면 가리지 않고 굉장히 혐오한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나치즘 선전이 불법이라 독일에서는 민족부활노동당이라고 자신들을 표현한다.
1990년대말부터는, 네오나치 특유의 무식하고 감정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헤머스킨이라는 분파도 등장했다고 한다.
음악계에서는, 펑크록 중 오이/스트리트 펑크(Oi/Street Punk)가 부흥한 이래 이들 중 나치에 경도한 이들이 스킨헤드-네오나치의 길을 걷는 때가 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스크류 드라이버라는 밴드가 있다. 스크류 드라이버의 보컬 이언 스튜어트는 나치 펑크/스킨헤드의 수장격인 인물이었다. 이들은 효율적인 국가관리 및 반공주의를 이유로 나치즘을 찬양한다. 그래서 네오 나치 성향을 띠는 록음악 장르 전반은 'Rock Against Communism(RAC)'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후 블랙메탈에서 NSBM(National Socialism Black Metal)이라는 장르가 부흥하면서 블랙메탈에도 네오나치가 한때 흥했다. 예외적으로 네덜란드의 경우 록이 아닌 개버 등 하드코어 테크노 장르가 종종 네오나치와 엮인다.
간혹, 네오 나치이면서 안티파들이 할 법한 블랙블록 복장과 상징을 들고 나오는 부류들도 있는데, 슈트라서리즘을 계승했다고 자칭하는 'Autonome Nationalisten' - 자치적 민족주의자들이다. 물론 이들도 엄연히 인종차별주의자들이지만 복장이 복장인지라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이들과 진짜 안티파들이 부딪히는 광경도 볼수있다.
심지어 몇몇 네오 나치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나 흑인우월주의자들과도 손을 잡는다. 유대인이라는 공통된 적이 있기 때문이란다.
하인리히 힘러나 카를 빌리구트 같은 실제 나치오컬티스트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몇몇 네오 나치 집단들은 신이교주의와 연관이 있거나 아예 신이교주의 집단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네오나치들이 만자밖에도 쓰는 상징으로 갖가지 룬문자(특히 SS의 상징인 시겔과 오달, 티르가 많이 쓰인다), 슈바르체존네, 켈트십자가같은, 대체로 북유럽 신화나 켈트 신화에서 차용한 것들이 많다. 반대로 이슬라모포비아성향을 강조하는 단체들은 단순한 십자가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예수가 실제로는 셈족이 아닌 아리아족이었다는 둥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Positive Christianity 혹은 'Aryan Christian Identity'라고 부른다.
나치하고는 갈래가 좀 다르지만 남/동유럽의 파시스트 집단(특히 러시아나 이탈리아의 집단들)의 경우 가톨릭이나 정교도를 겸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교권 파시즘 지지와 유사한 맥락이다.
몇몇 단체들은 레지스탕스(혹은 그와 유사한 뜻을 지닌 자국어 단어들)란 이름을 간혹 붙여서 '이방인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느낌으로 칭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톰 메츠거의 "White Aryan Resistance" - 백인 아리안족 저항군이란 단체가 원조.
독일
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군과 서독 정부는 나치 세력이 다시는 안 나타나도록 "탈나치화"를 거쳐 나치와 관련한 이념이나 상징물을 철저하게 단속했다. 대표적인 법으로 독일연방국형법(Strafgesetzbuch, 약칭 StGB) 85, 86조, 86조a가 있다. 86조와 86조 a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국내 또는 해외에서의 선전을 위해 국내에서 배포, 생산, 저장, 수입, 수출하거나 데이터 저장 장치를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 하도록 하는 자
독일 연방 헌법 재판소에 의해서 위헌 단체로 공표되었으며, 이 판결에 대해서 항소를 할 수 없는 단체와 그러한 단체의 대체 조직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2. 헌법의 질서와 국제 정서에 직접적으로 반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항소의 대상이 아닌 금지된 조직 또는 그러한 단체의 대체 조직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3. 제 1호 또는 2호에 해당되는 단체의 목적을 추구한다고 판단되며, 이 법 조항이 적용 불가능한 영토에 속한 정부, 조직, 기관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4. 선전 수단의 내용이 이전 국가사회주의의 목표를 진척할 의도를 가졌다면, 그러한 선전 수단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2. 1항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선전 수단은 자유 원칙, 민주주의 헌법 질서 그리고 국제적 정서에 위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11조 3항)이다.
3. 제 1항은 선전 수단이나 행위가 시민 계몽, 위헌 행위의 방지, 과학과 예술의 발전, 연구 또는 교육, 현재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 또는 그 비슷한 목적을 가진다면 그 효력을 잃는다.
4. 죄가 가볍다면, 법원은 조항에 근거한 처벌의 시행을 삼갈 수 있다.
- 독일연방공화국 형법 제 86조 헌법에 위배되는 단체의 선전 수단 배포
대상
형법 제86조 제1항 제1, 2, 4호에서 지시된 단체나 조직들의 상징들을 형법 제11조 제3항에서 다뤄진 글이나, 혹은 모임을 통해 국내에서 배포하거나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2. 제1항에서 지시된 방식으로, 해당 상징들을 묘사하거나 포함한 사물들을 국내 혹은 해외에서 배포하거나 사용하기 위해 생산, 비축, 수입, 수출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2. 제1항에서 의미하는 상징들은 깃발, 휘장, 제복, 슬로건, 경례방식 등을 지칭할 수 있다. 앞 문장에서 언급된 것들로 오해될 수 있는 유사 상징들 또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3. 형법 제 86조 제3, 4항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독일연방공화국 형법 제 86조a 헌법에 위배되는 단체의 상징을 사용하는 것
한편 동독에서는 독일 민족민주당(NDPD)이라는 이름의 관제 네오 나치 정당이 있었다. 다만 동독 당국에서 구색정당으로 용인한 데에는 서서히 나치물이 빠지라고 유도한 점도 없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통독 후 이들은 서독 자유민주당(FDP)과 합쳤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 이후 일부 젊은이들이 미래의 희망을 잃고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가치관을 잃어 아노미상태에 빠진 구동독지역 특히 드레스덴 지역에서 나타나고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래서 서독인과 동독인의 분쟁사항 중 한 가지가 이제 "동독인들 중에 네오 나치가 많다!"가 돼버렸다. 물론, 히틀러와 나치를 빠는 구 동독인들은 전체적으로 많지 않다.
독일에는 이런 이들이 만든 정당이 바로 독일 민족민주당(NPD)인데 지지율은 제로이다. 독일 하원 620석 중 1석도 없을 뿐더러 지역 의회 1,860석 중에서 겨우 13석이다. 구 서독 지역에선 지지율 1%도 안 나오지만 구 동독 지역에선 5% 가량 득표했다. 독일 정치권에선 좌우파 모두 이들을 극도로 혐오하며, 어떻게든 해산시키려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정당해산 여부에 관한 결정을 2017년 1월 17일에 내놓기로 했는데... 연방 헌법재판소는 NPD 해산을 기각시켰다. 요지는 '정당의 강령이나 내부인사들의 발언 등을 종합해볼 때 반헌법적인 것은 분명하나, 행동이 위협적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당해산까지 갈 필요는 없으므로 정당활동은 인정된다'는 식으로 판결했다.
독일의 도시 도르트문트 시청(Rathaus) 앞에서 일어난 네오나치 vs 반나치 집회 충돌.
반나치집회자들이 'Nazis Raus!'(나치는 꺼져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독일은 대한민국과 같이 위헌정당해산제도가 존재하는 국가이며, 실제 1956년 서독 정부가 독일 사회주의 국가당을 나치당의 후신으로 판단하여 해산시켰다. 그리고 네오 나치들은 독일 연방헌법수호청(BfV)의 주요 감시 대상이며, 각종 법률에 근거하여 이러한 단체에 가입한 전력이 있는 사람은 공직에 채용되지 못한다.
독일 연방군에서도 징병제 시절에도 나치 단체에 가입한 사람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병역면제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군대에 안가려고 나치 단체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걸리면 진짜 네오나치가 되거나 병역기피죄로 감옥에 가기 또는 군대에 갈 것을 선택받게 되는데 대부분은 군대 가기를 선택했다.
독일의 일반 시민들도 네오 나치들에 대한 증오가 있는 편이다. 특히 2차대전 시기 나치의 만행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거나, 나치가 얼마나 위험한 이들이었는지 경험해서 똑똑히 아는 노년층은 그 수준이 더 강하다. 세력을 유지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 심지어 네오 나치가 시민들한테 맞아죽을까봐 경찰이 출동해서 이들을 체포하기도 한다.
다만, 구 동독 지역에서는 앞서 말한 반 이민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퍼지고 있어서 네오 나치 및 극우계열의 정당들이 올라오는편. 이 정당은 2007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전당대회도 했으나 호응하는 이들이 별로 없어서 2013년 노동절에도 전국의 나치들이 집결하는 행진을 기획했으나 반대하는 시민들이 역으로 나서기도 전에 경찰이 싹 다 막았다.
2011년에는 독일 출신의 네오 나치 3인방이 연쇄살인을 벌여 독일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독일인 네오 나치 3인방의 신상명세
이들은 주로 튀르키예인들을 살해했는데,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모두 11명을 살해했다. 피해자는 독일인 여자 경찰관 1명, 그리스인 1명, 터키인 9명이다. 범행 초기에는 용의자 색출에 난항을 겪었지만 여경을 살해하고 빼앗은 총기로 은행강도짓을 하다가 걸리면서 이들의 범죄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용의자 3명 가운데, 남자 2명은 자신들의 캠핑카에서 분신 자살했고 여자 1명은 체포로 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독일에서 케밥을 팔던 상인들이 대부분이라 케밥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이 소식을 접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큰 충격에 빠져 네오 나치의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센터를 세웠다. 최근에는 독일연방군 내에도 이런 네오 나치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은 법을 바꾸어 정기적으로 네오 나치인지 테스트를 하고 네오 나치즘적 사상을 가진 이들을 신고하도록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는 독일 육군 특수부대인 KSK 소속 1개 중대가 통째로 네오 나치즘에 심취하여 쿠데타를 위해 4만 8천발의 탄약과 62kg의 폭발물을 빼돌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편, 법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프로이센 제국을 상징으로 삼았는데, 2022년 12월 7일 독일제국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왕정복고주의자들의 쿠데타 모의가 적발됐고 이들에 동참한 네오나치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이런 우회적 방법을 통해 네오 나치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음이 대외적으로 드러났다. 앞서 네오나치 중대사건을 일으킨 KSK가 다시 한번 연루되었고 원내 정당 AfD 전직 하원의원 가담이 밝혀지는등 그 세력이 16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2010년대부터 독일 내 극우세력이 자라났음을 방증하고있다.
2023년 9월 27일. 인종 선전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표적으로 삼는 네오나치 운동인 아르게마인샤프트(Artgemeinschaft)를 금지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로 경제 불황, 이슬람 난민 유입, 사회 혼란으로 인해 네오 나치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독일의 네오 나치가 가장 싫어하는 민족이 튀르키예인(튀르키예계 독일인)이다. 튀르키예인을 집단으로 린치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며, 심한 경우 때때로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간혹 튀르키예인과 외모가 비슷한 그리스인을 네오 나치가 튀르키예인으로 착각해 린치하는 일도 있다. 튀르키예인으로 착각하는 경우 외에도 그리스인과 발칸 반도 출신 이민자들 역시 튀르키예인 만큼은 아니지만 독일 네오 나치들의 표적이 되어 튀르키예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다. 유색인종(흑인, 동양인)도 매우 싫어해서 인종차별은 기본이고 심하면 집단으로 린치하는 경우도 꽤 있다. 가끔 원조 나치처럼 유대인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도 있으나, 독일 사회가 반유대주의 문제에 민감하기도 하고, 절대로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이스라엘 정부가 예의주시하고 있기에 그리고 모사드와 같은 첩보기관에서 블랙 옵스를 실시하기에 그 규모는 작다.
이-팔 전쟁 그 후, 유럽에서 커지는 반유대주의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상황은 또 다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잔혹한 전쟁에 대한 반감을 주변의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있어서다.
지난 3월2일 토요일 밤, 스위스 취리히 시내 젤나우 지역. 사거리 모퉁이에 자리잡은 ‘츠바이테 악트(2. Akt)’, 즉 ‘제2막’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은 여느 때처럼 손님들로 붐볐다. 벽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 7개에서 스포츠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맥주잔을 손에 든 이들이 저마다 자기 팀을 응원했다. 넓은 창문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스크린에 눈을 고정한 사람들은 닫힌 창문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밤 9시35분을 막 지나던 시각, 음식점 안에서 창문 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훤히 보이는 인도에서 15세 소년이 지나가던 50세 남성을 칼로 열다섯 차례 찔렀다. 누군가의 신고로 구급차가 도착했고 남성은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위급한 상황을 넘기고 회복 중이다. 용의자 소년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위 내용은 이 사건에 대한 여러 언론 보도 및 사건 후 현장을 방문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일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살인미수 사건의 후폭풍은 거셌다. 사건 자체도 끔찍하지만 공격의 원인 때문이다. 피해자는 오소독스(orthodox), 즉 정통파 유대인이고 용의자는 무슬림이었다. 언론은 이 소년이 튀니지 출신으로 2011년에 스위스 국적을 획득했다는 점을 명기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소년은 남성을 찌른 후 “모든 유대인에게 죽음을! 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사건 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 경찰 당국은 취리히 내 유대교 관련 기관들의 보안 조치를 격상한다고 밝혔다. 주요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앞에는 기관총을 소지한 경찰관들이 배치됐다. 이처럼 발빠른 대처가 나온 것은 이 사건의 배경이 최근 스위스에 급격히 퍼지고 있는 반유대주의라는 판단 때문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죄였고 유사한 사건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범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상황은 또 다르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뒤이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보복 전쟁을 벌인 이후 유럽 유대인들은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무슬림들은 물론이고 종교와 관계 없는 보통 사람들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잔혹한 전쟁에 대한 반감을 주변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있어서다. 유대교 안에도 여러 분파가 있고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스위스의 유대인은 정치적 견해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일일이 그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유대인=전쟁 살인마’이므로 이들이 혐오받아 마땅하다고 보는 게 이 시점의 반유대주의다. 그뿐 아니라 잠재하던 내면의 유대인 혐오를 현재 상황을 핑계로 발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대인이 싫어도 티를 내지 못했는데 전쟁이라는 구실이 생겼으니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다. ‘인종차별 및 반유대주의 반대 재단(GRA)‘과 ‘주스위스 이스라엘 커뮤니티 연합(SIG)’이 함께 발행한 반유대주의 보고서(2023년)에 따르면, 평소 스위스에서 유대인에게 강한 부정적 편견을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 정도다. 그런데 어떤 도화선이 생길 경우 이 수치는 급증한다고 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이-팔 전쟁)이 그 도화선에 해당한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쪽에서 유대인 혐오 사건이 급증했다. 특히 오프라인 사건은 2022년 57건이던 것이 2023년 155건으로 약 세 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그 대부분이 이-팔 전쟁이 시작된 10월7일 이후 일어난 일이다. 여기에는 신체 폭행, 욕설, 협박, 모욕적 뜻을 담은 길거리 그래피티 등이 포함된다. 이 보고서는 피해자로부터 수집한 유대인 혐오 사건 사례를 싣고 있는데, 그중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취리히에서 10대 청소년 두 명이 ‘다윗의 별(유대인 표식)’ 목걸이를 착용한 유대인 남성을 보자 그의 발에 침을 뱉은 뒤 “팔레스타인 해방!”이라고 외쳤다. 한 유대인 가정집 외부 벽에는 “유대인에게 죽음을”이라는 스프레이 낙서가 그려졌다. 베른의 유대인 커뮤니티 앞으로 온 이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더러운 악취를 풍기는 유대인들의 땅을 정화하기 위해 다시 가스실을!”.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팔 전쟁은 유대인과 무슬림 양쪽이 관여된 것이니 혐오도 양방향이 아니겠느냐고, 유대인 혐오만큼 무슬림 혐오도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스위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인구통계를 보면, 스위스에 거주하는 유대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0.3%이고 이슬람교 신자는 5.2%다. 17배 차이다. 수적으로 소수인 그룹은 혐오 대상이 되기가 더 쉽다. 중동에서 전해지는 이스라엘 군의 잔혹 행위도 유대인 혐오 정서에 기름을 붓고 있다.
“하일 히틀러”, 표현의 자유인가?
유대인 혐오범죄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최근 스위스 일간 〈타게스안차이거〉는 중고교 내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심각하게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르가우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한 유대인 학생에게 나치식 경례를 한 뒤 “너는 가스실로 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유대인 학생은 폭행을 당한 뒤 바지가 벗겨졌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쟁 관련 영상, 프로파간다, 거짓 정보 등을 공유하고 이를 혐오범죄의 근거로 이용하는 일도 있다. 한 학교에서는 열세 살 학생들이 유대인 여학생에게 하마스의 강간 영상을 보여주며 “우리도 너에게 똑같이 하겠다”라고 협박했다. 메신저 앱으로 인종차별적 뜻을 담은 상징물을 주고받는 일도 흔하다. 같은 반 학생이 모인 채팅방에서 히틀러 사진,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공유하고 농담처럼 “아우슈비츠로 가라”와 같은 표현을 쓴다. 여학생들이 모인 한 채팅방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지 포스팅을 하지 않으면 다 창녀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 채팅방에는 유대인 여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의아한 부분이 있다. 나치 문양을 공유하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데도 법적 제재가 없는 것인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런 행위는 법적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스위스는 사정이 다르다. 공공장소에서 하켄크로이츠를 내보여도,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경례를 해도 범죄가 아니다.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로 ‘인종차별 금지법’이 있지만, 의도적 선전이나 광고에 해당할 경우에만 법이 적용된다. 자신의 개인적 신념을 나타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인종차별 금지에 우선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판결이 있다. 2010년 루체른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남성이 오른손을 들고 나치식 경례를 했고, 당시 집회 참가자와 경찰관, 구경하던 사람들을 포함해 150명 정도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 남성은 1심에서 인종차별 금지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최종심에서 이것이 뒤집혔다. 2014년 연방대법원은 이 남성이 다수 사람들에게 특정 이념을 선전하려 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치 지지 신념을 표현했을 뿐’이므로 인종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당연히 처벌되었을 행위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로 존중된 것이다.
게으른 일반화는 모든 혐오의 출발점
스위스의 인종차별 금지법이 해석의 여지가 너무 넓은 데다 엄연히 존재하는 반유대주의를 방치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명백한 나치 상징만이라도 금지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이-팔 전쟁 이후 스위스에서 번지는 반유대주의 관련 사건들이 여기에 힘을 실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스위스 상원에서 나치를 연상시키는 상징, 몸짓, 혐오 발언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찬성 23표, 반대 16표, 기권 3표로 통과되었다.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면 스위스도 뒤늦게 주변국들처럼 반나치 법안을 갖게 된다. 이 법안이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져 없던 일이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스위스에서는 의회를 통과한 법안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반유대주의는 스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영국·독일 등의 반유대주의 정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스라엘의 잔혹성을 이유로, 또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는 뜻으로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비난과 혐오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 과연 전쟁이 진짜 이유인지 의심스럽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아시아인 전체에 가해지던 차별이 떠오르기도 한다. 비난의 근거는 전쟁범죄인가, 아니면 유대인 그 자체인가. 전쟁을 주도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이스라엘인들은 전체 이스라엘인 중 일부다. 또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미국·유럽의 유대인은 다르다. 유대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들을 다 같은 그룹으로 뭉뚱그려 일반화하는 것이 현재 일어나는 반유대주의 범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게으른 일반화는 모든 혐오의 출발점이다. ‘그래도 유대인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이-팔 전쟁이 아닐 것이다. 이-팔 전쟁은 유대인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감을 분출할 핑계에 불과하다.
유대인이라고 다 같은 입장이 아니라는 점은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잘 보여줬다. 유대인 영국 감독인 그는 지난 3월10일 제96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아우슈비츠의 사령관과 그 아내의 일상을 다룬 영화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글레이저 감독은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분쟁으로 이끈 점령, 즉 이-팔 전쟁에 홀로코스트가 이용되고 있다며 자신은 그 분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홀로코스트를 겪었다는 이유로 현재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의 발언은 비난과 지지를 모두 받았다. 미국 홀로코스트생존자재단(HSF)의 데이비드 섀스터 회장은 단체 홈페이지에 게시한 서한에서 “나는 당신이 오스카 시상식 연단에서 무고한 이스라엘인에 대한 하마스의 광적인 잔인성과 이에 맞선 이스라엘의 어렵지만 필수적인 정당방위를 동일시하는 것을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당신의 발언은 부정확하고 도덕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스라엘 참전용사 단체인 ‘침묵을 깨는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성명에서 “(글레이저는) 점령을 정당화하려고 유대교와 홀로코스트를 냉소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우리는 민간인의 피와 생명이 정치적 이념에 대한 정당화나 협상 카드로 쓰이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다. 공감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하마스를 비난하면서 팔레스타인 국민과 연대할 수 있고, 이스라엘 군의 잔혹 행위를 규탄하며 주변 유대인들의 입장에 서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혐오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다. 어두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반유대주의, 반이스라엘
서구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표현의 자유에도 묵시적 금기가 있다. 미국,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가 첫손에 꼽힌다. 스포츠 선수들이 승리 세리머니로 나치식 경례를 했다간 출전 금지는 기본이고, 팀에서 퇴출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1998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지도자 장 마리 르펜은 반유대인 발언을 하다 유럽의회로부터 면책특권을 박탈당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반유대주의 음모론을 주장하는 X(옛 트위터) 글에 동조하는 듯한 답글을 달았다가 대기업들이 광고를 중단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적극 막지 못한 데 대한 부채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는 종전 후 세워진 유대 국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과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유대인이 정치 경제 주류인 미국의 애정과 관심은 유별나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900분의 1정도인 이스라엘에 대외 원조의 약 20%를 쏟아붓는다. 유엔 등에서 미국 외교의 이중잣대 논란이 불거질 경우 십중팔구 이스라엘 문제 때문으로 보면 된다. 어느덧 ‘반유대주의=반이스라엘’이 됐다. 이스라엘이 4차례 중동전에서 영토를 빼앗고 팔레스타인 탄압을 일삼아도 별 제재가 없는 이유다.
지난 18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돼 미 전역과 유럽으로까지 번진 반전·반이스라엘 시위는 그래서 이례적이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직후와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텐트 농성, 학내 행진 등 비폭력 시위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미국에서만 1000명가량의 학생들이 연행돼 과거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연상케 한다. 무슨 짓을 해도 면책되다시피 한 이스라엘의 행태가 임계점을 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전쟁의 피해를 봤지만 압도적 군사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3만5000명에 달하자 여론이 돌아섰다. 인상적인 것은 시위대의 구호다. 반이스라엘이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외친다. 20세기 서구가 쌓은 금기는 과연 무너질 것인가.
독일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진짜 이유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다큐멘터리상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마을이 초토화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 ‘노 아더 랜드’에 돌아갔다. 시상대에 오른 공동연출자 팔레스타인 활동가 바실 아드라와 이스라엘 저널리스트 유발 아브라함은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언급하며, 독일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독일 정치권은 이를 크게 문제 삼았다.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은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고통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하마스에 있다”며 “(감독들이) 용납할 수 없는 상대화를 저질렀다”고 비난했고, 자유민주당의 한 정치인은 베를린영화제 국고 지원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독들 발언에 박수를 쳤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클라우디아 로트 독일 문화부 장관은 자신은 팔레스타인인 아드라가 아닌 이스라엘인인 아브라함에게 박수를 쳤다고 해명했다. 이따금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우려’를 표하는 자유주의자조차,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반발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즉각 해명해야 하는 상황은 독일의 현 지형을 잘 드러내 준다.
독일의 기준대로라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부 장관도 반유대주의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최근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인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진 다음에야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를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아미 아얄론 전 신베트(이스라엘 정보기관) 국장도 반유대주의자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이스라엘에 대한 전적인 지지는 이스라엘 내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에서 “애국주의 세력과 유대인 우월주의 세력 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불행하게도 독일은 이 투쟁에 중립적이지 않다. 독일의 의도가 무엇이든, 독일의 입장은 유대인 우월주의 세력에 확실한 힘을 실어준다.
한 예를 들어 보자. 몇년 전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의 한 학교에서 랍비들이 학생들에게 ‘유대인 학살을 제외하면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옳았다’라며, 다행스럽게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나치즘을 행하고 있다고 가르친 게 알려져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런 극단적 입장은 이스라엘에서도 소수만이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지만,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행하는 ‘국가폭력’의 기본 전제를 잘 드러낸다.(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이 사건 이후에도 이 학교를 방문해 연설했다.)
철학자 세일라 벤하비브가 주장하듯, 현재 이스라엘 정부를 이루고 있는 이들은 유대 파시즘의 유산을 직접 계승한 인물들이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우익 세력은 조직, 방법론, 정치 철학, 사회적 호소력 측면에서 나치 및 파시스트 정당과 유사한 해방당(헤루트)을 창당했는데, 이들의 후예가 바로 지금 이스라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우파 정당 리쿠드이다.
유대인이 우월하다는 이들 세력의 믿음은 나치즘과 직접적인 연속선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독일이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심층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영국 정치 평론가 오언 존스는 거꾸로 된 형태의 나치즘을 계속 이어나가는 독일을 거부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반팔레스타인적인 인종주의를 승인하고 있으며, 심지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유대인들까지도 반유대주의자로 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윽박지르며 좋은 유대인과 나쁜 유대인을 구분 짓던 장면이 떠오른다. 독일은 나치즘과 역사적으로 연결된 이스라엘의 어두운 세력을 전폭 지원하며, 지금도 계속해서 유대인들을 모욕하고 처벌한다.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이스라엘 파시즘을 둘러싼 논쟁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극우 정부에 대한 서구의 비판자들은 종종 반유대주의로 비난받지만, 이스라엘인 좌파들은 수년 동안 이스라엘이 파시즘에 빠졌다고 비난해 왔다. 알베르토 토스카노(Alberto Toscano)는 파시즘이 이스라엘의 식민지 프로젝트 논리에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마스의 알 아크사 홍수(Al Aqsa Flood) 10월 7일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은 서방의 정부들의 승인 하에 이루어졌고, 무수히 많은 인권법 전문가들에 의해 명백한 ‘대량학살 의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여러 집단들 내에서 파시즘에 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비르자이트 대학교 교수 및 직원 조합은 그들의 공동성명에서 ‘식민주의적 파시즘’과 ‘정착민 시오니스트 정치인들 전반의 아랍인들의 죽음을 향한 포르노그래피적 요구’를 언급하였다. 이스라엘 공산당(Maki)과 좌파 동맹 하다쉬(Hadash)는 그들의 선언문에서 ‘급격하고 위험한 확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파시스트 우파 정부에게 물었다. 한편,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 대통령은 가자지구 공습에 대하여 기후 재앙과 자본주의 고착화로 특징지어지는 ‘글로벌 1933’ 속에서 ‘우리 모두를 처분가능한 존재들로 취급하는 최초의 실험’이라고 묘사하였다. 아마 이 발언들을 인용하는 행위조차도 특히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운동의 형태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평화적 국제연대운동을 억압하려는 시도에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어 온 ‘반유대주의에 대한 국제홀로코스트추모연합(IHRA)의 정의’에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네타냐후 정권과 심지어는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파시즘에 대한 인식은 이스라엘 본토에서의 공적 담론에서 주류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는 특히 이스라엘 대법원이 자랑하는 그들의 자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추진하는] 최근 사법개혁에 대항하는 시위들에서 그러하다. 하마스의 공격이 있기 나흘 전, 신문 하레츠(Ha’aretz)는 ‘이스라엘의 네오파시즘은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위협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였다. 한 달 전에 200명의 이스라엘 고등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징병 거부를 선언하였다.
“우리는 지금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파시스트 정착민 무리들을 선의를 갖고 섬길 수는 없다고 결정하였다.”
5월에 하레츠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는 사설을 게재했다. ‘6차 네타냐후 정권은 전체주의 캐리커쳐로 보이기 시작한다. 전체주의와 연루된 행보 중에서 극단주의적 구성원들 중 한 명이 [그 행보를] 제안하고, 나머지 무능력자들이 누가 더 완전한 파시스트가 될 수 있는지 보이려는 경쟁 속에서 그것을 수용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한편 하레츠 사설가들 중 한 명은 ‘이스라엘의 파시스트 혁명’이 사나운 인종주의에서 연약함에 대한 경멸까지, 폭력을 향한 열망에서 반지성주의까지 [파시즘의 구성요소들의] 목록의 모든 항목들을 만족시킨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최신 논쟁들과 예측들은 저명한 지식인들이 이미 제기한 바 있는데, [그 중에는] 현대 이스라엘에서 ‘파시즘과 초기 나치즘과 유사한 인종주의가 자라나고 있음’을 주장한 극우파를 연구하는 저명한 역사학자 지브 스턴헬(Ze’ev Sternhell)과 열 살에 나치 독일을 탈출하였고 2018년에 사망하기 얼마 전에 다음과 같이 선언한 기자이자 평화활동가인 우리 아브네리(Uri Avnery) 등이 있다.
[아브네리에 따르면] “사실상 모든 삶의 영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나치 독일의 첫 단계에서 유대인들이 받은 취급과 유사하다. (점령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뮌헨에서의 배신[뮌헨 협정] 이후에 세워진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에서 체코인들이 받은 취급과 더 유사하다.) 크네세트에서 비처럼 내리는 인종주의 법안들, 이미 통과된 것들과 아직 진행 중인 것들은 나치 정권 초창기에 라이히스탁이 통과시킨 법률들과 매우 유사하다. 몇몇 랍비들은 아랍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을 보이콧하자고 주장한다. 마치 그때와 같다. ‘아랍인들에게 죽음을’(‘유대인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는 축구 경기 중에 자주 들린다.”
물론 이러한 유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등은 1948년 데이르 야신(Deir Yassin) 학살사건 직후 뉴욕 타임즈에 헤루트당(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의 전신)이 ‘나치와 파시스트들의 정당들과 조직, 방법, 정치철학, 그리고 사회적 호소력의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규탄하는 성명을 보냈다.
또한 아브네리는 [이스라엘의] 현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Bezalel Smotrich)를 ‘진정한 유대인 파시스트’라고 지목하였다. 자기 자신이 ‘파시스트 동성애혐오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한 적 있는 스모트리치는 국가로서의 지위를 향한 팔레스타인의 그 어떠한 희망도 ‘유산’시킬 것이고, 나크바(Nakba)를 반복할 것이라는 본인의 대량학살 의도를 위한 신학적 기반을 드러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성경의 예언자]가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그 땅의 주민들에게 세 가지 메세지를 전했다. [우리의 통치에] 순응하고자 하는 이들은 순응할 것이다; 떠나고자 하는 이들을 떠날 것이다; 싸우고자 하는 이들은 싸울 것이다. 그의 전략의 기초는 ‘우리가 여기 있다, 우리가 왔다, 이것은 우리의 것이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세 개의 문이 열려 있고 네 번째 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떠나고자 하는 이들 – 떠날 이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 그들은 내가 도와줄 것이다. 어떠한 희망이나 전망도 없을 때 그들은 떠날 것이다. 1948년에도 그러하였듯이. […] 떠나지 않는 이들은 유대교 국가의 통치에 순응할 것이고, 이 경우에 그들은 남아있어도 되는데, 순응하지 않는 이들과는 우리가 싸울 것이며 그들을 물리칠 것이다. […] 나는 그를 쏘거나 가두거나 추방할 것이다.”
여호수아서에 대한 언급은 그 책이 이스라엘 초기에 세속주의자였던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에게 이데올로기적인 참조점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구약성경의 파멸을 향한 찬가는 오늘날에도 불길한 시의성을 갖는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여호수아서 10:40-41)
그러나 네나탸후가 육성한 파시즘은 단순히 근본주의 정착민들과 (스모트리치의 정착민 NGO인 레가빔의 상태와 팔레스타인 토지소유권 및 재산권에 대한 그들의 법률 전쟁에 깊게 파고든 덩굴을 포함하는) 그들의 강제이주 책략들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또한 미국이나 인도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서도 적극적으로 부패한 대도시 ‘엘리트’들에 반하여 동원된 국가적-보수적 세력을 이익과 특혜에 대한 가차 없는 방어와 결합하는 억만장자들의 사업적 이해관계와 법적 계략에도 깊게 자리잡고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역사학자 다니엘 블라트만(Daniel Blatman)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지속적 실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리쿠드는 아닙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폭력배들도 아닙니다. 바로 코헬렛 정치포럼(Kohelet Policy Forum, 미국의 부유한 기증자들이 후원하는 보수 우파 씽크탱크)입니다. […] 그들은 광범위한 사회정치적 선언문을 작성하고 있는데, 만일 이것이 결국 이스라엘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면 이스라엘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파시즘’이라고 하면 군인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해외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다른 나라들에서 받아준다면 말입니다. 좋은 식당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선의(good will)를 제외하고 – 왜냐하면 정부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보호 여부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 한 사람의 능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현 정권이 나타나기에 충분히 무르익은 상태였습니다. 리쿠드가 승리해서가 아니라 가장 극단적인 우파가 모두를 그쪽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입니다. 한때 극우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중도파입니다. 가장자리에만 있던 생각들이 [오늘날에는] 합당해졌습니다. 홀로코스트와 나치즘이 전문분야인 역사학자로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오늘날 정부에는 네오나치 장관들이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한 인종주의자들인 장관들은 어디서도 – 헝가리에서도, 폴란드에서도 –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문단은 나름의 통찰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파시즘의 등극에 대한 이스라엘 자유주의자들의 논쟁이 무엇을 간과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거리에는 실제로 군인들이 활보한다.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해외로 나가지 못한다. 또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스모트리치나 국방부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Itamar Ben-Gvir)와 같은 이들이 거리낌 없이 내뱉는 ‘순수한’ 인종주의는 식민주의적 지배를 구조화하고 재생산하는 인종주의의 산물인데, 이는 들뜬 파시스트들만큼이나 정직하지 않은 자유주의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빌 멀렌(Bill Mullen)과 크리스토퍼 비알스(Christopher Vials)가 지적하듯이, 흑인 급진주의와 제3세계의 안티파시즘뿐만 아니라 토착민 저항의 유구한 전통들은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의 권리체제로부터 인종적으로 추방당한 이들에게는 ‘파시즘’이라는 단어가 항상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낯선 사회질서를 상기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조지 패드모어(George Padmore)가 1930년대에 ‘세계의 고전적 파시스트 국가’라고 평가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정착민-식민주의적이고 그리고 인종주의적 파시스트 정권들에서 우리는 독일계 유대인 변호사 에른스트 프랭켈(Ernst Fraenkel)이 분석한 ‘이중 국가’(Doppelstaat)의 한 형태를 마주하게 된다. [이중 국가는] 지배하는 인구에게 [주어지는] ‘규범국가’(Normenstaat)와 지배받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무제한적 독단성과 그 어떠한 법적 제제에도 구속되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는 ‘비상조치국가’(Maßnahmenstaat)[로 구성된다].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Y. Davis)가 1970년대 초반에 국가의 인종적 테러가 미국의 나머지 인구[소수인종들]에게 어떤 불길한 전조였는지 보여주었듯이, 규범국가와 비상조치국가 간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이는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정부의 장관들은 ‘국가의 사기에 저해되거나 적의 프로파간다의 기초가 되는 정보를 퍼뜨렸다고 추정되는 민간인들을 체포하거나, 집에서 내쫓거나, 재산을 압수하라고 경찰들에게 지시할 수 있게 해주는 규정들을 추진’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구실을 사용하고 있다. 모로코계 유대인 마르크스주의자 아브라함 세르파티(Abraham Serfaty)가 수십 년 전에 팔레스타인 해방에 관한 그의 옥중수고에서 분석하였듯이, 탈취, 지배, 강제이주[로 구성되는] 시온주의 정착-식민주의 계획의 핵심에는 ‘파시스트적 논리’가 존재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그것[파시스트 논리]의 핵심 메커니즘을 완전히 해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매 위기마다 다시 난폭하게 등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두 국가 해법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의 위선에 대한 [이스라엘 극우파의] 비난이 보여주듯이, 현재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극우파는 여러 의미에서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아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점령과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잔인한 대우가 정상화되고 사실상 종결불가능한 것으로 취급받는 이 시기에 파시스트적인 정착민 종교 우파는 이스라엘을 하나의 정착민-식민주의 계획으로서 특징짓는 구조화하는 폭력과 비인간화를 긍정하고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자유주의자들은 이 [폭력]을 약화시키거나 최소화하는 것은 고려해왔지만 결코 이것에 대해 진정으로 도전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너무 많은 다른 맥락들 속에서도 그러하듯이, 이스라엘에서 파시즘의 등극은 처음에는 단절 또는 예외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진정한 해방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식민주의적 자유주의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그것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The War on Gaza and Israel’s Fascism Debate
Green-lit by Western governments and described by myriad human rights law experts as demonstrating clear ‘genocidal intent’, the State of Israel’s retaliation against Hamas’s Al Aqsa Flood October 7 attack has also elicited talk of fascism in multiple quarters. In a collective statement, the Birzeit University Union of Professors and Employees has spoken of ‘colonial fascism’ and of the ‘pornographic call to death of Arabs by settler Zionist politicians across the political lines’; in their own declaration, the Communist Party of Israel (Maki) and the left-wing coalition Hadash ‘put the full responsibility on the fascist right-wing government for the sharp and dangerous escalation’; meanwhile, Colombia’s president Gustavo Petro described the onslaught on Gaza as the ‘first experiment to deem all of us disposable’ in a ‘global 1933’ marked by climate catastrophe and capitalist entrenchment. Even quoting these lines probably falls foul of the IHRA definition of anti-Semitism, which has served as an important instrument in efforts to curtail peaceful international solidarity activism against Israeli apartheid, especially in the guise of the 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movement.
And yet the recognition of an incipient fascism in the latest Netanyahu government and even Israeli society at large seems, if not mainstream, certainly prominent in public discourse in Israel itself, not least in the wake of protests against the recent judicial reforms aimed at eviscerating the vaunted autonomy of Israel’s Supreme Court. Four days before the Hamas attack, the newspaper Ha’aretz published an editorial under the heading ‘Israeli Neo-Fascism Threatens Israelis and Palestinians Alike’. One month earlier 200 Israeli high school students declared their refusal to be conscripted thus: ‘We decided that we cannot, in good faith, serve a bunch of fascist settlers that are in control of the government right now.’ In May, a Ha’aretz editorial opined that the ‘sixth Netanyahu government is beginning to look like a totalitarian caricature. There is almost no move associated with totalitarianism that has not been proposed by one of its extremist members and adopted by the rest of the incompetents it comprises, in their competition to see who can be more fully full fascist,’ while one of its editorialists described an ‘Israeli fascist revolution’ ticking off all items in the checklist, from virulent racism to a contempt for weakness, from a lust for violence to anti-intellectualism.
These recent polemics and prognoses were anticipated by prominent intellectuals like the renowned historian of the far Right Ze’ev Sternhell, who wrote of ‘growing fascism and a racism akin to early Nazism’ in contemporary Israel, or the journalist and peace activist Uri Avnery, who escaped Nazi Germany at age ten, and who, not long before his death in 2018, declared that
the discrimination against the Palestinians in practically all spheres of life can be compared to the treatment of the Jews in the first phase of Nazi Germany. (The oppression of the Palestinians in the occupied territories resembles more the treatment of the Czechs in the “protectorate” after the Munich betrayal.) The rain of racist Bills in the Knesset, those already adopted and those in the works, strongly resembles the laws adopted by the Reichstag in the early days of the Nazi regime. Some rabbis call for a boycott of Arab shops. Like then. The call ‘Death to the Arabs’ (‘Judah verrecke’?) is regularly heard at soccer matches.
There is nothing new in the analogy, of course. The likes of Hannah Arendt and Albert Einstein signed a letter to the New York Times in the wake of the Deir Yassin massacre in 1948 decrying Herut (the predecessor to Netanyahu’s Likud party) as ‘akin in its organization, methods, political philosophy and social appeal to the Nazi and Fascist parties’.
Avnery also singled out the current Minister of Finance, Bezalel Smotrich, as a ‘bona fide Jewish fascist’. Smotrich, who has happily referred to himself as a ‘fascist homophobe,’ has laid out the theological bases for his own genocidal intent to ‘abort’ any Palestinian hopes for nationhood, and repeat the Nakba. In an interview, he declared:
When Joshua ben Nun [the biblical prophet] entered the land, he sent three messages to its inhabitants: those who want to accept [our rule] will accept; those who want to leave, will leave; those who want to fight, will fight. The basis of his strategy was: We are here, we have come, this is ours. Now too, three doors will be open, there is no fourth door. Those who want to leave – and there will be those who leave – I will help them. When they have no hope and no vision, they will go. As they did in 1948. […] Those who do not go will either accept the rule of the Jewish state, in which case they can remain, and as for those who do not, we will fight them and defeat them. […] Either I will shoot him or I will jail him or I will expel him.
Mention of the Book of Joshua is notable as it also served as an ideological reference for the secular David Ben-Gurion in the early years of the State of Israel. The Old Testament paean to destruction echoes disturbingly today: ‘So Joshua smote all the country of the hills, and of the south, and of the vale, and of the springs, and all their kings: he left none remaining, but utterly destroyed all that breathed, as the Lord God of Israel commanded. And Joshua smote them from Kadesh-barnea even unto Gaza’ (Joshua 10:40-41).
But the fascism ‘godfathered’ by Netanyahu cannot just be reduced to fundamentalist settlers and their stratagems of dispossession (including the deep tendrils into the state of Smotrich’s settler NGO, Regavim, and its lawfare against Palestinian land and property rights); it is also firmly anchored in the business interests and legislative maneuvers of billionaires who, in Israel as in India or the US, are happy to combine national-conservative mobilisations against decadent metropolitan ‘elites’ with the ruthless defense of profit and privilege. In a recent interview, the Israeli Holocaust historian Daniel Blatman observed:
Do you know what the biggest threat is to the continued existence of the State of Israel? It’s not Likud. It’s not even the thugs who run wild in the territories. It’s the Kohelet Policy Forum [a reference to a conservative, right-wing think tank supported by wealthy U.S. donors]. […] They are creating a broad social and political manifesto which, if adopted eventually by Israel, will turn it into a completely different country. You say “fascism” to people and they picture soldiers cruising the streets. No. It won’t look like that. Capitalism will still be extant. People will still be able to go abroad – if they are allowed into other countries. There will be good restaurants. But a person’s ability to feel that there is something protecting him, other than the regime’s good will – because it either will or not protect him, as it sees fit – will no longer be there. Israeli society was ripe to receive the present government. Not because of Likud’s victory, but because the most extreme wing pulled everyone after it. What was once extreme right is today center. Ideas that were once on the fringes have become legitimate. As a historian whose field is the Holocaust and Nazism, it’s hard for me to say this, but there are neo-Nazi ministers in the government today. You don’t see that anywhere else – not in Hungary, not in Poland – ministers who, ideologically, are pure racists.
Its insights notwithstanding, this passage also painfully demonstrates what liberal Israeli polemics against the rise of fascism bracket. Namely, Palestinians. Soldiers do cruise the streets in Israel and occupied Palestine. Millions of people ruled by Israel cannot go abroad. Or indeed return home. The ‘pure’ racism voiced without compunction by the likes of Smotrich and Minister of National Security Itamar Ben-Gvir is a product of the racism that structures and reproduces colonial domination, for bad faith liberals as much as for giddy fascists.
Long traditions of Black radical and Third World anti-fascism, as well as of Indigenous resistance, have taught us that, as Bill Mullen and Christopher Vials observe: ‘For those racially cast aside outside of liberal democracy’s system of rights, the word “fascism” does not always conjure up a distant and alien social order.’ In settler-colonial and racial fascist regimes – such as South Africa, which George Padmore in the 1930s deemed ‘the world’s classic Fascist State’ – we encounter a version of that ‘dual state’ which the German-Jewish lawyer Ernst Fraenkel anatomised: a ‘normative state’ for the dominant population and a ‘prerogative state’ for the dominated, exercising ‘unlimited arbitrariness and violence unchecked by any legal guarantees’. As Angela Y. Davis showed with reference to what state racial terror presaged for the rest of the US population in the early 1970s, the border between the normative and the prerogative state is porous.
This is patent in Israel today, as government ministers use the pretext of war to ‘promot[e] regulations that would allow [them] to direct police to arrest civilians, remove them from their homes, or seize their property if [they] believe they have spread information that could harm national morale or served as the basis for enemy propaganda’. As the Moroccan Jewish Marxist Abraham Serfaty analysed decades ago in his prison writings on Palestinian liberation, there is a ‘fascist logic’ at the heart of the Zionist settler-colonial project of dispossession, domination and displacement. While it may be disavowed by liberals, unless its core mechanisms are dismantled for good, it cannot but re-emerge, virulently, at every crisis. As testified by its broadsides against the hypocrisy of those who claim that they want a two-state solution while never intending to bring it about, the governing Israeli far-Right is in many ways saying the quiet part very loudly. At a time when the occupation and its brutalisation of Palestinians has been normalised and treated to all intents and purposes as interminable, the fascistic settler and religious right has come to affirm and celebrate the structuring violence and dehumanisation that marks Israel as a settler-colonial project – one which liberals have thought to mitigate or minimise, but never truly to challenge. In Israel, as in too many other contexts today, the ascendance of fascism might initially appear as a break or an exception, but it is deeply rooted in and enabled by a colonial liberalism that will never countenance true liberation.
유럽의 극우 열풍이 오스트리아 총선까지 집어삼켰다.
오스트리아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 자유당이 극우 정당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망됐다.
자유당은 29.1%를 득표해 칼 네함머 총리를 배출한 중도 보수 성향의 국민당(26.2%)을 약 3%포인트 차로 앞설 것으로 예상됐다.
중도 좌파 성향인 사회민주당(20.4%), 진보 성향의 네오스(8.8%)와 녹색당(8.6%)이 그 뒤를 이었다. 총선 투표율은 약 78%를 기록했다.
출구조사 발표 뒤 헤르베르트 키클 자유당 대표는 총선 승리를 선언했고, 네함머 총리는 총선 패배를 인정했다.
키클 대표는 공영방송 ORF와 인터뷰에서 "오늘 유권자들은 이 나라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상황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며 "우리는 정부를 이끌 준비가 돼 있고, 시민들과 함께 변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당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가 예상되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해 연정을 위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네함머 총리는 자유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과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키클을 총리로 임명할 수는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사회민주당, 네오스, 녹색당 역시 키클 대표와의 연대를 배제하고 있어서 자유당이 연정 구성을 위해 당 대표인 키클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망했다.
정치학자 피터 필츠마이어는 ORF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몇 주 동안 자유당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것이 총리직인지 키클인지 알게 될 것"이라며 "이번 선거를 이끈 것은 인물이 아니라 이슈였다"고 말했다.
자유당은 1950년대 나치 부역자들이 세운 극우 정당이다. 줄곧 비주류에 머무르다가 2017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했다.
키클이 대표가 된 이후에는 이민자 범죄에 대한 두려움, 높은 인플레이션, 코로나19 시기 정부의 엄격한 조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최대한 활용해 1당 도약을 눈앞에 뒀다.
키클 대표는 "오스트리아를 (게르만족의) 요새로 만들겠다"며 강력한 반(反)이민, 반유럽연합(EU) 등을 주창하고 있다.
자유당은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지난 주말 당원들이 나치 친위대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친러시아, 반이슬람 성향으로 분류되는 키클 대표는 지난 7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긍정당 대표 등과 극우 노선 연대체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들' 창설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극우 정당의 확장은 유럽 전반의 흐름이다.
지난해 네덜란드 총선에서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극우 성향 자유당이 1위를 차지했고, 그에 앞서 2022년 9월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는 조르자 멜로니가 대표인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승리했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강경 우파와 극우 정당이 차지한 의석수를 합치면 총 167석(총 720석 가운데 23.2%)으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
‘민족’이 되고자 한 유대인이 만든 모순과 비극
민족이 되고자 한 유대인의 정체성 찾기는 팔레스타인에서 고질적인 분쟁으로 귀결됐다. 팔레스타인 분쟁이나, 트럼프주의는 그런 정체성 운동이 불러온 거대한 역사적인 역작용이다.
중동분쟁의 격화시켜 온 이스라엘의 강경 우익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결국 물러날 기미다. 하지만, 그의 퇴장이 중동분쟁에서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극우 민족주의 정당 ‘야미나’와 ’새로운 희망’이 ‘반네타냐후 연정’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야미나의 대표 나프탈리 베네트가 차기 연정의 임기 전반에 총리를 맡기로 했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이 깨진 주요 원인인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운동의 지도자이다. 강화되는 유대 민족주의 조류가 그 배경이다. 1990년대 들어서 이스라엘의 인구 구성 및 정치적 지형 변화가 건국의 주역인 사회주의 성향의 노동당을 몰락시키고, 강경 우파 리쿠드당을 부상시켰다.건국 이후 중동 지역에서 온 후발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우파들은 이들을 기반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집권을 이어왔다. 중동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에서는 ’세파르디’라 부른다. 세파르디는 본래 지중해 지역의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연안의 중동 지역 유대인을 일컫는 말로 바뀌었다.이스라엘 건국의 주도 세력인 동유럽 유대인인 아슈케나지는 중상류층을 형성하고 서방의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반면, 이들은 경제적으로 중하류층인데다 훨씬 보수적이다. 이스라엘에 정착한 이후 자신들을 아랍계 주민과 대비하며 유대 민족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보수화됐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 정착촌 개척민의 다수여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에 가장 반대한다.이스라엘은 건국 70돌을 맞은 2018년 7월 기본법의 하나로 제정된 ‘민족국가법’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조국이며, 그들은 배타적 자결권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이스라엘을 ‘유대인들의 배타적 민족국가’로 선언한 것이다. 어떤 현대 헌법에서도 그 국가를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국가로 규정하는 조항은 없다.유대인이 ‘민족’인지, ‘종교공동체 구성원’인지는 오래된 논쟁이다. 유럽에서 18세기 이후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이에 기반해 반유대주의가 종교적 차원에서 인종주의적 차원으로 강화되자, 유대인들도 대항적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으로 자구책을 찾았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현재 유대인들은 고대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 주민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 시오니즘의 중심 담론이다.그런 주장이 증명된 바는 없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역사 교수 슬로모 잔드는 <유대인의 발명>이라는 저서에서 서기 1세기 로마가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낸 디아스포라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서기 7세기 무슬림들의 팔레스타인 점령 때에도 아랍인들의 입식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의 유대인들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지중해 지역에서 활발했던 유대교 포교로 인한 개종자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과거 유대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부분 남아서 기독교도를 거쳐 무슬림으로 개종해서, 현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오히려 혈연적으로 가깝다고 주장했다. 건국의 아버지 다비드 벤구리온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유대인과 같은 동족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분석이 아니어도,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지독한 모순이다. 나치에 의해 인종주의적 박해를 당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디엔에이(DNA) 분석 등을 통해 자신들이 인종적으로 과거 유대 주민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안족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나치의 우생학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20세기 초 빈의 저명한 유대교 랍비이자 유대사학자 모리츠 귀드만은 시오니즘이 반유대주의의 이면일 뿐이라며 “대포와 총검을 장착한 유대교는 다윗과 골리앗의 역할을 뒤집어서 우스꽝스러운 모순을 자아낼 것”이라고 섬뜩하게 미래를 예언했다.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은 민족과 인종의 정체성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국제적 연대만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시오니즘에 반대했다.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편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진보운동이 활로를 찾지 못하면, 민족이나 인종, 젠더, 종교 등 정체성에 기댄 운동이 무성해진다. 소수와 약자의 정체성에 바탕해, 이들의 지위를 향상하는 운동은 필요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그런 정체성 운동이 주류가 돼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 분쟁이나, 트럼프주의는 그런 정체성 운동이 불러온 거대한 역사적인 역작용이다. 우리의 민주진보 진영도 젠더와 세대 담론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