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고대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 발해

Jobs 9 2023. 12. 31.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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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남북국시대에 대한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은? 

① 발해는 일본과 교류하며 무역에도 힘썼다. 
② 발해의 무왕은 신라와 연합해 당을 공격하였다. 
③ 발해는 신라도라는 교통로를 이용해 신라와도 무역하였다. 
④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을 동아시아의 무역을 장악하였다. 

【해설】 정답 ②  
발해 무왕 때 장문휴의 수군으로 하여금 당의 요서지방과 산둥 지방을 공격하기도 하였는데(732), 당의 요청을 받은 신라가 발해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① 발해 무왕은 돌궐을 이용하여 당을, 일본을 이용하여 신라를 견제하였다. 일본과의 무역에서도 상경에서 동경을 거치는 무역교통로인 일본도를 통하기도 하였다.
③ 발해 문왕은 신라와 상설 교통로(신라도)를 개설하여 신라와의 관계도 개선하려 노력하였다. 
④ 장보고는 완도에 해군 기지이자 무역기지인 청해진을 설치(828)하여 해적을 소탕하였으며 남해와 황해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였다. 
'무인당장 요(기)서' 무왕 대무예  인안 당과대결 장문휴 산둥공격 요서 당과 격돌 
'문대 중상 신주자'  문왕 대흠무 대흥보력 중앙조직3성6부 상경천도 신라도 주자감 
'선건 해북남서 지방'  선왕 건흥 해동성국 북말갈족복속 남신라국경 서요동진출 지방조직5경16부62주

 


신라의 전제 왕권 강화

 

1. 왕위의 독점

  • 태종 무열왕의 직계 후손만이 왕위 세습

2. 신문왕의 왕권 강화

  • 김흠돌 모역 사건 → 일부 진골 귀족 숙청
  • 관료전 지급, 녹읍 폐지
  • 유학을 정치 이념으로 수용, 국학 설립 → 유학 교육이 목적

▶신라와 당은 왜 서로 동맹을 맺었을까?

진덕여왕 2년 이찬 김춘추와 그 아들 문왕을 당에 파견하였다. …… 태종이 김춘추에게 소원을 묻자 김춘추가 말하였다. " 신의 나라가 대국을 섬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제는 강성하고 교활하여 침략을 일삼아 왔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군사를 보내 그 흉악한 무리를 없애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백성은 모두 포로가 될 것입니다. 육로와 수로를 거쳐 섬기러 오는 일도 다시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크게 동감하고 군사를 보낼 것을 허락하였다."삼국사기"

-7세기 중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양면 공격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와의 동맹을 꾀하여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고구려의 거부로 동맹이 성사되지 못하자 당과 동맹을 맺으려고 하였다. 한편, 당은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전략에 따라 신라와 연합을 추진하면서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였다. 당과 동맹을 맺는 데 큰 역할을 하였던 김춘추는 진덕여왕에 이어 왕위(태종 무열왕)에 오르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

 

3. 통치 체제 정비

중앙 행정 집사부 아래 13부를 두고 업무를 분담, 집사부 장관인 시중(중시)이 국정 총괄
지방 행정 군사∙행정 요지에 5소경 설치, 전국을 9주로 나눔, 주 아래 군∙현을 두고 지방관 파견
군사 조직 9서당(중앙군), 10정(지방군)

 

 

신라 말의 동요

 

1. 전제 왕권 붕괴

  • 혜공왕(8세기 말) 이후 왕위 쟁탈전 전개 → 왕권 약화, 상대등의 권력 강화

2. 농민 봉기 발생

  • 중앙 정부의 강압적인 수취 → 원종과 애노의 난 발생

3. 호족의 성장

  • 반독립적 세력으로 성장 → 지방의 행정·군사·경제적 지배권 장악

4. 후삼국의 성립

  • 견훤이 후백제(900), 궁예가 후고구려 건국(901)

 

 

발해의 건국과 발전

 

1. 발해의 건국(698)

  • 고구려 유민(지배층)과 말갈족(피지배층)으로 구성, 대조영이 건국

2. 고구려 계승 의식

  •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발해왕을 고려왕이라고 표현), 온돌 장치, 모줄임 천장 구조, 불상(이불 병좌상), 기와·벽돌 무늬

▶발해의 고구려 계승 의식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

발해 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의 별종이다. 고구려가 망하자 대조영은 그 무리를 이끌고 영주로 이사하였다. …… 대조영은 드디어 그 무리를 이끌고 동쪽 계루의 옛 땅으로 들어가 동모산을 거점으로 하여 성을 쌓고 거주하였다. 대조영은 용맹하고 병사 다루기를 잘하였으므로 말갈의 무리와 고구려의 남은 무리가 점차 그에게 들어갔다."구당서"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였고,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하게 나타내었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사실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와 "속일본기"에 발해를 고려, 발해왕을 고려국왕으로 표현한 것을 비롯해 정혜 공주 묘의 모줄임 천장 구조와 온돌 양식, 벽돌과 기와 무늬, 불상 등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유물·유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음

 

3. 발해의 발전

무왕(8세기 초) 문왕(8세기 후반) 선왕(9세기 초)
북만주 일대 장악, 당과 대립 → 산둥 반도를 선제 공격, 돌궐∙일본과 친교를 맺고 당∙신라 견제 당과 친선 관계 → 당의 3성 6부제 도입, 신라도 개설, 중경에서 상경으로 천도, 독자적인 연호 사용 요동 지방까지 진출, 남으로 신라와 국경을 접함 → 옛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차지, '해동성국'이라불림

 

4. 발해의 멸망

  • 거란의 공격으로 멸망(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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