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시어ㆍ시구 풀이
고매한 : 인품 등이 고상하고 굳은
나타 : 게으르고 느린. 나태한,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
작품개괄
-작가 김수영
-성격 주지적, 관념적, 상징적, 참여적, 산문적
-출전 <평화에의 증언>(1957)
-제재 폭포
-주제 부정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의지적 삶의 추구
-구성
1. 1연 : 폭포의 외적 모습
2. 2연 : 폭포의 내적 속성(고매함)
3. 3, 4연 : 폭포의 소리(선구자적 면모)
4. 5연 : 폭포의 고매함(나타와 안정의 부정)
-특징
1. '떨어진다'의 반복을 통한 운율 형성과 주제 암시
2. 자연물에 대한 지적 인식의 표현
-표현 '떨어진다'의 반복에 의한 운율 형성
작품 해제
이 시는 자유당 독재 정권으로 인해 자유가 억압당하고 인권이 유린된 채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이 땅의 역사적 현실 상황에서 양심 있는 세력의 곧은 목소리를 갈구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부정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용기 있게 올바른 소리를 하여,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소시민의 의식을 일깨우는 지성인의 삶의 태도가 형상화된 이 시는 '폭포'라는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에 접해서도 일상적 영탄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물줄기의 낙하라는 무의미한 자연 현상에서 무엇인가 정신적 의미를 찾아내려 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사회 현실에 대응해서 사람들이 취해야 할 행동 양식 같은 것이리라. 화자는 폭포를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삶의 자세에 관한 준열한 의지의 전형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안이하고 타협적인 삶을 각성시키는 실천적 행동으로 본다. 이렇게 이 시는 자연물 '폭포'를 소재로 하여 사회적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정신적 자세를 보여 준다.
작품의 심화 감상
1) '폭포'의 함축성
→ 폭포는 이 시의 중심 소재로서, 의식이 깨어있는 선구자적 지성인을 비유하고 있는 시구이다. 부정적 현실에 타협하는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항상 곧은 자세로 살아가려는 굳은 의지를 지닌 인물을 뜻하는 것이다.
2) 부정적 현실
→ 밤은 암울한 현실, 다시 말하면 부정적 현실을 뜻한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폭포는 떨어지기를 결코 그치지 않는데, 여기에는 바로 이와 같은 비타협적 자세로 곧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만 고매한 정신이라 말할 수 있다는 시적 인식이 들어 있다.
3) 선구자적 행동성
→ 부정적 현실에서도 굳은 지조를 버리지 않는 양심의 소리는 또다른 양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올바른 지성의 선구자적 면모를 노래한 것이다.
4) 안이한 삶에 대한 비타협적 자세
→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정적 현실의 타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지성의 태도임을 암시하고 있는 구절이다. '뒤집어 놓는'이라는 표현은 현실에 안이하게 타협하려는 태도를 결연히 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폭포라는 자연물에 대한 지적 인식을 바탕으로 부정적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 자세를 일깨우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거침없이 절벽으로부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에서 부정적 현실을 준엄하게 질타하는 고매한 정신을 읽어내고 있다. 안정과 나태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강직한 정신을 가다듬어 가는 지성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에서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이형기의 <폭포>에서는 폭포라는 자연 현상을 통해 존재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보여준다
* 김수영의 <폭포>와 이형기의 <폭포>를 읽고, '폭포'가 갖는 함축성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풀이) 김수영의 <폭포>에서 '폭포'는 부정적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고매한 정신의 표상인데, 이와 비슷하게 이형기의 <폭포>에서 '폭포'도 파괴와 부정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탄생을 함축하는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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