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자기의 집착을 내려 놓는 것이다. 기복은 집착하는 것이다.
기도(祈禱), 기복(祈福) 차이
기복은 '성취 원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취 원리를 모르고 막연한 행위만 있을 때 기도는 기복이 됩니다. 어떤 원리로 소망이 성취되는지, 거기에 대한 밝은 이해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막연한 행위는 성취 원리를 모르기에 신비주의나 미혹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더 좋은 기도법이 있다고 하면 솔깃해하여 지금까지 하던 믿음이 흔들리거나, 다른 뜻이 있는 분들에게 속아 막대한 재물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성취 원리를 알아야 기복이 아니고 기도가 됩니다.
기복은 영험, 신통,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결과(果)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시적 성과는 주로 단기적 형태를 띱니다. 즉, 기복적일수록 '가시적, 단기적 성과 위주'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런 차이를 알지 못하기에 당장 이익이 되고 눈앞에 성과가 드러나는 기복에는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몰려드나, 참다운 기도는 그 반대로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를 하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기복에서 흔히 보는 영험이나 신비한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복적 기도를 하는 분들이 꿈속에서 관세음을 만나고 천사를 만나 감격해도 기도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해는 오늘도 뜨고 지고 세월은 아무 일도 없이 무심히 오갈 뿐입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무료하고 따분한 것이 기도입니다.
그 대신 기도에는 '나의 무한 확대'가 일어납니다. 내 세계의 무한 확장이 일어나며 '좁은 나, 작은 나(我)' 가 '더 큰 나, 끝없는 나'로 변해 갑니다. 그리고 점점 밝아집니다.
그와 함께 나도 모르는 사이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아무 일 없는 속에 병이 낫고 사업이 풀리며 우환이 사라지는 등, 실로 불가사의한 일들이 우리도 모르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도의 성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얼핏 보면 기복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실은 많이 다르니, 가령 기복의 성과가 단기적이고 일회적이라면, 기도의 성과는 장기적이며 복합적입니다. 기복은 일회성 소망 성취의 수준에 머무르지만, 기도는 소망은 물론 잃어버렸던 밝은 나를 찾게 해 줍니다.
이러한 차이는 기복은 밖에서 오는 것인데 비하여 기도는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복은 밖의 힘, 절대자 등 타인에 의존하는 미혹한 마음의 결과인데 비하여, 기도는 내 안에 깃든 본래 밝은 나의 진리의 발현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밝은 나의 무한성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기도의 공덕은 끝이 없고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은 기복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반드시 기도로 들어가야 합니다. 기복에만 머무르는 마음은 지금 당장은 우환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영원한 진리의 실현은 오지 않습니다. 그저 당장 급한 불만 끌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는 마음은, 점점 눈앞의 내 이익만 추구하며 끝없는 미혹의 나락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기복은 성취하면 할수록 어두워지지만, 기도는 성취되면 될수록 밝아집니다.
기도와 기복.
사람들은 기도라고 하는 것이 "초월자에게 원하는 것을 비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기복이다. 기복과 기도는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기복이란, 인간의 철학이 발달하지 않은 신화의 시대 때 신께 비는 행위를 나타낸다. 기독교, 불교, 도교 등. 거의 모든 종교의 기도는 사실상 기복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기도일까? 기도의 진짜 의미를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심리적 작용을 의미한다. 즉, 자기 수양의 방법인 셈이다. 사실상 인도의 요가, 명상이 기도에 더 가깝다. 나는 오랫동안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동양철학에는 기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장 큰 예가 바로 占(점)이다. 인간에게는 각자의 팔자가 있다고 한다. (물론 필자가 점을 믿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동양철학에서 점괘를 해석하고 점괘를 따르는 행위를 할 때라는 예를 드는 것뿐이다.) 그들은 나온 점괘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만일 하늘에서 비가 온다는 점괘가 나왔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초월자에게 비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바로, "비가 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양철학의 점괘가 더욱 기도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사실, 기독교에서 하는 기도는 기도라기보다는 기복에 가깝다. "~~ 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 내용이 대부분이며, 심지어 교회 목사들 까지 그런 기도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철학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철학이 발달할수록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안에서 찾는다.(물리학적 관찰과는 다른 의미로, 심리적인 고찰을 의미한다.) 기도의 진짜 의미는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그리며 누군가가 나에게 안 좋은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그 원인을 환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는 것을 말한다. 사실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는 목사들을 본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것이 안 좋다는 이유로 찾아다니며 욕하고 비난하는 성향은 아니다. 단지 나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안티를 하는 것일 뿐이다. 부디, 기독교인들이 기복에서 벗어나 기도를 하며 자신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기독교 전체가 없어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그들이 신화에서 철학으로 나아오기를 바란다. 그 첫걸음이 바로, 기복과 기도의 차이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