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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의 남한, 건국준비위원회의, 미군정, 정당 난립, 좌우 갈등

Jobs9 2022. 9. 1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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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의 남한의 모습

 

● 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1945.8.15)

 

(1) 조선건국동맹을 이끌던 여운형의 활동:“행정권의 이양, 정치범, 경제범의 석방, 3개월간 식량확보” 민중의 지지 확보

 

(2) 광복 이후 최초의 정치단체로 전국적으로 조직, 산하에 치안대 설치, 인민위원회를 통해 지방통제

 

(3) 사회주의자 여운형이 위원장, 중도우파 안재홍이 부위원장 ⇒ 초기 중앙조직은 좌우연합적 성격 强

 

(4) 지방의 지부는 인민위원회를 조직 (좌익성향이 강함)

 

(5) 건국강령 발표 ((일단 뭉쳐야 했기에 이념에 상관없는 추상적인 문구들))

 

1. 우리는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함 ((우리힘으로 쟁취하지 않은 켕김이 있기에))
2. 우리는 전 민족의 정치, 경제, 사회적 기본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함
3.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여 대중 생활의 활보를 기함

 

(6) 조선인민공화국 선포(1945.9.6) ⟷ 송진우, 김성수 등 한민당의 인공타도, 임정봉대론(45.9.8)

- 선포 후 건준위는 해체 *cf.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48.9에 소련의 지시로 성립한 북한정권

==>준비위원회보다는 뭔가 완성된 단체가 필요// 재편할때 안재홍 나가버림 (사회주의 세력이 쎘기에)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

- 주석 : 이승만(수락하지 않았음, 국내에 있지도 않았음), 부주석 : 여운형

→ 안재홍도 빠져 사회주의 세력만 남아 대표성이 약해진 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승만을 주석으로 추대함

 

(7) 한계: 민족주의 우파(송진우, 김성수 등)의 불참((약간 친일흔적이 있는사람들)), 미군정도 건준위 활동을 인정을 하지 않음

 

 

 미군정의 실시(1945~1948): 인ㆍ공 선포되던 날 미군 진주

(1) 미군정체제확립(군정청 설치.1945.9.9): 조선인민공화국과 상해 임시정부 부정. 친미정부의 수립지원

 

(2) 친일 관리와 경찰을 그대로 고용, 공산주의자의 활동만 엄격히 통제

 

(3) 미군정의 경제 정책

- 삼일 소작제 실시: 소작료가 수확량의 1/3을 초과할 수 없음

- 적산 몰수: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재산과 일본은 법인 재산을 관리하기위해 신한공사(1946.2)를 설립

- 귀속재산불하: 기업이나 개인에게 불하 → 1950년대 중반 상당수의 기업이 민간에 넘어가 개인 소유 기업으로 바뀌어 산업 자본 형성에 기여하게 됨.

- 귀속농지분배: 무상몰수, 유상분배와 귀속(=적산) 농지만을 분배하여 농민과 지주 모두로부터 지지X

 

(4) 9월 총파업(1946.9.23): 미군정의 경제 정책 실패

 

 

 정당의 난립

 

(1) 한국민주당(한민당)(1945.9): 외판자본가ㆍ친일파 중심

- 송진우ㆍ김성수 등 극우세력으로 결성, 국내지지기반이 없었던 이승만과 합세, 미군정과 긴밀한 관계

- 조선인민공화국에 대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려함(임정봉대론)

- 경찰 핵심 세력포함 (조병옥, 장택상 등)

- 해방 후 한민당을 비롯한 친일세력들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계열의 친일잔재청산과 토지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을 반대하고, 중경의 임시정부를 지지한다는 임정봉대론을 주장하였으나, 미군정이 임정의 정통성을 부인하자 방침을 철회하고 찬탁운동 전개.

 

(2) 조선공산당(1945.9)==>(극좌)

- 해방 직후 장안파와 재건파 공산당으로 나뉘어 있었음. 박헌영 중심으로 통합.

- 박헌영이 중심으로 극좌파세력으로 결성, 대지주의 토지에 대한 무상몰수를 주장, 친일파처단에 적극

- 미군과 충돌이 잦았음, 처음엔 협조적이었으나 위조지폐사건(1948.10)을 계기로 악화

 

(3) 조선국민당(1945.9)

- 안재홍여운형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내에서 좌파가 강해지는데 불만을 품고 군소 정당을 흡수하여 조직

- ((한민당의 부역한 조병옥 장택상등 친일파 세력과는 함께할수 없다==>한민당이 극우라면 국민당은 중도우파))

- 김규식을 중심으로 충칭의 임시정부를 지지하며 중도우파를 지향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정치이념을 표방(서구의 민족주의와 다르다!) → 좌우이념의 통합 추진, 개방과 통합의 신민족주의(지주 노동자 모두 잘사는 만민공생)

- 모든 사람이 모두 제 말을 하고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산다는 다사리 철학 추진

- 안재홍이 1947년 7월 미군정 민정장관에 임명되면서 완전히 해체

 

(4) 독립촉성중앙협의회(1945.10) ==> 미군정의 지지하에 만듬

      - 이승만이 귀국하여 결성 우익들의 연합체, 무조건 단결론. 한국민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만이 지지

      - 김구와 다르게 일본찍고 오면서 미국 전용기로 옴.

      - 장점은 미국에만 있어 친일파랑 연결이 없다는것. 단점은 국내기반이 없다. 

- 좌익계열의 참여를 거부 → 좌·우 대립이 더욱 심화

 

(5) 조선인민당(1945.11)---건준위 다음으로..조선인민공화국 미국이 인정안해주니...세번째로 당을 만듬 (중도좌파)

- 여운형 중심으로 중도좌파세력으로 결성, 좌우합작운동(1946)이 추진되는 시기에는 좌파를 대표하여 참여

- 조선공산당과 비슷하나 덜폭력 합법적 방향.

 

(6) 한국독립당(1945.11) ==> 사실은 이념적으로 이곳이 정말 극우 (한민당은 약간 이념보다 이익위주로 뭉친당)

- 김구가 귀국하여 결성한 우파세력

- 삼균주의 

- 반탁운동

 

(7) 민족자주연맹(1947.12)

- 김규식을 위원장으로 한 중도적 정치 조직. 좌우 합작 원칙 견지

-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 → 남북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1948.4.27~30)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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