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1. 전쟁의 발발 - 1592년 표면적(정명가도)ㆍ실질적(통일직후 제후들 불만분산), 1593년 조명연합작전
2. 의병조직: 전직관리, 유학자(사림), 승려 (유격전술) * 정문부 승전기념 북관대첩비: 함경도
의병장 | 곽재우(의령, 홍의장군, 최초의병장), 정인홍(합천), 조헌(충청도), 고경명, 김천일, 홍언수, 홍수남, 정문부, 김덕령(모반 누명), 김면(부자 군자금 전재산 다 털어서 모집), 임중량, 서산대사, 사명당, 영규, 처영 |
관군 | 유성룡(평양탈환), 권율(행주대첩), 신립(충주, 탄금대 대패), 이일(상주), 김시민(진주혈전+곽재우), 이순신 |
3. 수군의 활약(이순신) [ 옥 사 한 부 명 노 ]
1) 옥포해전(거제도, 최초승리) → 사천해전(최초거북선) → 한산도대첩(유인해서 학익진,최대승리) → 부산포싸움 →명량대첩(정유재란) → 노량대첩(이순신최후)
* 3大대첩: 한산도, 진주혈전, 행주대첩[한 행 진]
* 진주성 승리(김시민)--평양성 수복-- 수도권에선 벽제관에서 오히려 패배(강화교섭시작 93.3월) --93년6월 2차 진주성 패배(논개)--강화회담 거의 3년후 결렬
*97년1월 정유재란 (울산 서생포, 4도확보 목표)--선조에게 이중간첩이 거짓정보흘림, 이순신 불복종----이순신 사형은 면하고 백의종군---원균 한산도 총집결(수군 단독출전 조정에서 명령, 원균도 반대했으나)---가덕도 상륙 피해, 칠천량 기습패배, 대패, 원균 사망, ----그 후 일본은 전라도 진격가능 남원, 전주까지 진격---남원에서 학살(만인의 총, 도공끌려감, 귀와 코잘라가서 에비에비)----판옥선 13척뿐, 명량대첩(그 와중에 선조는 육군으로 합류하라고)----보급선 끊겨 다시 부산으로 후퇴(장기농성 시작)----울산성전투(왜성)---도요토미히데요시 사망(퇴각)----선조 선무공신 3명 지정(권율, 이순신, 원균)
#조선인 노예로도 팔려감: 이탈리아로..안토니아 코레아(루벤스)
4. 임진왜란의 결과(영향)
① 훈련도감설치(삼수미세 2.2두 징수), 속오군체제(양천혼성군), 비변사의 최고기구화[삼 을 임]
② 거북선(태종), 비격진천뢰(이장손), 화차(변이중), 서적(동의보감, 징비록, 난중일기)
③ 경지면적 감소(170→54만결), 농촌피폐, 대동법실시의 동기제공
④ 3대 사고 손실(전주사고만 남음), 문화재소실(불국사,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⑤ 신분제동요(충청도에서 이몽학의 난, 공명첩 대량발급), 남인은 왜란의 책임을 지고 정계에서 밀려남
⑥ 일본문화 수준 향상(도공 이삼평ㆍ심당수 포로, 성리학 전래(이황의 주리론))
⑦ 명ㆍ청 교체, 사대사상고조(관우숭배사상), 정부불신
⑧ 일본으로부터 담배, 고추, 호박, 토마토 등 새로운 작물의 전래
⑨ 왕권ㆍ의정부ㆍ6조는 약화, 비변사ㆍ이조전랑ㆍ삼사의 권한은 강화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1. 정묘호란(1627)
1) 원인: 친명배금 정책, 모문룡이 평안도 가도에 주둔, 이괄의 난(잔당이 후금에 조선정벌을 요구)
2) 결과: 정봉수와 이립 등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합세. 후금은 형제 관계를 조건으로 강화를 체결
2. 병자호란(1636. 12. 9)
1) 원인: 후금은 국호를 청이라 고치고 황제를 칭하면서 조선에 대한 군신관계를 요구
2) 국론의 분열
척화파(주전파) | 주화파 |
명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모요, 오랑캐(청)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모원수입니다.. - 김상현 중심, 홍익한, 윤집, 오달제 가담 - 화이ㆍ명분ㆍ친명배금 강조(만동묘ㆍ대보단) - 북벌론 = 복수설치론 |
정묘년의 맹약을 아직 지켜서 몇 년이라도 화를 늦추시고~,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 최명길 등 - 실리적(이자겸, 김부식과 비슷) - 북학파로 계승 |
3) 전쟁 개시 : 청 태종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침입 → 의주에서 임경업이 백마산성을 지키자, 청의 기마병은 우회하여 개경 공격 → 5일 만에 개경함락 →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 → 1637년 1월 1일 남한산성에서 완전 고립 → 성 안에서 45일 만에 성문을 열고 항복 → 삼전도의 굴욕(1월 30일 인조는 세자와 대신을 거느리고 청 태종에게 수항단에서 항복)
4) 결과: 조선은 청에 복속. 소현세자, 봉림대군, 3학사(김상헌, 홍익한, 윤집, 오달제)가 청의 인질
3. 호란의 영향
1) 국토의 황폐화: 왜군의 침입에 비하여 기간이 짧았고 일부지역에 한정되었으므로 피해는 적은편
2) 북벌론 제기: 소중화사상 (거청론, 대보단, 만동묘, 촌주휘편)과 화이론을 명분으로 전개
효종때 송시열, 송준길, 이완들이 어영청을 중심으로 군대양성 (그러나 서인들의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과 남인진출 견제책으로 악용), 숙종때 윤휴를 중심으로 북벌론 제기ㆍ대보단설치
3) 북학론 대두: 북벌론은 점차 쇠퇴하고 18세기 후반 청의 발달된 문물을 수용하자는 북학론 대두
4) 나선정벌: 러시아가 극동으로 진출하여 청과 대립하자 조선에 원병 요청 변급(1차)ㆍ신유(2차)파병
● 탕평책의 실시
탕평론의 배 경 |
서경 홍범조의 왕도탕탕, 왕도평평에서 비롯된 용어, 무편무당, 왕권ㆍ신권의 조화 17C 중엽까지는 붕당을 중심으로 상대방의 존재와 비판을 인정하여 정국이 안정 경신환국에 남인이 밀려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일당전제화로 변질 붕당정치가 변질되어 환국정치가 되면서, 일부 벌열가문이 정권을 독차지 극단적 정쟁, 공론보다 사리에 집착, 사회분열, 왕권의 약화등이 실시원인 일당전제가 아닌 왕권전제가 탕평론의 본질이자 목표, 17C후반 왕에 대한 타율적 붕당 |
|
탕평론 전 개 |
숙종 | 조제보합론(명목상탕평) 능력중심의 인재를 기용하여 붕당사이의 화합을 처음 제창, 숙종의 편당적 조치와 노론중심의 일당전제화로 실패 |
영조 | 완론탕평책, 온건론자등용, 이조낭관의 낭천권ㆍ천거권 박탈, 일종의 조제보합론 | |
정조 | 준론탕평책, 남인시파 고루 기용, 시시비비 엄격!! [정조준] | |
결 과 | 붕당간의 세력을 균형화 하여 왕권강화를 도모하고 정국안정을 꾀하려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 |
91 영ㆍ정조의 개혁정치
영조의 치적
영 | 3 | 신 | 속 | 무 | 기 | 농 | 노 | 탕 | 균 | 임 |
조 | 대 유 폐 |
문 고 |
대 전 |
원 록 |
로 과 설 치 |
권 농 정 책 |
비 공 감 법 |
평 책 |
역 법 |
오 화 변 |
□ 정조의 치적
정 | 제 | 추 | 장 | 신 | 정 | 홍 | 일 | 한 | 대 | 생 | 탁 | 규 | 서 |
조 | 언 절 목 |
관 지 |
용 청 |
해 통 공 |
리 자 |
재 전 서 |
성 록 |
구 자 |
전 통 편 |
생 자 |
지 지 |
장 각 |
얼 발 탁 |
왕권강화 | 영조(18세기) | 정조(18세기) |
붕당 완화의 추진 |
탕평책 실시(완론탕평), 탕평교서 반포 이인좌의 난, 나주괘서 사건 등으로 실패 탕평파(붕당을 없앨 것을 표방)가 정국의 주도, 노론의 절대적 권력 장악 노론 소론을 번갈아 등용하여 정국 더욱 혼란야기 시파와 벽파의 대립 (사도세자 사건) 붕당정치의 폐단을 해결하지 못함 산림의 존재를 부정 이조전랑의 권한약화(3사관원 임명권 폐지) |
탕평책 실시(준론탕평), 탕탕평평실(거실) 홍국영을 중심으로 왕권강화 개혁 단행 사림을 중심으로 한 공론중시의 정치가 아닌 재상권의 강화를 통한 관료 정치의 실현 척신, 환관의 제거 세력균형을 위해 권력에서 배제됐던 소론과 남인계열(시파)을 중용, 의리와 명분 중시 벽파 배제, 시파가 정국을 주도 당색에 구애받지 않고 개혁적 인물 위주로 관리 등용 이조전랑의 후임자 천거권 완전폐지 |
왕권강화 | 수도방위를 위해서 수성윤음(1751)을 발표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세군영이 도성을 나누어 방위하는 체제 |
장용영 설치(친위부대) ↱ 고위관리X 초계문신제(당하관 이하 능력있는 관리를 재교육) 규장각 설치: 퇴색한 홍문관을 대신해 문형의 상징적존재로 삼음, 서얼 등용, 내각일력 편찬 문체반정: 노론벽파의 신문체를 억압하고 과거의 고문을 사용토록 한 조치, <열하일기>같은 참신한 문장 비판 수령 권한 강화: 군현단위의 향약 직접 주관 |
토목건축 | 청계천의 준설 작업과 유로변경 사업 → 치수사업의 본격적 추진 |
수원 화성의 건설(수원성): 수원에 축만제와 만석거를 설치하고 대농장(대유둔)을 만듦 |
서원정리 | 대폭 정리 | 없음 *수원으로 사도세자의 묘(현륭원)이전 |
민생 안정 |
균역법의 시행(군포 1필) 삼심제를 엄격하게 시행(1729) 신문고제도의 부활(1771): 병조에서 담당 노비에 대한 상전의 사형(私刑)금지 노비종모법의 실시(1731) |
신해통공(1791): 육의전을 제외한 금난전권 폐지 → 시전상인과 사상의 자유경쟁 → 시전상인의 활동 위축 *1851년 신해통공: 철종의 서얼허통 정책 |
법전편찬 | 속대전 | 대전통편 |
문물의 정비 |
동국문헌비고(홍봉한, 한국학 백과사전) 속오례의, 무원록, 속병장도설, 해동악장 * 일성록: 영조부터 고종까지 조정과 내외 신하에 관련된 일기로 정조가 집대성 |
동문휘고(외교문서 정리), 규장총목, 고금도서집성 증보동국문헌비고, 탁지지, 추관지, 일성록 규정전운, 무예도보통지, 홍재전서 (정조의 개인문집) ⇒ 만천명월주인옹자서 |
* 청계천: 본래 이름은 개천. 치수가 어려워 잦은 물난리를 겪음. 태종 때 정비 사업 시작. 영조 때 준설 작업 외에 하천을 직선화하는 작업을 본격 추진. 19세기 순조와 고종 때에도 하천 정비 사업 계속됨. 일제강점기에 하천의 이름이 ‘청계천’으로 바뀜. 대규모의 준설공사 진행 |
● 세도정치
1. 세도정치의 배경
1 | 2 | 경 | 기 | 갑 | 신 | 이 | 순 헌 철 |
서 | 남 | 서 | 남 | 소 | 소 | 노 | 19C~ |
자율적붕당 | 타율적 붕당정치 → 탕평책(숙ㆍ영ㆍ정) | 세도정치 | |||||
선초~17C후 | 17후~19 C(경신환국때 원리붕괴) | 매관매직,민란 |
2. 시기 : 19세기 전반기 [순조(안동김씨) ~ 헌종(풍양조씨) ~ 철종(안동김씨)]
정조(18c이후) → 세도정치의 전개(1800~1863) → 흥선대원군의 정치 세도정치(63년간) ← ❘ → 구한말(근현대사, 세도정치 이후) |
3. 전개
1)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기: 정조 승하 후 순조(11세)가 즉위하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
노론 벽파가 다시 정국의 주도권 장악. 이들은 신유박해(1801)를 일으켜 정조가 규장각을 통해 양
성한 인물들을 대거 제거함. 또한 장용영을 혁파하고 5군영을 부활시켜 이를 장악.
2) 정순왕후가 죽자 김조순(안동 김씨)은 반남박씨와 풍양조씨 등 유력 가문의 협력을 얻어 정국을 주도
3) 순조 말년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통하여 척신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급사로 실패
4) 헌종 대에는 풍양 조씨 가문이, 철종 대에는 다시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세도정치가 전개
5) 흥선 대원군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세도 정치가 혁파됨
4. 세도정치의 권력 구조
1) 중앙 정치를 주도하는 정치 집단은 소수 가문의 출신으로 좁아지면서 그 기반이 축소
2) 폐쇄적 정치 집단의 형성: 비변사를 통한 정2품 이상의 고위직만이 정치적 기능을 발휘
3) 왕권의 약화: 비변사의 권력 집중(세도 가문 출신이 차지), 의정부와 6조 체제는 유명무실해짐
5. 세도정치의 폐단(19C 사회의 모습)
1) 관리의 수탈, 매관매직의 성행 = 수령자리의 매매(수령자리의 상품화), 삼정의 문란(전정ㆍ군정ㆍ환곡)
2) 총액제, 부세의 도결화(전세 외에 군포ㆍ환곡의 이자 등을 군현단위로 토지에 부과하여 화폐로 징수)
3) 지배층은 고증학에 치우쳐 개혁의지 상실, 일당전제화마저 부정하고 특정가문이 권력을 독점
4) 상품화폐경제의 성장 둔화(조선후기는 상품화폐경제가 성장, 세도정치에서만 둔화)
5) 백성의 저항: 홍경래의 난(1811)과 임술 농민 봉기(1862)
6) 역관들은 직업적 특수성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
7)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기였지만, 서민문화는 전성기
8) 정부의 시책: 삼정이정청 설치 → 암행어사 파견 → 실패 → 민란발생(소청ㆍ벽서운동) → 왕권약화
● 삼정문란과 민란발생
1. 삼정의 내용 (조세의 전세화, 토지단위로 조세부과)
- 전정: 영정법(4두) + 훈련도감 삼수미세(2.2두) + 대동법(12두) + 균역법(결작 2두) ⇒ 20.2두
- 군정: 군역의 대가로 1인당 군포 1필(균역법)
- 환곡: 춘대추납으로 1할의 이자를 가산
2. 삼정문란 (15C 전정, 16ㆍ7C 공납, 18C 군역, 19C 환곡문란 극심)
전정 | 은결(대장에없는 땅에 징세), 진결(황무지에 징세), 도결(정액이상), 백지(空地에 징세) |
군정 | 족징(친족) 인징(이웃), 강년채(나이를 줄여), 백골징포(死者), 황구첨정(어린애) 마감채(일시불) |
환곡 | 늑대(강제대여), 탄정(흉년감액부분까지) 반작(허위문서), 가분(저축분량까지) 허류, 입본 |
3. 민란 발생
발생 원인 | ① 신분제동요 ② 세도정치下부패 ③ 수취체제모순(총납제, 공동납부제등) ④ 농민의식성장 ※벌열양반(권반)>토반(향반)>잔반(몰락양반) |
민란 전개 | ① 홍경래의난(1811.순조): 19c초(민란의 선구적 역할) ② 진주민란(=임술민란,1862,철종):19c중(전국적 확대) ③개경민란 |
민란 결과 |
① 암행어사, 삼정이정청(1862)설치 ⇒ 실패 ② 농민자위수단‘계’조직 ③ 항조․ 거세운동 ④도적, 화전민 |
4. 적극적인 농민의 항거
1) 벽서(벽에 낙서), 괘서(행운의 편지) -> 탐관오리의 비방과 폭로
2) 거세(세금거부), 항세, 농민항쟁(가장 적극적)
3) 소청, 벽서, 괘서 등을 통한 농민의 항거 실패 후 나타난 것
5. 농민봉기(민란): 신분해방의 추진×, 정권탈취의 시도×, 동학의 영향×, 조선 왕조를 부정×
1) 주장 : 탐관오리의 척결, 삼정의 시정, 토지제도의 개혁
2) 홍경래의 난(몰락양반), (순조, 1811) : 최초, 최대, 김사미 효심의 봉기와 비슷, 지역감정 등,
몰락양반이 주체, 고려시대의 강동6주(거란의 1차 침입시 서희가 차지)와 지역이 일치함.
- 홍경래의 격문: “~평안도 놈이라 말한다.~”⇒ 지역차별이 원인
- 평안도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중국과의 사무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착취
- 홍경래 등 몰락양반과 이희저ㆍ우군칙 등 금광과 홍삼밀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자들이 주도하여 장기간 난을 준비
- 외척세도정치의 모순에 대한 반발, 몰락양반이 주도.(체제 유지가 아닌 반체제 입장, 전국적봉기X)
3) 임술농민봉기(=1862년 농민봉기=백건당의 난)
- 주도계층은 요호 부농층과 양반 토호층, 즉 주체는 농민이었고 몰락양반들도 가담
- 단성에서 시작 → 진주(진주민란으로 촉발) → 전국(북쪽의 함흥~남쪽의 제주에 이르기까지 확산)
- 조세수취 관계의 모순을 시정 하려는게 목표, 벽서·소청 등 소극적인 운동을 병행
- 경작 규모의 영세화로 자영 농민의 몰락 현상이 두드러졌다
- 정감록의 예언 사상과 미륵 신앙이 체제를 변화시킬 사상으로 이용되었다
- 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농민봉기의 주도자를 처벌(민심악화원인)하였다
- 서울로의 진격은 없었다.
● 실학(고증학)의 발생 (조선후기 17~18세기에 대두한 학문과 사회개혁)
- 밀려난 남인: 탈성리학, 정조때 천주교
- 밀려난 소론: 양명학
발생 배경 | 지주전호제의 심화와 소작농의 몰락에 대한 해결책으로 토지개혁론과 감조론 등장 양란후 정치ㆍ경제의 피폐와 지나친 붕당간의 갈등으로 몰락양반의 발생 청의 실증적 고증학의 영향으로 형식적 주자학(성리학)에 대한 한계인식 서양 문물이 청을 통해 들어오면서 대외교역에 따른 상인층의식의 성장 |
|
성 격 | 실사구시와 이용후생표방, 비판적ㆍ실천적 학문사상, but 유학범주 벗어나지 못함 현실적ㆍ민족적ㆍ민본적ㆍ근대지향적ㆍ귀납적, but 정책에 반영 안 됨! |
|
발달 단계 | 실학형성 | 인조반정 이후 |
선구자(17C초) | 이수광[지봉유설], 한백겸[동국지리지], 유몽인[어우야담], 김육[시헌력] | |
맹아기(17C중) | 유형원, 이익, 박세당, 윤증, 홍만선, 유수원 | |
전성기(18C중) | 정약용, 서유구,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 |
급진사상가 | 성리학 거부 16c(정인홍,정여립) ⇒ 17c(윤휴---숙종이 남인 날릴려는데 흠잡힘,박세당) ⇒ 18c(정약용) ⇒ 19c(최한기) 주자중심의 성리학에서 탈피하려한다 하여 사문난적으로 몰림 |
|
영 향 | 개화사상 → 광무개혁 → 애국계몽운동 |
* 경세치용학파: 토지제도 등 제도 개혁을 통해 유교적 이상사회를 추구, 요순삼대를 이상적 사회로 보고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고전유학으로 회귀를 주장 * 이용후생학파: 부국강병을 위한 기술문명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상공업 발달과 생산 수단개발에 관심, 인물성동론 견해를 계승하여 화이론을 극복하고자 노력 * 실사구시: 경서 및 금석의 고증을 위주 |
1.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비교
구분 | 중농학파 | 중상학파 |
성격 | 경세치용의 학풍 | 이용후생의 학풍, 북학파 |
대상 | 농촌을 배경으로 한 제도개혁 | 서울을 배경으로 상공업 진흥 |
이상 | 유교적 이상국가 실현(복고적) | 유교적 이상국가에서 탈피 |
학자 | 남인학자 중심 | 노론 중심 (청나라 왔다갔다한 자제군관) |
내용 | 지주제철폐, 자영농육성, 토지분배에 관심 국부원천은 농업, 화폐폐단지적 |
지주제인정, 농업의 생산력증대에 관심 국부의 원천은 상공업, 화폐사용긍정 |
영향 | 한말 애국계몽사상가, 국학연구 | 개화사상 |
공통점 | 부국강병(농민생활안정), 문벌제도 비판(신분차별 철폐), but 반영되지 못함 국가통제경제 긍정,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조화(중상학파는 물질문화의 발달에 관심) 실학자들은 직접 기계를 설계 및 제작을 함 |
2. 중농학파 vs 중상학파 [유반균, 이익따지는사람차가워 싫어해 박지원한화선수]
중농학파(유이정) | 중상학파(유홍박박) | ||
유형원 | 반계수록: 균전제ㆍ과전제ㆍ경무법 주장 병농일치(軍事제도)ㆍ사농일치(敎育제도) 노비세습제도 부정, 과거제도 비판 한계: 적서차별ㆍ문음제도ㆍ노비제도인정 |
유수원 | [우서] 사ㆍ농ㆍ공ㆍ상의 직업적 평등화ㆍ전문화 농업의전문화ㆍ상업화로 농업생산력 향상 강조 (방안) 상인간의 합자를 통한 대상인의 육성 주장 대상인의 지역사회개발 참여 선대제수공업주장 |
이익 | [성호사설][한전제][곽우록][붕당론] 6좀론: 노비ㆍ과거ㆍ양반ㆍ기교ㆍ승려ㆍ게으름 화폐 폐단 지적, 사창제 실시주장, 호포제시행반대 실증적ㆍ비판적 역사서술 제시, 삼한정통론 주장 시세론 (역사발전의 동력은 물리력=시세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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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 [임하경륜] -- 균전제, 의무로 농병일치 [의산문답]--청에 갔다오기전에 아무것도 몰랐다. 스스로 묻고 답함. 우주에 대해 논함. [주해수용] 균전제주장(성인남자에게 2결의 토지지급 제시), 병농일치, 신분제철폐, 성리학적 화이관 비판 (무한우주론ㆍ지전설) 김석문→홍대용→이익→정약용→최한기 |
||
정약용 | [여유당전서] 500권여 권, 민본정치강조 목민심서(지방관의도리),흠흠신서(형옥관리) 경세유표(중앙정치,정전제) ⇐ 3부작 탕론(왕교체가능설), 원목(정치근본,목민관) 전론(여전제,공동) ⇐ 3논설 [아방강역고][마과회통][대동수경][아언각비] 주교설계, 거중기 제작(서양선교사가 쓴 기기도설 참조),향촌단위 방위체제 주장 기예론, 성호학파흐름 집대성 |
||
박지원 | [열하일기] [과농소초] ---상업적 농업 [한민명전의]-- 한전론(이익한전론 말고 토지를 어느 이상은 갖지 못하게) 한전론, 화폐유통, 선박ㆍ수레이용, 양반문벌제도 모순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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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 | [색경]: 농가집성을 비판 윤휴와 함께[사변록]을 지어 성리학비판 → 사문난적으로 몰림 |
||
박제가 | [북학의]: 절약보다 소비를 강조(우물비유)--소비론 즉, 소비가 미덕 규장각 검서관, 청과 통상강화, 선박ㆍ수레 이용 늘릴 것, 정약용과 함께 마진연구 나중에 개화론으로 이어짐---박규수 |
정약용 사상 * 탕론 “대체 천자는 어찌하여 있게 되었는가?”, “무릇 군중이 밀어서 이룬 것이라면 또한 군중이 밀지 아니하면 천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즉, 밑에서부터 대표의 대표의 대표가 천자다. * 원목 “목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가, 백성이 목자를 위하여 있는가.”----중심은 백성에 있다. 유수원 사상 * 우서 “지금 양반이 명분상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그들의 비루한 행동은 상공업자보다 심한 자가 많다..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것이 어찌 천하거나 더러운 일이겠는가“ |
중농학파의 토지개혁안 [유이정 균한여정]
유형원 | 균전론 | 중국 주나라의 정전법 영향, 토지 국유화, 대토지 소유 방지, 과거제 폐지와 공거제 시행을 주장, 사농일치의 교육제도 주장 신분에 따른 토지의 차등 재분배 주장 (신분의 차등 인정!!), 토지매매 금지, 경무법 실시 자영농 육성 → 병농일치 환원(땅줬으니 의무를 다하라) → 균역의 폐단 해결 |
이 익 | 한전론 | 유형원(균전제) 비판, 토지 국유화원칙, 토지소유 평등화 추구, 과거제비판(천거제주장) 영업전 지정(매매금지: 토지소유의 하한선 설정(최소로 가져야 할 토지)--즉, 자영농 만들겠다. *영업전: 영원히 업으로 삼아라 |
정약용 | 여전제 | [전론] 경자유전(耕者有田)원칙, 주나라 정전제 영향 한마을(1閭)단위 토지 공동 소유, 공동경작, 공동분배(공동농장제도)---분배는 노동력에 따른 차등분배 |
정전제 | [경세유표] 여전제의 불가능을 인식하고 대안으로 제시 - 가운데만 세금으로 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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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한전법 | [과농소초] 토지소유의 상한선 설정(최대로 가질 수 있는 토지)≒농지개혁법 |
서유구 | 둔전론 | [임원경제지] 국가가 빈민을 고용하여 국영농장 운영할 것을 주장 |
관리 | 양반 |
농민 | |
(유형원 균전론) |
A 영업전 |
B 매매전 |
C 매매전 |
D 매매전 |
E 매매전 |
F 매매전 |
G 매매전 |
H 매매전 |
I 매매전 |
(이익 한전론) |
A마을 | B마을 | C마을 |
A 공동 농장 |
B 공동 농장 |
C 공동 농장 |
(정약용 여전제) |
김 | 박 | 이 |
정 | 공동 경작지 |
노 |
홍 | 조 | 신 |
(정약용 정전제) |
* 토지의 국유 및 공유제와 농업의 집단경영을 주장: 서유구, 유형원, 이익, 정약용
* 공거제: 서민들도 교육혜택과 관리진출기회 부여, 여러해 동안 학업과정을 거쳐 학과목시험은 물론 인품재능도 시험 후 모두 통과 한 자만이 관직진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도
● 양명학(성리학(남송)-->양명학(명))
1. 사상체계
• 성리학 ┬ 성즉리설 ↔ ① 심즉리 --> 성리학의 형식화와 교조화에 대한 비판(이기이원론 부인)
├ 선지후행 ↔ ② 치양지설(누구나 타고난 선험적 앎이 있다. 안배워도 된다)
사상적 경직성 비판, 실천적 기능의 강조
└ 격물치지,존양성찰, 선지후행 ↔ ③ 지행합일설
2. 수용: 최초 조선중기(16C 중종) 서경덕학파(화담학파)와 종친들에 의해 수용, 17C소론(노론 대항 비주류)에 의해 본격화
3. 연구 (15C 왕양명「전습록」저술, 16C중 전래 → 화담 서경덕 학파에 의해 처음 연구되기 시작)
1) 이황(16C): 「전습록변」을 저술하여 전습록 비판
2) 최명길(17C): 주화를 주장하다 중앙정계에서 도태된 소론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
3) 정제두(18C): [변퇴계전습록변]을 저술하여 다시 이황 비판
㉠ 존언, 만물일체설 [하곡집] 저술 → 학문적 체계의 수립
㉡“강화학파”형성: 소론이 참여 → 공개적으로 연구하지 못함, 가학(집안사람들밖에 안한다)의 형태로 계승, 실학자들과 교류
㉢“일반민”을 도덕실천의 주체로 상정 → 양반 신분제의 폐지 주장
㉣ 남인, 소론계열, 불우한 종친출신 학자, 서얼출신 인사들 사이에 양명학 신봉
4. 국학자에게 계승 - 정인보, 박은식(유교구신론의 저술)
5. 성리학 비판 - 양명학(소론), 실학(경기도남인), 서학(북인에서 남인), 북학(노론), 동학(몰락양반)
● 천주교 박해
1. 천주교 수용
1) 17C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에 의해 소개(외국신부에 의해 수용된 것이 아님)
2) 신앙이 아닌 학문으로 수용 (18C후반부터 신앙으로 받아들여여 종교로 발전)
3) 실학자 이익을 중심으로 한 경기 남인 학자들에 의해 연구(지봉유설 - 천주실의 최초소개)
4) 안정복은 실학자 이면서도 주자의 정통론에 치우쳐, [천학고][천학문답]에서 천주교를 불교와 비슷한 이단으로 배척
5) 조선교구의 독립(설립)이후 서양신부의 입국
2. 박해
1) 정조 때(노론 시파 집권)에는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 → 순조 즉위 후 노론 벽파가 집권하면서 대탄압
2) 박해원인
① 사상적 원인: 평등관ㆍ내세관은 조선왕조의 근본 질서를 무시하는 것으로 이해
② 사회적 원인: 조상의 제사거부는 패륜, 반상의 계층조직 사회에 위협(불효 + 강상죄)
③ 정치적 원인: 당쟁ㆍ정권 투쟁의 구실(신유박해), 서구 식민국가의 접근에 따른 위기의식
3) 박해내용
① 추조적발 사건(명례방사건, 정조1785) ② 반회사건(정조1787)
③ 천주교박해 [ 신 신 기 병 진 황 오 프 ]
3대 사옥 |
신해박해 |
정조 | 진산사건→윤지충 최초순교, 정조는 남인시파와 연결된 천주교에 비교적 관대 |
신유박해 | 순조 | 황사영의 백서사건, 벽파가 시파를 축출하기 위한 정치적 박해(남인시파세력 위축), 실학 쇠퇴, 조선교구의 독립(서양신부 입국) 황사영ㆍ이승훈ㆍ이가환처형, 정양용ㆍ정약전 강진유배, 최초의 외국인 신부(주문모) 순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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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 | 헌종 |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권 쟁탈전을 배경「상재벽서」남김 오가작통법, 척사윤음반포, 프랑스 신부 처형 → 프랑스함대의 침입(세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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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 | 고종 | 러시아 견제 위해 처음에는 천주교에 관대,‘대왕대비교령’으로 천주교 금압령 최대박해(프랑스신부9명과 수천명을 처형) → 프랑스의 침입(병인양요, 로즈) |
4) 특징
① 신유박해 ~ 병오박해 : 세도정치 때와 관련,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기에 탄압 완화
② 정부의 금령에도 교세는 더욱 번성→부녀자 신도가 더 많았다.(cf.동학은 삼남지방 중심으로 전파)
③ 최초 전래자(이수광, 지봉유설), 최초 세례자(이승훈), 최초 순교자(윤지충)
한국 최초신부(김대건), 서양 최초신부(모방), 중국 최초신부(주문모), 외국 최초순교자(주문모)
● 문화와 예술의 발달
삼 국 | 고구려 | 힘, 패기, 정열의 사실적 표현, 중국문화를 비판적으로 수용 | ||
백 제 | 우아, 세련미, 중국남조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but 토착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함 | |||
신 라 | 소박, 전통 → 조화미, 정제미로 발달 | |||
삼국이 서로 공통적인 문화를 소유하였으며(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민족문화형성의 토대를 마련 | ||||
통 일 신 라 | 섬세 화려, 조화미와 정제미의 극치, 민족문화의 기반확립, 귀족문화ㆍ불교문화 발달 | |||
발 해 |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당문화 수용, 고구려보다 부드러우면서 웅장ㆍ건실한 기풍 | |||
고 려 | 귀족문화(세련미) ①불교회화 ②고려청자 ③금속공예 |
①유불융합 ②지방호족이 문화의 주인공 ③문화폭이 넓어짐 ④공예미술발달 - 나전칠기,고려자기, 불교미술 |
지방문화(투박미) ①관촉사석조미륵보살 ②소박한토기 ③둔마리고분벽화 ④운주사석불과석탑(천불,천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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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선 | 훈구파 | 자주정신, 왕조찬양, 한문학(사장), 설화문학, 시조문학, 인물화, 산수화유행 |
||
사림파 | 경학중시(사장배격→문학저하), 패관문학, 시조, 가사, 사림의천시로침체, 서정적 |
|||
18~19C | 자유로운 문체, 문학추구, 양반비판, 서민문학 발달, 실학적화풍발달, 진경산수화(18 정선), 풍속화유행, 서양화법도입(18후), 문인화유행(중국화풍) |
당 → 통ㆍ신 | 나전칠기(고려시대에는 송으로 역수출), 풍수지리설, 선명력 등 |
신라 → 고려 | 용주사ㆍ탑산사종, 부석사소조아미타여래좌상, 흥국사지석탑, 현화사7층석탑, 고달사지승탑 |
송 → 고려전기 | 인쇄술(속장경의 조판, 금속활자는 고려의 독창적), 은입사기술(청동정병, 청동향로), 월정사 팔각9층석탑(다각다층), 대성악(아악, 궁중음악으로 발전),도자기기술(상감청자는 고려의 독창적) [ 송 인 은 월정 대 도 ] |
원 → 고려후기 | 화약(최무선, 화통도감),수시력(역법), 목화(문익점), 아라비아(사라센) 임제종(보우), 송설체(조맹부체),경천사 10층 석탑(라마불교, 원각사지10층석탑에 영향), 농상집요(이암), 성리학(안향), 천산대렵도(공민왕), 분청사기(북방가마기술도입) 석왕사응진전(다포양식, 성불사응진전, 심원사보광전) [원화수목아임송경농성천석분 ] |
1. 고려의 문화
1) 범종 : 용주사 종, 탑산사 종 <= 신라의 영향을 받음
2) 불상 : 신라보다는 제작 기법이 뒤짐, 석불과 금동불이 주류
- 부석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 통일신라의 양식, 고려의 대표적 불상
- 광주 춘궁리 철불 : 시기적 특색, 고려 불상의 전통 양식, 재료에 있어서 다양함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 지역적 특색, 길목에 거대하게 조성, 고려초기(광종)의
- 안동 이천동 석불 ------┤ 왕권강화정책과 관련, 미적 감각이 뒤진다.
- 개태사지 석불 입상 -----
3) 승탑(부도) = 선종의 유행과 관련
- 고달사지 승탑(팔각원당형): 특이한 형태, 조형미가 뛰어 남, 신라하대의 영향을 받음
-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평면방형) : 우리나라 묘탑 중 최대의 걸작
4) 공예
- 귀족적, 불교적(고려후기 혜허가 그린 양류관음도)
- 미술분야에서 가장 발달(전기: 이령의 예성강도ㆍ부전, 후기: 사군자중심의 문인화, 공민왕의 천산대렵도)
- 고려자기: 순수비색청자(11C, 고려도경에서 극찬) → 상감청자(12C) → 분청사기(원간섭기~조선초기)
- 금속 공예: 불교 도구를 중심으로 크게 발전
• 은입사 수법: 청동기 표면을 파내고 실처럼 만든 은을 채워 넣어 무늬를 장식하는 것
• 대표작: 청동 은입사 향로,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 나전칠기 공예: 고려시대에 역수출,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전해짐
● 건축과 석탑 *참고 № 024 삼국의 고분
삼국시대 | ① 고구려: [고분]적석총(돌무지무덤, 장군총) ⇒ 토총(횡혈식 석실분, 쌍영총, 무용총) ② 백 제 : [고분]적석분 ⇒ 횡혈식 석실분(굴식돌방무덤), 전축분(벽돌무덤, 무령왕릉) [석탑]익산미륵사지석탑(무왕, 현존最古ㆍ最大 목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석탑(대당평제비: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씀. 백제 멸망의 아픔을 간직) ③ 신 라 : [고분]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 천마총) [석탑]황룡사(진흥왕, 아비지) 9층 목탑(선덕여왕--시기 상대끝날때 그후 여자도없다해서 무열왕, 자장--계율종), 분황사 모전석탑(전탑 모방한석탑--자연석을 벽돌로 만듬. 중국은 흙을 구워서 벽돌로 만드는데...그래서 잘 못만듬.), 첨성대(고려에도 있다) ④ 발 해 : [석탑]길림성 영광탑(발해유일의 5층 벽돌탑, 지하에 무덤시설) |
통일신라 | [고분]횡혈식 석실분(김유신묘ㆍ성덕대왕릉에 호석 12지신상 조각), 해중릉(문무왕릉, 불교식) *통일신라전까지 석탑으로 가지 못하고 고구려는 목탑하다 싸그리 없어지고 나머지는 목탑따라하거나 전탑따라하거나...근데 부여정림사지5층석탑은 그나마 잘만듬. [탑]높은 기단(2중기단)위 3층탑 유행 ⇒ 감은사지 3층석탑(통일의 기상--굉장히 큼)(감은사--은혜에 감사한다 문우왕을 감사하며 신문왕이 만듬), 석가탑, 다보탑, 석굴암(751, 인조석굴)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 현존최고 목판인쇄본)(모두 신라중대인 경덕왕(녹읍부활, 문화는 아직 안꺽임) 제작된 것으로 추정) 하대: 구례화엄사4사자 3층석탑ㆍ양양 진전사지 3층석탑(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 조각)----이젠 굉장히 중요 ※통신(3층),백제(5층),고려(다각다층) *봉정사대웅전: 다포양식 |
고려시대 | ① [주심포양식](공포가 많지 않다)(공포자체가 장식있음) - 웅장, 우아, 간소 ⇒ 안동 봉정사극락전(현존최고 목조건축), 예산 수덕사대웅전, 부석사무량수전 [봉 부 수] ② [다포 양식](조선으로 이어짐) - 원간섭기, 화려(원 영향), 장엄 ⇒ 석왕사응진전,성불사응진전,삼원사보광전 [응응보다] ③ [석탑] - 다각다층 불안정 ⇒ 흥국사지석탑(신라양식계승), 현화사7층석탑(고려의 독틈함--신라영향) 월정사8각9층탑(송영향--고려전기), 경천사10층석탑(원--고려후기,라마교 영향, 목조건축 양식본뜸)-->조선세조 원각사 10층석탑 영향[라경원] ④ 강릉 객사문: 가장 오래된 최고의 門 * 현존 최고(最古) 목조건축물은 봉정사 극락전! |
조선시대
[건축] 유교,검약,자연,조화미 [15(다양)16(서원)17(사원)18(화성)19(경복궁중건)]
15C | 궁궐, 성곽, 성문, 학교 건축; 경복궁, 숭례문, 창덕궁돈화문, 무위사극락전, 해인사장경판전, 원각사지10층석탑 (세조, 경천사 계승) |
16C 사림 |
서원 건축(정자,가람(절의 가람배치와 비슷)ㆍ주택양식 배합.) ⇒ 경주옥산서원, 안동도산서원 |
17C 상업 발달 시작 |
*임란때 활약한 승장의 영향으로 불교위상 높아짐 사원 건축; 금산사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팔상전 [팔각미] 불교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양반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 |
18C 상업 최고조 |
수원성(거중기, 서양식축성법)--수도 천도하려했음. 군대경비 만드는 토지 대유둔전 군대 평양대동문, 불국사대웅전, 논산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석남사 (부농과 상공인의 지원으로 장식성이 강한 사원건축) |
19C | 경복궁(근정전ㆍ경회루)복원, 광화문 복원 ⇐ 건축은 15C |
20C | 덕수궁석조전(르네상스) |
※ 참 고 • 국보1호(숭례문 = 남대문),국보2호(원각사지10층석탑),국보3호(북한산비) [북한원숭] • 보물1호(흥인지문=동대문),보물2호(보신각종), 보물3호(대원각사비) [대보동] • 서울의 4대문과 보신각은 오행사상에 의해서 그 명칭이 만들어 졌다. • 인(동, 흥인지문)ㆍ의(서, 돈의문)ㆍ례(남, 숭례문)ㆍ지(북,숙정문)ㆍ신(중앙,보신각) |
대한제국 | 독립문, 덕수궁석조전(르네상스양식), 명동성당(고딕양식 |
*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미륵사(전북 익산) (무왕 대, 600~641, 2009.1.19 발견) 사리장엄 또는 사리장엄구는 사리와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다중 구조의 용기 및 탑내에 들어가는 각종 공양구 일체를 말한다. 이중 좌평(佐平·백제 16관등 중 제1품) 사탁(택)적덕(沙(宅) 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喜捨)해 가람(伽藍·미륵사)을 세우고 기해년(己亥年·639년)에 사리를 봉안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금제사리봉안기는 무왕의 부인이 된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미륵사 창건의 중심인물임을 말하는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의 내용과는 배치되어 흥미롭다. * 부석사 무량수전(주심포양식, 팔작지붕), 안동 봉정사 극락전(주심포양식, 맞배지붕) 부석사 조사당(사천왕상과 보살상 벽화), 예산 수덕사 대웅전(모란과 들국화를 그린 벽화) * 법주사 팔상전 17C 불교의 지위향상과 양반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이 반영된 건축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현존하는 탑중 가장 높은 건축물 |
● 조각ㆍ공예품의 역사, 불상ㆍ석등ㆍ승탑(부도)
삼국시대 (불상) |
• 고구려: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금동미륵반가상(삼국공통--통일신라는 아니고) • 백제: 서산마애 삼존불상, 금동미륵반가상, 금동대향로 • 신라: 경주 배리석불 입상, 금동미륵반가상(日에영향) • 가야: 수레토기, 기마 인물형 토기, 철제갑옷 |
통일신라 | • 조각: 석굴암(김대성), 만불산(경덕왕), 무열왕릉비, 마애석불(시대적혼란반영), 석굴암본존불 • 공예: 상원사종(성덕왕, 신라범종 중 가장 오래, 現存 最古의 종)>>>상원사 - 나무위키 vs 봉덕사종(=성덕대왕신종(경덕왕이 성덕왕 기리기위해), 에밀레종,경덕왕이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은 혜공왕, 김필혜): 現存最大, 비천상(날아갈거같은 그림)으로 유명--상원사종에도 있다.>>>성덕대왕신종 - 나무위키 • 석등: 불국사 석등, 법주사 쌍사자 석등, 팔각 원당형을 기본으로 하는 승탑과 탑비유행 *신라하대는 조형미술이 있지만 쇠퇴: 중대인 불국사랑 비교할 수가 없다. |
발해 | • 이불(두개부처)병좌(나란히)상(동경): 흙을 구워 만든 전불, 동경에서 발견 • 발해 석등(상경 용천부)(규모가 큼--고구려영향): 발해 석조미술의 대표, 팔각 원당형의 간석과 그위에 창문과 기왓골 조각 |
고려시대 | • 타 시대에 비해 특히 공예발달, 통일신라의 불교미술 계승 • 불상: 신라보다 떨어짐, 불균형ㆍ무형식ㆍ자유분방ㆍ향토적(관촉사석조미륵보상입상ㆍ이천동석불), 철불유행(광주 춘궁리 철불)---소재가 철 *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좌상(신라양식계승, 고려 대표불상)----이거빼곤 호족특징인 소재가 특이하든지 모양이 특이하든지 • 부도: 팔각 원당형(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 승탑, 구례연곡사지불 부도, 공주의 갑사부도), 특수형(탑신이 구형인 정토사 흥법국사 실상(ㅇ원형)탑, 평면이 사각형인 지광국사 현묘탑(네모)) *부도(승탑): 전(傳)흥법사 염거 화상탑(신라하대) → 고달사지 원종대사 부도(고려초) → 지광국사 현묘탑(고려문종) → 화암사 무학대사 홍융탑(조선초) • 공예품: 범종(신랴양식 계승- 천흥사종, 용주사종, 탑산사종), 나전칠기(통일신라 때 당에서 수입, 고려 때 역수출), 은입사(송에서 유입, 은입사 향로, 송인은월정대도) |
조선시대 | • 실용성과 예술성의 조화, 생필품 중심으로 값싼 재료 이용, 소박하고 견고하며 서민적 • 화각공예 처음으로 등장(15C): 쇠뿔을 잘게 쪼개서 붙이는 공예 ※ 자기의 발달 순서 [ 순 음 상 l 분 백 청 철 ] |
11C | 순수청자 (무늬없음) (비취청자) 비취=옥색 |
하늘색인 비색의 아름다움과 선을 강조 신라, 발해의 전통기술을 토대로 송의 자기기술을 도입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 송나라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극찬 (*상감X) |
11C | 음(양)각 청자 | 비색청자 표면에 가는 선으로 무늬 음각ㆍ양각 |
12ㆍ13C (무신기) |
상감청자 [강부자학감상] |
고려의 독창적인 상감기법을 도자기에 활용(나(소라)전칠기(당)ㆍ은입사기법(송)을 응용) 도요지: 전라도 강진ㆍ부안, 귀족의 취향에 맞게 화려함(학) 무신정권 때 전성기(강화 천도때) → 원의 북방 가마기술 도입으로 청자 빛깔 퇴조(원의 영향) → 분청사기 등장 |
13C후 ~ 15C (원간섭기 들어가자마자) |
분청사기 [붕어] |
원의 북방가마기술도입으로 상감청자 퇴조 정형화되지 않으면서 구김살 없는 우리의 멋을 잘 나타냄(물고기)궁중이나 관공서에서 널리 쓰임, 소박하고 안정적 (*민간X) 도요지: 사옹원 분원(경기도 광주ㆍ경상도 고령) 15C 전성기를 거쳐 16C 중엽이후 백자에 흡수되어 자연적 소멸 |
16C (사림) |
순수백자 (사림 자신들은 깨끗하다) |
16세기부터 세련된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 → 분청사기의 쇠퇴 고려 백자의 전통을 잇고 명나라 백자의 영향을 받음 깨끗하고 고상한 선비들의 취향과 어울림 |
16ㆍ17C | 청화백자 | 흰 바탕에 푸른 색깔로 그림을 그려 넣음(대나무, 매화) 백자가 민간(민간과 서민은 구분. 민간은 부농//서민은 옹기)에 까지 널리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 |
17C~18C | 철사백사 진사백자 |
산화철의 안료로 다갈색 무늬(철사)ㆍ붉은색 무늬(진사)를 그린 백자 |
● 고려대장경--
--목판은 한판으로 찍고 vs 금속활자는 글자하나하나---글자 조합방법 세종때 밀랍식으로 개선. 그것이 식자판 조립법.
-- 식자판 조립법이 되어야 대량인쇄가 가능해짐// 목판은 원래 대량인쇄 가능
1. 대장경 [초속8만, 부흥선, 거 교 대몽]
제1차 대장경(1012~1087) | 속장경(1073~1096) | 제2차 대장경(1236~1251) |
초조대장경 = 정장 | 신편제종교장총록 = 교장 | 8만 대장경 = 재조대장경 = 고려대장경 |
격 률 론 거란대비 현종~선종 6000권을 대구부인사 몽고 2차 침입 때 소실 日남례사 일부전함 |
격 률 론 (X) 대각국사 의천(선종 8년에 간행) 불교서적을 모아 편찬(선종관련X)=신편제종교장총록 대장경목록(불서목록) 흥왕사 - 교장도감 4700권 인쇄 부인사 있다가 몽고 3차 침입 때 소실 송광사에 일부 전함 |
격 률 론 몽고침입 시 최우가 강화도에 대장도감(본사)ㆍ남해와 진주에 분사대장도감을 설치하여 조판 * 강화도 대장도감에서 전담X 수기(대장경의 조판 교정책임자)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 강화도에서 조선 초 해인사로 이전 |
2. 금속ㆍ목판 활자 (활자순서: 다 - 초 - 속 - 상 - 팔 - 직)
1) 상정고금예문(1234--무신시기 최우, 대몽항쟁기, 부전,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남아있지않다.)
2) 직지심체요절(1377, 우왕, 현재 전하는 최고(最古) 금속 활자본)
- 백운화상(사료문제)이 역대 스님들의 법어ㆍ어록 등에서 필요한 내용을 발췌해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
- 프랑스 공사가 경매로 가져간것. (약탈해간 의궤랑은 다름)
>>>이것만 고대
3)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0 ~ 751년 추정, 목판활자 인쇄물)
-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탑신부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最古)의 통일신라 때 불경인쇄본
cf) 태종- 계미자// 세종- 갑인자, 식자판 조립법--대량인쇄
● 유네스코 지정유산
유산 | 문화유산 | 1.종묘(1995년) 2.석굴암과 불국사(1995년) 3.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4 화성(1997년) 5 창덕궁(1997년) 6.경주 역사 유적지구(2000년) 7.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2000년) 8.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년) ==>이건 자연유산) 9.조선 왕릉(2009년) 10.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2010년) 11.남한산성(2014년) 12.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1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2018년)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14.한국의 서원(2019.07.06)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9곳. 참고) 북한(고구려고분군) *경복궁X |
자연유산 |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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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유산 | 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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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 종묘제례ㆍ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영산제,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남사당놀이, 처용무, 강강술래, 가곡(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에 곡을 붙여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전통 음악), 대목장(전통 목조 건축의 최고 책임자), 매사냥(매를 훈련시켜 야생의 먹이를 잡는 기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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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유산 |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팔만대장경과 제경판, 조선왕조의 의궤, 동의보감 |
※ 조선왕조의궤는 태조 때부터 만들었으나, 현재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년(선조) 의인왕후 장례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된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 와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이다. ※ 북한 지역에 있는 후릉과 경기도 여주의 영릉, 강원도 영월의 장릉을 제외하면 실제 모든 왕릉이 서울 사대문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조성. * 신의왕후의 제릉과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 폐위된 연산군 묘, 광해군 묘는 문화유산 등재 제외 ※ 가곡: 그냥 '노래'라고도 한다. 현재 전하는 가곡은 남창 26곡, 여창 15곡 등 41곡으로, 중요무형문 화재 제30호로 지정됐다. 김영기, 조순자, 김경배 씨가 예능 보유자이다. ※ 대목장: 글자 그대로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의 우두머리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무 장인을 목장,목공, 목수으로 불렀다. 이런 목장 가운데 건축과 관계된 일을 대목이라 하며, 그 일을 하는 장인을 대목장이라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74호로 지정됐으며, 광화문 복원을 맡았던 신응수 씨를 비롯해 최기영, 전흥수 씨가 기능 보유자로 지정돼 있다. ※ 매사냥: 주로 겨울에 사냥이 이뤄진다. 개인보다는 팀 단위로 하는데, 꿩을 몰아주는 몰이꾼(털이꾼), 매를 다루는 봉받이, 매가 날아가는 방향을 봐주는 배꾼으로 구성된다. '시치미 떼다'는 말은 매사냥에서 유래된 것으로, 매 주인이 자기 매임을 나타내기 위해 붙이는 이름을 시치미라 한다. 소뿔을 갈아 5㎝ 정도의 조각에 주인 이름을 새긴다. |
● 조선의 역사서 [ № 059. 고려 사관의 흐름 ]
□ 고려시대 사관과 역사서들 [ 유자성 성자존민 근대 유고7사 자유해제동 성사고 ]
유교 사관 | 자주 사관 | 성리학적 사관 | 자주 | 존화 | 민족 | 근대 | ||
고려 초 | 고려 중 | 무신기 | 원간섭기 | 고려 말 ~ 조선 초 | ||||
고구려 계승의식 | 신라 계승의식 | 고구려 계승 | 고조선 계승의식 | 조선시대----> | ||||
고금록, 칠대실록, 삼국사기 |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제왕운기, 동명왕편 |
사략(공민왕,이제현) 고려국사, 동국사략 |
□ 조선시대 사관과 역사서들 [ 성사고 고통절실 이기자음주동국박상요강 민족강해연려발동 ]
성리학적(15C초) | 자주사관(15C) | 존화주의(16C~17C) | 민족주의사관(18C) | 근대계몽사관(19C) |
[고려국사]⇝정도전 [동국사략]⇝권근 |
[고려사]⇝김종서[동국통감]⇝서거정 [고려사절요]⇝정인지 [삼국사절요]⇝서거정 [조선왕조실록] [국조보감] |
[기자실기]⇝이이 [표제음주동국사략] [동국사략]⇝박상 [동사찬요] [여사제강] [동국통감제강] |
[동사강목]⇝안정복 [해동역사]⇝한치윤 [연려실기술]⇝이긍익 [동사]⇝이종휘 [발해고]⇝유득공 |
[조선상고사]⇝신채호 [독사신론]⇝신채호 [한국통사]⇝박은식 [조선사연구]⇝정인보 |
조선초기 - 조선건국의 정당성 강조(15C초), 성리학적 사관, 자주적 사관, 편년체 조선중기 - 사림의 역사의식의 반영 → 존화주의, 소중화의 강조, 기자의 중시(동국통감을 비판) - 고유문화의 이단시, 우리문화(우리문화를 중국문화로 인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함. - 반도사관의 강조 조선후기 - 명분과 질서를 내세우는 정통론 강화로 강목체 서술 강조, 당색에 따라 역사를 보는 관점 상이(17C) - 17세기에 비해 현실성 중시, 화이관에 변화, 북벌론이 북학론으로 바뀌는 추세(18C) - 단군ㆍ고구려ㆍ발해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장(18C) |
• 고려국사(정도전): 편년체, 고려를 제후 국가로 깎아 내려서 조선건국의 정당성 강조. 주체적 의식 결핍.
재상중심 서술이라 세종이 맘에 안들어함-->그래서 세종이 명령해서 아들인 문종때 완성된것이 고려사(기전체-인물), 고려사절요(편년체-시간)는 그냥 문종때.
• 동국사략(=삼국사략, 권근): 편년체, 단군-기자-위만조선-한사군-삼한-삼국 순으로 상고사를 체계화
→ 고려국사뿐 아니라 삼국의 역사도 깎아내림, 불교문화에 대한 비판 수록
• 동국통감(감은 거울..그것은 역사서)(서거정): 편년체, 단군을 시조로 정립한 최초의 자주적 통사(단군신화 X), 유교문화와 군주 국가를 이상, 신라초부터 고려말까지 정리, 책머리에 단군기자ㆍ위만조선ㆍ삼한을 실음. 성종때라 사림의 입장도 반영됨.
*서거정: 왕이 서거정시켜 우리통사--동국통감 vs 왕이 서거정시켜 우리글 정리--동문선
• 고려사(김종서, 정인지): 기전체, 범례는 사마천의 사기를 따랐고, 종ㆍ폐하ㆍ태후 등 칭호를 그대로 사용, 우왕ㆍ창왕을 신우ㆍ신창이라 하여 세가에 넣지 않고 열전에 편제(조선개창의 정당성), 북진정책 긍정적
• 고려사절요(김종서, 정인지): 고려사(기전체)를 편년체로 편찬, 신하적 입장에서 서술
• 삼국사절요(서거정): 편년체, 단군조선부터 삼국의 멸망까지 다룸. 불교사 배제
• 기자실기(이이): 기자를 왕도정치의 시작이라고 평가 (단군은 기록이 없다), 성리학의 토착화에 기여
• 동국사략(박상): 15C 동국통감 비판
*cf 권근의 동국사략.
• 동사찬요(오운): 기전체, 유교문화의 전통을 자랑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함. 절의를 지킨 인물들을 서술함으로서 왜란 이후 광해군 대의 역사인식을 반영
• 동몽선습: 아이들까지 완전히 성리학. 그것이 사림 시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후반)
>>이 두개는 남인(왕권강화. 붕당정치 폐지)
• 동국통감제강(홍여하): 강목체, 고려시대 역사는 이미 휘찬려사를 간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기자조선에서 선사시대까지만 서술. 기자-마한-신라를 정통으로 봄, 붕당정치의 폐지를 강조.
• 휘찬려사(홍여하): 기자-마한-신라를 정통국가로 봄. 편년체 형식으로 고려사 재정리
>> 이건 서인 (북벌, 재상이 주도권 잡은 사실 강조)
• 여사제강(유계): 강목체, 고려 시대의 역사를 정리. 북벌운동 고취
>> 남인 허목
• 동사(東事, 허목) : 기전체, 조선 역사의 독자성을 강조, 단군에서 삼국까지 저술, 붕당정치 비판
*cf) 이종휘의 동사
• 동국역대총목(홍만종):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왕실을 중심으로 서술, 단기정통론
• 동사회강(임상덕): 편년체, 삼국사기, 고려사, 여사제강, 동사찬요와 한ㆍ당ㆍ송ㆍ명의 사서 대명일통지를 참고, 여사제강의 계승
• 동사강목(안정복): 편년체(강목체), 삼한정통론(단군-기자-삼한-삼국-고려-조선으로 체계화), 이익의 삼한정통론을 계승, 문헌고증사학의 토대마련(객관적ㆍ사실적), 우리역사의 독자적 정통론을 강조하여 중국 중심의 역사 인식을 탈피. 그래도 정통이 들어있기에 성리학에 기반함.
* 열조통기(안정복): 태조부터 영조까지 남은 시기 씀.
• 해동역사(한치윤): 기전체, 단군에서 고려까지 기록하여 민족사 인식의 폭을 넓히는데 이바지, 500여종의 다양한 외국(중국, 일본)자료 인용. 발해사를 세가에서 다루어 신라사와 동등하게 취급
• 연려실기술(이긍익): 기사본말체, 조선시대의 정치사와 문화를 야사를 중심으로 정리 (야사참고!!--지문주의)
>>>이 둘은 고대사 시야를 만주로!!
• 동사(東史, 이종휘)(이건 고구려사): 기전체, 고대에서 고려까지 서술, 이원적 정통론(단군-기자-마한-고구려의 삼한정통론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단군-부여-고구려의 연결성도 존중하여, 고구려는 단군의 혈통세력과 기자의 문화를 동시에 계승하였음을 주장), 발해가 고구려 유민에 의해 세워졌음을 강조(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까지 확대), 고규려에 큰 비중을 둔 만주중심의 역사관
• 발해고(유득공): 기전체 형식, 남북국 시대를 처음으로 제안, 만주의 역사를 우리역사의 일부로 파악
● 조선왕조실록
1. 태종때「태조실록」, 세종때 「정종ㆍ태종실록」편찬,
2.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 25대까지만 실록 인정(고종실록×, 순종실록×)
3. <선조, 현종, 경종>은 수정실록(삭제)함께 갖고 있다(당쟁에 의해)
4. 편년체형식으로 춘추관, 실록청(춘추관 하부관청. 즉, 임시기관)에서 편찬, 경우에 따라 수정과 개수가 가능
5. 참고사료(1차: 사초ㆍ시정기(시정기는 실록청에서 못만듬), 2차: 의정부일지ㆍ승정원일기ㆍ비변사등록ㆍ일성록ㆍ상소문 등)
6. 기타사서
- 국조보감(엑기스): 실록 중 역대왕들의 선정과 훌륭한 업적만 발췌한 요약본, 국왕들의 정치참고서(실록의 자료 X)
- 선원록: 조선왕조가문의 족보, 숙종때 처음 간행
7. 연산군과 광해군은 일기로 표시
8. 왕대실록 처음편찬 ⇒ 고려 현종때 7대실록 편찬, 부전
9. 사고의 정비
4대사고(세종) | 임진왜란 | 광해군 | 왜란이후 | 이괄의난 | 순종까지 | 현재 |
춘추관사고 | 소실 | 전주에서 묘향산으로 이전 (4부 복사) |
춘추관사고 | 소실 | ||
충주사고 | 소실 | 오대산사고 | 보존 | 오대산사고 | 동경대학교 | |
성주사고 | 소실 | 태백산사고 | 보존 | 태백산사고 | 기록보관소 | |
전주사고 | 보존 | 마니산사고 | 보존 | 정족산사고 | 서울대학교 | |
적상산사고 | 보존 | 적상산사고 | 김일성대학 |
● 의학서적
고려후기 | 향약구급방(1236) | 현존하는 최고의 의학서적, 우리실정에 맞는 자주적 의학서 |
조선초기 | 향약집성방(세종) | 유효통,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ㆍ정리 |
태산요록(세종) | 노중례, 산부인과 의서 | |
의방유취(세종) | 김순의, 왕명에 의해 집대성한 동양최대 의학백과사전 | |
조선후기 | 동의보감(광해군) | 허준, 조선최대의서(25권), 전통 한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 중국ㆍ 일본에 영향, 의료지식의 민간보급에 기여 |
침구경험방(인조) | 허임. 침구술 집대성 | |
마과회통(정조) | 정약용. 박제가와 함께 종두법 연구 실험 소개, 부록[종두방서] → 개항이후 지석영이 종두법을 개발(을미개혁 때 전국적으로 시행) | |
동의수세보원(고종) | 이제마, 사상의학(체질의학의 이론)의 확립 |
● 지리서적
조선전기 | 조선후기 | |
목적 | 행정ㆍ군사적 목적, 백성들의 통치수단 | 산업ㆍ경제ㆍ문화적 목적, 국방지도제작 |
지도 |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태종): 현존하는 동양최고의 세계지도(중앙집권과는 관련 없음), 이회ㆍ이무가 왕명을 받아 제작, 우리나라를 실제보타 크게 그림(아메리카대륙X) • 팔도도(세종): 전국지도 • 동국지도(세조,양성지): 과학기구(규형,인지의)의 이용, 최초의 실측지도, 압록강이북의 기록, 국토를 오행사상으로 봄 • 조선방역지도(명종): 유일하게 원본 현존, 만주와 대마도를 표기(16C영토의식 반영) |
• 곤여만국전도: 세계지도, 서양식 지도의 전래 • 동국지도(영조, 정상기): 100리척 사용 • 대동여지도(철종, 김정호): 하천ㆍ산맥ㆍ항만 표시, 서구적 기술 도입하여 정밀하게 표현, 10리마다 눈금 표시 1) 목판본 2)절첩분첩식 3)범례 기호 4) 가항하천표시 5)산세,강줄기 파악가능 • 청구도(철종, 김정호): 인문지도 |
인문 지리서 |
• 신찬팔도지리지(세종): 조선 최초 지리지 • 팔도지리지(세종, 양성지): 이전 팔도지리 지를 보완하기위해 편찬. 부전 • 동국여지승람(성종): 조선 초기 지리지편찬의 완결. 국가통치에 필요한 사항 총망라, 군현의 연혁ㆍ지세ㆍ인물ㆍ풍속ㆍ교통 등 자세히 기록 조선왕조의 정통성 강조(훈신들이 편찬) •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이행): 독도를 기 록한 최초의 지도인 팔도총도(동람도) 有 • 읍지: 향촌사회 재건목적, 사림이 관심 |
• 택리지(=팔역지, 영조, 이중환): 각 지역의 자연환경ㆍ풍속ㆍ 인심ㆍ 등을 서술, 풍수지리에 입각(지리, 산수, 생리, 인심), 총론ㆍ복거총론ㆍ사민총론ㆍ팔도총론으로 구성 * 역사지리서(조선전기는 無) • 동국(고구려)지리지(인조, 한백겸): 삼한의 위치를 고증, 대동법 확대실시 추진. 효시 • 아방(백제 발해)강역고(순조, 정약용): 발해 중심지가 백두산 동쪽에 있다는 것 입증 • 산경표: 풍수지리설에 입각 |
● 백과사전류 / 국어의 연구
지봉유설 | 광해 | 이수광, 백과사전 효시, 천주실의 소개(최초), 중국ㆍ유럽ㆍ일본의 내용까지 소개 |
성호사설 | 영조 | 이익, 삼한전통론 등 높은 역사의식, 천지ㆍ만물ㆍ인사ㆍ경사ㆍ시문의 5개분야 설명 |
동국문헌비고 | 영조 | 홍봉한, 한국학 백과사전, 우리나라의 지리ㆍ정치ㆍ경제ㆍ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 |
동문휘고 | 정조 | 정창순, 조선시대 외교관계 문헌 수집 정리 |
오주연문장전사고 | 헌종 | 이규경, 중국과 우리나라 고금의 사물 1,417항을 고증적 방법으로 설명 |
임원경제지 | 순조 | 서유구, 19세기 농업과 농촌 생활에 필요한 것 종합 기술 |
음운 연구 | 최석정[경세정운], 신경준[훈민정음운해], 유희[언문지] |
어휘 수집 | 이성지[재물보], 권문해[대동운부군옥], 정약용[아언각비] |
● 글씨(서체)의 역사
1. 글자전래(한자): 진과(최초), 의창다호리(붓), 점제현신사비(비석) (※cf.명도전x (교류))
2. 글자(서체)의 발달
고대 국가 |
서체 | 김인문, 김생(해동필가의 조종, 고려시대-집자비문, 왕희지체), 요극일(구양순체) |
이두 | 설총(이두를 정리하여 한문교육 보급에 공헌), *이두는 고구려에서 발생하여 신라에서 발달 | |
고려 | 초기 | 구양순체(유신, 최우(무신 최우맞음), 탄연) ※최우+유신+탄연+김생=신품4현 [최유탄김모락] |
왕희지체(홍근, 석혼수) | ||
후기 | 조맹부체(=송설체, 이암(농상집요), 이강) [고려왕조 구왕조] | |
조선 | 전기 | 송설체(안평대군), 인수체(김구), 초서(양사언), 석봉체(한석봉) |
후기 | 추사체(김정희), 동국진체(우리의 정서 스타일)ㆍ원교체(이광사), 실학의 영향으로 종래의 서풍을 탈피 |
● 시와 음악의 역사
삼국 | 음 악 | • 고구려: 거문고(왕산악) • 신라: 거문고(옥보고), 가야금(우륵--가야통합후), 방아타령(백결선생) |
시 가 | • 고구려: 유리왕(황조가), 을지문덕(여수장우중문시) • 백 제 : 정읍사(악학), 선운산가, 방등산가, 무등산가(고려사) |
|
향 가 (사뇌가) |
• 향찰로 기록(삼국유사14수 + 균여전11수) *고려시대 향가계 시가는 도이장가, 정과정 • 불교색채가 강함, 주로 승려ㆍ화랑 중심으로 창작 • 삼대목(진성여왕): 향가를 집대성 하여 대구화상과 위홍이 지음 , 부전----(시기문제:원종 애노, 적고적, 최치원)// 삼대목은 남아있지않음. • 4구체: 서동요ㆍ풍요ㆍ헌화가ㆍ도솔가, 8구체: 모죽지랑가ㆍ처용가 |
|
발해 | 한문학 | • 4ㆍ6변려체 발달(당의 영향) • 양태사의 다듬이 소리 |
고려 | 음 악 | • 향악(속악): 당악의 영향을 받아 발달, 고려음악의 주류(동동, 한림별곡, 정읍사, 정과정) • 아악(대성악): 송에서 수입된 대성악이 궁중 음악으로 발전 (격조높은 음악) • 당악: 송의 속악이 전래된 것 |
가면극 | • 처용무, 산대잡극 • 나례도감: 조선시대 나례를 주관한 임시관청 | |
조선 | 음 악 | • 장악원: 궁중 음악 및 무용ㆍ연주활동 주관 • 정간(악)보(세종)--소리의 높낮이 vs 악학궤범(성종15C후반, 성현이 저술) • 16c중엽 이후 당악과 향악을 속악으로 발달(음악주체: 궁중 ⇒ 서민) |
무 용 | • 궁중: 나례청주관, 처용무 • 민간: 농악무, 산대놀이, 꼭두각시 놀음 | |
한말 | • 신소설ㆍ신체시 등장 계몽 문학 역할: 봉건적 윤리배격, 미신타파, 남녀평등, 자주독립의식고취 • 음악: 독립가, 권학가 등 창가 유행, 미술: 유화 등장 • 연극: 이인직에 의해서 최초의 서양극장인 원각사(1909)가 세워져 은세계, 치악산 등 공연 |
● 고려의 문학 & 조선의 문학
1. 고려 문학
1) 소설의 형성과 발달: 설화 ⇒ 패관문학 ⇒ 가전체문학 ⇒ 고대소설 ⇒ 신소설 ⇒ 현대소설
2) 고려시대 한문학 경향 (국문학이 위축, 한문학이 가장 융성했던 시대)
- 초기: 중국을 모방하던 단계(신라하대의 최치원)를 벗어나 독자적인 모습
- 중기: 당의 시와 송의 산문을 숭상(보수적, 사대적)
- 동명왕편(이규보), 동국이상국집(이규보), 제왕운기(이승휴), 균여전(보현십원가11수)
- 향가는 향찰로 표기되어 신라에서 발생하여 고려초까지 향유되었으나, 고려전기 보현십원가 이후 단절
3) 패관문학(무신정권기 황금기)
- 무신난 이후 향가문학이 쇠퇴하고 패관문학 대두, 사대부 수필형식, 문신들의 현실도피반영
- 수이전(박인량,최초설화), 파한집(이인로,자주정신강조), 보한집(최자), 백운소설(이규보), 동국이상국집(이규보), 역옹패설(이제현), 익제난고(이제현), 묵은집(이색), 포은집(정몽주)
4) 가전체문학
- 사물을 의인화하여 전기형식으로 구성, 계세징인을 목적, 설총의 화왕계가 효시
- 국순전(술,임춘,고려시대 가전체의 효시), 공방전(엽전,임춘), 국선생전(술과누룩,이규보), 청강사자현부전(거북,이규보), 죽부인전(이규보), 저생전(종이,이첨), 정시자전(지팡이,석식영암)
5) 시가문학
① 경기체가(사대부시가, 송의 영향, 고려중기): 한림별곡(한림학사), 죽계별곡(안축), 관동별곡(안축)
② 속요(민중, 고려가요): 청산별곡, 서경별곡, 쌍화점, 동동, 처용가, 사모곡, 가시리, 정석가
③ 경기체가와 속요의 공통점: 3음보 / 분절체 / 후렴구 / 시조에 영향
2. 조선의 문학
1) 한문학 (초기는 관학파때문에 발달, 16세기는 침체 사림은 경학을 좋아함)
(1) 15세기[동문선]: 조선 성종때(1478) 서거정ㆍ노사신이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역대시와 산문 중에서 뛰어난 것을 뽑아 편찬한 책, 우리나라의 역대 시와 산문을 정리 * 중국×
“우리나라의 글은 송이나 원의 글이 아니요, 한․당의 글도 아니며, 곧 우리나라의 글이다.”⇒ 자주적
(2) 16세기: 한문학의 저조, 재야 사림이나 여류 문인 등에 의해 창작
2) 설화 문학
(1) 15세기
- 금오신화(김시습): 최초의 한문소설
- 필원잡기(서거정): 성종때 간행, 조종조의 창업, 관리들의 언행과 문장, 여항풍속의 세교에 관한 이야기 등 기록
- 용재총화(성현): 중종 때 경주에서 간행된 수필집, 조선 성종 때까지의 문담, 시화, 서화에 대한 이야기, 음담패설까지 포함
(2) 16세기: 사장이 경시되면서 사림 문학의 테두리를 벗어난 문인도 등장
- 어숙권: 서얼 출신, 패관잡기를 지어 문벌제도와 적서 차별 비판
- 임제: 풍자적이고 우의적인 시와 산문
3) 시조 문학
(1) 15세기
- 중앙 고관: 김종서와 남이 - 진취적 기상, 패기
- 재야 인물: 길재와 원천석 - 유교적 충절
(2) 16세기 : 순수한 인간 본연의 감정
- 황진이, 윤선도
4) 여류 문인의 활동 : 신사임당, 허난설헌
* 금수회의록: 1908년 안국선, 인간의 비리를 상징하는 8마리 동물을 비유하여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과 친일정부대신들을 비판하다가 우리나라 최초로 판매금지된 소설.
● 조선후기 문화의 새 경향 < 근대 지향적 움직임 >
1. 근대사회로의 움직임(자율적ㆍ주체적 변화)
부 문 | 의 미 | 변 화 |
정치면 | 입헌군주제 | 비변사ㆍ세도정치ㆍ삼정문란ㆍ민란발생 ⇒ 근대지향X |
경제면 | 자본주의 | 이앙법ㆍ견종법의로 광작 확대, 부농층ㆍ덕대ㆍ도고 성장, 개간사업 상품화폐경제 발달, 화폐사용, 영농기술개발, 경영의 합리화 * 대동법ㆍ균역법 같은 수취체제 개혁은 양반지배체제 유지목적이므로 X |
사회면 | 신분제 평등 | 농민계층의 분화, 신분상승운동 전개, 서민의식 향상, 중인의 소청운동 |
문화면 | 서민문학 | 시사조직, 위항문학, 판소리ㆍ탈춤ㆍ민화ㆍ사설시조 유행 |
사상면 | 합리화ㆍ평등주의 | 실학연구, 천주교전래, 동학창시 * 성리학ㆍ주자가례의 윤리규범 X |
2. 서민문학의 발달(조선후기)
1) 배경 : 서당교육의 보급, 서민의 경제적·신분적 지위가 향상, 장시의 발달
2) 내용 : 서원×, 진경산수화×, 시조×, 가곡×, 인각×
- 판소리(춘향가, 심청전, 흥부가, 토끼타령, 적벽가, 변강쇠타령 6마당을 신재효가 정리)
- 가면극, 시사의 조직(중인층과 서민층, 동인지 간행), 위항인의 문학활동, 풍자시인의 활동
- 사설시조: 청구영언(김천택), 해동가요(김수장), 가곡원류(안민영)의 등
- 한글소설: 허균[홍길동전], 김만중[사씨남정기], 김만중[구운몽], 유몽인[어유야담], 장화홍련전, 임진록, 별주부전 (*홍길동전이 최초×, 최초는 채수의 설공찬전) 허균의 호민혁명론: 궁예와 견훤을 호민으로 봄
- 한문학: 박지원은 양반전ㆍ허생전ㆍ호질ㆍ민옹전 등을 써서 양반사회의 허구성 지적(성리학적 윤리관 비판)--문체혁신 시도(이걸 정조가 비판: 역대 고문체로 돌아가라), 사실 박지원이 노론 벽파라서 공격.
- 한시: 4대가(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 잡가(타령, 육자배기, 사랑가, 수심가), 민화(작가미상), 풍속화(양반이 그림) 등
- 글씨: 이광사(동국진체를 완성), 김정희(추사체를 창안)
- 그림: 최북이 조선 사람이 조선의 산천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화가는 중국 것을 그렸다. 이러한 경향은 정선에 이르러 바꼈다. → 정선(진경산수화를 개척)
● 조선시대 화가
조선전기 15C |
• 독자적 화풍 개발, 인물ㆍ산수화유행 • 진취적ㆍ씩씩ㆍ낭만적 • 일본 무로마치 시대 미술에 영향 |
안견[몽유도원도][적벽도] 강희안[고사관수도], * 이경윤[고사탁족도] ⇒ 16C |
조선중기 16C~17C (사림) |
• 다양한 화풍유행 • 사군자ㆍ초상화 유행(서정적) • 여류화가 활동 |
이상좌[송하보월도] 이정[대나무] 황집중[포도] 어몽룡[매화] ⇒ 조선시대3절 신사임당[초충도][수박도] |
18C 전 | • 진경산수화 발달 (중국 남종과 북종 화법을 우리 고유한 자연과 풍속에 맞춘 새로운 화법) | 정선[금강전도(금강산)][인왕제색도(인왕산)][압구정도] |
18C 후 | • 실학적 학풍, 풍속화ㆍ민화의 유행 • 서양화법 → 원근법ㆍ명암법 사용(강세황) (* cf.유화는 개항 이후에 수용) |
김홍도[총석정도][씨름도][서당]--주로 서민, 화성행차도 그림(정조 연결) 신윤복[주유도][주막도][선유도][풍속화첩]---남여가 들어감 김수철[선사만종도] 강세황[영통골입구도]--서양화법 영향받음 |
19C | • 세도정치기에 복고적 문인화(김정희) 다시 유행 → 실학풍 쇠퇴, 진경산수화 쇠락 | 장승업[군마도] [홍백매도] 김정희[세한도][묵죽도] 대원군[난초] *김정희: 금석과안록 (북한산 비봉, 황초령비문 고증)// 추사체 |
* 몽유도원도: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묘사하여 그림, 현재 일본 천리대학 소장 * 동궐도: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과 궁궐전경을 도화서 화원이 그림. 순조(1830) 이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 * 서궐도: 경희궁의 모습을 그림, 채색을 하지 않고 먹으로만 그린 밑그림 형태로 묵화로 된 점이 특징 |
● 조선시대 과학기술
≪조선전기≫ 훈구파의 부국강병 추진으로 과학기술 발달 → 16C중기 사림집권으로 과학기술 침체 격물치지, 경험적학풍, 부국강병ㆍ민생안정 위해 국가장려, 세종ㆍ세조의 과학기술관심, 전통문화계승과 외래(=서역)과학기술의 접목 |
과학 기구 |
앙부일구(해시계)ㆍ자격루(물시계), 혼천의ㆍ간의(천체관측) → 농업발달에 영향 인지의ㆍ규형(토지측정ㆍ지도제작, 세조), 기리고차(세종), 수표(한강 청계천 수위 측정) |
인쇄술 제지술 |
출판문화발달 → 교육ㆍ문화수준, 민간지식↑ 활자주조 → 제지술발달 (명수출, 세종 때 조지서 설치) 금속활자 인쇄술과 목판인쇄술이 함께 발전(밀랍사용→식자판조립(세종)) |
계미자 | 갑인자 | 병진자 | 임진자 | 생생자 | 정리자 | 춘추강자 |
태종 | 세종 | 세종 | 영조 | 정조 | 정조 | 정조 |
구리 | 구리 | 연철(납) | 구리 | 나무 | 구리 | 철 |
무기제조 기술 | 거북선(=귀선, 태종, 이순신 임란중 계량), 비거도선(작고날쎈 배) 화포(사정거리1300보), 화차=문종(최해산, 신기전=세종), 비격진천뢰(이장손, 임란중) |
수학과 역법의 발달 |
• 수학: 아라비아(사라센) 영향[산명산법][산학계몽], 홍대용[주해수용]: 수학의 연구성과를 정리 • 천문학: 천상열차분야지도(태조, 돌에 새김,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 |
역법: 수시력(원) 대통력(명) 회회력(아라비아) ⇒ 칠정산 내외편(세종)
부여 | 신라 | 고려 | 조선전기 | 조선후기 | 을미개혁 |
은력 | 선명력(당) | 수시력(원) (충선왕 연계) 대통력(명) =수시력 |
칠정산 내편ㆍ외편 |
시헌력 (청,김육) |
태양력 |
※ 칠정산 ① 중국과 아라비아의 영향 ② 서울을 기준으로 한 최초의 역법 ③ 칠정산 외편은 아라비아의 회회력에 영향을 받음 ※ 시헌력(김육) 태음력에 서양의 태양력원리 접목 (CF.태양력에 태음력원리 접목 X) (태양력 연호로 건양: 을미개혁) |
병서의 편찬 |
• 진도(정도전): 요동수복계획의 일환으로 편찬, 명과 불편한 관계 • 총통등록(세종): 화약무기 제작ㆍ사용법을 그림과 함께 한글로 기록 • 동국병감(거울-역사)(김종서, 문종): 고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전쟁사 정리 • 병장도설(문종): 군사 훈련 지침을 밝힌 교본. 화포제작과 사용법 수록 • 역대병요(정인지, 세종): 역대의 병법과 전쟁일화 수록 |
의학 | • 향약집성방(세종15년): 우리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 개발ㆍ 정리 cf)향약구급방--고려 • 신주무원록(세종22년): 법의학서 • 의방유취(세종27년) : 의학백과사전 |
≪조선후기≫ 조선전기보다 과학기술 진보, 서양과학기술문화의 전래와 수용 조선전기(통치위한 방편) ⇒ 후기(국민생활 개선을 중요시) |
|
서양문물 전래 |
• 선조[곤여만국전도]--중국중심을 깸. • 인조- 화포, 자명종, 천리경, 대포제작(벨테브레, 아예정착 훈련도감 소속)---모두 청나라 통해서 들어옴. • 효종- 하멜의[하멜표류기] |
천문학 연구 (⇒ 중국 중심 세계관 탈피) |
• 김석문: 역학도해 저술, 지전설 처음으로 주장 • 홍대용: 지전설 주장하여 성리학적 세계관을 비판 [무한우주론]: 지구가 우주의 중심X • 최한기: [기측제의][지구전요][명남루총서]: 뉴턴의 만유인력설을 비롯한 서양과학과 기술을 소개 • 이수광: [지봉유설] 백과사전식, 일식ㆍ월식ㆍ벼락ㆍ조수 설명 |
동식물 | • 박세당「색경」 홍만선「산림경제」 정약전「자산어보」 |
정약용 | • [기예론] 저술, 화성(=수원성, 서양식축성법, 유네스코지정) • 거중기, 주교설계, 선박의 건조, 총포, 병차 제조 - 마과회통 - 종두법 같이연구(박제가) |
기타 | • 어업기술(김양식, 냉장선), 지도제작(중국중심세계관 ⇒ 세계차원으로 의식 확대) • 농업기술(이앙법과 견종법) |
● 조선시대 종교ㆍ민간 신앙
불교 | 태조 | X | 도첩제실시(승려수 제한, 아무나 승려못됨) |
태종 | XX | 도첩제강화, 사찰폐지(242개만 인정) 사원전ㆍ노비몰수(국가재정확보) |
|
세종 | ▲ | 사찰폐지(선교양종 36개만 인정)--태종보다 더 세게. 내불당건립(호불--아이러니하게 나이드니 숭불), 월인천강지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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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 ● | 간경도감(경전을 간행하는 기관)(불경→한글), 원각사 (원각사지 10층 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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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 XXX | 도첩제폐지, 출가금지, 산간불교화 | |
중종 | XXX | 승과제도 폐지, 승려 천민화 | |
명종 (문정왕후) |
▲ | 승과제도ㆍ도첩제 부활 → 후에 탄압 보우등용 (고려의 보우와 법명이 같은것) |
도교 | 국가권위↑, 민족의식↑ 상무정신, 의학발달(양생술) 소격서(강화 마니산 초제 → 16C 조광조 폐지) 원구단(한양, 원구제), 참성단(마니산), 팔성단(서경) 조선 후기(조선왕조부정) 불교와 도교 ⇒ 중국존중X, 유교약점 보완 |
민간신앙 | 무격신앙, 산신ㆍ삼신숭배, 풍수 도참 사상 단군숭배(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단군사당(평양) 관혼상제: 경국대전(부모만 봉사) → 주자가례(4대 봉사) |
*예외적인 숭불책: 세종, 세조, 명종(문정왕후--인종을 자기가 죽였다는 야사에 따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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