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고려

고려 혜종, 정종, 왕규의 난

Jobs 9 2023. 5. 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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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 (943~945년) : 왕규의 난

1. 태조 사후 왕규의 난 등 외척들의 왕위쟁탈전이 발생

    (1) 배경 : 호족의 통합과 단결을 위한 결혼 정책의 부작용, 왕자와 왕녀들의 근친혼으로 인한 호족세력의 이해관계, 서경을 거점으로 한 서경세력의 형성 그리고 후삼국통일정책의 수행과정에서 왕권이 약화되면서 나타난 결과로 왕과 왕자들의 모후인 태조의 후비 및 그들과 연결하여 호족세력들이 왕권 다툼에 직접 관여하였다.

    (2) 결과 : 혜종은 재위 2년 만에 의문의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와 아울러 혜종의 충실한 후견인이었던 박술희도 왕위쟁탈의 과정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정종 (定宗, 945~949년)

1. 왕규의 난을 진압(945) : 추대 형식으로 혜종의 뒤를 이어 제 3대 왕이 된 정종은 혜종의 이복동생으로 혜종 대에 정정(政情)이 불안하던 시기에 서경을 기반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왕식렴의 군사력을 끌어들여 왕규 등 정적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 왕규의 난 : 태조의 정략결혼은 결국 왕위계승 싸움을 일으켰다. 광주의 호족 왕규는 그의 두 딸을 태조의 15비, 16비로 삼아 광주원군을 소생으로 두게 되었다. 태조가 죽자, 왕규는 광주원군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하게 하고자 혜종과 다른 왕자들 간의 중상모략을 일삼고, 혜종을 암살하려고까지 하였다. 왕규의 세력이 왕권을 능가하였으므로 혜종은 그를 제거하지 못하고, 결국 정종 즉위 후 서경의 왕식렴의 힘을 빌려서 제거할 수 있었다. 

 

2. 서경 천도 계획 : 서경 세력인 왕식렴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른 정종은 서경 천도를  추진하였는데 재위 4년 만의 불확실한 죽음으로 이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1) 명분 : 풍수도참을 구실로 하였다.

   (2) 실제 : 외척세력과 개국공신의 세력기반인 개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왕식렴 등의 서경세력을 이용하여 개경을 기반으로 한 훈신세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데 그 본의가 있었다.

 

3. 947년에 30만 광군 (주현군의 모태)을 편성 : 청천강에 배치하여 거란에 대비하였다. 그 통수부는 광군사이다 -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조직된 최초의 전국적인 군사조직이었다. 광군은 당면한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 설치하였지만 동시에 중앙정부는 이를 계기로 농민을 직접 지배하는 단서를 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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