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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변

Jobs 9 2023. 7. 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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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변

1. 무신난의 선구 : 현종 때 김훈, 최질의 난

2. 배 경

   (1) 근본적 : 문벌 귀족사회의 모순에 의한 지배체제의 동요와 지배층 내부의 갈등 심화 - 귀족층 내부의 권력투쟁과 부패, 숭문천무정책, 군인들의 열악한 처지, 의종의 향락과 실정, 이자겸 난 이후 지배층의 분열과 농민수탈의 강화 등이 깔려 있었다.

   (2) 귀족사회의 수탈체제에 신음하던 피지배층의 광범위한 지지와 성원 : 11세기 후반 이후 문신귀족들의 토지점탈과 농민에 대한 과중한 수취에 의한 농촌사회의 동요 그리고 12세기 전후 지배층 내에서 여러 가지 개혁책들이 구상되었으나 그에 대한 대응의 한계 - 유신 15조(인종, 이자겸 난 뒤 서경에서), 신령 9조(의종, 서경에서) 등에서 토지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든지, 불교나 도참사상에 입각한 조치가 주류였다.

   (3) 직접적인 동기 : 귀족정권의 대무신정책의 모순 즉 법제적으로는 동등하나 문치주의에 의한 문반에 비해 무반의 차별이 심하였다.

       ① 무과가 없었다.

       ② 무신교육기관인 강예재(무학재)가 인종 때 폐지되었다.

       ③ 제도적으로 무반은 정 3품인 상장군이 최고의 관직이며, 그 이상의 승진이 어려웠다.

       ④ 문신의 최고 합좌기구인 도병마사가 중방보다 우위이다.

       ⑤ 문신들은 고위 무관직을 겸직하고, 군대의 최고 지휘 통솔권은 문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등은 모두 문신이었다.

   (4) 의종과 문신들의 향락과 실정 : 의종은 사치와 향락을 위해 백성들로부터 수탈을 강화하였고, 농민들의 유망은 더욱 늘어갔다. 그리하여 의종 때 홍주, 전주, 이천, 동주, 평강, 평산 등 가지에서 도적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이후에도 남쪽에서 계속적으로 소요가 일어났다.

       * 의종 때에는 기은색이라는 새로운 수탈기관을 조직하고 별공사(別貢使)라는 관리를 지방에 파견하여 2중 3중으로 백성을 수탈하였으며, 유흥에 이용할 별궁, 누정, 절간 등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건설 공사에 강제 동원하였다.

   (5) 일반 군인들의 누적된 불만이 저변의 힘으로 작용하였다 : 전시나 평시나 여러 가지 잡역에 혹사당하였으며, 자기들에게 지급된 군인전마저 귀족들에게 빼앗겨 불만이 누적되어 있었다.

   (6) 무반층의 지위 상승 : 양반이라는 법제적 지위의 근거와 거란, 여진과의 전쟁이나 이자겸과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세력을 축적하여 무인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점차 성장하였다 - 1076년(문종30)에 갱정된 전시과에서는 개정전시과에서 제 5과였던 상장군이 갱정전시과에서는 제 3과로 올라 같은 정 3품인 문관인 6상서보다도 오히려 1과가 높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예종 때 무학재의 설치와 무과가 실시되었다.

 

3. 무신정권의 성립

   (1) 정변발생 : 정중부, 이의방이 의종을 폐하고, 명종을 옹립

   (2) 무신정권 초기에 권력을 행사한 지배기구 : 중방 - 무인정치의 초기에는 아직도 독자적인 지배기구를 형성하지 못하고 종래 최고회의기관인 중방을 통해서 정치를 실행하였다. 한편으로 3성 6부의 공식적인 정부기구는 그대로 존속하였고, 많은 문신들이 이들 관부의 관직에 임명되고 있었으나 형식적인 존재였다.

   (3) 사병의 구성원 : 가동(가노이다. 사병의 하층부), 문객(무인 권력자의 휘하에 있는 부하, 무반이나 하급군인 또는 문반, 사병의 상층부), 악소(무뢰봬), 사사, 용사, 장사

 

4. 무신정권의 변천

1170 성립기(민중저항기) - 1196 확립기(최씨정권기) - 1258 붕괴기 - 1270 왕정복고

정중부 : 중방               최충헌 : 교정도감          김준, 유경

경대승 : 도방               최우 : 정방, 서방          임연, 임유무

이의민 : 중방               최항, 최의

 

5. 의의

   (1) 정치적

       ① 문벌 귀족사회의 붕괴로 관료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② 문반과 무반사이의 신분적 차이가 없어졌다 : 문, 무반 관직간에 상호 교통이 일반화되었고 무반의 문직겸대나 문반의 무직겸대가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문신의 무반화 현상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문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는 무신정권이 장기화되고 더구나 과거에 급제했다 하더라도 곧 관도에 나아갈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2) 경제적 : 전시과의 붕괴 그리고 사전, 농장의 확대 - 농업기술이 발전하여 상경전이 증가하였고 생산력의 증대는 농장의 확대와 농민의 몰락을 촉진시켰다.

   (3) 사회적(신분 고정은 여전히 강조되었지만)

       ① 낮은 신분층이 높은 신분층으로 이동하는 것이 고려 전기보다 훨씬 증가되었다.

          ㉠ 이의민, 김준, 신돈 : 노비신분 출신이었지만, 정권을 장악하기까지 하였다.

          ㉡ 향리 : 향리의 자제가 과거를 통해 중앙관료로 진출한 사례는 고려 전기보다 많았다.

       ② 신분의 하강이동도 상승이동에 못지 않게 많아졌다.

          ㉠ 중앙의 귀족 : 몰락하여 재지품관이 되는 일도 점차 하나의 뚜렷한 추세를 나타났다.

          ㉡ 일반 양인 농민 : 경제적인 이유로 남의 노비가 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4) 문화적 : 패관문학과 시조문학의 발생 그리고 낭만적 성향의 문학 활동이 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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