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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바빌로니아 제국, 함무라비, 최초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

Jobs9 2021. 5. 1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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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의 메소포타미아 통일과 번영

 

함무라비

 

바빌론은 셈족 계통의 아모리족이 세운 도시 국가로 바빌론의 제6대 왕인 함무라비는 BC 1772년 경 왕위에 올랐다. 함무라비는 재위 7년경에 우르크와 이신을 상대로 정복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이후에는 오랫동안 내치에 힘썼다. 사실 이 당시의 바빌론은 사실상 아시리아의 속국 처지였기 때문에 함무라비로서도 내치에 힘쓰며 내실을 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함무라비에게 기회가 왔다. 북부의 강자 아시리아의 샴시아다드 1세가 급사한 것이었다. 이후 함무라비는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정복 전쟁에 나섰다. 함무라비는 중부의 소국들을 빠르게 병합하였고 동쪽의 이란계 엘람이 처들어오자 남부의 라르사와 연합하여 오히려 엘람을 무너뜨렸다. 

 

이어서 함무라비는 엘람에 대한 공격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라르사의 왕 림-신(Rim-Sin)을 생포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중남부를 모두 장악하였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의 북부를 공격하여 동맹국 마리를 무너뜨렸고 에슈눈나가 홍수로 큰 피해를 입자 그 틈을 타고 함락시켰으며 북부의 최강국 아시리아까지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BC 1751년 수바르투 정복을 마지막으로 메소포타미아의 통일을 완료했다.

 

이렇게 성립된 제국을 수도인 바빌론의 이름을 따서 '바빌로니아 제국(Babylonian Empire)' 혹은 '바빌론 제1왕조(First Babylonian dynasty)'라고 부른다. 그리고 훗날 BC 626년에 등장하는 칼데아인(Chaldea)의 바빌로니아 제국과 구분하여 이 시기는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Old Babylonian empire)'으로 부르고 나중에 칼데아인이 세운 나라는 '신바빌로니아 제국(Neo-Babylonian Empire)'으로 부르게 된다. 

 

 

 

 

함무라비의 내치

최초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는 힘으로만 지배하다 단명한 아카드 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제도의 정비와 사상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였다. 함무라비는 아카드 제국 시절에 폭넓게 유지되던 정복된 도시 국가들의 자치권을 제한하여 재정권과 사법권을 빼앗아 왔고 아카드어를 제국 공용어로 삼았다. 또한 바빌론의 지방신 '마르두크(Marduk)'를 수메르의 엔릴과 아시리아의 아슈르와 동일화하여 '벨-마르두크(Bel-Marduk)'라는 이름으로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재편성하였다. 풍요로운 남부의 곡창지대에 대해서는 수리권을 장악하고 사람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대신에 부역과 군역, 납세를 요구하며 제국의 재정 상태를 안정시켰다. 특히 함무라비는 282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을 편찬하여 법치주의를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다. AD 1901년 발굴된 함무라비 법전 석판은 '눈에는 눈(Eye for an eye)'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원칙으로 유명하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의 멸망

 

함무라비의 염원과는 달리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의 번영도 오래가지 못했다. BC 1750년 함무라비의 죽음으로 제국을 이어받은 아들 삼수-일루나(Samsu-iluna, BC 1750년 ~ BC. 1712년) 시대부터 이민족의 침입을 당하며 점차 쇠약해졌다. 이란 고원에서 넘어온 '카시트족(Kassites)'이 동북부를 점령하여 독립 왕국을 세웠고 남부에서도 수메르인이 독립했다. 급기야 BC 1595년 무렵 '히타이트(Hittite)'의 침입으로 수도 바빌론이 함락되면서 바빌로니아 제국이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히타이트가 물러간 후 바빌론은 카시트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름도 '카르-두니아쉬(Kar - Dunash)'로 변경되었으나 여전히 메소포타미아 최고의 문명 도시로서의 명성을 구가하였으며 종교적으로 강력한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바빌론의 가치와 권위는 먼 훗날인 BC 3세기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정복왕인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ros III, 재위 BC 336년 ~ BC 323년)' 시절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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