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고대

고대사 연표 정리

Jobs9 2024. 4. 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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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연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중국
1c o태조왕(53-146)
:고대국가성립기(5부체제)
·소노부→계루부왕위세습
※ 신라 박·석·김 3조의 시조설화
· 박혁거세(BC69)
┌박혁거세: 나정 옆 백마, 알, 해와 달이 밝게 빛나
└부인 알영: 알영정 가에 나타난 계룡 옆구리에서 출생
· 석탈해(57-80)
┌알로 탄생, 궤짝에 담겨 버려짐, 붉은 용이 호위
→울산 지역으로 들어 옴
├처음 금관국에 도착했으나, 수로왕과의 전쟁에서 패해 신라로 왔다는 기록도 有
└※숯돌과 숯을 묻어 호공의 집을 빼앗는 기사
· 김알지(60)
┌호공이 월성 서쪽 지나다가 시림(계림)에서 흰닭이 우 는 소리 들려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 걸려 있음. 궤를 열어보니 알지가 나옴
└※미추왕(첫 김씨왕)→내물왕(두번째)대 김씨 왕위 독점
※ 수로왕 탄생설화(42) - 위협주술
· 9간들이 구지가부르다 6개의 황금알 받음. 그 중 제일 먼저 나온 아이가 김수로, 나머지는 5가야통치
┏연맹체설
┗독립된 제국(諸國)설(≒은하정치체설)
※한(BC 206~AD 220)
cf.왕망 新건국(9~25) →이를 기준으로 전한, 후한
2c
o고국천왕(179-197)
·진대법(빈민구제/귀족억제)
·부자상속
▪ 금관가야(가락국, 본가야) : 대성동고분군(철제판갑옷, 오리모양 토기, 말모양 띠고리, 목곽(덧널), 바람개비 모양 동기, 거울조각 펜던트), 양동리고분군, 김해 패총
▪ 대가야(고령) : 지산동고분군(금동관), 고령 양전동 암각화
3c o동천왕(227~248)
·서안평공격→위(魏)장 관구검(수도 국내성 함락)
※부여는 이때 위군에 군량제공
o고이왕(234~286)
:고대국가성립기(5부체제)
·한강유역 3국중 최초로 차지
·국가체제정비
① 6좌평 16관등
② 공복제도
③ 남당설치
④ 율령반포
※중: 서진(西晉)에 사신파견
(마한의 이름으로 교역)
  ※위·촉·오 3국시대
(220~280)
→당시 고구려는 위와 대립
4c o미천왕(300~331)
·서안평공격,낙랑·대방점령
→중국 군현 완전 소멸
o근초고왕(346~375)
·고대국가완성기
① 부자상속, 왕비족 진씨고정
② <서기>편찬
③ 영토팽창 : 평양성공격, 마한차지(남해안 진출), 요서·산둥/일본 식민지, 가야7국 병합
·‘한산이도’(371): 한산으로 수도 옮김
·고대 해상무역패권 장악
※중: 동진(東晋)에 사신 파견(372)
┌처음으로 공식적 외교관계 성립
└“진동장군령낙랑태수” 책봉
※日: 아직기(한자),왕인(논어,천자문)파견
  ※4c 후반
· 근초고왕 정복사업으로 백제의 영향력아래 들어감
· 백제 이곳에 대외무역 위한 일종의 상업기관 설치
→이것이 임나일본부(4c~6c)로 왜곡됨
※ 5호 16국의 혼란시대(316~439)
※ 전진이 전연을 멸망시킴
→이후 고구려는 전진(351-394)과 우호관계→영역확대 주방향을 남으로 돌림
o고국원왕(331~371)
·전연모용황의침략(수도함락)
·근초고왕한테전사(평양성;371)
o침류왕(384~385)
·불교수용(←동진)
 
o내물마립간(356~402)
:고대국가성립기┏김씨 왕위세습 확립
┗마립간 칭호 사용
※고구려에 인질보내 화호관계(실성)
※중: 전진(前秦)에 사신파견(381;고구려 통해, 첫 외교관계)
※광개토대왕 원정군(400)
고구려와 상하관계군대주둔호우명 그릇
┗가야지방까지 진출
※5c 광개토대왕의 침공(400)
· 신라에 침공한 왜를 쫓아 가야지방까지 침공
· 이후 가야의 주도권 이동: 김해의 금관가야(본가야, 가락국) → 고령의 대가야(후기 가야연맹 성립)
o소수림왕(371~384)
·고대국가완성기
① 불교수용·공인(전진)
② 태학설립
③ 율령반포
5c   ※이후 백제는 고구려의 위협으로 국가적 시련 계속됨  

 

5c o 광개토왕(391~413)
• 백제공격
→한강선(한강상류)진출
• 왜구격퇴(내물왕;400)
→낙동강하류까지 진출
⓵ 신라와의 관계
⓶ 전기가야연맹 쇠퇴
• 후연(선비족,서쪽)·비려(거란)·숙신(여진,동북)정벌
→요동수복
※북위(北魏)에 조공관계
o 비유왕(427-455)
·나제동맹(433-554) 체결
o 개로왕(455~475)
·북위에 국서(원병요청,현존)
→고구려 자극→장수왕의 정벌, 한성점령→개로왕 아차산성에 끌려가 죽음(고국원왕 복수)
⇨한성시대 종결
o눌지마립간(417~458)
·부자상속제 확립
·나제동맹(+비류왕)
·불교수용
  ※위·진 남북조시대(439~589) (고려한국사 157-8p그림 참조)
┏북위(北魏; 화북 통일) ※고구려(광~장) : 북위에 조공관계(대체로 화친유지) ※장수왕은 북위 외에 남조의 송과도 교류(양면외교)
┗송(宋; 420~479)-제-양(梁; 502~557)-진 ※백제(무령왕-성왕) : 남조의 양과 교류
※삼국과 중국관계 : 남북조 이전이 단순한 교섭관계였다면, 남북조시기에 이르면서 정기적인 조공관계로 발전함(형식적 조공)
o 장수왕(413~491)
· 광개토대왕비 건립
• 평양천도(→전한강 점령)
※나제동맹(비·눌)야기→북위에 국서(개로왕)→(오히려 고구려의 심기를 건드림)→한강/한성점령→웅진천도→결혼동맹(동·소)
※다면외교(남북조 양면외교): 북위에 조공관계& 남조의 송과도 외교→상호견제 도모
o문주왕(475~7)
·웅진성천도→문주왕 살해됨
 
⇨ 백제의 시련기
o 동성왕(479~501)
※백제의 부흥시도
(왕권회복시도)
·결혼동맹: 신라 귀족딸과 결혼(→외척세력배제&왕권강화)
·웅진부근 토착세력 등용(연·백·사씨 등)
·탐라복속
o소지마립간(479~500)
·우역설치
·시사설치(최초의 시장)
·결혼동맹
6c o문자왕(491~519)
• 고구려최대영토(부여도 복속)
 
o 무녕왕(501-523) ※백제중흥의 기반마련
• 22담로에 왕족파견
(→중앙집권(왕권) 재정비 →사비성천도의 기반마련)
 
• 양에 사신파견
· →다시 강국 되었음을 선언
·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영동대장군’ 책봉 받음
o 지증왕(500~514)
• 한(漢)화정책
① 왕호: ‘왕’으로
② 국호: 사로국→‘신라’
③ 지방: 주·군제실시
·최초 주·소경(아시촌소경)
 
• 우산국정벌(이사부)
 
• 경제·사회시책
① 상복법(喪服)제정
② 순장금지→노동력확보
③ 우경장려┐→농업발달
수리사업┘
④ 동시, 동시전설치
※ 포항 중성리 신라비(신라최초), 영일 냉수리비
┏금관가야(가락국) : 법흥왕대 멸망 →이때 신라에 투항한 구해왕이 김유신의 증조부
┗대가야 : 진흥왕대 멸망 ※ 유민: 우륵
⇨ 비록 가야제국은 멸망했으나, 신라의 정치·문화에 많은 영향 끼침
o 법흥왕(514~540;중고기)
·신라 최초의 연호: 건원
• 정치제도
① 병부설치(최초의 관부)
② 상대등설치-왕·귀족 조화
③ 백관공복제
• 율령반포(울진봉평비 확인)
• 불교공인
 
• 대외관계
① 남조의 양과 외교관계
(내물이후140년만 대중교섭)
② 금관가야 정복(532)
※울진봉평비, 영천청제비, 書石암각화(천전리)
o 성왕(523~554) ※중흥의 군주
• 사비성천도→‘남부여’국호
① 중앙관부 : 22부설치
② 수도 : 5부 ③ 지방 : 5방-군·성
 
• 불교진흥┏ ① 겸익(인도에서 돌아옴)
                ┗ ② 노리사치계 : 日불교전파
 
• 나제동맹결렬(554)
:한강하류 재탈환→신라배신→관산성(옥천)전사
※⇨ 이때부터 고구려와 연결&신라 지속적 공격
[6c 후반 동아시아 전쟁기 진입]
※6c후반 고구려의 상황
⇨ 고구려: 돌궐+백제와 연결
※여수전쟁(598,612; 영양왕)- 수, 4차례 침략
-고구려의 선공(598): 말갈병 1만명 동원해 선제공격
┌문제의 공격 →실패
└양제의 공격(612)
┌육군: 요동성 공략 실패 ┐요동공략 실패
└수군: 대동강 침투해 평양성 공격·실패┘
→30만대군의 별동대 우회파견해 평양성 직접공격 →을지문덕 살수대첩
o 진흥왕(540~576)
• 정치
➀ 전륜성왕, 대왕의식(제왕건호(개국,대창,홍제), 태자·짐 용어)
➁ 사정부(감찰), 품주(최고정부기구)설치
➂ 화랑도 공인, 교단조직
 
• 황룡사조성, 황룡사 장육상(:신라3보), <국사>편찬(거칠부)
 
• 대외관계-최대(함흥평야)
➀ 대가야 정복
➁나제동맹결렬→한강유역점령
➂ 중국과 직접통교(당항성)
※단양 적성비, 4순수비(척경비)
※수 통일(589~618)
- 백제, 고구려, 신라 각각 책봉
※고구려:수나라 요서 선공(598,영양왕)
o 진지왕
-귀족회의에 의해 폐위됨
 
o진평왕
(579~632)
·걸사표(원광, 608, 수나라에 보냄)
· 진평왕 옥대(왕권강화상징:신라3보)
※ 남산신성비
 
7c o무왕(600~641)
·미륵사·왕흥사창건
(익산경영→천도는 실패)
 
·서동요의 주인공
o의자왕(641~660)
· 해동증자(효성,우애)
 
·한때 대야성과 더불어 신라 40여성 탈환
→신라의 위기
 
·고구려와 함께 당항성탈취(642)
※당 건국(618-907)
- 삼국 동시 책봉(624)
o선덕여왕
(632~647)
·첨성대
·황룡사9층木탑(:신라3보)
 
o진덕여왕
(647~654)
·품주→집사부(기밀사무),창부(재정)로 분화
·좌이방부(형률)설치

※ 신라 중고기 왕권강화(불교 왕명시대) : 자주적 연호의 제정, 국사 편찬, 순수비 건립. 진종설과 왕즉불사상 통해 왕권의 신성화 표방

 

.

 

▤ 남북국 시기 연표

7c o 대조영[고왕]
* 당의 기미지배: 이진충의 난(696-700)
- 대조영의 이해고 군 격파(천문령 전투)
- 동모산(길림성 돈화 성산자산성)에서 진(震) 건국(698)
 
o 신문왕(681~691)
• 김흠돌난 평정 : 귀족 대거 숙청
→ 전제왕권확립(만파식적)
→ 성덕왕·경덕왕대 전성기
 
• 달구벌 천도 계획 → 실패
 
• 제도완비
⑴ 정치제도완비
① 6전제도 완비
② 지방제도: 9주5소경(주·군에 외사정 파견)
③ 군사제도:9서당10정
⑵ 교육제도: 국학설치
⑶ 토지제도: 관료전지급, 그후 녹읍폐지
⑷ 5묘제 성립(687)
  발해 신라 ※중국
8c o 고왕(천통, 698~719)
· 건국(698)
 
• 대외관계
① 사신파견(통교)
┌ 돌궐
└ 신라(대아찬수여)
② 당: 발해군왕 책봉(713)
→ ‘발해’로 국호 변경
 
• 영토확장: 사방2천리 영토차지
o 성덕왕(702~737) : 정치적 전성기
 
• 정전지급(722)
 
• 대외관계
① 강릉에 장성축성 → 발해 영토확장(무왕) 경계
② 발해·당 전쟁에 적극 참여(733)
→ 당과 국교재개(733)
→ 대동강이남 신라땅 인정(735)
※ 발해 vs 당·신라 전쟁(732-3) ※ 안록산의 난[안사의 난](755-763,경국지색)
※ 일본 헤이안시대(平安시대[현 京都];794-1185)
o 무왕(인안, 대무예;719~737)
 
• 영토 크게 확장: 북만주 일대차지
 
• 외교관계
① 日과 친선관계 : 신라견제
→사신파견(727)
② 돌궐통해 당견제
 
• 전쟁
- 흑수부말갈이 원인
① 장문휴의 산둥반도 덩저우 선제공격(732,∵대문예망명사건)
② 신라의 참전: 당군 지원(733)
→당·신라의 협공 & 실패(733)
o 문왕(대흥, 대흠무;737~793)
• 황제칭호, 전륜성왕, 고려국·천손 표방(일본에 보낸 국서)
 
• 지배체제 정비
① 3성 6부제도 도입 : 정당성(-6부:충인의/지예신)·선조성·중대성
② 주자감설치(국립대학)
➂ 주작대로 설치(당 장안성 모방)
※ 천도: →중경 →상경 →동경
 
• 대외관계(문왕대는 발해의 자부심이 고조된 시기)
➀ 영토팽창(남: 신라, 북: 흑수말갈 접함)
- 무왕대의 영토팽창 정책 지속으로 동·북 말갈복속
- 안록산난(안사의 난, 755~763) 계기: →당 세력 크게 약화
발해 지위 크게 상승 → 발해국왕 승격(762)
➁ 외교관계 : 당·신라와 관계 호전
┏ 당 : 국교수립(서경압록부)
┣ 일본 : 사신파견┌ 일본의 대신라전 참전요청 거부
┃ └ 국서(‘고려국’, ‘천손’, ‘장인과 사위의 나라’)
┗ 신라 : 상설교통로 개설, 신라에서 사신파견(※원성왕, 헌덕왕)
o 성왕(중흥, 793~795)
· 다시 상경용천부로 환도 (→이후 쭉 수도)
o 경덕왕(742~765)
: 문화적 전성기
·왕권강화 재시도 - 실패
① 국학→태학 개칭
② 중앙통치기구 및 주군현 칭호에 한화정책 실시
(cf.지증왕: 주·군·현의 제도를 실시)
·석굴암불국사(다라니경)
·녹읍부활&관료전 폐지
o혜공왕(765~780)
·대공의 난(768)
·김지정의반란(780)
(→김양상이 진압, 스스로 왕이됨)
o 선덕왕(780~785;하대)
→내물계. 이후 쭉 내물계 김씨가 왕이 됨(단, 예외 朴씨왕 3명 나옴)
 
 
o 원성왕(785~798)
- 독서삼품과설치

 

9c o 선왕(건흥, 818~830) : 중흥기, 최전성기
 
⑴ 지방행정조직 정비: 5경, 15부, 62주
⑵ 최전성기(최대판도)
① 소고구려국까지 편입 : 요동지방 확보
② → 해동성국 칭호
o 헌덕왕(809~826)
·무열계의 반발
① 김헌창의난(822)-장안(국호),경운(연호)
② 김범문 난(825)
o 흥덕왕(826~836)
·청해진 설치(828~851;장보고, 완도)
→서남해안 해상패권 장악(사무역 발달)
o 문성왕(839~875)
·장보고의 반란(838, 846) : 신무왕 옹립
→중앙의 정치투쟁(왕위쟁탈전)에 개입
o 진성여왕(887~897)
·삼대목편찬(대구화상, 각간 위홍. 부전)
·전국적 민란의 발생
(사벌주[상주] 원종·애노의 난이 시초)
 
10c ※ 발해멸망(926): 거란과 전쟁 보름만에 멸망.
※ 발해유민 부흥운동: 정안국, 후발해국, 오사국, 흥요국, 대발해국
(cf.동란국(東丹國) : 거란이 발해멸망시키고 세운 ‘동쪽의 거란국’)
※ 발해 멸망 후 발해지배층 대거 고려로 망명(12C초 예종代까지)
: 고려지배층의 일부를 구성, 왕족으로 대우하기도(대광현)
o 후백제건국(900;완산주) : 오월·후당·거란과 고른 외교
o 후고구려건국(901;송악)
→마진(904) : 무태·성책, 철원천도(905)
→태봉(911) : 수덕만세·정개
o 고려건국(918;철원) : 송악천도(919)
 
<전투>
o 견훤의 경주습격(927) : 경애왕 죽이고, 경순왕옹립
→ 왕건의 대구 공산전투 패전(927)(신숭겸·김낙 전사)
→ 고창(현 안동)전투에서 고려군의 대승(930): 이후 경순왕은 급속도로 왕건에게 붙음. 후삼국 통일의 기틀마련
※ 후백제와 고려는 정통정권인 신라를 끌어들이려 경쟁적으로 경순왕을 ‘존왕(尊王)의 의(義)’로 대접한다.
o 신라 고려에 귀부(935)
o 후백제 멸망(936) : 일리천(현 선산) 전투, 황산전투
※ 당멸망(907) → 5대 10국 → 송 건국(960)
※ 거란 건국(916;야율아보기) → ‘요’개칭(936;연운 16주 획득) → 전연의 맹 체결(1004;송 공격 후)
※ 금 건국(1115) → 북송멸망(1127;연운 16주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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