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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연표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중국 | |
1c | o태조왕(53-146) :고대국가성립기(5부체제) ·소노부→계루부왕위세습 |
※ 신라 박·석·김 3조의 시조설화 · 박혁거세(BC69) ┌박혁거세: 나정 옆 백마, 알, 해와 달이 밝게 빛나 └부인 알영: 알영정 가에 나타난 계룡 옆구리에서 출생 · 석탈해(57-80) ┌알로 탄생, 궤짝에 담겨 버려짐, 붉은 용이 호위 →울산 지역으로 들어 옴 ├처음 금관국에 도착했으나, 수로왕과의 전쟁에서 패해 신라로 왔다는 기록도 有 └※숯돌과 숯을 묻어 호공의 집을 빼앗는 기사 · 김알지(60) ┌호공이 월성 서쪽 지나다가 시림(계림)에서 흰닭이 우 는 소리 들려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 걸려 있음. 궤를 열어보니 알지가 나옴 └※미추왕(첫 김씨왕)→내물왕(두번째)대 김씨 왕위 독점 |
※ 수로왕 탄생설화(42) - 위협주술 · 9간들이 구지가부르다 6개의 황금알 받음. 그 중 제일 먼저 나온 아이가 김수로, 나머지는 5가야통치 ┏연맹체설 ┗독립된 제국(諸國)설(≒은하정치체설) |
※한(BC 206~AD 220) cf.왕망 新건국(9~25) →이를 기준으로 전한, 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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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 | |||||
o고국천왕(179-197) ·진대법(빈민구제/귀족억제) ·부자상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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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관가야(가락국, 본가야) : 대성동고분군(철제판갑옷, 오리모양 토기, 말모양 띠고리, 목곽(덧널), 바람개비 모양 동기, 거울조각 펜던트), 양동리고분군, 김해 패총 ▪ 대가야(고령) : 지산동고분군(금동관), 고령 양전동 암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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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 | o동천왕(227~248) ·서안평공격→위(魏)장 관구검(수도 국내성 함락) ※부여는 이때 위군에 군량제공 |
o고이왕(234~286) :고대국가성립기(5부체제) ·한강유역 3국중 최초로 차지 ·국가체제정비 ① 6좌평 16관등 ② 공복제도 ③ 남당설치 ④ 율령반포 ※중: 서진(西晉)에 사신파견 (마한의 이름으로 교역) |
※위·촉·오 3국시대 (220~280) →당시 고구려는 위와 대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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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c | o미천왕(300~331) ·서안평공격,낙랑·대방점령 →중국 군현 완전 소멸 |
o근초고왕(346~375) ·고대국가완성기 ① 부자상속, 왕비족 진씨고정 ② <서기>편찬 ③ 영토팽창 : 평양성공격, 마한차지(남해안 진출), 요서·산둥/일본 식민지, 가야7국 병합 ·‘한산이도’(371): 한산으로 수도 옮김 ·고대 해상무역패권 장악 ※중: 동진(東晋)에 사신 파견(372) ┌처음으로 공식적 외교관계 성립 └“진동장군령낙랑태수” 책봉 ※日: 아직기(한자),왕인(논어,천자문)파견 |
※4c 후반 · 근초고왕 정복사업으로 백제의 영향력아래 들어감 · 백제 이곳에 대외무역 위한 일종의 상업기관 설치 →이것이 임나일본부(4c~6c)로 왜곡됨 |
※ 5호 16국의 혼란시대(316~439) ※ 전진이 전연을 멸망시킴 →이후 고구려는 전진(351-394)과 우호관계→영역확대 주방향을 남으로 돌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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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고국원왕(331~371) ·전연모용황의침략(수도함락) ·근초고왕한테전사(평양성;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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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침류왕(384~385) ·불교수용(←동진) |
o내물마립간(356~402) :고대국가성립기┏김씨 왕위세습 확립 ┗마립간 칭호 사용 ※고구려에 인질보내 화호관계(실성) ※중: 전진(前秦)에 사신파견(381;고구려 통해, 첫 외교관계) ※광개토대왕 원정군(400) ┏고구려와 상하관계: 군대주둔, 호우명 그릇 ┗가야지방까지 진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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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c 광개토대왕의 침공(400) · 신라에 침공한 왜를 쫓아 가야지방까지 침공 · 이후 가야의 주도권 이동: 김해의 금관가야(본가야, 가락국) → 고령의 대가야(후기 가야연맹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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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소수림왕(371~384) ·고대국가완성기 ① 불교수용·공인(전진) ② 태학설립 ③ 율령반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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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c | ※이후 백제는 고구려의 위협으로 국가적 시련 계속됨 |
5c | o 광개토왕(391~413) • 백제공격 →한강선(한강상류)진출 • 왜구격퇴(내물왕;400) →낙동강하류까지 진출 ⓵ 신라와의 관계 ⓶ 전기가야연맹 쇠퇴 • 후연(선비족,서쪽)·비려(거란)·숙신(여진,동북)정벌 →요동수복 ※북위(北魏)에 조공관계 |
o 비유왕(427-455) ·나제동맹(433-554) 체결 o 개로왕(455~475) ·북위에 국서(원병요청,현존) →고구려 자극→장수왕의 정벌, 한성점령→개로왕 아차산성에 끌려가 죽음(고국원왕 복수) ⇨한성시대 종결 |
o눌지마립간(417~458) ·부자상속제 확립 ·나제동맹(+비류왕) ·불교수용 |
※위·진 남북조시대(439~589) (고려한국사 157-8p그림 참조) ┏북위(北魏; 화북 통일) ※고구려(광~장) : 북위에 조공관계(대체로 화친유지) ※장수왕은 북위 외에 남조의 송과도 교류(양면외교) ┗송(宋; 420~479)-제-양(梁; 502~557)-진 ※백제(무령왕-성왕) : 남조의 양과 교류 ※삼국과 중국관계 : 남북조 이전이 단순한 교섭관계였다면, 남북조시기에 이르면서 정기적인 조공관계로 발전함(형식적 조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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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장수왕(413~491) · 광개토대왕비 건립 • 평양천도(→전한강 점령) ※나제동맹(비·눌)야기→북위에 국서(개로왕)→(오히려 고구려의 심기를 건드림)→한강/한성점령→웅진천도→결혼동맹(동·소) ※다면외교(남북조 양면외교): 북위에 조공관계& 남조의 송과도 외교→상호견제 도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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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문주왕(475~7) ·웅진성천도→문주왕 살해됨 ⇨ 백제의 시련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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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동성왕(479~501) ※백제의 부흥시도 (왕권회복시도) ·결혼동맹: 신라 귀족딸과 결혼(→외척세력배제&왕권강화) ·웅진부근 토착세력 등용(연·백·사씨 등) ·탐라복속 |
o소지마립간(479~500) ·우역설치 ·시사설치(최초의 시장) ·결혼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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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c | o문자왕(491~519) • 고구려최대영토(부여도 복속) |
o 무녕왕(501-523) ※백제중흥의 기반마련 • 22담로에 왕족파견 (→중앙집권(왕권) 재정비 →사비성천도의 기반마련) • 양에 사신파견 · →다시 강국 되었음을 선언 ·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영동대장군’ 책봉 받음 |
o 지증왕(500~514) • 한(漢)화정책 ① 왕호: ‘왕’으로 ② 국호: 사로국→‘신라’ ③ 지방: 주·군제실시 ·최초 주·소경(아시촌소경) • 우산국정벌(이사부) • 경제·사회시책 ① 상복법(喪服)제정 ② 순장금지→노동력확보 ③ 우경장려┐→농업발달 수리사업┘ ④ 동시, 동시전설치 ※ 포항 중성리 신라비(신라최초), 영일 냉수리비 |
┏금관가야(가락국) : 법흥왕대 멸망 →이때 신라에 투항한 구해왕이 김유신의 증조부 ┗대가야 : 진흥왕대 멸망 ※ 유민: 우륵 ⇨ 비록 가야제국은 멸망했으나, 신라의 정치·문화에 많은 영향 끼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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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법흥왕(514~540;중고기) ·신라 최초의 연호: 건원 • 정치제도 ① 병부설치(최초의 관부) ② 상대등설치-왕·귀족 조화 ③ 백관공복제 • 율령반포(울진봉평비 확인) • 불교공인 • 대외관계 ① 남조의 양과 외교관계 (내물이후140년만 대중교섭) ② 금관가야 정복(532) ※울진봉평비, 영천청제비, 書石암각화(천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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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성왕(523~554) ※중흥의 군주 • 사비성천도→‘남부여’국호 ① 중앙관부 : 22부설치 ② 수도 : 5부 ③ 지방 : 5방-군·성 • 불교진흥┏ ① 겸익(인도에서 돌아옴) ┗ ② 노리사치계 : 日불교전파 • 나제동맹결렬(554) :한강하류 재탈환→신라배신→관산성(옥천)전사 ※⇨ 이때부터 고구려와 연결&신라 지속적 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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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c 후반 동아시아 전쟁기 진입] ※6c후반 고구려의 상황 ⇨ 고구려: 돌궐+백제와 연결 ※여수전쟁(598,612; 영양왕)- 수, 4차례 침략 -고구려의 선공(598): 말갈병 1만명 동원해 선제공격 ┌문제의 공격 →실패 └양제의 공격(612) ┌육군: 요동성 공략 실패 ┐요동공략 실패 └수군: 대동강 침투해 평양성 공격·실패┘ →30만대군의 별동대 우회파견해 평양성 직접공격 →을지문덕 살수대첩 |
o 진흥왕(540~576) • 정치 ➀ 전륜성왕, 대왕의식(제왕건호(개국,대창,홍제), 태자·짐 용어) ➁ 사정부(감찰), 품주(최고정부기구)설치 ➂ 화랑도 공인, 교단조직 • 황룡사조성, 황룡사 장육상(:신라3보), <국사>편찬(거칠부) • 대외관계-최대(함흥평야) ➀ 대가야 정복 ➁나제동맹결렬→한강유역점령 ➂ 중국과 직접통교(당항성) ※단양 적성비, 4순수비(척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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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통일(589~618) - 백제, 고구려, 신라 각각 책봉 ※고구려:수나라 요서 선공(598,영양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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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진지왕 -귀족회의에 의해 폐위됨 o진평왕 (579~632) ·걸사표(원광, 608, 수나라에 보냄) · 진평왕 옥대(왕권강화상징:신라3보) ※ 남산신성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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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c | o무왕(600~641) ·미륵사·왕흥사창건 (익산경영→천도는 실패) ·서동요의 주인공 |
o의자왕(641~660) · 해동증자(효성,우애) ·한때 대야성과 더불어 신라 40여성 탈환 →신라의 위기 ·고구려와 함께 당항성탈취(642) |
※당 건국(618-907) - 삼국 동시 책봉(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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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선덕여왕 (632~647) ·첨성대 ·황룡사9층木탑(:신라3보) |
o진덕여왕 (647~654) ·품주→집사부(기밀사무),창부(재정)로 분화 ·좌이방부(형률)설치 |
※ 신라 중고기 왕권강화(불교 왕명시대) : 자주적 연호의 제정, 국사 편찬, 순수비 건립. 진종설과 왕즉불사상 통해 왕권의 신성화 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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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국 시기 연표
7c | o 대조영[고왕] * 당의 기미지배: 이진충의 난(696-700) - 대조영의 이해고 군 격파(천문령 전투) - 동모산(길림성 돈화 성산자산성)에서 진(震) 건국(698) |
o 신문왕(681~691) • 김흠돌난 평정 : 귀족 대거 숙청 → 전제왕권확립(만파식적) → 성덕왕·경덕왕대 전성기 • 달구벌 천도 계획 → 실패 • 제도완비 ⑴ 정치제도완비 ① 6전제도 완비 ② 지방제도: 9주5소경(주·군에 외사정 파견) ③ 군사제도:9서당10정 ⑵ 교육제도: 국학설치 ⑶ 토지제도: 관료전지급, 그후 녹읍폐지 ⑷ 5묘제 성립(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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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신라 | ※중국 | ||||
8c | o 고왕(천통, 698~719) · 건국(698) • 대외관계 ① 사신파견(통교) ┌ 돌궐 └ 신라(대아찬수여) ② 당: 발해군왕 책봉(713) → ‘발해’로 국호 변경 • 영토확장: 사방2천리 영토차지 |
o 성덕왕(702~737) : 정치적 전성기 • 정전지급(722) • 대외관계 ① 강릉에 장성축성 → 발해 영토확장(무왕) 경계 ② 발해·당 전쟁에 적극 참여(733) → 당과 국교재개(733) → 대동강이남 신라땅 인정(735) |
※ 발해 vs 당·신라 전쟁(732-3) ※ 안록산의 난[안사의 난](755-763,경국지색) ※ 일본 헤이안시대(平安시대[현 京都];794-1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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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무왕(인안, 대무예;719~737) • 영토 크게 확장: 북만주 일대차지 • 외교관계 ① 日과 친선관계 : 신라견제 →사신파견(727) ② 돌궐통해 당견제 • 전쟁 - 흑수부말갈이 원인 ① 장문휴의 산둥반도 덩저우 선제공격(732,∵대문예망명사건) ② 신라의 참전: 당군 지원(733) →당·신라의 협공 & 실패(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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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문왕(대흥, 대흠무;737~793) • 황제칭호, 전륜성왕, 고려국·천손 표방(일본에 보낸 국서) • 지배체제 정비 ① 3성 6부제도 도입 : 정당성(-6부:충인의/지예신)·선조성·중대성 ② 주자감설치(국립대학) ➂ 주작대로 설치(당 장안성 모방) ※ 천도: →중경 →상경 →동경 • 대외관계(문왕대는 발해의 자부심이 고조된 시기) ➀ 영토팽창(남: 신라, 북: 흑수말갈 접함) - 무왕대의 영토팽창 정책 지속으로 동·북 말갈복속 - 안록산난(안사의 난, 755~763) 계기: →당 세력 크게 약화 발해 지위 크게 상승 → 발해국왕 승격(762) ➁ 외교관계 : 당·신라와 관계 호전 ┏ 당 : 국교수립(서경압록부) ┣ 일본 : 사신파견┌ 일본의 대신라전 참전요청 거부 ┃ └ 국서(‘고려국’, ‘천손’, ‘장인과 사위의 나라’) ┗ 신라 : 상설교통로 개설, 신라에서 사신파견(※원성왕, 헌덕왕) |
o 성왕(중흥, 793~795) · 다시 상경용천부로 환도 (→이후 쭉 수도) |
o 경덕왕(742~765) : 문화적 전성기 ·왕권강화 재시도 - 실패 ① 국학→태학 개칭 ② 중앙통치기구 및 주군현 칭호에 한화정책 실시 (cf.지증왕: 주·군·현의 제도를 실시) ·석굴암, 불국사(다라니경) ·녹읍부활&관료전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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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혜공왕(765~780) ·대공의 난(768) ·김지정의반란(780) (→김양상이 진압, 스스로 왕이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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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선덕왕(780~785;하대) →내물계. 이후 쭉 내물계 김씨가 왕이 됨(단, 예외 朴씨왕 3명 나옴) |
o 원성왕(785~798) - 독서삼품과설치 |
9c | o 선왕(건흥, 818~830) : 중흥기, 최전성기 ⑴ 지방행정조직 정비: 5경, 15부, 62주 ⑵ 최전성기(최대판도) ① 소고구려국까지 편입 : 요동지방 확보 ② → 해동성국 칭호 |
o 헌덕왕(809~826) ·무열계의 반발 ① 김헌창의난(822)-장안(국호),경운(연호) ② 김범문 난(825) |
o 흥덕왕(826~836) ·청해진 설치(828~851;장보고, 완도) →서남해안 해상패권 장악(사무역 발달) |
o 문성왕(839~875) ·장보고의 반란(838, 846) : 신무왕 옹립 →중앙의 정치투쟁(왕위쟁탈전)에 개입 |
o 진성여왕(887~897) ·삼대목편찬(대구화상, 각간 위홍. 부전) ·전국적 민란의 발생 (사벌주[상주] 원종·애노의 난이 시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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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 | ※ 발해멸망(926): 거란과 전쟁 보름만에 멸망. ※ 발해유민 부흥운동: 정안국, 후발해국, 오사국, 흥요국, 대발해국 (cf.동란국(東丹國) : 거란이 발해멸망시키고 세운 ‘동쪽의 거란국’) ※ 발해 멸망 후 발해지배층 대거 고려로 망명(12C초 예종代까지) : 고려지배층의 일부를 구성, 왕족으로 대우하기도(대광현) |
o 후백제건국(900;완산주) : 오월·후당·거란과 고른 외교 o 후고구려건국(901;송악) →마진(904) : 무태·성책, 철원천도(905) →태봉(911) : 수덕만세·정개 o 고려건국(918;철원) : 송악천도(919) <전투> o 견훤의 경주습격(927) : 경애왕 죽이고, 경순왕옹립 → 왕건의 대구 공산전투 패전(927)(신숭겸·김낙 전사) → 고창(현 안동)전투에서 고려군의 대승(930): 이후 경순왕은 급속도로 왕건에게 붙음. 후삼국 통일의 기틀마련 ※ 후백제와 고려는 정통정권인 신라를 끌어들이려 경쟁적으로 경순왕을 ‘존왕(尊王)의 의(義)’로 대접한다. o 신라 고려에 귀부(935) o 후백제 멸망(936) : 일리천(현 선산) 전투, 황산전투 |
※ 당멸망(907) → 5대 10국 → 송 건국(960) ※ 거란 건국(916;야율아보기) → ‘요’개칭(936;연운 16주 획득) → 전연의 맹 체결(1004;송 공격 후) ※ 금 건국(1115) → 북송멸망(1127;연운 16주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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