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는 모든 구원이 끝나버린 시간이라는 뜻이지. 최후의 시간에서 이미 한 시간이나 더 지나버린 절망의 시간,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순간이 바로 25시야.” |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25시'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는 수용소에서 석방된 주인공 모리츠가 가족들과 재회하는 장면이 있다. 카메라를 들이댄 기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앤서니 퀸의 표정 연기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아내가 독일군에게 추행 당해 낳은 아이를 안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표정에는 한 인간의 비극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잔인한 역사를 견뎌야 했지만, 누구도 미워할 수는 없다는 듯한 그 망연자실한 표정은 분노를 넘어 차라리 아름다웠다. 초월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역사는 냉혹하게 흘러간다. 인간들이 겪을 상처 같은 건 관심 밖이라는 듯, 역사는 늘 역사 마음대로 흘러간다.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의 소설 '25시'는 역사에 철저히 유린당한 소박한 농부의 인생유전을 다룬다. 이 암울한 소설 제목이 왜 '25시'일까. 소설에는 무슨 이유로 제목을 '25시'로 지었는지 암시하는 부분이 나온다.
"25시는 인류의 모든 구원이 끝나버린 시간이라는 뜻이야. 설사 메시아가 다시 강림한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시간인 거지. 최후의 시간도 아닌, 최후에서 이미 한 시간이 더 지난 시간이지. 서구 사회가 처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25시야."
스스로 피신과 망명,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작가에게 2차대전을 전후한 서구사회의 모습은 '최후의 시간조차 지나가버린 25시'로 보였으리라.
소설에는 약소국 루마니아의 평범한 농부 요한 모리츠가 등장한다. 그의 인생은 기가 막히고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
2차대전이 시작되면서 모리츠는 유대인이라는 오해를 받아 강제수용소에 갇힌다. 수용소에 갇혀 있던 그는 천신만고 끝에 헝가리로 탈출하지만 그곳에서는 적성국 루마니아인이라며 모진 고문을 당하고 포로로 감금된다. 포로가 된 모리츠는 독일에 끌려가 전쟁노무자로 일을 한다. 그곳에서 혈통연구가인 독일군 장교 눈에 띈 그는 얼떨결에 게르만족의 순수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인정받아 포로 감시병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모리츠는 기회를 틈타 프랑스군 포로를 데리고 연합국 진영으로 탈출해 영웅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전범으로 분류되어 수용소에 갇힌다. 전쟁이 끝나고 천신만고 끝에 석방되어 가족과 재회하지만 그는 다시 18시간 만에 감금된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동유럽인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13년에 걸쳐 계속된 모리츠의 유배생활이 소설의 줄거리다.
13년이란 세월 동안 모리츠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접 받지 못한다. 아무도 모리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이 원하는 분류법으로 한 사람의 인권을 유린했다. 그렇게 모리츠는 구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25시'를 살아야 했던 것이다. 도대체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신조차 대답해 줄 수 없는 시간을 그는 살았던 것이다.
루마니아 동부 몰다니아 지방에서 태어난 작가 게오르규는 부쿠레슈시티와 하이델베르크에서 대학생활을 한 뒤 시인으로 등단한다. 파시스트들에게 저항하는 시를 썼던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서방으로 망명한다. 그러나 유럽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은 적성국가 국민이라는 이유로 게오르규 부부를 2년 동안 감금한다. 소설 '25시'는 바로 이때 쓰여진 것이다.
1949년 5월 '25시'가 프랑스어로 출간되자 세계는 충격을 받는다. 주인공의 '25시'는 2차대전을 지나온 바로 그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게오르규는 <25시>에서 인간의 자유와 개성, 신앙심과 같은 인간적인 모든 가치를 없애려는 기계문명을 지목하고 이로 인한 기계주의적 전체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잇다. 그것은 단순히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이 아닌 잘못된 서양 역사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비판을 동양의 정신적 문화에서 해답을 얻으려 했고 동양적인 인간상 요한 모리츠를 등장시켰다. 주인공 요한은 기계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상이나 잘못된 역사는 배반과 억압과 고문으로 사정없이 그를 상처내었다. 그러나 요한은 끝까지 인간적인 자유와 순결을 지켜냄으로써 기계문명에 항거하는 인간의 처절하고 끈질긴 모습을 제시해 주었다. 게오르규는 <25시>의 절망적인 상황인 획일성, 편의성, 폭력성을 현대의 인간에게 동일하게 던져진 문제로 보고 그 해답으로서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