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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 스칸디나비아, 유틀란트, 기원

Jobs 9 2025. 3. 2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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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

 

원래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트 반도에서 기원

 

BC 8세기에서 AD 세기에 활동했던 민족이다. 인도유럽어족 중에 게르만어파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총칭하고, 우리가 흔히 아는 독일어권과 영어권 백인들의 뿌리가 된 민족이다.

 

게르만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다. 게르마니아라는 지명은 게르마니인의 땅이라는 뜻이지만, 정작 그 게르만이 어디서 왔는지는 오리무중. 다만 타키투스가 관련 기록을 남겼는데, 그는 게르마니아(게르만)라는 명칭이 꽤 새로운 호칭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게르만은 라인강 서쪽의 퉁그리족이라는 부족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점차 의미가 확장되어 그쪽 방면의 민족집단 전체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또 타키투스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라인강 동쪽의 어느 부족에게서 게르만이라는 명칭이 유래했을 것이라도 추측했다.

 

 

오늘날의 미국 백인, 영국인, 호주인, 뉴질랜드인, 캐나다인, 덴마크인, 스웨덴인, 노르웨이인, 아이슬란드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스위스인 등이 해당된다.

 

지금은 게르만족들이 역사를 거치며 섞여서 다양한 민족으로 호칭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서 '게르만'이라고 하면 주로 4세기의 민족대이동 이전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게르마니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원시 게르만 민족을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의 부족은 원시 씨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최근의 연구 성과는 같은 부족으로 묶인 집단도 굉장히 다원화된 구성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부족의 이름은 주로 정치적인 주도권을 지닌 소수 집단에 의해 정해지는 편이었다.

 

사용 언어와 인종을 기준으로 비교적 넓게 나뉜 민족 개념은 'nation'보다는 'ethnic group'에 가까우며, 통일 국가와 절대왕정 체제를 이룩한 프랑스와 달리 작은 소국가로 분열이 이어졌던 독일이 게르만어파를 기준으로 'ethnic group' 개념으로서의 게르만 민족을 내세우며 민족 국가의 틀을 잡는 데 이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징과 스테레오타입

 

흔히 게르만족 하면 금발을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게르만족이 금발이란 생각은 편견으로 독일이나 네덜란드를 비롯한 대륙으로 내려간 게르만족들은 금발보다는 갈색 머리나 흑발도 많이 보이고 남서유럽의 라틴족, 동유럽의 슬라브족 같은 다른 유럽 민족들에게서도 금발은 많이 나타나고 금발 외에도 적발 같은 다양한 색깔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하다못해 히틀러와 괴링도 흑발이다. 즉 애초에 게르만족이라는 것이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동일한 씨족 집단이 아니기에 모든 게르만인이 금발이라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오류라 할 수 있다.

 

영화 등으로 인해 게르만족은 야만인들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들도 농경을 중시하는 정주민족이긴 매한가지였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의 저서인 로마인 이야기에서 게르만족이 고원의 기마민족이라고 서술했지만, 엄연히 틀린 설명으로 게르만족은 기본적으로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농경민이었다. 다만 기후적, 토양적 요인 탓에 목축과 사냥의 비중이 로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건 사실이다.

 

북해로 대표되는 바다를 낀 민족들이 많았고 당연히 해산물 섭취 역시 많았다. 주로 청어와 대구를 많이 먹었으며, 이외에는 굴이나 홍합같은 조개류와 새우 등 갑각류도 먹어왔다. 그러나 다른 해양민족들과 달리 오징어 등 두족류가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졌고, 해조류도 거의 먹지 않았다. 이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영미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미국, 영국, 호주 등지에서는 두족류와 해조류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필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게 게르만 계통 문화권이면서 초강대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미권이다 보니 이들의 문화가 사실상 표준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서양인은 두족류(문어, 낙지)를 먹지 않는다'라는 인식의 주된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인차가 있긴 하나, 한국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대체로 질서나 원리 원칙을 크게 강조하는 등 합리적인 걸 좋아하고,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널리 퍼졌다. 결벽증이 심해서 항상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도 있다.

 

종교는 역사적으로는 독일 북부와 스칸디나비아, 네덜란드에서 개신교가 주류였고 오스트리아, 벨기에, 독일 남부에선 가톨릭이 주류였다. 대표적 개신교 교파는 북유럽 일대의 루터교회와 영국의 성공회, 감리회가 있으며 이 중 영국계 개신교단들인 성공회 등은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도 진출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도 교세가 크다. 다만 네덜란드 개신교가 19세기 후반부터 감소하고, 동독이 공산화되고, 개신교 측이 소폭 많았던 스위스의 개신교 역시 감소하면서 역사적 개신교 우위 지역은 줄어든 상태이다. 현대에는 네덜란드, 스위스에서 가톨릭 비율이 더 높다. 독일의 경우는 가톨릭과 개신교 비율이 거의 비슷비슷한 편.

 

현대의 게르만 국가들을 생각하면 의외라 여겨질 수도 있는데 라틴계 민족들에 비해 게르만계 민족들은 전통적으로 부계 사회 성향이 강한 편이었고 이로 인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중세시대의 상속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살리카법이다. 다만 현대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부계사회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편이다. 출산율의 경우, 과거에는 남동유럽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1960년대 이후로는 피임약이 빠르게 보급되고[ 기독교적 가치관이 많이 축소되면서 애들을 잘 안 낳는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만화에서도 이러한 1970년대의 시대상이 반영되었던 것이다.

 

2010년대에는 크레디트 스위스나 OECD의 조사 결과 때문에 받는 소득은 평등하지만 쌓아놓은 자산을 보면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한 나라들이란 인식도 생겨났다(...). 특히 독일과 스웨덴.

 

배달의 민족이 독일 회사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 되자 배달의 민족은 게르만족이라는 드립이 성행하고 있다.

 

교실에서 수업을 받거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등의 환경에 있을 때 본인에게 불편함이 느껴지면 다른 옵션을 요구하기보다 그 환경을 거부하고 돌아가 버리는 일이 잦다. 남녀 공통으로 적용되기는 하는데 여성층에서 좀 더 나타나는 편이다. 이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의 영국에 그 뿌리가 있는 오늘날 미국인들에게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수업을 받는데 본인에게 다소 부담이 되거나 버거우면 '나는 이 수업을 들을 수 없음' 내지는 '나는 이 과제를 해낼 수 없음'을 어필하고 바리바리 책가방을 싸서 교실을 나가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이때 그 수업이 학원 등 본인이 직접 등록해서 듣는 사교육이면 매우 높은 확률로 수강을 취소하고 환불을 받으려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는 라틴족이 주류 민족인 남유럽 및 중남미 문화권과 매우 대비되는 모습인데 이는 오늘날 많은 게르만계 국가 국민들이 불편한 상황에서(타인에 의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독일인, 스위스인 등 내륙 게르만계 사람들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 중 하나가 시간 관념이 엄격하다는 것인데 이의 연장선상이다. 시간을 알뜰살뜰하게 쓰는 것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경향상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수업이나 서비스 환경은 이미 그 자체로 시간 낭비인 상황으로 간주, 강력한 거부 의사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에 따른 환불도 마찬가지 논리로 '이 수업/서비스를 다시 받을 때 또 이 같은 환경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음'에 의거, '따라서 굳이 불확실한 상황에 시간을 걸고 싶지 않음'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어 쉽사리 환불 등의 후속 조치로 이어진다.

 

 

역사

 

고대

 

북유럽 청동기 시대 사회

청동기 시대의 게르만족

 

기원전 50년~ 기원후 300년 사이의 게르만족의 분포도

 

고대 게르만족의 이동

 

 

독일을 영어로 Germany라 부르다 보니 현 독일 지역이 이들의 주 영역이었다는 인식이 있으나, 본래 게르만족은 전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내려왔다. 기원전 700년 이전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 남안과 유틀란드 반도에서만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전 600년~300년 사이 스칸디나비아의 기온이 내려가자 게르만족은 대거 발트해를 남하하여 발트해 남안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후 남하를 계속하여 켈트족을 몰아내고 중부유럽을 차지하여 정주하게 된다.

 

기원전 120년 유틀란드 반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튜튼족) 등이 살 곳을 찾아 남하하다가 로마와 맞닥뜨리게 된다. 로마는 이들이 이탈리아로 침공할 것을 우려하여 수차례 군대를 보냈으나 전멸하고 집정관이 연이어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큰 위협을 느낀 로마는 기원전 105년 무려 12개 군단을 동원하는 총력전을 펼쳤으나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8만 명이 전사하는 로마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악의 참패를 당하게 된다. 이에 로마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국가적 위기를 맞은 로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지도하에 로마의 사회 체제를 뒤엎는 군제 개혁을 실시했다. 그런데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은 곧장 이탈리아로 진격하지 않고 이베리아 반도와 갈리아를 유랑하면서 선주민들과 전투를 치르며 전력을 소모하다가 급기야는 분열되고 말았다. 한편 로마군은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직업군인화되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분열된 게르만족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탈리아로 접근해 오자 로마군은 기원전 102년 마르세유 인근에서 테우토니족을 격퇴했고, 이어 기원전 101년 알프스 산맥을 넘어오느라 약화된 킴브리족을 밀라노 인근에서 섬멸했다.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은 전멸했고 여자들과 어린이는 자결하여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 군제 개혁으로 로마군은 용병화되어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하는 중요한 한 원인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만족과의 경계를 라인 강에서 엘베 강으로 확장하기 위해 11개 군단을 투입하여 10여 년에 걸친 대규모 게르마니아 정복 사업을 펼친다.(게르마니아 전쟁) 그러나 서기 9년에 아르미니우스가 이끄는 게르만족 연합이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로마군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면서 로마 제국은 게르마니아 정복을 포기하게 되고 로마와 게르만족의 국경은 라인 강과 도나우 강으로 확정된다.

 

토이토부르크 전투 이후에도 게르만족과 로마는 라인 강과 도나우 강에 이르는 넓은 지대를 국경으로 마주하면서 수시로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진다. 3세기에는 게르만족의 한 부류인 고트족, 프랑크족, 알레마니족이 로마를 공격하여 로마에게 타격을 주기도 했다. 동시에 게르만족과 로마 사이에 조심스러운 교류가 진행되기 시작되어 게르만족은 로마 사회로 조심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게르만족의 범위는 굉장히 넓었고 그 속에 많은 부족들이 있었으므로 로마는 일부 게르만족과는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다른 일부 게르만족과는 동맹을 맺는 식의 정책을 쓰며 게르만족을 다루었다.

 

4세기에 들어설 무렵엔 게르만 족과 로마 사이에 상당한 교류가 진척되어 용병으로 당시 이미 상당히 와해되어버린 로마의 국방제도를 메워주기도 하고, 로마 농민들이 경작을 포기한 변경지대에 대신 이주하여 그 땅을 경작하고 세금을 내기도 했다. 한편 수세기에 걸친 교류를 통해 게르만족과 로마와의 문화, 문명적 수준 차이가 점점 좁아졌다. 피터 히더의 '로마 제국과 유럽의 탄생' 중 2장 '세계화와 게르마니'에 의하면 4세기 들어서는 군사를 전담하는 귀족 종사단, 즉 초보적인 형태의 장교단이 형성되었고 그들 중에서 좀 더 뛰어난 자들이 부족/종족 전체를 이끄는 부족장/왕이 되었다. 즉 부족장/왕 입장에서 이들은 잠재적인 경쟁자였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들 중에서 본인의 위치에 도전하려는 것이 보이거나, 그런 것이 확실하지 않더라도 실력과 인망이 빼어나게 좋았던 경우 내분이 있었으며 심하게는 내전도 있었다. 로마가 이들 간의 갈등관계를 이용해서 같은 게르만 부족/종족 내 디바이드 앤 룰을 성공시킨 사례도 더러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저 귀족 종사단은 부족장/왕이 되기 위한 일종의 예비 인재풀이라서, 여러 부족/종족을 한꺼번에 통제하는 부족장/왕이 상설직이 아니라 이전의 아르미니우스나 옆 갈리아의 베르킨게토릭스와 같은 특출난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거했던 나머지, 이들이 죽고 나서 이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던 일은 없어졌다. 지도자가 죽었는데, 그 아들이 나이가 충분히 차 있으면서 리더십이 되면 성공적으로 세습하는 것이고, 리더십이 없거나 나이가 너무 어리면 귀족 종사단 중 실력과 인망이 있는 사람이 새로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즉 일가 내 세습이 정착되지는 않았다 해도 부족장 내지 왕 자리는 예전과 달리 상설직으로 정착되었어서 정치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었고 결집력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발전한 게르만족은 로마에게는 종전보다 훨씬 강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렇게 되니 귀족 종사단과 그 밑의 평민과의 사회경제적 차이는 종전에 비해서 점점 벌어졌다고도 한다. 또한 제국과의 국경인 라인 강 혹은 다뉴브 강 한가운데에서 로마 황제들과 선상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로마 황제와 1:1로 회담을 하는 것은 제정 초기에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4세기 후반, 동방에서 훈족이 나타나자 난리가 나버렸다. 갑자기 동쪽에서 훈족이 나타나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연맹왕국 비스무리한 것까지 형성하면서 게르만족 중 가장 잘나가던 동고트족을 휙 밀어버리자 이들이 서진하면서 주변의 여타 게르만족들을 도미노 쓰러뜨리듯 밀어버렸고, 그 결과 일어난 것이 바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다. 이로 인해 로마의 영토 각지에 게르만족들이 자리를 잡아 각자의 왕국을 세우게 된다. 대표적인 왕국들은 아래와 같다.

 

반달족 - 반달 왕국

고트족 - 동고트 왕국 · 서고트 왕국

부르군트족 - 부르군트 왕국

프랑크족 - 프랑크 왕국

앵글로색슨족 - 칠왕국

476년 말의 유럽

 

특히, 이러한 왕국들 중 가장 눈에 띄는건 프랑크 왕국인데 짧은 이동거리와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는 클로비스가 시작한 로마 카톨릭 개종, 경제적 관점에선 대서양 근처 영토장악 후 곡창지대라는 지리적 우월함에 힘입어 주변 국가의 왕실들과 혼인을 하는 등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움직임이 번영의 이유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로마는 후에 여러모로 골치아픈 이들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먹히지 않은 게, 로마도 인력 부족이라서 이들이라도 받아들여 머릿수를 채워야 했던 안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족째로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전사를 군에 편입시켜 계속 인력을 충원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적, 물적 자원은 동로마 지역이 풍부한데 그 지역은 절반 이상이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대치 전선에 그게 투입되어야 하는지라(...). 이때 로마 병사들이나 지휘관들이 게르만족이기 때문에 이들을 막지 않았다는 것은 전형적인 편견이다.

 

실제로는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등의 게르만계 로마인들이 라틴계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해가며 분투하기도 했다. 애초에 게르만족은 단일 민족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며, 같은 게르만족이라도 전근대 시대에는 같은 부족이 아니면 그냥 남일 정도로 철저한 부족 사회였는데, 당연히 그 내부에서 친(親) 로마파 부족과 반(反) 로마파 부족은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다.

 

일례로, 고트족은 서로 같은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각각 서고트족과 동고트족으로 갈리면서 서고트족은 로마 제국의 신민이 되었고, 동고트족은 훈족에게 정복당한 뒤로 뒷날 훈 제국이 붕괴된 뒤에 동고트 왕국을 세워 독립하기 전까지 그들과 함께 따라다녔다. 그 결과로 카탈라우눔 전투와 같이 로마 제국의 운명이 걸린 큰 전투에서 같은 고트족끼리 칼끝을 겨누는 일도 비일비재했다.(서고트는 로마 편, 동고트는 훈족 편)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라틴족 또한 로마 제국 말기의 시점에서는 단일 민족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로마의 이탈리아반도 통일 이전에는 하나의 라틴족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이후 로마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 및 다른 문화권(이베리아 반도, 발칸 반도, 북아프리카 등)으로의 팽창을 통해 라틴족은 보다 더 다양한 혈통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사치와 퇴폐에 빠진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 용병들을 쓰게 되어 차츰 군사력이 저하되어 기강이 빠져 결국 망했다는 것은 틀린 해석이다. 로마군의 중추를 형성했던 게르만족들은 적어도 4세기까진 대부분 어디까지나 "로마 시민"으로서 직업 군인으로 복무하던 상비군이었고, 게르만족 출신 병사들과 장교들은 전반적으로 로마에 대단한 충성을 바쳤다.

 

당시의 로마 제국 내의 게르만족들의 삶은 이랬다. 게르만족들 중에서 귀족이거나 부유한 상인이나 지주쯤 되는 유력자의 자녀들은 로마에 반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볼모로 붙들려서 수도인 로마로 보내졌다. 물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한 후에는 그곳으로 보내졌는데, 이 볼모 생활은 강제적으로 유폐된 생활이 아니었다. 오히려 볼모들은 사실상 로마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으로 간주되었고, 이곳에서 로마식 교육을 받은 후에 로마 제국의 고관대작으로 임용되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때가 되어 족장의 자리를 물려받거나 가업을 잇기 위해 출신 부족의 영토로 귀국할 때에는 그야말로 금의환향이 따로 없었다. 엄청난 액수의 퇴직금, (명목상이나마) 제국 고위 인사임을 인증해주는 직인, 부족민들에게 나누어줄 각종 로마산 선물과 줄줄이 붙은 호위병을 대동하고 온 유력자 자녀를 게르만 족이라면 너도나도 부러워하였다. 그래서 아무래도 부족 내 영향력이나 발언권이 강한 상류층에서부터 반로마 감정이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는 꼭 게르만족들에게만 한 정책은 아니고, 유대인이나, 켈트족, 아랍인 등의 여러 비(非) 라틴계, 비 그리스계 민족들에게 두루두루 실행된 정책이었으므로, 로마 제국의 역사에는 이 정책의 혜택을 받고 출세하여 로마에 충성한 이민족 출신자에 대한 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유대인 출신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서부터,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의 피가 반쯤 섞인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시대를 잘 타서 아예 황제로 즉위하기까지 한 아랍인 장군 필리푸스 아라부스 등, 그 수가 매우 많다. 먼 훗날 서로마가 멸망한 후 동로마 시대에는 심지어 게르만족(고트족) 출신 로마 황제도 1명 나왔다.

 

용병이 정말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건 로마 제국의 재정이 엄청나게 취약해져 로마군 중 부족 단위로 편제되어 싸우는 단위들이 많아져 버렸기 때문이지, 게르만족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제국에 인력을 공급해주고 제국을 경모했던 게르만족이 아니었더라면, 제국의 서부 경계는 이미 3세기에 붕괴했을 것이 분명하다.

 

즉, 처음에 게르만족이 로마에 들어왔을 때는 "내 밥그릇"이 아니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서 게르만족이 로마에 정착해 군역도 하고 농경도 하며 살아가는 사이 게르만=로마, 다시 말해 게르만족 입장에선 "내 밥그릇"이 된 셈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내 것이 아니라면 빼앗으려 들거나 아니면 그게 망하거나 말거나 나한테 피해 없다면 내버려두고 말지만 그게 곧 내 것이 된다면 더더욱 애착을 가지게 되어 관리하려고 들게 된다. 이것과 마찬가지인 상식적 논리이다. 그런데 게르만족이 이제 자기와 동일시된 로마 제국을 즉, 자기 밥그릇을 지키지 않고 망하게 내버려 두었겠는가? 게르만족 입장에서 로마 제국이란 맨 처음 이주해 들어갈 당시 초창기에는 남의 나라였겠지만 시간이 지나 이젠 지켜야 될 나의 조국, 내 나라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라틴족으로 구성된 군단병들이 라틴족에서 게르만족으로 변화되면서 엄격한 기강과 국가에 충성을 보이는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는 건 "전통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냥 "틀린 얘기"다. 군단병의 구성 다수가 "이탈리아인"이 아니게 된 시기는 이미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부족 단위로 고용되는 게르만족이 무시할 수 없게 통제 불가능이 되는 건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이후에서부터의 일이다.

 

후기 로마군의 전술 변화는 게르만족이 로마군의 주력취급을 받으면서 로마인들 특유의 편제에 따른 세심한 전술적 움직임을 보이기가 어려운 게 결코 아니라, 역으로 "로마군 특유의 편제에 따른 세심한 전술적 움직임"을 게르만족이 보여줬고, 이에 대한 대응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게르만족이 야만적이고 무식해서가 아니다.

 

사치에 퇴폐에 빠져 서로마가 게르만족 용병들을 쓰다가 무너졌다는 것은 건전하지 못한 오류로, 역사와는 무관한 얘기다.

 

이 시기 게르만족에 대해 다룬 책으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의 게르만족의 기원과 위치가 있다.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재미있는 게르만의 풍습이 하나 나오는데, 전사의 키와 힘이 동정을 유지하는 기간에 비례해서 커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일찍 잃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기도 했고, 성경험이 늦을수록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그들 사이에서는 가장 오래 동정을 지킨 자가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 토이토부르크 승리의 비결 대마법사, 대현자 이런 풍습은 켈트족에게도 있어서 동정인 사람을 우대했다고 한다.

 

한편, 서로마 각지에 정착하고 나서도 6세기의 게르만 왕국들은 로마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상황이라 주화, 직함 등을 완전히 독자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채 제국의 권위를 일정 부분 빌렸었다. 의존도가 가장 약했던, 즉 반대로 독립성이 가장 강했던 것은 반달 왕국이었는데, 동서로마와의 전투에서 여러 번 이겼으며(특히 468년의 소위 Cape Bon 전투에서 1천 척도 넘는 동서로마 합동 해군을 꺾었던 승리가 결정적이었다.) 또한 지중해 건너 북아프리카에 있어서 콘스탄티노플과 가장 물리적으로 멀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이탈리아 및 달마티아의 오도아케르 정권 및 동고트 왕국은 그 반대였는데, 구 서로마의 중심지라 현지의 구 서로마인들의 영향력이 다른 곳보다 더욱 강했고, 또한 게르만 국가들 중 가장 콘스탄티노플과 물리적으로 가까웠던 탓에 동로마 정부의 비위를 완전히 거스르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로마와의 결전이 임박했거나 혹은 이미 전쟁 중이었던 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차이가 확 드러난다. 반달의 겔리메르는 유스티니아누스로부터 폐위된 힐데릭을 복위시키거나 아니면 콘스탄티노플로 보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둘 다 거절하며 유스티니아누스에게 보내는 서신에 '이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다. 군주라면 누구나 자기 일에 신경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항변하여 당신이나 나나 같은 군주라는 독자의식을 드러냈으나, 동고트의 토틸라와 테이아는 전쟁 중인 상황에서도, (차마 당장 침략해온 적군의 수괴(...)인 유스티니아누스의 명의로 주화를 발행할 수는 없으니) 명목상으로 제국의 산하 종족 혹은 세력으로서 조약/동맹(foedus)을 제국과 최초로 맺었던, 즉 동고트 왕국이 세워지던 493년 당시의 황제인 아나스타시우스 1세를 주화에 꼬박꼬박 넣어서 발행했다.

 

 

중세

 

8세기와 11세기 사이에는 북유럽에서 온 게르만족인 노르드인(바이킹)들이 전 유럽을 휘저었다. 게르만족은 원래 북유럽에서 왔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동족간의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미 유럽 각지에 자리잡고 기독교화된 게르만족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북유럽의 게르만족은 애당초 동질성이 거의 없어진 남남이나 다름없었다.

 

잉글랜드에선 바이킹들이 지배시기인 데인로(Danelaw)가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에는 바이킹 지배가 두 번 있었는데, 9세기에는 웨식스를 제외한 모든 영토가 바이킹에게 정복당하고, 11세기에는 크누트 대왕이 전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자신이 갖고 있던 덴마크, 노르웨이와 합하여 '북해 제국'(North Sea Empire)을 세웠다. 이 시기 영어는 같은 게르만계 언어라는 동질성 때문에 북게르만어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오늘날에도 상당한 북게르만계 어휘가 영어에 남아있다.

 

서프랑크 왕국에서는 롤로가 북쪽 해안에 정착해 노르망디 공국을 세웠다. 이 지역에 정착한 바이킹들은 프랑스의 문화를 받아들여 프랑스화하였고, 노르만족이라 불렸다. 1066년 노르망디 공작인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를 정복하는데, 노르만족까지 바이킹으로 친다면 잉글랜드는 총 3번에 걸쳐 바이킹의 침략을 받은 것이다. 노르만 족 정복자인 로베르 기스카르는 남이탈리아에 시칠리아 왕국을 세우고, 더 나아가 노르만 족 기사들은 십자군 전쟁 때 안티오키아 공국에 정착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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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기아인이 세운 루스 카간국

 

한편 동쪽으로 간 바이킹들은 우크라이나 일대를 정복하였고, 정복자 류리크의 후손들은 키예프 공국을 세웠다. 바이킹들은 더 남하하여 동로마 제국에서 바랑인 친위대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노르망디 공국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에는 앵글로색슨족 출신의 바랑인 친위대원도 늘어났다.

 

 

근현대

 

옛날에는 수많은 게르만 부족들이 있었지만, 후대에 프랑크 왕국 등 통일 국가가 생기면서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먼 타지에 왕국을 따로 차린 경우 현지인들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현지인들에게 역관광당하여 멸망하거나, 점령지에서 철수한 나라도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바이킹들이 오늘날의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지역을 침공하여 세운 식민지인 핀란드와 노르망디 공국의 잉글랜드 침공 직전에 잉글랜드를 공격한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그래도 프랑크 왕국과 독일 왕국에선 부족 공국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언어나 지명 측면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는 게르만 부족들은 아래를 들 수 있다.

 

노르드인 - 북게르만어군 언어권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앵글로색슨족 - 영어권

영국(잉글랜드, 저지대 스코틀랜드)

프리시 - 프리지아어권

네덜란드(프리슬란트), 독일(동프리슬란트, 북프리슬란트)

작센 - 저지 독일어권

독일(니더작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프랑크족 - 프랑크어군 언어권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플란데런), 독일(라인란트, 프랑켄)

알레만니 - 알레만어권

스위스, 독일(바덴뷔르템베르크, 슈바벤)

바이에른 - 오스트로바이에른어권

오스트리아, 독일(바이에른)

 

중세가 끝나고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독일 북부,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서유럽 북부, 북유럽의 게르만 국가들이 각각 개신교 교파들을 국교 혹은 그에 준하는 문화적 기반으로 삼게 되었고 이후에도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게 되면서 (북부)게르만족 = 개신교라는 인식도 생기게 되었다. 한편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독일의 바이에른 주, 벨기에, 스위스의 아펜첼이너로덴 주 같은 경우 국왕이나 영주가 종교개혁 세력과 반목한 역사적 이유 등으로 인해 가톨릭이 주류인 편이다. 물론 현재는 유럽의 전체적인 추세가 그렇듯 세속화가 많이 진행된 데다가 전통적인 개신교 다수 지역인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비율이 역전되어 종교로 스테레오 타입을 적용하긴 여러모로 난점이 많다. 그러나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구별이 가능한데, 개신교가 주류였던 지역은 전통의상이나 요리 등이 가톨릭 지역보다 대개 간소한 편이다.

 

 

 

오해

 

 

바이킹?

 

바이킹은 노르드족(북유럽에 살았던 게르만족)이다. 즉, 게르만족 일부가 바이킹이 된 것이다. 게르만족(AD 1세기 이전 ~ BC 8세기 활동)은 바이킹(BC 8~11세기)보다 훨씬 먼저 등장했다. 게르만족은 서유럽과 동유럽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미국의 건국이나 대영제국 시기의 식민지 정책 등으로 인해 앵글로 색슨족과 바이킹과 같은 게르만족들이 침략자에다가 야만인이라는 이미지로 알려져있는데 바이킹은 게르만족의 하나일 뿐으로 모든 게르만족이 북유럽에서 남하했거나 바이킹인 것은 아니다.

 

바이킹으로 유명한 경우

데인족 : 덴마크와 노르웨이 지역에서 건너와 '이교도 대군세' 시기에 영국을 침략하여 거의 앵글로색슨 7왕국 전부를 정복할 기세였으나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웨식스 왕국의 알프레드 대왕이 이들을 무찔러 앵글로색슨의 왕국을 존속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침략과 정복과정에서 데인족의 피가 영국인의 혈통에 많이 섞이게 됐고, 이 때문에 영국도 바이킹의 후손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데인족이 앵글로색슨을 몰살 시키고 '혈통교체'를 이룬 수준은 아니고 그저 지배층만 바뀐 수준이었으니 적절치 못한 주장이다. 이것은 루스인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바이킹으로 알려졌고 실제로도 바이킹의 생물학적 후손이지만 이민족과의 결합으로 인해 바이킹과는 거리가 멀어진 경우

 

노르만족 : 프랑스 지역에 노르망디 왕조를 세우고 정복왕 윌리엄 시대에 영국을 정복한 바이킹으로 유명하다. 데인족과 마찬가지로 노르만족 때문에 영국인이 바이킹 후손 아니냐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데인족이든 노르만족이든 기존 앵글로색슨을 몰살시키고 혈통교체를 이룬것이 아니다. 아무튼 노르만족은 살리카법을 준수하고 북게르만족 특유의 선박술도 구사하며 게르만족 문화를 잘 보존했으나 언어 자체는 로망스화되어버리고 말았다. 즉 북부 프랑스어계통의 오일어인 노르만어(Norman language)를 모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바이킹의 후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

슬라브화 이전의 루스인 : 게르만족이 아닌 동슬라브인의 경우에도 혈통이 섞여있다. 애초에 루스인 자체가 게르만 부족 중 하나를 가르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세에 서고트 왕국이 멸망하고 우마이야 왕조및 다른 이슬람계 왕조 및 기독교 왕국의 치세를 거치며 사멸하다시피한 고트족을 자신들의 선조로 내세우며 고트족의 후손을 자처하는 스페인과는 다르게 북게르만계였던 류리크 왕조의 혈통이 근대의 로마노프 왕조 시작 전까지 이어졌던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자신들의 조상격인 국가의 지배층이 게르만계였다는걸 부정하고 슬라브계 혈통을 중요시 하는 경우가 많았고, 현재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역사학계에서 게르만 혈통을 부정하는 학자가 없진않다.

 

바이킹은 아닌 게르만족인데 유명한 경우

앵글로색슨족 : 영국인의 주류 민족으로 브리튼으로 이주한 서게르만족이다.

프랑크족 :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경우도 현재는 로망스어계열 언어를 사용하며 로마의 문물을 상당수 받아들여 라틴계 국가로 분류되지만 왕족이나 영토 일드프랑스나 롬바르디아와 같은 북부는 프랑크족이나 다른 게르만족의 영향을 받았다.

바이킹도 아니며 게르만족이 주류도 아닌데 게르만 국가로 주장하는 경우

고트족 † :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경우에도 비슷하지만 이들은 피레네 이남에서 팽창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궁지에 몰렸으며 왕족을 포함한 고트족들은 거의 사멸하다시피 하였는데 스페인 왕조에서는 아스투리아스로 인해 고트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후손이 국토의 일부라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시망한 수준이라서 사실상 왕조의 상징성에 가까운 주장이다. 이때문인지 몰라도 피레네 이남지역이 아프리카라고 까이는 등의 주장이 과거에 있었지만 라틴계가 다수라서 아프리카는 아니다. 문화도 레콩키스타로 간신히 국토를 회복하였으나 점령기동안 대부분의 게르만 문화가 파괴되었으며 라틴과 이슬람 문화가 섞인 문화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때문에 이베리아 반도에 가면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조하거나 하는 문화재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독일인?

독일인은 게르만족의 일부일 뿐이지, 독일인이 게르만족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German'이라는 영어 표기 때문에 게르만족을 '독일 민족'과 같은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로는 독일(German)과 구분하여 게르만 족을 Germanic이라 부른다. 물론 이탈리아어와 라틴어에서 독일을 Germania라고 부르니 Germany라는 영어 표현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독일어와 프랑스어에서 독일을 부르는 명칭인 Deutschland와 Allemagne은 영어 이름 Germany보다는 게르만과 더 명확하게 구분된다.

 

영어 표현과는 별개로 "게르만족은 원래 현대의 독일 지역에서 살았으니 독일이 게르만족을 대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위에서 서술했듯 원래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트 반도에서 기원하였다. 굳이 출신 지역으로 따지자면 북유럽의 노르드인들이 원조 게르만족에 가깝다는 것이다. 게다가 독일인들의 경우 게르만족 혈통만 있는 게 아니다. 게르만족 남하 이전에는 켈트족과 이란족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로마 제국이 팽창함에 따라 현 독일 중남부 지역은 로마의 라틴족도 많이 진출하였다. 또한 동방식민운동으로 원래 서슬라브족, 발트족이 살던 엘베강 동쪽이 독일화됨에 따라 서슬라브족이나 발트족 혈통도 있다.

 

사실 독일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로마군단에 맞선 토이부르크 숲의 게르만족에서 찾게 된 것은 근대부터의 일이고, 근세까지의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스스로를 로마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먼 변방의 촌놈이라 여겨지던 프로이센이 폭풍성장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후예인 오스트리아 제국을 배제한 독일통일을 달성하고 적극적인 독일민족주의를 밀게 되면서 정체성이 새로 형성된 것이다.

 



 

게르만 

 

민족
북게르만 역사적 민족(노르드인) 기트족 · 데인인 · 스베아인 · 바랑인
현대의 민족 노르웨이인 · 덴마크인 · 스웨덴인 · 아이슬란드인 · 페로인
서게르만 북해 게르만
Ingvaeonic
역사적 민족 색슨족 · 앵글족 · 주트족 · 앵글로색슨족 · 카우키 · 프리시족 · 카우키 · 테우토니
현대의 민족 영국인(잉글랜드인 · 로우랜드 스코틀랜드인) · 프리지아인 · 저지 독일인
베저-라인 게르만
Istvaeonic
역사적 민족 프랑크족 (리푸아리 · 살리) · 카마비 · 브루크테리 · 시캄브리
현대의 민족 네덜란드인(보어인) · 플란데런인
엘베 게르만
Irminonic
역사적 민족 랑고바르드족 · 마르코만니 · 바이우바리 · 수에비 · 알레만니 · 카티 (바타비족) · 케루스키 · 콰디 · 킴브리 · 투링기 · 헤르문두리
현대의 민족 독일인(오스트리아인 · 독일계 벨기에인 · 독일계 스위스인 · 룩셈부르크인)
동게르만 역사적 민족 게피드족 · 고트족 · 루기 · 반달족 · 부르군트족 · 헤룰리
현대의 민족 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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