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펠드먼 배럿 (Lisa Feldman Barrett)
심리학 및 신경과학 분야의 혁신적인 연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과학자 중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신경과학자다. 노스이스턴대학교의 석좌교수이자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도 재직 중이며, 하버드의대 ‘법·뇌·행동센터 The Center for Law, Brain & Behavior’의 수석과학책임자 CSO다. 2019년 신경과학 분야에서 구겐하임 펠로우십 Guggenheim Fellowship을 받았으며, 뇌와 감정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국립보건원 파이어니어상 NIH Director’s Pioneer Award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등이 있으며 『정서 편람』 『정서의 심리적 구축』 『맥락 속 마음』 『정서와 의식』 등의 학술서를 공저했다. 한편 사이언스 채널에서 방영한 [웜홀을 지나서 Through The Wormhole]를 비롯해 공영방송과 세계 여러 나라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과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왜 나의 슬픔은 당신의 슬픔과 다른 것일까?”
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전하는
지금껏 당신이 몰랐던 감정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며, 인간은 이성에 의해 통제받아야 하는 감정에 휘둘리기만 하는 존재일까? 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리사 펠드먼 배럿은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학, 법률 제도, 자녀 양육, 명상, 심지어 공항 보안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감정과 마음과 뇌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 밝혀낸 연구 성과와 감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들의 일상과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는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 즉 구성된 감정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서양의 문화권에서 멀리 떨어진 나미비아의 힘바족을 찾아가 기본 감정 이론의 여섯 가지 표정을 재현한 사진을 제시하고 감정별로 구분 짓는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미소 짓는 얼굴은 ‘행복’이 아닌 ‘웃는’, 눈을 크게 뜬 얼굴은 ‘두려움’이 아니라 ‘바라보는’과 같이 안면 움직임을 감정이 아닌 행동으로 구분했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의 지문이 존재하지 않으며, 감정이 문화와 전후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각각의 개념이자 일련의 개체군 사고임을 알려준다.
저자는 개인의 감정 경험이 개인의 행동에 의해 능동적으로 구성되며, 우리가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환경의 설계자이자, 감정의 설계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감정 개념은 사람들 사이의 집단지향성을 통해 사회적 실재로서 존재한다. 우리가 서로의 감정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동물임을 자각할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시작해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내일을 바꿀 수 있다. 책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예측하고 검증하는 뇌의 메커니즘을 탐구함으로써 뇌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어떻게 착각하는지, 인간의 심리를 추론하면서 어떤 오류를 범하는지 등을 밝힌다. 또한 의학, 법률 제도, 자녀 양육, 명상, 심지어 공항 보안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감정과 마음과 뇌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 밝혀낸 연구 성과와 함께 감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1부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
1장 감정의 지문을 찾아서
표정으로 감정 읽기
신체의 상태로 감정 읽기
뇌를 분석해 감정 읽기
다양성이 표준이다
2장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설계한다
극적인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는 이유
구성된 감정 이론의 세 가지 접근법
똑같은 쿠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감정
3장 보편적 감정의 신화
행복과 미소는 동일한 개념일까?
보편적 표현 프로젝트가 초래한 오해들
얼굴에 드러난 감정이 전부가 아니다
2부 감정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4장 느낌의 기원
날아오는 야구공과 예측하는 뇌
감정과 신체 에너지의 불균형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
우리는 뇌가 느끼는 대로 느낀다
경제를 망친 합리적 경제인
당신의 세계도 당신이 구성한다
5장 개념과 단어의 통계학
맥락에 따라 개념을 창조하는 능력
창조적 통계학자들
아이들은 어떻게 분노를 학습하는가?
피자 효과
뱀을 발견한 사람의 다중 감각
6장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아기의 예측은 오류투성이다
개념과 예측이 만들어낸 기억된 현재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통제 신경망
감정은 의미의 구성이다
7장 감정은 사회적 실재다
문명의 전제 조건: 공유와 상징
너와 내가 함께 느끼는 바로 그것
우리는 저마다 감정 사전을 갖고 있다
일곱 색깔 무지개와 여섯 색깔 무지개
새로운 문화가 살아남는 법
3부 감정이 세상을 움직인다
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문화가 진화의 효율을 높인다
우리는 다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본질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자연과 신과 진화 vs 환경과 문화
심리학을 어지럽힌 행동주의
오늘의 경험이 내일을 바꾼다
9장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
신체 예산을 관리하는 생활 습관
감정 표현에 서투른 사람을 위한 조언
나와 나의 모든 감각을 해체하기
과학자와 바텐더처럼 대화하기
당신의 지각은 추측일 뿐이다
10장 뇌의 잘못된 예측이 내 몸을 망친다
왜 불안과 우울은 함께 발생하는가?
감정의 또 다른 이름, 스트레스
잘려 나간 팔에서 고통을 느끼는 이유
우울증은 정신의 질병이 아니다
불안과 우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들
약물 중독에 시달리는 사회
11장 감정이 법률에 미치는 영향
왜 법률은 냉정한 범죄자만 처벌하는가?
남성과 여성에게 내려진 모순된 판결
범죄를 위한 뇌는 없다
무엇으로 범죄자의 양심을 판단하는가?
배심원의 편견과 목격자의 기억 왜곡
공명정대한 판사는 존재하는가?
감정의 괴롭힘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올바른 법률 제도를 위한 다섯 가지 조언
나의 행동은 누구의 책임인가?
결국 법정도 감각의 지배를 받는다
12장 동물도 화를 내는가?
인간 아기와 원숭이 새끼의 차이점
목표에 기초한 개념형성의 부재
개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가?
우리가 몰랐던 개의 감정 구성
꼼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리 추론 오류
동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4부 감정과 마음의 관계
13장 뇌가 창조한 마음, 뇌를 오해한 마음
신경망에서 창조된 마음
인간의 마음에 설정된 세 가지 모드
확실성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우리는 더 나은 질문을 통해 진보한다
감정은 실제로 무엇인가? 과학자들의 고전적 견해를 한쪽으로 제쳐놓고 그냥 데이터만 살펴보면, 감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설명을 떠올리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다.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다. 감정은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감정은 당신의 신체 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당신의 문화와 양육 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한다. ---「들어가며 ‘2천 년 된 가정」중에서
우리가 검사한 사람들은 모두 ‘화난’, ‘슬픈’, ‘겁에 질린’ 같은 동일한 감정 단어를 사용해 자신의 느낌을 표현했지만, 그 의미가 언제나 동일하지는 않았다. 몇몇 피험자는 이런 단어를 사용해 매우 섬세한 구별을 했다. 예컨대 그들은 슬픔과 공포를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또 다른 피험자들은 ‘슬픈’, ‘겁에 질린’, ‘불안한’, ‘우울한’ 같은 단어들을 뭉뚱그려서 ‘기분이 더럽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행복, 평온, 자부심 같은 유쾌한 감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700명 이상의 미국 피험자를 검사한 결과 우리는 자신의 감정 경험을 구별하는 방식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장 ‘감정의 지문을 찾아서」중에서
시뮬레이션은 당신의 뇌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추측하는 과정이다. 당신은 깨어 있는 매순간 눈, 귀, 코, 그 밖의 다른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잡다하고 애매모호한 정보에 둘러싸여 있다. 이때 당신의 뇌는 당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시뮬레이션) 이것을 당신의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불협화음과 비교한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뇌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잡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2장.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설계한다」중에서
우리는 보편적 감정의 증거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감정은 특정 조건에서, 즉 고의든 아니든 사람들에게 서양식 감정 개념에 관해 아주 작은 양의 정보만 제공했을 때 보편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관찰은 비슷한 다른 관찰과 함께 이제 당신이 배우게 될 새로운 감정 이론의 무대를 제공한다. ---「3장. ‘보편적 감정의 신화」중에서
단순한 쾌감과 불쾌감은 내수용interoception이라고 불리는 당신 내부의 지속적인 과정에서 비롯한다. 내수용은 당신 내부의 기관과 조직, 혈액 속 호르몬, 면역체계 등에서 발생하는 모든 감각에 대한 당신 뇌의 표상이다. 바로 이 순간 당신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의 내부는 계속 움직이고 있다. 심장에서 보내는 혈액은 정맥과 동맥을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 허파는 계속 공기로 채워졌다 비워진다. 위에서는 음식이 소화되는 중이다. 이런 내수용성 활동을 통해 쾌감과 불쾌감, 평온함과 예민함, 그리고 완전히 중립적인 느낌 같은 기본 느낌들이 산출된다. ---「4장. ‘느낌의 기원」중에서
개념은 당신의 뇌에 있는 고정된 정의가 아니다. 그리고 개념은 가장 전형적인 또는 빈번한 사례에 해당하는 원형도 아니다. 그 대신에 당신의 뇌는 차, 점들의 패턴, 슬픔 기타 등에 대한 많은 사례를 가지고 있다가 특정 상황에서 당신의 목표에 맞게 순식간에 사례들 사이의 유사성을 내세운다. 예컨대 운송 수단에 대한 당신의 평소 목표는 이것을 운송에 이용하는 것이며, 따라서 어떤 물체가 당신의 목표를 충족하면 그것은 자동차든, 헬리콥터든, 아니면 합판에 바퀴 네 개를 달아 놓은 것이든 모두 운송 수단인 셈이다. ---「5장. ‘개념과 단어의 통계학」중에서
한 아이가 세 가지 다른 상황에서 누가 ‘슬픈’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치자. 이 세 사례는 이 아이의 뇌에 조각조각 표상된다. 이 사례들은 어디에 구체적으로 ‘함께 분류’되어 있지 않다. 네 번째 상황에서 이 아이는 교실에서 다른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때 선생님은 ‘슬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아이의 뇌에서는 현재 상황과 어떤 식으로든 통계적으로 비슷한 다른 예측들과 함께 이전 세 사례가 예측으로 구성된다. 이 세 사례의 예측 집합이 바로 ‘슬픔’ 사례들 사이의 순전히 정신적인 몇몇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 순간에 창조된 개념이다. 그리고 다시 현재 상황에 가장 비슷한 예측이 이 아이의 경험이, 즉 이 경우에는 하나의 감정 사례가 된다. ---「6장.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중에서
진화는 또 다른 종류의 실재를, 즉 인간 관찰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실재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의 마음에 부여했다. 우리는 공기 압력의 변화를 바탕으로 소리를 구성한다. 우리는 빛의 파장을 바탕으로 색을 구성한다. 우리는 구운 반죽을 바탕으로 이름만 빼곤 구별이 안 되는 컵케이크와 머핀을 구성한다. 어떤 것이 실재한다고 두 사람이 동의만 해도, 그리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기만 해도, 두 사람은 실재를 창조한다. 정상 작동하는 뇌를 가진 모든 인간은 이 작은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늘 이것을 사용한다. ---「7장. ‘감정은 사회적 실재다」중에서
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 관해 논하면서 말한 것처럼 “한 패러다임을 거부하면서 그것을 대체할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과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1960년대에 고전적 견해가 재등장하자 반세기에 걸친 반본질주의적 연구 성과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 있지도 않은 감정의 실체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허비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망각 때문에 그만큼 더 가난해진 셈이다. ---「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중에서
감성지능은 개념의 관점에서 더 잘 규정될 수 있다. 당신이 아는 감정 개념이라곤 ‘기분이 아주 좋다’와 ‘기분이 더럽다’라는 두 개밖에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당신은 감정을 경험할 때마다 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각할 때마다 오로지 이 거친 붓으로 범주화를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감성지능이 높을 수 없다. 반면에 만약 당신이 ‘기분이 아주 좋다’의 의미를 …… 더 미세하게 구별할 수 있다면, 그리고 …… ‘기분이 더럽다’의 50가지 뉘앙스를 안다면, 당신의 뇌는 예측과 범주화와 감정 지각의 훨씬 더 많은 옵션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더 유연하고 효과적인 대처를 위한 도구를 갖추게 될 것이다. ---「9장.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중에서
당신 뇌 속의 염증은 매우 나쁜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예측, 특히 신체 예산 관리 예측에 영향을 미치고, 예산의 초과 인출을 초래한다. 당신의 신체 예산 관리 회로가 먹통이 되어 당신의 신체가 보내는 수정 요구에 거의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염증은 바늘을 ‘완전 먹통’ 쪽으로 옮긴다. 당신의 신체 예산관리 부위는 당신의 상황에 둔감해져 예산을 계속 초과 인출시킬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피로와 불쾌한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다. 만성 적자 예산은 당신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당신의 신체를 소모시키며 결국에는 전염증성 시토킨을 더욱 증가시킨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실제로, 정말로 곤경에 처한다. ---「10장. ‘뇌의 잘못된 예측이 내 몸을 망친다」중에서
미국의 법률 제도는 감정이 이른바 동물적 본성의 일부이며 이성적 사고로 통제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행동과 폭력적 행동도 유발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여러 세기 전, 법률가들은 사람들이 열 받은 때는 아직 ‘냉정을 되찾지’ 못해 분노가 저절로 폭발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분노는 끓어올라 폭발하고 그 길에 파괴 자국을 남긴다. 분노했을 때는 자신의 행동을 법에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에 행동에 대한 책임이 일부 경감된다. 이런 논거를 ‘흥분 상태의 항변’이라고 한다. ---「11장. ‘감정이 법률에 미치는 영향」중에서
“개가 으르렁거리면 화가 난 것인가?”라는 물음은 우선 잘못된 물음이 다. 또는 적어도 불완전한 물음이다. 이 물음은 어떤 객관적인 의미에서 개가 어느 정도 화나 있거나 화나 있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당신이 학습한 것처럼, 감정 범주는 일관된 생물학적 지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감정은 언제나 몇몇 지각하는 사람의 관점으로부터 구성된다. 따라서 “로우디는 화난 것인가?”라는 물음은 실제로 두 개의 분리된 과학적 물음이다. “로우디는 소년의 시각에서 볼 때 화난 것인가?”, “로우디는 로우디 자신의 시각에서 볼 때 화난 것인가?” ---「12장. ‘동물도 화를 내는가?」중에서
과학의 중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과학 혁명에도 우리의 건강과 법률과 우리가 누구인지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잠재력이 담겨 있다. 이것은 새로운 실재를 만들어내는 잠재력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이 당신 경험의(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경험의) 설계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함께 이 새로운 실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 감정은 실제로 무엇인가? 과학자들의 고전적 견해를 한쪽으로 제쳐놓고 그냥 데이터로 살펴보면, 감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설명을 떠올리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다. 감정은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감정은 당신의 신체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당신의 문화와 양육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 감정은 실재하지만, 분자나 뉴런이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객관적 의미에서 실재하지는 않다. 오히려 감정은 화폐가 실재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실재한다. 다시 말해 감정은 착각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산물이다
- 구성된 감정이론이라고 부르는 견해에 따르면 멀로이 주지사의 연설 중 일어난 사태를 매우 다르게 해석 가능. 멀로이 주지사의 목이 메었을 때, 이것이 내안의 슬픔 회로를 촉발해 일련의 전형적 신체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내가 슬픔을 느낀 이유는 특정 문화 속에서 성장한 나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한 신체감각이 끔찍한 인명피해와 동시에 일어날 경우 슬픔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오래전부터 배웠기 때문. 총기사고에 대한 나의 지식, 그 피해자들과 관련된 나의 예전 슬픔 같은 과거 경험의 조각들을 사용해 나의 뇌는 내 몸이 이런 비극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신속히 예측했다. 그리고 이 예측 때문에 내 심장이 두근거렸고, 내 얼굴이 붉어졌으며, 내 위가 딴딴하게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예측이 내게 울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래서 내 신경계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슬픔의 사례로서 의미를 지니는 최종느낌이 남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뇌가 나의 감정경험을 구성. 나의 특정한 동작과 감각은 슬픔의 지문이 아니었다. 만약 뇌의 예측이 달랐다면, 나의 피부는 붉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위가 딴딴하게 뭉치는 느낌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뇌는 이렇게 해서 생긴 신체 감각을 여전히 슬픔으로 변모시킬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원래 경험한 심장의 두근거림, 얼굴의 붉어짐, 위의 뭉치는 느낌, 눈물 등은 슬픔이 아니라 분노나 공포 같은 다른 감정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또는 매우 다른 상황이라면, 예컨대 결혼식장이라면 똑같은 신체감각이 기쁨 또는 감사의 감정이 될 수도 있다.
- 당신이 의사를 찾아가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쁘다고 호소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이것은 심장마비 증상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라면 불안 때문이라는 진단과 함께 그냥 집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반면 당신이 남성이라면 심장병 진단을 받고 생명을 구하는 예방치료를 받을 확률이 높다. 이런 차이로 인해 65세 이상 여성이 남성보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례가 많음.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여성환자 자신의 이렇게 왜곡된 지각은 그들의 불안 등의 감정을 탐지해 낼 수 있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근본적으로 더 감정적이라는 고전적 견해에 기초해 있음. 그리고 이것은 치명적 결과로 이어짐
- 공포 같은 하나의 감정범주 안에 이렇게 다양한 안면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다면, 어째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뜬 얼굴이 공포의 보편적 표현이라는 자연스런 신념을 갖고 있을까. 그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문화 안에서 잘 알려진 공포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고정관념 또는 상징이기 때문.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노려보는 사람은 화난 사람이고, 입을 삐죽 내민 사람은 슬픈 사람이라는 식으로 고정관념을 우리 아이에게 가르친다. 이런 고정관념은 문화적 약식기호 또는 관습. 우리는 각종 만화, 광고, 인형의 얼굴, 이모티콘 등 무수히 많은 이미지와 도형에서 이것을 봄. 대학 교과서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심리학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치료사는 이런 고정관념을 환자에게 가르침
- 얼굴은 사회적 소통의 수단이 된다. 몇몇 안면 움직임은 의미를 지니는 반면, 다른 안면 움직임은 그렇지 않다. 아직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알아내는지에 대해 거의 아는바가 없다. 다만 신체언어, 사회적 상황, 문화적 기대 등의 맥락이 어떤 식으로든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뿐이다. 눈썹을 치켜올리는 식의 안면 움직임이 어떤 심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 우리는 그것이 언제나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지, 또 그것의 의미가 매번 동일한지 알지 못한다. 모든 과학적 증거를 종합해 볼 때 감정마다 그것을 알아챌 수 있게 해주는 표정이 있다는 주장에는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다.
- 편도체는 공포에 휩싸인 얼굴이든 중립적 얼굴이든 상관없이 피험자가 그것을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경우 모든 낯선 얼굴에 대한 반응으로 활동이 증가. 기본감정기법에서 사용된 사진처럼 눈을 크게 뜨고 공포에 휩싸인 듯한 안면배치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 않기 때문에 뇌 영상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에게는 낯선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 및 이와 비슷한 다른 결과들은 원래 실험에 대해 편도체를 공포의 뇌부위로 간주하지 않는 대안적 설명을 제공한다.
- 뇌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체는 감각입력의 또 다른 원천일 뿐. 심장과 허파, 물질대사, 체온변화 등에서 생기는 감각은 애매모호한 얼룩과 다르지 않다. 신체 안에서 생기는 이렇게 순수하게 신체적인 감각에는 객관적으로 어떤 심리적 의미가 존재하지 않음. 그러나 개념이 개입하는 순간 이런 감각은 추가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음. 만약 당신이 저녁 음식을 앞에 둔 상황에서 위가 쑤시는 느낌을 받는다면, 당신은 이것을 배고픔으로 경험. 그러나 유행성 감기가 돌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이 똑같은 느낌을 메스꺼움으로 경험할 것이다. 또 당신이 법정의 재판관이라면, 당신은 이 똑같은 느낌을 피고가 의심스럽다는 직감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뇌는 밖에서 들어온 감각뿐 아니라 내부감각에 대해서도 개념을 사용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난다. 이처럼 위가 쑤시는 느낌을 바탕으로 당신의 뇌는 배고픔, 메스꺼움, 또는 불신의 사례를 구성할 수 있다.
- 유행성 감기에 걸린 상황에서 남성에 대한 매력을 느낀 경험은 고전적 견해에 따르면 오류 또는 귀인 착오라 불릴 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류라면 얼룩덩어리에서 꿀벌을 보는 것도 오류라 불러야 함. 얼굴이 달아오르고 열이 나는 것은 피 속의 감기 바이러스 때문이고, 내 뇌는 점심 데이트라는 맥락 속에서 이 감각에 의미를 부여해 상대방에게 정말로 끌리는 것 같은 느낌을 구성한 것. 이것은 뇌가 심리상태를 구성하는 정상적 방식. 만약 내가 집에서 체온계를 입에 문채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똑같은 신체감각을 느꼈다면, 내 뇌는 똑같은 구성과정을 거쳐 이것을 병이 난 느낌의 사례로 구성했을 것이다. 반면에 고전적 견해에선느 누구에게 끌리는 느낌과 병이난 느낌에 대해 각각 상이한 뇌 회로를 통해 촉발되는 상이한 신체지문이 있다고 주장할 것
-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당신은 감각 입력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당신 감정의 능동적 구성자임. 당신의 뇌는 감각입력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행동을 지시. 만일 당신에게 과거 경험을 표상하는 개념이 없다면 당신의 모든 감각입력은 잡음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런 감각이 무엇인지도 알수 없고, 무엇으로 인해 야기되었으며, 이것에 대치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을 것. 반면에 개념을 갖고 있으면, 당신의 뇌는 감각에 의미를 부여. 이 의미가 때로는 감정인 것이다.
- 빵을 구울 때 소금은 이스트의 부풀기 제어, 반죽 안의 글루텐 강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향미의 증진 같은 역할을 함. 이처럼 소금이 빵의 제조과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해하려면 소금의 작용을 맥락 속에서 관찰해야 함. 마찬가지로 감정의 성분도 이것에 영향을 미치는 나머지 뇌의 맥락 속에서 연구해야 함. 전체론이라 불리는 이런 생각은 어째서 내가 부엌에서 빵을 구울 때 정확히 똑같은 요리법을 사용해도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 설명해 줌. 예를 들어 모든 성분의 무게를 재고, 반죽을 똑같은 시간 주무르고, 오븐을 똑같은 온도에 맞추며 빵을 굳게 만들기 위해 오븐에 물보라를 분사하는 횟수까지 센다. 매우 체계적인 요리법을 사용해도 빵은 때때로 가볍기도 하고, 더 무겁기도 하고, 더 달기도 하다. 이것은 요리법에 나오지 않는 빵 굽기의 추가맥락이 있기 때문. 즉 반죽을 주무로는 힘의 양, 부엌의 습도, 반죽이 부푸는 시점의 정확한 온도 등은 빵을 만들 때마다 달라짐.
- 수백번의 실험을 수행했고 다른 연구자들이 수행한 수천 건의 실험을 검토한 후 완전히 비직관적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공감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얼굴로부터 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내부의 핵심으로부터 감정이 발산하는 것이 아님. 감정은 뇌의 특정부위에서 분출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혁신을 통해 감정의 생물하적 지문이 기적같이 발견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감정은 우리 안에 내장된 채 그저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 감정은 우리가 만들어낸다. 우리는 감정을 인식 또는 확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 체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즉석에서 우리 자신의 감정경험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구성한다. 인간은 고도로 진화한 뇌의 동물적 부분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가공의 감정회로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다.
- 역사 기록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행복할 때 자진해서 미소를 짓지 않은 듯 하다.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에 미소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음. 미소 짓기는 중세에 등장했으며, 이를 다 드러낸 채 크게 웃는 것은 치과의술이 더 저렴해지고 일반화된 18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유행. 고전학자 메리버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은 로마인이 거의 미소처럼 보이는 형태로 입 가장자리를 말아 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히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런 말아 올리기는 로마의 사회문화적 제스처 중에서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그리고 거꾸로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다른 제스처들에 중대한 의미가 부여되곤 했다." 어쩌면 미소 짓기는 지난 몇백 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행복을 상징하는 보편적이고 정형화된 제스처가 되었을지 모름. 고전적 견해의 지지자라면 치과의술이 등장할 때까지 사람들이 타고난 행복의 미소를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억압하고 있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어쩌면 행복할 때 미소를 짓는 것은 전혀 보편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 자극-반응 시각은 직관적이긴 하나 잘못된 것. 당신의 뇌에 있는 860억개의 뉴런은 거대한 신경망에 연결된 채 외부시종이 걸리기만을 기다리면서 잠자고 있지 않다. 당신의 뉴런들은 언제나 서로를 자극하고 있으며 때로는 수백만 개를 한꺼번에 자극하기도 함. 산소와 영양분이 충분할 경우 내인성 뇌활동이라 불리는 이 막대한 양의 다단계 자극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속됨. 이 활동은 외부세계에 의해 촉발된 반응 고는 전혀 다름. 이것은 오히려 외부촉매가 필요 없는 과정인 호흡에 가까움
- 뇌는 두개골 안에 갇힌 채 오로지 과거경험의 안내만 받으면서 예측을 함. 우리는 보통 예측이라 하면 미래에 관한 진술로 생각. 그러나 예측은 아주 미시적 규모에서 수백만개의 뉴런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일어남. 이런 신경대화를 바탕으로 당신의 뇌는 당신이 경험할 광경, 소리, 냄새, 맛, 감촉의 모든 조각과 당신이 취할 모든 행동을 예상하려고 시도한다. 이 예측은 당신 주위의 세계에서 무선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당신의 생명과 안녕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뇌가 행하는 최선의 추측이다.
- 보통의 경우 당신은 내수용을 대체적으로만 경험. 즉 쾌감, 불쾌감, 동요, 평온같은 단순한 느낌으로만 경험. 그러나 이따금 강렬한 내수용 감각의 순간들이 감정으로 경험될 때가 있음. 이것은 구성된 감정이론의 핵심요소이기도 함. 깨어 있는 매 순간 당신의 뇌는 당신의 감각에 의미를 부여함. 이때 일부감각은 내수용 감각이며, 여기에 부여된 의미가 감정사례가 될 수 있다.
- 뇌가 움직임을 예측할 때마다(침대에서 일어난다. 커피를 마신다. 등) 신체예산 관리부위에서는 예산을 조정. 뇌에서 신체에 신속한 에너지 분출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하면, 신체예산 관리부위에서는 콩팥에 있는 부신에 코티솔 호르몬을 방출하라고 지시. 흔히 코티솔을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데, 이는 잘못된 것. 코티솔은 에너지 분출이 필요할 때마다 방출되며,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여기에 포함된다. 코티솔이 방출되는 주요 목적은 포도당이 다량 함유된 혈류를 통해 세포에 즉각적인 에너지를 공급하여 근육세포를 확장 또는 신축시킴으로써 당신이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신체예산 관리부위는 당신이 숨을 더 깊게 쉬어 산소가 더 많이 혈류로 들어오도록 할 뿐만 아니라 동맥을 확장해 이 산소가 근육에 더 신속하게 전달되어 당신의 신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 이런 모든 내부 움직임에는 내수용 감각이 수반됨. 다만 당신은 이것을 정밀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배선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내수용 신경망은 신체를 통제하고 에너지 원천을 관리하며 내부감각을 표상.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남
- 만약 당신이 가난하게 성장했다면 만성적 신체예산 불균형과 과민성 면역체계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신체예산 문제는 당신을 곁에서 지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몸이 편찮음을 느낀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당신의 예산관리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주요한 원인. 이럴 때 당신 자신의 일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 자신의 일부를 잃은 것이기도 하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 당신이 산출하는 모든 예측,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생각, 그리고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광경, 소리, 맛, 감촉, 냄새는 모두 당신의 신체예산과 내수용 예측에 영향을 미침. 당신의 뇌는 당신의 삶을 유지하는 온갖 예측에서 비롯하는 연속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수용 감각과 씨름해야 함
- 느낌이 좋지 않다고 해서 언제다 그 대상이 잘못된 것은 아님.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은 현재 당신의 신체예산에 부담이 많이 간다는 것을 의미. 예컨대 숨이 찰 정도로 운동을 하면,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기 한참 전부터 피곤하고 매우 불편한 느낌이 든다. 수학문제를 풀 때 또는 무엇을 애써 기억해내려 할 때, 사람들은 실제 잘할 수 있을 때도 절망감과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대학원생 중에서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 당신은 신체로부터 받는 느낌이 신체의 실제상태를 언제나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방금 배웠다. 가슴에서 심장이 뛰는 느낌, 허파에 공기가 차는 느낌 같은 낯익은 감각과 전반적 쾌감, 불쾌감, 동요, 평온같은 정동은 실제로 당신의 신체 안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당신의 내수용 신경망에서 이루어지는 시뮬레이션의 결과. 한마디로 당신은 당신의 뇌가 믿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정동은 기본적으로 예측에서 비롯한다. 이미 당신의 뇌가 믿는 것을 당신이 보게 된다.
- 당신은 일상에서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이 당신의 느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의 사정은 대개 이와 다르다. 당신의 느낌에 따라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이 바뀐다. 외부세계보다 이 순간의 내수용이 당신의 지각과 행동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당신은 어떻게 처신할지 결정하기 전에 장단점을 따져보는 합리적 동물이라고 스스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뇌의 피질구조상 이것은 허구일 뿐이다.
- 당신에게는 범주화, 맥락, 개연성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모두 매우 반직관적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만약 숲 속을 걷다가 길 앞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뱀을 보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음. '나는 과거 경험중에서 현재의 감각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니는 몇몇 경쟁적 개념을 구성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내 지각을 창조하면서 이 뱀을 예측했다' 대신에 그저 뱀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조심조심 돌아서서 도망치면서 이렇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많은 예측을 계속 가다듬어 마침내 공포라는 감정범주의 가장 적절한 사례를 찾아내었고, 그래서 도망치게 되었다' 대신에 그저 겁에 질려 달아나야겠다는 충동을 느꼈을 뿐이다. 공포는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들이닥치며, 마치 자극(뱀)이 작은 폭탄(신경지문)을 건드려 반응(공포와 도주)이 촉발된 것처럼 느껴진다
- 내가 뱀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의 범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도망쳐야겠다는 충동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의 범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의 범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범주화했기 때문에 뱀을 보았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고, 도망친 것이다. 나는 이런 감각을 올바르게 예측했으며, 그럼으로써 이런 감각을 공포개념의 사례로 설명했다. 이것이 감정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 다양한 분노의 예측에는 상사, 승진, 실패, 복수심 같은 유사성이 있는 반면 고함, 속삭임, 침묵 사이에는 제각기 상이한 감각예측과 운동예측이 요구되기 때문에 많은 차이가 있다. 각 예측에 포함된 당신의 동작도 다르며(책상 내려치기, 몸을 구부리기 등), 따라서 당신의 신체 내부변화도 다르고 신체예산에 초래되는 귀결도 다르며, 따라서 내수용성 결과와 정동적 결과도 다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당신의 뇌에서 우리가 곧 논의할 과정을 통해 이 특정 상황에서 당신의 목표에 가장 적합한 분노의 최종사례가 선택된다. 그리고 이 최종사례를 통해 당신의 행동가 경험이 결정된다. 이런 과정이 바로 범주화다. 그러나 당신의 상사와 관련된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음. 예컨대 당신은 분노를 느끼면서도 상사의 마음을 사로잡기, 당신을 밀어내고 승진한 동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같은 다른 목표를 추구할 수도 있음. 또는 후회, 공포 같은 다른 감정의 사례를 구성할 수도 있으며, 또는 종속 상태의 탈피 같은 비감정이나 두통 같은 물리적 증상 또는 상사가 멍청한 자식이라는 지각 등을 구성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당신의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전체상황과 당신의 내부감각에 가장 어울리는 것을 범주화하려는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범주화는 당신의 지각이 되는 그리고 당신의 행동을 인도하는 최종사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 의미구성은 주어진 정보 너머로 가는 것.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은 충분한 산소를 팔다리에 공급해 당신이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은 신체기능을 가짐. 그러나 범주화를 통해 이것은 행복이나 공포같은 감정경험이 될 수 있고, 당신의 문화 안에서 이해된 추가적 의미와 기능을 획득하게 됨. 당신이 불쾌한 유인성과 높은 흥분도의 정동을 경험할 때, 당신이 행하는 범주화에 따라 이것의 의미가 구성됨. 이것은 공포의 감정사례인가?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해 생긴 신체사례인가? 아니면 당신에게 말을 거는 사내가 얼간이라는 지각인가? 생물학적 신호에 새 기능을 부여하는 범주화는 신오의 물리적 성질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지식과 세계 안에 있는 당신의 주위 맥락에 기초함. 만약 당신이 이 감각을 공포로 범주화한다면, 당신은 공포가 내 몸에 이런 신체변화를 야기했다는 식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관련된 개념이 감정개념이면, 당신의 뇌는 감정사례를 구성하는 것이다.
- 구성된 감정이론은 감정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한 현대적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제시. 이 견해는 신경과학의 최신연구결과와 일치. 또한 이것은 고전적 견해에 비해 당신의 느낌과 행동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당신에게 부여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당신은 세계의 사태에 그저 반응하도록 배선된 수동적 동물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경험과 지각을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좌우한다. 당신은 예측하고 구성하며 행동한다. 당신은 당신 경험의 설계자다. 인간 본성에 대한 또 다른 그럴듯한 견해는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에서 출발. 이것은 이미 수천년 동안 우리 주위에 있었으며 사회의 법률, 의료, 기타 주요 부문에 여전히 굳게 뿌리내리고 있다. 실제로 두 견해는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는 인간본성에 대한 고전적 견해가 우위를 차지. 그러나 오늘날 현대 신경과학은 마음과 뇌의 혁명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도구를 선사했고, 고전적 견해는 압도적 증거에 직면하여 점차 자리를 내어주고 있음
- 고전적 이야기는 인간의 진화적 기원에서 시작. 당신은 본질적으로 동물이다. 당신은 동물 조상으로부터 다양한 정신적 실재를 물려받았으며, 여기엔 당신의 피질 하부 깊숙이 파묻혀 있는 감정적 실체도 포함되어 있다. 다윈을 인용하자면 '인간은 온갖 고상한 성질과...신을 닮은 지성과... 이 모든 고귀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신체 틀에는 여전히 인간의 저급한 기원을 말해주는 지울 수 없는 도장이 찍혀 있다.' 그러나 고전적 견해에 따르면 당신은 이런 동물적 본질이 합리적 사고로 잘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다. 인간만이 지닌 이성적 본질 덕분에 당신은 감정을 합리적 수단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이 덕분에 당신은 동물의 왕국의 정점에 서 있다
- 고전적 견해를 신봉한 과학자들은 편도체 등의 변연부위에서 다른 많은 감정을 확인했으며, 이것들이 피질 또는 인지의 통제를 받는다고 주장. 그러나 현대 신경과학은 변연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뇌 진화의 전문가들은 더이상 변연계에 관한 주장을 진지하게 취급하지도 않을뿐더러 이것이 과연 통일된 체계인가 하는 점에도 동의하지 않음. 변연계가 뇌에 자리 잡은 감정의 소재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울 것이 아니다. 감정에만 전문화된 뇌 부위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
- 감정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체예산을 잘 관리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함.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당신의 내수용 신경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동하면서 이런저런 예측을 내놓아 신체예산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며, 이런 과정을 통해 당신의 정동적 느낌(쾌감, 불쾌감, 동요, 평온)이 생겨남. 당신이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싶다면, 당신의 심박수, 호흡, 혈압, 체온, 호르몬, 물질대사 등에 관한 뇌의 예측이 신체의 실제수요에 맞게 조정될 필요가 있음.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신체예산이 정상궤도를 이탈할 것이며, 그러면 당신이 무슨 자기 계발 방법을 동원하든 상관없이 기분이 더럽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계발은 더러운 기분에 양념을 치는 것 밖에 안된다
- 불행히도 현대문화는 당신의 신체 예산을 엉망으로 만들도록 설계됨. 슈퍼나 음식점에서 파는 많은 제품은 신체예산을 왜곡하는 정제설탕과 나쁜 지방이 가득한 불량식품이다. 학생과 직장인들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기를 강요받듯 13세부터 64세 사이의 미국인 가운데 40% 이상이 만성 수면부족 상태. 이것은 신체예산의 만성 불균형과 심지어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음. 미디어에서는 친구들에게 나쁜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당신의 신체예산에 매우 해로울 것이라는 광고를 내보낸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거부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애매모호한 상황이 연출됨으로써 당신의 신체 예산은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 새로운 개념을 획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새로운 단어를 학습하는 것. 당신은 단어학습이 정서적 건강에 유익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구성의 신경 메커니즘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것. 단어는 개념의 씨앗이 되고, 개념은 예측의 원동력이 되며, 예측을 통해 신체예산이 조절되고, 신체예산에 따라 기분이 좌우됨. 따라서 당신의 어휘가 섬세할수록 당신의 뇌는 더 정밀한 예측을 통해 신체수요에 알맞게 예산을 조절할 수 있다. 실제로 감정입자도가 더 높은 사람들은 병원을 덜 방문하고 약을 덜 먹고, 병에 걸려 입원해 있는 기간도 더 짧음. 이것은 마술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꽉 막혀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아이에게 감정에 관해 가르칠 때, 본질주의적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도록 주의하라. 행복하면 미소를 지어야 하고 화가 나면 노려봐야 하는 것 등이 고정관념이다. 아이가 실제 세계의 다양성을 이해하도록, 미소가 맥락에 따라 행복, 당혹감, 분노, 심지어 슬픔을 의미할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라. 또한 언제 당신 스스로도 당신의 느낌이 확실치 않은지, 언제 당신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저 추측하는지, 또는 언제 잘못 추측하는지를 솔직히 인정하려고 노력하라.
- 재범주화는 감정전문가를 위한 도구다. 더 많은 개념을 알고 더 많은 사례를 구성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효과적인 재범주화를 통해 당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이 시험을 앞두고 흥분을 느낀다면, 당신은 이것을 해로운 불안으로 범주화할 수도 있고(아, 시험을 망칠 것 같아), 아니면 유익한 예상으로 범주화 가능(힘이 솟는다. 나는 준비되었다!)
- 이런 종류의 재범주화는 당신의 삶에 실질적 혜택을 가져다줌. 대학원 입학 자격시험 같은 시험성적을 살펴본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불안을 신체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는 신호로 재범주화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 공개연설을 하거나 심지어 노래방에서 노래를 할 때도 불안을 설렘으로 재범주화하는 사람들은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고전적 불안증상을 덜 보임. 그들의 교감신경계에는 여전히 과민성 울렁증이 산출되지만, 수행능력을 낮추고 일반적으로 기분을 망치게 만드는 전염증성 시토킨의 수준이 내려가므로,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 명상을 하라.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매 순간 각성된 상태로 현재에 충실하면서 감각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판단하지 말고 그저 관찰하라고 가르친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를 해체하는 것이 범주화를 보류하는 데 도움이 됨. 그러나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뇌는 예측을 결코 멈추지 않으므로 개념을 끄는 것도 불가능. 어마어마한 연습을 통해 도달가능한 이런 상태는 내게 신생아의 평온한 각성상태를 연상시킨다. 이런 상태에서는 신생아는 불안한 기색 없이 세계를 관찰하고, 아기의 뇌는 예측오류에 편안하게 파묻혀 있다. 신생아는 감각을 경험하되 붙잡지 않는다. 명상을 통해 도달가능한 경지도 이와 비슷. 이 상태에 도달하려면 오랜 기간의 연습이 필요하므로, 차선책은 당신의 사고, 느낌, 지각을 손에서 놓기 쉬운 신체감각으로 범주화하는 것. 명상을 활용해 처음에는 신체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범주화를 우선시하고, 그다음에는 당신에게 또는 세계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자리에 더 많은 심리적 의미를 부여하는 범주화를 탈우선시하려고 시도하라.
- 당신의 면역체계는 침입자와 상해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주는 역할. 이것은 어쩌다 망치로 손가락을 치거나 꿀벌 침에 쏘여 부어오를 때 또는 병원균 때문에 부어오를 때 염증을 일으켜 당신을 도와준다. 염증은 전염성 시토킨이라는 작은 단백질에서 일어남.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세포는 감염부위로 혈액을 끌어당겨 온도를 높이고 부어오르게 하는 시토킨을 분비. 이런 시토킨이 당신이 낫도록 분주히 도와주는 동안 당신은 피곤하다든가 일반적으로 아프다고 느낄 수 있음. 그러나 전염성 시토킨은 채권추심에 적합한 조건이 주어지면 나쁜 녀석이 될 수도 있음. 이것은 특히 당신의 신체예산이 균형을 잃었을 때, 예컨대 당신이 우범지역에 살고 있어서 매일밤 총소리를 들을 때 더욱 심화됨. 이런 고약한 환경에서는 당신의 뇌가 신체에서 요구하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곧잘 예측할지도 모른다. 이런 예측은 필요이상으로 당신의 신체에 코티솔을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방출하게 함. 코티솔은 일반적으로 염증을 억제(하이드로코티존 크림이 가려움을 완화하고 코티존 주사가 부어오름을 감소시키는 것도 이 때문) 당신의 혈액에 코티솔이 장기간에 걸쳐 너무 많이 있으면 염증이 확 일어난다. 그러면 당신은 무기력감을 느끼고 열이 나기 시작. 만약 누가 당신의 코에 감기 바이러스를 주입하면 당신도 아픈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악순환이 이어진다. 염증 때문에 피곤하다고 느낄 때 당신은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뇌가 착각한 것) 가급적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은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며 운동도 게을리한다. 그러면 예산이 더욱더 균형을 잃게 되고 당신은 진짜 몸이 좋지 않다고 여김. 체중이 늘지도 모른다.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특정 지방세포가 염증을 악화시키는 전염증성 시토킨을 실제로 만들어내기 때문. 또한 당신은 사람들을 기피하기 시작할지도 모름.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신체 예산이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줄 수 없다. 그래서 사회적 연결이 더 적은 사람들은 전염증성 시토킨이 더 많아 병에 더 자주 걸릴지도 모름
- 약 10년던 과학자들은 전염증성 시토킨이 신체에서 뇌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 또한 이제 우리는 뇌가 이런 시토킨을 분비하는 세포가 포함된 염증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비참한 느낌을 유발하는 능력을 지닌 이 작은 단백질은 뇌의 배선에 변화를 일으킨다. 염증은 뇌에서, 특히 내수용 신경망 내에서 뇌구조 변화를 일으킴. 이것은 신경 연결을 방해하고 뉴런을 죽이기도 함. 또한 만성 염증은 주의력과 기억력, 지능검사결과를 떨어뜨릴 수도 있음
-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우울증은 부정적 사고가 부정적 느낌을 야기한 것. 이 책에서는 반대로 생각. 예측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지금 이 순간 느낌이 당신의 지각뿐만 아니라 당신의 다음 사고를 가동함. 따라서 우울한 뇌는 과거의 비슷한 인출예측을 바탕으로 가차 없이 예산으로부터 인출한다. 이것은 어려운 사태와 불쾌한 사태를 끊임없이 다시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 즉 예측 오류가 무시되고 과소평가되어 뇌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결국 예산불균형의 순환에 빠져들고, 예측오류로는 이것을 깰 수 없음. 실제로 당신은 수정되지 않은 예측의 순환에 갇히고, 물질대사 수요가 높았던 과거의 어려웠던 때에서 빠져나오지 못함. 우울한 뇌는 사실상 고통에 갇혀 있다. 또한 만성통증의 뇌처럼 예측오류를 무시한다. 그러나 훨씬 더 큰 규모로 당신을 망쳐놓는다. 당신의 예산을 만성적자 상태로 만든다. 따라서 당신의 뇌는 소비를 줄이려고 한다. 소비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꼼짝 않은 채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이것이 우울이라는 무자비한 피로이다. 만약 우울증이 만성 예산불균형에 의해 야기된 장애라면, 엄밀히 말해 우울증은 정신질병만은 아니다. 우울증은 신경, 물질대사, 면역과도 관련된 질병이다. 우울증은 신경계의 수없이 뒤엉킨 부분의 불균형이다. 이 뒤엉킨 부분은 기계의 부품처럼 따로 떨어진 하나의 체계로 간주해서는 이해할 수 없고 전체 사람으로 간주할 때만 이해할 수 있다.
- 불안은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감정, 고통, 스트레스와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된 범주인 것 같다. 당신이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느끼는 비참함은 신체예산에 큰 문제가 있다고 당신에게 말한다. 그래서 뇌는 자금을 확보하려고 애쓰면서 불쾌한 정동을 증가시키거나 아니면 자금수요를 줄이려고 가만히 있기 때문에 피로를 초래. 당신의 뇌는 이런 감각을 불안, 우울 또는 경우에 따라 고통, 스트레스, 감정 등으로 범주화. 분명 밝히지만 주요 우울장애와 불안장애가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의미가 아님. 정신질환의 각 범주가 다양한 사례의 개체군이며, 특정 증상 집합은 불안장애로 범주화하든 우울증으로 범주화하든 똑같이 합당할 것이라는 점. 또한 증상의 심각도도 고려해야 함. 헬렌 메이버그가 다루었던 몹시 우울한 몇몇 환자는, 긴장증에 가까운 환자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불안장애로 진단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다루었던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환자들은 불안, 만성 스트레스, 또는 심지어 만성 통증으로 진단되어도 충분히 합당할 것임. 일반적으로 말해 중간정도로 심한 우울증과 불안은 증상 프로필이 서로 중첩될 수 있으며 만성 스트레스, 만성통증, 만성피로 증후군과도 중첩될 수 있다
- 배심원과 재판관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과제가 주어진다. 그들은 독심술사가 되거나 거짓말탐지기가 되어야 함. 또 어떤 사람이 상해를 야기하려고 했는지 결정해야 함. 법률제도에 따르면 의도는 피고얼굴의 코만큼이나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예측하는 뇌에 있어서, 누군가의 의도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당신이 탐지한 사실이 아니라 피고의 행동을 근거로 당신이 구성한 추측이다. 감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도에 대해서도 지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기준이 없다. 70년간의 심리연구는 이런 판단이 심리추론, 즉 추측임을 뒷받침한다. DNA증거가 피고를 범죄 현장으로 연결해 줄지라도 이것은 피고가 범죄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결정하지 못한다
- 법은 대체로 만성통증을 감정적인 것으로 간주. 관측가능한 조직손상이 없기 때문. 이런 사례들에서 법은 보통 보상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림.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종종 정신적으로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음. 환상에 불과한 고통을 감소시키려고 침습수술을 선택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의료보험회사는 만성통증이 신체적인 것이 아니고 심리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한다. 만성통증 환자는 일을 할 수 없는데도 보상이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성통증은 십중팔구 뇌의 잘못된 예측질병이다. 고통은 실제로 존재한다. 법은 예측과 시뮬레이션이 뇌 작동의 정상방식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만성통증은 정도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 감정은 표현되지도, 표출되지도 않으며, 그밖에 어떤 식으로든 얼굴, 신체, 목소리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죄와 유죄 또는 처벌을 결정하는 사람은 이것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신은 분노, 슬픔, 회한, 또는 다른 사람의 어떤 감정을 인식하거나 탐지할 수 없다. 오직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 인간의 뇌에 사전 설정된 정신적 개념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쾌감과 불쾌감, 동요와 평온, 시끄러움과 조용함, 밝음과 어두움, 그밖에 의식의 몇몇 속성 정도일 것이다. 오히려 다양성이 표준. 인간의 뇌는 주변상황에 따라 다양한 많은 개념을 학습하고 사회적 실재를 발명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물론 이런 다양성이 무한하거나 자의적인 것은 아님. 이것은 뇌의 효율과 속도를 높일 필요성, 외부세계, 사이좋게 지낼지 아니면 앞지를지를 둘러싼 인간적인 딜레마 등에 의해 제약을 받음. 그리고 당신이 속한 문화는 이 딜레마에 대처할 때 사용할 특정 집합의 개념과 가치와 관습을 당신에게 건넨다. 보편적 개념들이 가진 보편적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 모두가 같은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에 따라 배선이 진행되어 결국에는 여러 종류의 마음을 산출하는 복잡한 뇌로 충분하다
- 정동실재론, 즉 당신이 믿는대로 경험하는 환상은 당신 뇌의 배선 때문에 필연적이다. 내수용 신경망의 신체예산관리부위(메가폰을 들고 설치는 당신 내부의 시끄럽고 고집불통인 과학자)는 뇌에서 가장 강력한 예측자이고, 일차감각부위는 열렬한 청취자이다.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정동이 실린 신체예산 예측은 당신의 경험과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운전자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음식이 맛있다면서 마치 이 맛이 음식에 담겨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맛은 구성물이고 맛있다는 느낌은 우리 자신의 정동이다. 교전지역의 병사가 누군가의 손에서 총이 없는데도 총을 지각할 때, 그는 실제로 총을 본다. 이것은 오류가 아니라 원래 지각이 그런 것이다. 가석방 심리 중에 배가 고픈 재판관은 더 부정적인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이렇듯 정동실재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당신의 지각은 세계를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화가 베르메르의 작품처럼 사진 같은 그림도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지각은 반 고흐나 모네의 작품을 닮았다. 또는 아주 안 좋은 날이면 잭슨 폴락의 작품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정동실재론의 효과를 통해 이런 것들을 인식할 수는 있다. 어떤 것이 맞다는 직감이 들 때, 어떤 소식을 듣거나 어떤 이야기를 읽고 그것이 곧바로 믿길 때, 또는 어떤 메시지를 곧바로 물리치거나 심지어 그 전달자를 싫어할 때 이것은 정동실재론에 의한 것이다.
- 개념은 당신의 머리속에 있지 않다. 당신과 내가 커피에 관해 수다를 떤다고 상상해 보라. 내가 재치 있게 한마디 하자, 당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내 뇌가 당신의 미소와 끄덕임을 확인했다면, 그리고 내 뇌에 들어온 시각입력을 통해 이런 움직임이 확증되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향해 똑같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는 내 예측이 내 행동이 된다. 그러면 다시 당신은 다른 많은 가능성과 함께 내 끄덕임을 예측했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은 다시 당신의 감각입력에 변화를 야기하고 당신의 예측과 상호작용한다. 다시 말해 당신의 뇌에 있는 뉴런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직접 연결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나와 상호작용하는 것과 같은 외부환경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이루어짐. 우리는 예측과 행동의 동기화를 통해 서로의 신체예산을 조절한다. 이런 동기화는 사회적 유대와 공감의 토대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이것은 부모와 아기의 유대감 형성에도 결정적으로 작용. 그러므로 당신의 개인적 경험은 당신의 행동에 의해 능동적으로 구성됨. 당신이 세계를 비틀면, 세계가 당신을 다시 비튼다. 당신은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당신 환경의 설계자일 뿐만 아니라 당신 경험의 설계자 이기도 하다. 당신의 움직임이, 그리고 그에 따른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이 당신의 감각입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통해 모든 경험이 그렇듯이 당신의 뇌는 재배선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 경험의 설계자일 뿐만 아니라 배선을 직접 담당하는 전기기사이기도 하다
- 개념은 인간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또한 개념을 통해 본질주의로 가는 문이 열린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 개념은 있지 않은 것을 보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파이어슈타인의 '무지: 과학의 추진력'은 다음과 같은 옛 속담으로 시작한다.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고양이가 없으면 더욱 그렇다' 이 말은 본질에 대한 탐새을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본질을 찾아 헤맨 수많은 과학자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노력이 실패한 이유는 잘못된 개념을 지침으로 삼아 가설을 세웠기 때문. 파이어슈타인은 우주에 가득 차 있어 빛 이동의 매질로 기능한다고 여겨진 신비의 물질인 발광성 에테르를 예로 든다. 파이어슈타인이 설명하듯이 에테르가 검은 고양이였으며, 물리학자들은 어두운 방에서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하면서 있지도 않은 고양이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다.
- 본질주의는 인간본성에 대한 견해를 넘어 세계관까지 제시한다. 본질주의는 사회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위치가 당신의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고 암묵적으로 말한다. 따라서 당신이 남보다 더 똑똑하거나 더 빠르거나 더 힘이 있다면, 다른 사람과 달리 당신이 성공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사람들은 자격이 있는 만큼 얻고 얻는 만큼 자격이 있다. 이것은 유전적으로 공정한 세계에 대한 신념이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과학처럼 들리는 이데올로기다. 우리가 확실성으로 경험하는 것은, 즉 자기 자신, 다른 사람, 주위 세계에 관해 무엇이 진실인지 안다는 느낌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잘 헤쳐 나가도록 뇌가 꾸며낸 착각이다. 이따금 확실성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예컨대 우리는 모두의 성격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 관해 생각하곤 한다. 그 남자는 너그러워, 그 여자는 정직해, 당신의 상산느 멍청이야. 우리는 확실성의 느낌에 사로잡혀 마치 이들의 너그러움, 정직, 멍청함이 실제로 이들의 본질이며, 이들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것들을 객관적으로 탐지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기 쉽다. 이런 태도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행동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런 행동이 정당하다고까지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너그러운 남자는 그저 당신에게 잘 보이려는 것일 수도 있으며, 정직한 여자는 은밀히 자기 잇속을 챙길 수도 있고, 당신의 멍청한 상사는 집에 앓아누운 아이 때문에 마음이 딴 데 가 있을 수도 있다. 확실성은 다른 설명가능성을 놓치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파악을 제대로 못할 만큼 어리석거나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의 뇌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감각입력에 대해 하나이상의 설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실재가 무수하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 이상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