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역사에 있어서 남을 교묘히 속이거나 가짜를 내세워서 사기를 치는 사례들은 의외로 많았다. 또한 실험 데이터의 조작이나 가공 등 크고 작은 연구부정 행위들도 최근까지 세계 각국에서 지속되어 왔다.
과학사상 사기사건(Hoax)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찰스 도슨(Charles Dawson; ?-1916)의 가짜 화석 발굴 사건이다. 20세기 초반에 인류 조상의 두개골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가짜 화석을 조작하여 빚어진 이 사건은 필트다운 사건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의 데자뷔라고 할만한 가짜 구석기 유적 발굴 사건이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바 있다.
오랑우탄의 뼈를 가공해서 붙인 ‘필트다운인’
1910년대에 영국 필트다운(Piltdown) 지방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찰스 도슨은 유인원에서 인류로 넘어오는 중간 단계의 인류 조상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과 턱뼈 등을 발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는 그 동안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서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라 불려온 인류 진화과정 상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인물로 학계의 찬사를 받았고, 그 화석은 가장 오래된 인류라는 뜻으로 발견자의 이름을 딴 ‘에오안트로푸스 도스니(Eoanthropus Dawsoni)’ 혹은 ‘필트다운인’이라고 불려졌다.
그러나 이후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X선 투시검사법, 불소연대측정법과 같은 여러 첨단 과학기술과 방법들을 동원하여 검증한 결과, 필트다운인의 두개골은 비교적 오래된 다른 인류 조상의 것이었지만 턱뼈는 오랑우탄의 뼈를 가공해서 붙이고 표면에 약을 발라서 오래된 것처럼 꾸몄던 가짜임이 1953년에 밝혀졌다. 사후에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 도슨이 스스로 조작했는지, 아니면 그도 화석발굴꾼 등 다른 사람에게 속았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근래에 이웃 일본에서는 필트다운 사기사건과 쌍둥이 같은 날조 사건이 벌어졌다. 수십 년 간 일본의 구석기 시대 유적과 유물들을 발굴해서 찬사를 받았던 저명한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실은 오랫동안 온갖 조작을 일삼아 왔음이 밝혀진 것이었다.
후지무라 신이치는 1981년에 미야기현에서 4만 년 전 석기를 발굴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그 후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구석기 유물들이 출토되어 ‘신의 손’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영웅으로 떠올랐다. 조작이 탄로 나기 직전까지 그는 도호쿠(東北)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으로서, 현장의 작업을 주도하던 발굴 단장이었다.
그러나 2000년 11월 5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1면 머리기사에, 미야기(宮城)현 가미다카모리(上高森)유적에서 후지무라가 석기를 몰래 땅에 파묻는 사진이 구석기 유물 조작 기사와 함께 보도되어 일본 사회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로써 후지무라의 유적 날조 행각은 종지부를 찍었다.
후지무라 가짜 유적, 일본 교과서도 왜곡
두 사건은 인류 조상의 화석이나 유물, 유적 등을 날조하였다는 점 뿐 아니라, 사건의 원인과 경과 등 역시 데자뷔를 보는 것처럼 똑같아서 놀라울 지경이다. 먼저 두 조작사건이 터지기 직전 영국과 일본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반의 영국은 국력이 절정기에 달하면서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대영제국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던 시기였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먼 옛날부터 세계 문명의 근원이라고 여기고 싶었겠지만, 인류 조상의 두개골 화석이나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 각종 도구 등이 주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면서 자존심을 상하게 되었다. 특히 1907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 부근의 모래층에서 인류 조상의 하나, 즉 하이델베르크인의 완전한 아래턱뼈들이 발굴되자 더욱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후지무라 유적 조작의 배경에서도 한국에서의 구석기 유적 발굴을 간과할 수 없다. 즉 1978년 이후 경기 연천 전곡리 일대에 대한 10차례의 발굴 조사 끝에, 지금으로부터 약 27만 년 전의 구석기 유적이 한반도에 있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한국에 있는 구석기 유적이 일본에 없을 리 없다”는 식의 일본학자들의 초조감과 비뚤어진 경쟁의식이 곧 후지무라의 공범에 다름 아닐 것이며, 그 역시 주변의 기대와 주문에 따른 압박감으로 조작 행위를 벌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둘째, 관련 전문가들이 잘 살펴보았다면 조작이 일찍 드러날 수도 있었겠지만, 검증은 소홀히 한 채 성급한 찬사가 쏟아졌다는 점 또한 동일하다. 필트다운인에 대해 처음부터 의문을 품으면서 조작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목소리는 금방 묻히고 말았다. 필트다운인은 제2-3 간빙기에 살았던 가장 오래된 인류로 간주되었고, 인류학, 지질학, 선사학의 권위자들은 최초의 인류가 영국인이었음을 앞 다퉈 보증하였다. 도슨은 영국의 학계와 사회로부터 큰 지지와 찬사를 받는 저명인사로 떠올랐고, 필트다운인에 관련된 논문이 200여 편이나 출판되었다고 한다.
후지무라의 구석기 유적 발굴로 일본 역사의 기원은 5만~7만 년 전에서 무려 70만 년 전까지 급격히 거슬러 올라갔다. 따라서 일본은 중국의 북경원인에 견줄만한 아시아 최고(最古)의 선사문화를 갖게 되었다고 자랑했고, 그의 성과들은 학교의 교과서에 실리고 유적지들은 일본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후지무라는 20여 년 동안 무려 162곳의 구석기 유적을 날조하였으니, 이후 일본 학계는 구석기 역사를 전면 수정해야 했다.
셋째,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측면일지도 모르지만, 조작사건의 당사자가 둘 다 아마추어 출신이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찰스 도슨의 본업은 변호사였고, 후지무라 신이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시 일본 등을 조롱할 처지는 못 된다. 지난 1992년 무렵 해저유물발굴단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에서 썼던 별황자총통(別黃字銃筒)’을 임진왜란 당시의 격전지였던 해역의 바다 밑에서 발굴했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하고 국보로까지 지정되었지만, 가짜를 미리 바다에 빠뜨린 후 건져 올렸다는 사실이 뒤늦게야 들통 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