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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멸망, 신라 법흥왕, 금관가야(532), 진흥왕, 대가야(562) 멸망

Jobs9 2024. 10. 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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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왕국 가야 멸망

 

가야 멸망, 신라 법흥왕, 금관가야(532), 진흥왕, 대가야(562) 멸망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가야 연맹은 5세기 후반에 크게 성장하여 그 세력 범위를 소백 산맥 서쪽까지 확장시켰다. 또, 중국 남조에 사신을 보내 교통하였으며, 고구려의 침입을 받은 신라를 백제와 함께 구원하기도 하였다. 

6세기에 이르러 가야 연맹은 백제와 신라의 중간에서 두 나라의 압력을 계속 받아 위축되었다. 이는 한강 유역을 잃은 백제가 그 보상을 가야 지역에서 찾으려 하였고, 신라도 이에 자극을 받아 가야지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백제와 신라가 이미 중앙 집권 체제를 마련한 것에 비하여 가야 연맹은 각 소국이 독자적인 정치 기반을 유지했으므로 그 지배력을 집중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가야 연맹은 지역적으로 백제와 신라의 중간에 위치하여 두 나라의 세력다툼을 위한 전장이 되었으며, 이들 나라의 압력을 받으면서 불안한 정치 상황이 계속되었다.  

가야 연맹은 두 나라의 침략으로 영토가 점차 축소되다가 신라 법흥왕 때에는 금관가야(532)가, 진흥왕 때에는 대가야(562)가 멸망하였다. 국력이 서로 비슷한 수준이었던 가야 연맹은 결국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한 채 멸망한 것이다. 

그러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던 가야 문화는 뒤에 신라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또, 가야의 일부 세력이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의 고대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 우륵이 가야 음악을 신라에 전하다 ⋅
우륵은 대가야의 음악가로서 가야 음악 12곡을 지었는데, 대가야가 멸망하기 직전인 신라 진흥왕 때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투항하였다. 그는 국원소경(충주)에서 여러 제자를 길러 가야의 음악을 신라에 전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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