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이에 화 내는 이유, 뇌과학, 그 사람과 나를 동일시
가까운 사람을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게 진짜 사랑이다.
화를 내는 건 상황에 대한 통제권이 없는 사람이 통제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화를 내는 전략은 현대 사회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전략이다. 화를 낸 상대방과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그 사람과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나를 인지하는 뇌 영역이 있고, 타인을 인지하는 뇌 영역이 있다. 나와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를 인지하는 영역에 가깝게 저장돼 있다. 한국인들은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고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통제하고 싶어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을 "내 마음대로 사람을,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무기력감 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어머니를 비롯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나와 독립적인 존재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서로 함꼐 행복할 수 있고 진짜 사랑이다.
가정은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사회적 환경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있어 그 어떠한 집단 보다도 가장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단지 물질적 장소와 환경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감정과 의식을 배우는 집단을 말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짜증을 가장 많이 내게 되는 집단도 바로 가족이다. 형제나 자매간의 싸움이나 엄마에게 내는 짜증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많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일까.
학술지 ‘심리과학최신경향저널'(Journal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를 통해 발표된 데보라 사우스 리차든슨(Deborah South Richardson) 미국 조지아 리젠트 대학(Georgia Regents University) 교수의 연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상대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일상적인 공격성’이라고 한다. 1974년부터 과학자들이 꾸준히 연구해 온 분야인데, 이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한 상태였다. 공격적인 행동이 얼마나 상대를 다치게 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를 상처 입히기로 의도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정의를 내리기로 한 것이다.
데보라 사우스 리차드슨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얼마나 해를 입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치게 할 ‘의도’가 있었는가에 집중하였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공격성은 그 연구가 쉽지 않았다.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행동했는지의 여부를 알기 힘들고, 가해자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차든슨 교수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그 해답을 찾기로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는 강력한 유대관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공격을 해도 관계가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의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공격성을 부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부정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과는 별개로 이러한 공격은 모두 대체로 잘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밝혔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상대는 우리가 대체로 잘 아는 사람이며, 결국 우리가 두려움을 느껴야 할 상대는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가족 사망의 충격, 정신질환 위험 높아
앞서 이야기했듯 가정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친밀한 집단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향후 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학술지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을 통해 발표된 캐서린 아벨(katherine abel)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교수를 비롯한 미국, 영국, 스웨덴 공동 연구팀의 연구이다
연구팀은 스웨덴보건복지청이 소장하고 있는 1973년~1985년 사이 스웨덴에서 태어난 아동 94만6994명의 자료를 연구하였다. 이 자료는 태아기와 태어난 이후 13세까지의 아동을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정신분열증, 조울증, 단극성 우울증 등을 총괄하여 정신질환을 정의하였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연구대상 아동의 33퍼센트(%)인 32만1249명은 13살 이전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중에서 1만1117명은 가족 구성원의 자살을 경험했으며, 1만5189명은 사고사, 28만172명은 자연사를 경험했다.
중요한 것은 이 이후의 데이터이다. 태아기 때 가족이 사망한 경우에는 정신질환 위험률이 높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태어난 이후 경험한 가족의 죽음은 정신질환 위험률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사 한 경우보다는 사고로 사망한 경우의 위험도가 높았으며, 핵가족 구성원이 자살한 경우 그 위험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아동기에 부모나 형제의 죽음이 향후 정신질환이 발생하는데 있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비 서양 국가에서의 경향을 파악하는 추가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은 생애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시(同一視)
동일시(同一視)는 정신분석학에서 쓰이는 용어로 자기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태도, 가치관, 행동 등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 사고방식과 닮게 된다.
통합과 분화가 감정기복에 따른 변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안정된 자기이미지와 대상이미지가 발달한다. 그러나 대상항상성의 습득이 우리가 더 이상 변화하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후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대상의 측면을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자기 이미지를 바꾸어 나간다. 이런 과정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부른다. 통합과 분화의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이렇게 내사된 대상-표상은 새로운 정신적 표상으로 대사작용을 거치고 변형된다. 동일시는 대상이미지의 측면들을 자기이미지로 귀속시키는 것이다(Sandler & Rosenblatt, 1962). 동일시는 중요한 대상과 자신의 구별된다는 느낌을 유지하면서 그 대상이미지의 어떤 측면을 자기이미지로 귀속시키는 능력이다. 전 생애를 통해 동일시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 자신을 열어놓고 그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변하도록 돕게 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