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금융전문가 쑹훙빙(宋鴻兵)이 2007년 6월 출판한 도서.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시리즈로 4권까지 나왔다. 이후 2020년에 전면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세계 경제는 소수의 금융재벌이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융재벌들이 중앙은행을 장악해서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신흥국과 서민들의 부를 약탈한다는 것. 구체적인 주장은 아래와 같다.
대표적인 예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워털루 전투에서 헛소문을 퍼트려 부를 쌓았고 수많은 나라의 재정을 장악해서 지금은 무려 50조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그 외 JP모건, 록펠러, 제임스 힐, 와버그 형제 등 재벌들이 미국 중앙은행을 장악하고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여 재산을 불리고 있다.
금융재벌들은 유럽의 금융을 장악한 다음 미국도 장악하고자 했는데, 이에 반대한 미국 대통령은 가차없이 암살했다. 그 사례로 앤드루 잭슨, 에이브러햄 링컨,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등을 암살했고 린든 B. 존슨,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는 금융세력의 꼭두각시거나 협력자였다.
금융재벌들은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할 때마다 고의로 불황을 조성했으며, 그 외에도 계속 불황을 일으켜 서민들의 재산을 빨아먹고 있다.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도 금융재벌이 일으켰고 1929년 세계 대공황역시 금융재벌이 일으킨 일이었으며, 유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신의 이론으로 국제 금융재벌의 지지를 얻은 앞잡이이고, 제2차 세계 대전도 금융재벌들이 일으킨 것이다.
그 외에도 IMF와 IBRD도 국제금융재벌의 발 아래에 있으며 금본위제 폐지, 멕시코, 공산권, 동아시아 경제 위기도 모두 금융재벌이 일으킨 일이며, 환경보호를 명목으로 세계환경보호은행(지구환경기금)을 설립하여 개발도상국의 채무를 세계 환경보호은행으로 이관하는 대신 생태위기에 빠진 토지를 담보로 잡아 전 육지 면적의 30%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중국이 국제금융재벌의 공격에 버티기 위해서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의 황금 보유량을 늘리면서 화폐개혁으로 금과 은을 화폐체계에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지급준비금 구조를 조절하여 일정 비율의 금과 은을 포함시키고 채무어음의 비중을 줄이는 등 재조정한다. 고수익 업종은 영업세를 낼 때 일정 비율로 금과 은을 내도록 하고, 재부무의 금은을 담보로 중국 금화와 은화 지폐를 발행하며 발행권은 상업은행이 아닌 재무부가 통제해야 한다, 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유대인 음모론의 확장 버전이다. 허무맹랑한 음모론이 많지만 IMF 외환위기의 한국의 단결력을 칭송해서 한국언론에 주목을 받았다. 책 내용 자체에는 일부 사실도 많이 있고 재미난 역사의 숨겨진 이야기도 꽤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장이나 곳곳에 가미해놓은 음모론, 유대자본 및 반미정서가 생길 우려가 있고 중뽕, 중화사상을 고취하려는 태도가 느껴진다는 점이 불가피한 단점이며 금융 패권 전쟁의 역사를 소개해준다는 점에서는 재미로도 읽을 만하다. 다만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독자 스스로 찾아서 팩트 체크도 해야 한다.
“역사와 현실은 똑같이 냉혹하다. 소련의 해체는 루블화의 평가절하를 가져왔으며, 아시아 금융위기로 ‘네 마리 작은 龍(용)’은 昇天(승천)을 멈춰야 했다. 일본 경제는 마치 혼이 나가는 약이라도 먹은 듯 맥을 못 추었다. 이와 같은 일들이 그저 우연히 발생했다고 생각하는가? 우연한 일이 아니라면, 막후에서 힘을 발휘하는 존재는 무엇인가? 과연 어느 나라가 다음 공격 목표가 될 것인가?”
<화폐전쟁>(Currency Wars)의 저자 쑹훙빙(宋鴻兵)이 序文(서문)에서 책을 쓰고자 하는 의도와 내용을 밝힌 부분이다.
미국에서 금융 전문가로 활동하던 저자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보면서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러나 직감은 직감일 뿐 당장에 내세울 만한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후 저자는 팀을 구성해 주요국 정부의 방대한 문헌과 법률 문서, 개인 서신과 전기, 신문 잡지에 실린 글에서 서양의 굵직한 금융 사건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무려 10년에 걸친 취재와 고증 끝에 태어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는 단어는 ‘陰謀(음모)’ 또는 ‘배후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시장 또는 가격이 아니라 화폐와 화폐를 주무르는 국제 금융재벌 또는 그림자 정부의 음모를 의미한다.
화폐를 지배하는 국제 금융재벌들이 세계와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그들에 의해 서양의 전쟁과 역사가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흘러왔다는 것이다. 국제 금융재벌들의 利權(이권) 다툼에 따라 전쟁이 발발하고,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이나 국왕이 취임하거나 암살당해 왔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를 시작으로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설립, 제1차 세계대전, 1930년대의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金本位(금본위)제도의 폐지, 일본의 장기불황, 아시아 외환위기 등이 모두 음모의 祭物(제물)로 다뤄지고 있다.
지나치게 꿰맞추고 있다는 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내용은 아니어서 마치 흥미진진한 기업소설을 읽는 것 같다.
대표적인 국제금융재벌 로스차일드 家門(가문)을 들여다보자. 산업혁명의 여파로 금융업이 전에 없이 번성하던 시절 로스차일드의 다섯 형제들은 모두 뛰어난 자질과 뚝심을 발휘했다. 이들은 1700년대 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로스차일드은행 本店(본점)을 창립한 이후 영국·오스트리아·프랑스·이탈리아 등에 지점을 세워 나갔다. 당시로서는 유럽 전역에 지점망과 정보망을 형성하는 세계 최초의 국제적 은행그룹이었다.
1815년 6월 벨기에 브뤼셀 근교에서 전개된 워털루 전투.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과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이 전투가 국가의 운명을 건 한 판 승부였다면 로스차일드 형제에게는 대박을 터뜨릴 절호의 기회였다.
전쟁의 와중에서 로스차일드 형제들은 자신들의 정보망을 최대한 가동했다. 승패가 결정되기 하루 전, 나폴레옹이 질 것으로 판단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의 國債(국채)를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이를 웰링턴이 패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인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의 投賣(투매)에 나섰다. 영국 국채가 단 몇 시간 만에 액면가의 5%도 안되는 휴지조각으로 변해갔다. 그러자 로스차일드 가문은 반대로 영국 국채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다음날 大反轉(대반전)이 일어났다. 나폴레옹군이 무려 3분의 1의 병력을 잃고 무참히 패했다는 소식이 당도한 것이다. 단 하루 만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20배나 되는 差益(차익)을 챙기면서 영국 정부에 대한 가장 큰 채권자가 됐다.
이때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의 국채 발행을 주도하고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제 영국인들은 그동안 영국 정부에 내던 세금을 로스차일드은행에 내야 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했다. 영국 정부는 화폐발행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민간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면서 연 8%의 이자를 내야 했다.
결국 영국의 세금뿐 아니라 국채 가격과 통화공급량을 모두 로스차일드 가문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대영제국의 경제와 금융이 통째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손아귀에 들어간 셈이다. 당시 런던의 로스차일드은행을 이끌면서 국채 매집에 성공했던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통치하는 왕이 누군지 상관하지 않는다. 대영제국의 통화공급을 통제하는 사람이 곧 대영제국의 통치자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나다.”
1850년을 전후해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총 재산은 60억 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수익률을 연 6%로 계산하면 150년이 지난 지금 이들 가문의 재산은 최소한 50조 달러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재산이 모두 금융자산 형태는 아니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전 세계 금융자산의 4분의 1을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전 세계 금융자산은 194조5000억 달러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최근 들어 상당히 희석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20세기 초까지 로스차일드 가문이 통제한 재산이 당시 세계 총 재산의 절반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의 경제와 금융을 좌지우지한 것은 물론 신흥국 미국과 南美(남미) 등으로 옮겨가면서 세력을 확대했다.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근대 전쟁의 배후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전쟁을 책동하고 그 자금을 대는 것이 은행가의 이익에 들어맞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해가 뜨지 않는 나라’로 전락하는 와중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富(부)를 축적하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해가 지지 않는 금융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이제 로스차일드 가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보자. 미국의 독립전쟁을 뒤에서 조종했을 뿐 아니라 링컨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의 암살에도 이들이 배후세력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런던과 파리, 프랑크푸르트를 주축으로 하는 금융재벌들이 오랫동안 용의주도하게 세운 전략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과 친분이 두터웠던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는 “미국을 남부와 북부 두 弱體(약체) 연방으로 분열시키는 것은 유럽의 금융세력이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온 시나리오였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럽의 정치권은 물론 금융세력들이 신생 미 합중국이 더 자라기 전에 ‘분열과 정복’ 전략에 나섰다는 것이다. 전쟁을 책동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노예제도를 쟁점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남북의 첨예한 갈등으로 비화하는 도화선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를 통해 우리는 노예제도가 남북전쟁 발발의 원인이라고 알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을 포함한 국제금융재벌들은 전쟁 당사자 양쪽을 동시에 공략했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거액의 전쟁 경비를 지출하는 정부의 채권을 수중에 넣을 수 있도록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전쟁 초기 남군이 승리를 거두는 와중에 북군의 링컨 대통령 정부는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금융재벌들은 링컨 대통령에게 24~36%의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금리가 터무니없이 높았을 뿐 아니라 이 돈을 빌릴 경우 미국 정부가 파산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던 링컨 대통령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대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화폐를 발행키로 한다. 새 화폐는 기존의 다른 은행권과 구별하기 위해 녹색의 도안을 사용했다. 이후 ‘링컨의 그린백(greenback)’이라고 불린 이 화폐는 金(금)이나 銀(은)과 같은 금속화폐를 담보로 잡지 않으면서 20년간 5%의 금리로 발행됐다. 이를 위해 링컨은 의회를 통해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새 화폐에 완벽한 법적 효력을 부여했다.
결과는 예상외의 성공이었다. 링컨은 새 화폐의 발행을 통해 재정부족현상을 타개한 것은 물론 미국 북부의 각종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승리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값싼 비용으로 발행된 화폐가 법에 의해 북부지역의 基軸(기축)통화가 됨으로써 북부지역의 방위산업은 물론 철도건설, 농업생산과 상업·무역 분야도 대규모로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벌 것이라는 국제금융재벌들의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링컨 정부에 제동을 걸었지만 통하지 않는 가운데 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 링컨 대통령은 즉각 “남부 정부가 전쟁 중 진 빚은 모두 무효”라고 선포했다.
이제 금융재벌들은 패배한 남부로부터도 승리한 북부로부터도 돈을 벌지 못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 처했다. 이에 국제금융재벌들은 링컨에 대한 보복은 물론 북부 승리의 원동력이자 손실의 근본적 원인인 링컨의 화폐정책을 뒤집기 위해 불만 세력들을 모아 링컨의 암살을 준비했다.
1865년 4월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이 북군의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했다는 승리의 소식을 접한 링컨 대통령은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오랜만에 느긋하게 공연을 감상하다 암살당했다.
링컨이 암살당한 후 국제금융재벌들의 조종을 받은 의회는 링컨의 새 화폐정책의 폐지를 선언하는 동시에, 새 화폐의 발행 상한액을 4억 달러 미만으로 동결했다. 금융재벌들이 미국 정부에 빼앗겼던 화폐발행권을 다시 돌려받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남북전쟁은 본질적으로 국제금융세력들이 미국 정부와 화폐 발행권 및 화폐정책의 이익을 놓고 벌인 치열한 싸움이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전쟁을 전후한 100년 동안 민영 중앙은행 시스템의 도입을 놓고 이를 반대하는 정부와 이를 성사시키려는 국제금융세력이 서로 싸움을 벌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7명의 미국 대통령이 피살되었으며 다수의 의원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월가 금융세력의 아시아 죽이기
이제 시공을 건너뛰어 아시아 외환위기로 가보자. 1990년대 초 런던과 뉴욕 월가의 금융세력은 동부전선에서 조금씩 압박해 오는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서부전선에서는 소련과 동유럽 경제를 궤멸시켰고, 독일과 프랑스가 꿈꾸던 유럽 단일통화의 구상도 조지 소로스의 방해로 잠시 주춤한 상태였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일찌감치 평정한 다음이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적은 동남아 지역이었다. 특히 정부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아시아 경제모델’은 아무리 봐도 눈에 거슬리는 상대였다. 이들의 성공이 거듭되면서 아시아 경제모델이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를 방치할 경우 국제금융재벌들의 ‘통제하면서 해체하기’라는 기본전략에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할 것이 뻔했다. 국제금융재벌들의 최종적인 전략 목표는 세계 경제를 통제하면서 해체해 런던과 뉴욕 월가가 축이 되어 통제하는 ‘세계정부’와 ‘세계화폐’ 및 ‘세계세금’ 체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태국을 첫 공격목표로 아시아 絞殺戰(교살전)이 시작됐다. 저자가 국제금융시장에서 빌려온 표현에 따르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시아 각국을 상대로 ‘양털깎기’에 나선 것이다. 태국 등 동남아 국가 통화의 對(대)달러 환율을 폭등시킴으로써 이들 국가에 인플레이션을 조장했다.
동시에 이들 국가의 핵심자산을 헐값에 歐美(구미)의 기업으로 팔아 넘기도록 함으로써 ‘통제하면서 해체하기’ 작업에 들어갔다.
또 하나의 목적은 아시아 국가들의 달러 수요를 자극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달러를 비축해야 중요한 시기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다시는 달러를 함부로 투매할 생각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외환위기 당시 200억~300억 달러 안팎이었던 외환보유액(60% 이상이 달러표시 자산)이 최근 2000억 달러를 웃돌고 있고 중국과 싱가포르, 대만 등도 외환보유액을 엄청난 규모로 늘리고 있다.
아시아 위기 당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아시아기금’ 또는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을 설립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도 국제금융세력들의 방해 때문이었다. 아시아기금은 외환의 일시적 부족과 같은 곤경에 빠진 域內(역내) 참여국가들을 긴급 구조한다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IMF는 당시와 같은 위기의 시기에 지역적 원조에 의존하는 금융지역화는 위험하다면서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 또한 통제하면서 해체하는 데 차질을 빚는 일대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은 원래 아시아기금을 적극 주장하다가 런던과 월가의 압력에 밀려 슬그머니 태도를 바꾸었다. 또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공격의 배후를 거론했지만 소수의견으로 묻히고 말았다.
당시 아시아 위기의 한복판에 있었던 한국을 저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냉전 시기 미국의 맹방이었던 한국이 미국에 손을 내밀었지만 미국은 IMF에 공을 넘겼다. 국제금융재벌을 거쳐 미국 재무부의 압력을 받은 IMF는 한국에 대한 ‘원조’의 대가로 온갖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다. 긴급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한국의 경제와 금융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이었다. 무역 및 외환거래 자유화는 물론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과 노동개혁, 한국은행(중앙은행)의 독립 등의 조치가 이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국제 금융재벌들이 한국 기업들을 사냥하는 일이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국제금융재벌들이 한국의 강한 민족정신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고 평가했다. ‘민족정신이 강한 나라는 외세의 압력에 쉽게 굴하지 않는 법’이라면서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던 한국인들을 치켜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초 예상과는 달리 대규모 기업과 은행의 도산 파동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서양의 기업들이 한국의 대기업을 하나도 사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한국 경제는 1998년의 악몽을 빠져나오면서 수출이 빠르게 회복세로 돌아섰다. 한국 정부 또한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빠르게 진행하는 한편, 은행의 700억~1500억 달러나 되는 부실채권을 과감하게 떠안았다. 은행의 부실채권을 한국 정부가 떠안는 순간 은행의 통제권이 한국 정부의 손에 다시 들어가면서 IMF는 은행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노력과 국민의 협조로 한국 경제는 빠르게 회생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국제금융재벌들과 미국 재무부가 헛물만 켰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다른 나라들이 경제와 금융의 주권을 모두 국제금융재벌에 넘긴 데 반해 한국은 강한 민족정신으로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외환위기 당시 일부 은행과 부동산이 외국계 자금으로 넘어간 것에 대해 헐값 매각 또는 國富(국부)유출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만하기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금본위제로 돌아가자
최근 들어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도전이 거세다. 쑹훙빙은 달러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가장 먼저 오늘날 세계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로 안정되고 합리적인 화폐의 도량형 기준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안정적인 화폐 도량형이 없이는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장 자원의 합리적 분배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 가장 안정적인 화폐라고 할 수 있는 달러의 경우 현재의 1달러가 1970년대의 5.6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곧 달러가 금본위제를 포기한 결과다.
저자는 미국의 달러와 영국의 파운드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금본위제도가 제공하는 안정적인 재산 도량형의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금본위제하의 달러와 영국의 파운드가 매우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19 74년 7월 13일자)에 따르면 영국의 물가는 1664~1914년 사이의 250년 동안 금본위제 아래에서 안정적이면서 약간 하락하는 추세를 유지했다.
1664년의 물가지수를 100이라고 하면 중간에 나폴레옹 전쟁 등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00보다 낮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 영국의 물가지수는 91이었다. 금본위제하에서 1914년의 1파운드는 250년 전인 1664년의 같은 가치를 가진 화폐의 구매력보다 더 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금본위제하에서의 달러 가치의 흐름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1800년 미국의 물가지수는 102.2였으며 1913년에는 80.7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던 113년 동안 평균 통화증가율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며, 연평균 가격 변동률은 1.3%를 넘지 않은 결과였다.
프랑스와 스위스, 독일 등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던 다른 유럽국가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화폐 도량형이 없었다면 서양문명이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단계에서 거대한 부를 창조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기축통화 전쟁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 어떤 화폐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당연히 ‘금’이다. 금과 은은 가격의 파동, 즉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효능을 가진 침이라는 것이다. 금과 은이 화폐로서 자연 진화하는 진정한 시장경제의 산물이자 인류가 신뢰하는 성실한 화폐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금과 은만이 시민의 재산을 성실하게 보호하고 사회자원의 합리적 분배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달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통화는 없다는 점에는 저자 쑹훙빙도 동의한다. 그러나 달러뿐 아니라 다른 어떤 통화도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있는 데 반해 금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정한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지난 5월 訪韓(방한) 시 가진 한 세미나에서 “미국 정부가 이번 금융위기에서 드러난 문제를 고치지 않을 경우 30~40년 후에는 달러가 기축통화 기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면서 “그때 만약 금과 은이 갑작스럽게 기축통화 역할을 하게 되면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을 잃게 될 것인가. 저자 쑹훙빙의 기대와 조언대로 중국의 위안화가 기축통화로서 올라설 수 있을 것인가.
기축통화는 국제 무역 및 자본거래에서 교환 및 회계수단으로 널리 통용되는 통화를 의미한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다섯 단계의 국제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첫 번째 단계는 정부 간 결제 및 대외지급준비용 자산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자금차입 및 조달용 통화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투자목적으로 사고파는 대상이 되어야 하고 국제거래 시 결제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네 번째는 지역내 단일통화, 즉 역내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얻는 것이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세계 기축통화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단계를 모두 충족시키거나 한 단계씩 넘어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물가안정과 함께 통화가치의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가가 급등하는 나라의 가치가 불안정한 통화를 어느 중앙은행이 대외지급용으로 보유할 것이며 어느 은행이나 개인이 자금조달용이나 결제용으로 사용하겠는가.
달러의 위상, 상당 기간 계속될 것
몇 년 전 필자는 주한미국대사관 관리로부터 달러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국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 세 나라를 든다면 북한, 쿠바, 이라크일 것이다. 하지만 달러만 가지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나라가 이들 세 나라다.”
전 세계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는 화폐가 바로 달러이고 그 같은 달러를 기축통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금본위제도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엔과 유로가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의 위안이 중국 경제의 높아지는 위상에 힘입어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한국·홍콩·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 등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고 동남아·홍콩·브라질 등과의 무역 시 自國(자국) 통화를 사용키로 하는 등 국제통화로서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아직은 위안이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 비중이 매우 낮지만 아시아 지역에서의 거래 비중을 늘려갈 경우 향후 엔과 유로에 버금가는 위상을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의 경제와 금융, 달러의 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미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4조2000억 달러로 전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2위인 일본(4조9100억 달러)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연간 15조~20조 달러(2008년 19.7조 달러)에 달하는 무역 결제의 대부분이 안정적인 결제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미국의 금융시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전 세계 외환거래의 43%가 달러로 행해지고 있으며,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64%가 달러표시 자산으로 보유되고 있다. 따라서 달러의 위상이 갑자기 추락하기보다는 유로, 엔, 위안 또는 걸프협력협의회(GCC·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지역 6개국)와 같은 다른 지역공동통화로 서서히 대체되어 가겠지만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은 상당부분 살아남을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는 음모인가, 자충수인가?
마지막으로 蛇足(사족) 하나. 저자 쑹훙빙은 책의 끝부분에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3~4쪽에 걸쳐 짤막하지만 잘 예측하고 있다. 월가의 천재들이 만들어 낸 파생금융상품이라는 무한용량의 상자가 문제를 일으키면서 유례없는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놀란 투자자들이 수중에 있는 각종 금리 보험 상품을 투매하기 시작하면서 이들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인 통화, 채권, 주식, 석유 등이 동시에 타격을 입고 국제금융시장에는 거대한 규모의 유동성 공황이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폐허가 되어버린 금융시장을 살리려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달러를 마구 찍어 시중에 풀어놓을 것이다. 수십 조 달러가 해일처럼 세계경제에 밀려들면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출구전략(exit strategy)’도 초인플레이션과 같은 예상되는 대혼란을 미리 방지하자는 의도에서 나온 견해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난 수백 년 동안 음모설의 배후로 지목됐던 대형은행들이 힘없이 무너졌다. 미국 금융재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씨티그룹은 國有化(국유화)되다시피 했고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다. 메릴린치와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뱅크오브아메리카와 JP모건체이스도 휘청거리고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상업은행으로 전환해 미국 정부와 FRB의 감독을 받게 되었다. BNP파리바 등 유럽의 대형은행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금까지 거품이나 전쟁을 일으켜 천문학적인 이익을 취해 왔던 바로 그 국제금융재벌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