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이유, 논어 자로, 선한 사람이 좋다고 하고 나쁜 사람이 싫다고 하는 사람, 선악(善惡) 여부에 따라 여론이 조작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자공이 “마을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떻습니까?”라고 여쭈니, 공자께서 “옳지 않다.”고 대답하셨다.
好, 去聲.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그래서 자공이 다시 “마을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떻습니까?”라고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옳지 않다.
惡, 去聲.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마을 사람 중에 선한 사람이 그를 좋은 사람이라 하고, 마을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이 나쁘다고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一鄕之人, 宜有公論矣.
한 고을의 사람에겐 마땅히 공적인 의론이 있다.
然其間亦各以類自爲好惡也.
그러나 그 사이에 또한 각각 부류에 따라 스스로 좋아함과 싫어함을 삼는다.
故善者好之而惡者不惡,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그를 좋다고 하고, 나쁜 사람이 미워하지 않으면
則必其有苟合之行.
반드시 구차히 영합하여 행동하는 것이 있고,
惡者惡之而善者不好,
나쁜 사람이 그를 미워하고 좋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則必其無可好之實.
반드시 좋아할 만한 실제가 없는 것이다.
남에 대한 평가는 중론(衆論)이나 여론(輿論)에 휩쓸리기 쉽다. 공자는 ‘논어’ ‘자로(子路)’에서 제자 자공(子貢)의 질문에 답하여, 중론(衆論)과 여론(輿論)을 주도하는 사람의 선악(善惡) 여부에 따라 여론이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향인(鄕人)은 고을 사람이다. 많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하여(何如)는 ‘어떻습니까’이다. 앞의 하여(何如)는 ‘그렇다면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뜻을 지니고, 뒤의 하여(何如)는 ‘그렇다면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뜻을 지닌다. 이에 대해 미가야(未可也)는 아직 그렇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불여(不如)∼는 비교의 구문으로, 전자보다 후자가 낫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인조 때 학자 조익(趙翼)은, 현인과 군자가 세상에 나오면 같은 덕을 지닌 사람끼리는 반드시 친하게 지내기 마련이지만, 한편으로는 질투하고 시기하는 자도 있어 필연적으로 그들과는 빙탄(氷炭)의 관계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좋아하는 자도 없고 미워하는 자도 없다면 그런 사람은 군자가 아니라 향원(鄕愿)일 따름이다.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반드시 좋아하고 그릇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미워하는 그런 인물이어야 비로소 군자일 것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항덕(恒德)을 지닌 사람이 적절한 사실판단을 내릴 때 비로소 인물 평가가 사회조직의 추동력으로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