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진화심리학
층간소음이라는게 어마어마한 정신적 폭력
진화심리학적으로 우리 인간은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까지. 내 가족, 부족, 나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항상 경계와 촉각을 세우면서 살았다
200만년 전에 우리가 아직 원시인이었을 때, 동굴 안에서 아니면 수풀 속에서 살면서 검치 호랑이 지나가는 소리나 다른 부족애들이 움직이는 소리나 뱀 기어다니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서, 목숨이 걸린 위협이라 여기면서 사주경계 했다.
이게 우리의 후성유전적 정보기억이 되서 현생 처럼 안전한 콘크리트 집에서 살게 되었어도, 이때의 이 본능적 발현은 절대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 집, 내 영역에서 쿵! 쿵쿵! 쿵! 하는 소음은 '실제적 위협' 마치 뱀이나 검치 호랑이나 창을 든 다른 원시인들의 침입 처럼 극도로 민감하게 되고 예민하게 되면서, 투쟁-도피 반응 같은 신체적인 호르몬 작용까지 일어나서. 엄청난 불안함을 느끼고, 극도의 신경 예민
소리공포증(phonophobia)
특정 소리가 통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데, 특히 편두통이 있는 사람은 이런 일이 흔해 ‘소리공포증(phonophobia)’이라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심지어 음악조차 듣기 싫은 걸 억지로 듣게 되면 만성 통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 통증이 더 심해진다는 관찰 결과도 있다. 버스나 택시에서 운전사가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듣기 싫은 말이나 음악이 계속 나와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괴로웠던 적이 몇 번 있다.
5데시벨 높을 때만 진통 효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8일 소리의 세기인 음량에 따라 뇌가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연구진은 배경음보다 약간 큰 소리가 통증을 덜 느끼게 한다는 동물실험 결과로 여기에 관여하는 신경 네트워크도 밝혔다.
중국과기대 마취학·통증의학과 등 중국의 공동연구자들은 소리의 질과 세기가 통증을 지각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를 동물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협화음(클래식 음악)과 불협화음, 백색소음을 배경음 대비 5, 10, 15, 20데시벨(dB) 높은 음량으로 들려준 뒤 통증 자극에 대한 행동 반응을 관찰했다. dB은 음량의 상용로그에 10을 곱한 값으로 10데시벨이 높으면 음량이 10배다. 따라서 배경소음 대비 5, 10, 15, 20dB 높다는 건 음량으로 3.2배, 10배, 32배, 100배라는 뜻이다.
그 결과 놀랍게도 소리의 성격이 아니라 음량이 통증 지각에 영향을 미쳤다. 협화음이냐 불혐화음이나 백색소음이냐에 관계없이 배경소음보다 5데시벨 높을 때 통증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큰 음량을 들려줬을 때는 진통 효과가 사라졌다. 이 경우 소음의 긍정적인 측면이지만 음량이 조금만 올라가도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 역시 중요한 발견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소리에 민감한 존재라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분석기법을 동원해 소리 진통 효과에 관여하는 신경 네트워크를 밝혀냈다. 소리 자극을 처리해 지각한 청각피질이 그 정보를 시상의 특정 영역으로 보내는 활동이 억제되면서 통증 감도가 떨어졌던 것이다. 뇌의 중심에 있는 시상은 여러 감각 정보가 모여드는 중계기지로 알려져 있다. 청각 정보 역시 시상의 내측슬상핵을 거쳐 청각피질로 들어간다.
그런데 청각피질이 가공한 정보를 다시 시상의 후위핵(PO)과 배측후위핵(VP)으로 보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PO와 VP는 척수에서 통증 신호를 받아 체감각피질로 전달하는 중계기지다. 청각피질에서 해석한 소리 정보가 통증 지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PO와 VP가 통증 정보를 제대로 중계하려면 청각피질에서 적절한 소리 정보가 들어와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평소 주위 소리보다 약간 더 큰 소리가 들리면 청각피질이 PO와 VP로 정보를 보내지 않고 그 결과 통증 정보 중계가 억제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주위보다 ‘약간’ 큰 소리가 뜬금없이 진통 효과를 내는 것일까.
논문에서는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같은 호에 실린 해설에서 독일 하이델베르크 약학연구소 로히니 쿠너 교수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안했다. 진화의 관점에서 소리 크기의 미묘한 변화는 나를 노리는 적이 다가온다는 신호이고 따라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뇌의 회로는 PO와 VP에 소리 정보를 보내지 않음으로써 통증을 덜 느끼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나 불안과는 무관
한편 소리 진통 효과가 소리의 성격과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실험 결과도 있다. 배경음보다 5데시벨 높은 소리를 들려주더라도 호르몬 수치 등 스트레스 관련 지표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는 음악 또는 소리의 진통 효과가 스트레스 완화와 불안 감소 때문이라는 음악치료 분야의 기존 해석이 불완전함을 뜻한다. 적절한 음량의 소리를 들려주면 이런 효과와 시너지로 작용해 더 강력한 진통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1960년 이미 이런 관찰을 담은 논문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적이 있다. 당시 연구자들은 치과 치료를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헤드폰을 낀 채 원할 때 음량을 조절하며 음악 또는 백색소음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65%가 치료 중 통증을 덜 느꼈다고 답했다. 놀라운 사실은 음악보다 오히려 백색소음을 들었을 때 진통 효과가 컸다고 보고한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실험 결과가 사람에게서 어느 정도 재현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절한 음량의 소리를 잘 활용하면 뇌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상당한 진통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층간소음이나 시위 소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소리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으므로 실제 임상에 적용하려면 최적화 조건을 찾는 많은 연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한번 소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예민해지는 ‘칵테일파티 효과’
칵테일파티 효과 칵테일 파티와 같이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때 우리의 감각기관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들어온다. 하지만 사람은 이 많은 정보를 다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우리가 듣고 싶은 내용의 한 가지 대화만을 집중해서 듣게되고 나머지 소리는 잡음(일종의 배경)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감각을 선택해서 받아들인다는 선택주의(selective attention)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잡음으로 처리하는 말소리중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주제나 또는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경우 그 대화를 인지하게 되고 그 대화를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다. |
층간소음 갈등이 극한에 이른 이웃들은 대부분 관계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 서로 다른 감정상태라는 점을 몰라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아랫집은 상당 기간 소음에 시달리며 항의할지 말지 고민하다 못 참겠다 싶을 때 윗집 초인종을 누른다. 반면 윗집으로선 난데없는 항의 방문이다. 윗집은 대체로 스스로를 ‘조용한 집’으로 여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쪽은 만성화된 문제를 제기하는데 상대는 급성으로 받아들이는 탓에 역지사지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아슬아슬한 첫 대면에 불꽃이 튀는 건 윗집이 소음 자체를 부인할 때다. 윗집은 아랫집 사람이 올라오기 직전 상황만 떠올리지만 아랫집은 그동안의 소음 피해를 모두 염두에 둔다. 온도차가 생기는 이유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연립주택에 사는 주부 정모 씨(43·여)는 “딸이 고3이라 조용히 해달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윗집에서 ‘저흰 집에서 발꿈치 들고 다녀서 아킬레스건이 아파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윗집으로선 선뜻 잘못했다고 하기가 쉽지 않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서로 정보가 없고 단절된 상태에서 불쑥 ‘조용히 살라’는 지적을 받으면 방어본능이 작동한다”고 말했다. 항의 시간이 심야 또는 이른 아침일 경우 ‘사생활 침해’라는 반감은 더욱 강하게 든다.
첫 대화에서 서로 감정이 상하면 말문이 닫힌다. 윗집은 아랫집으로부터 언제 어떻게 시끄러운지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가 많아 어떻게 조용히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이런 가운데 소음이 계속되면 아랫집은 무시당했다고 오해하기 쉽다. 소음이 의도적이라고 느낄 때 분노는 배가 된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만원 지하철에서 발을 밟히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화가 덜 나지만 상대가 일부러 괴롭힌다고 생각하면 공격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윗집 사정을 알 기회가 없었던 아랫집은 상상의 날개를 편다. 아이가 매트도 안 깐 바닥을 놀이터처럼 뛰어다니도록 부모가 방치한다거나 한밤에 트레드밀(런닝머신)을 뛰는 등 몰지각한 짓을 한다고 추측한다. 상대가 가내수공업으로 귀금속 세공을 하며 소음이 심한 장비를 쓰고 있다는 등의 착각에 빠지는 사례도 있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관계자는 “가내수공업 소음에 시달린다는 민원들을 확인해 보면 거의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윗집은 갈등이 길어지면 아랫집이 과민반응을 한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름대고 소음저감 노력을 해도 항의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때 아랫집은 실제 고통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번 소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예민해지는 ‘칵테일파티 효과’ 때문이다. 한 번 소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특히 예민해지는 ‘칵테일파티 효과’ 때문이다.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거나 자신이 관심 갖는 이야기를 할 때 그 부분만 선택적으로 잘 듣게 되는 현상이다. 윗집에서 나는 특정 소음에 오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이다.
사람마다 불편을 느끼는 소음의 종류와 세기도 다르다. 신윤미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개인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음역에 차이가 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소리는 크지 않아도 갑자기 ‘꽝’하거나 발로 ‘쿵쿵’ 하는 소리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음 피해는 주관적이어서 섣불리 피해정도를 재단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층간소음 갈등이 장기화되면 소음 자체보다 악감정과 불신의 문제로 본말이 전도된다. 아랫집에 직장인이 살 경우 ‘소음 피해→불면증→출근 후 히스테리→나빠진 평판에 또 스트레스→귀가 후 소음에 더 민감→불면증 심화’ 같은 악순환을 겪는다. 층간소음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으면 다른 원인으로 생긴 문제까지도 이웃 탓을 하는 사례까지 생긴다. 인천 계양구의 윤모 씨(46)는 “층간소음으로 한참 골치 아플 때 회사가 부도나고 아들도 외국어고 입시에 떨어졌는데 이게 다 윗집 때문인 것 같았다. 칼부림까지 하는 심정이 이해가 됐다”고 털어놨다. 유은정 정신과 전문의는 “소음에 오래 시달리면 피해의식이 생기고 충동 조절이 안 돼 다른 이유로 화풀이 대상이 필요할 때 갈등을 빚던 이웃을 향해 우발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단계에서 윗집은 대체로 아랫집을 외면한다. 마주쳐봐야 싸움만 날 거라고 생각해 인터폰이 오거나 초인종이 울려도 응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위협을 느껴 피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피할수록 불신은 커진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 R아파트에 사는 박모 씨(38·여)는 “뻔히 베란다로 불 켜진 거 확인하고 갔는데 아무도 없는 척하면 ‘정말 못 믿을 사람들이구나’ ‘자기 집 애들 안 뛴다는 거 역시 거짓말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랫집에선 윗집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리거나 ‘보복 소음’을 내기도 하다. ‘선풍기 날개에 나무 빗자루나 추를 연결해 천장을 ‘자동 타격’하거나 화장실에 우퍼 스피커를 설치한 뒤 헤비메탈 음악을 올려 보내는 수법이 자주 쓰인다. ‘맞불 공격’은 엉뚱한 데까지 소음 피해를 준다. 스스로를 이웃들로부터 고립시키는 자충수다.
오랜 갈등을 겪고 나면 상대가 이사를 가도 후유증이 남는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H아파트에 사는 윤모 씨는 “지난달 윗집이 이사를 가고 나선 그 윗집의 옆집(대각선 집) 소음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윤 씨는 “윗집 뛰는 소리에 2년 넘게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이젠 조그만 발자국 소리에도 귀가 쫑긋 선다. 소리 자체에 예민한 사람이 돼버려 집에 오는 게 고통이고 주말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아랫집의 항의를 받아온 윗집 역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는다. 인터폰만 울리면 아랫집인 줄 알고 자녀들이 벌벌 떨거나 서로 ‘조용히 하라’고 하도 다그쳐 가족 간 대화가 사라진다. 소리를 안 내려 조마조마해하다 보면 자기도 민감해져 윗집 소음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웃의 해코지가 두려워 집 앞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한 사례도 많다. 이웃 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집은 감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