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

삼국의 사상, 불교, 도교, 풍수지리, 불교 공인 왕, 5교와 9산 [고대 #23]

Jobs 9 2022. 12. 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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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공인 왕  '신흥고수빡침'

▪ 라 : 법왕 6c
▪ 구려 : 소림왕 4c - 전진, 순도

▪ 제 : 류왕 4c  - 동진, 마라란타

 

 

 불교의 수용 - 왕실에서 주도
고구려 : 소수림왕 2년(372) 前秦에서 順道가 불상과 불경 전래
▪ 백제 : 침류왕 원년(384) 東晋에서 摩羅難陀가 불교 전래
▪ 신라 
    - 눌지마립간(417~458)때 고구려를 거쳐온 阿道(黑胡子)에 의해 지방 전래 → 실패
    - 梁의 사신인 승려 元表에 의해 왕실에 보급 → 귀족 반대로 실패
    -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 순교 → 법흥왕 22년(535) 공인
호국적 성격이 강함 (인왕경 존중)
    - 백좌강회(인왕회) : 국가의 평안을 비는 의식
    - 팔관회
▪ 계율종(戒律宗) 주류
    - 백제의 겸익(謙益), 신자의 자장(慈藏) : 大國統으로 불교 총관
    → 고구려, 백제 말기에 변화
       - 普德의 열반종(涅槃宗) : 금강석 같은 불성을 모든 중생이 가지고 있음
                              ⇦ 도교의 불로장생 사상에 대항

 

 

● 불교 전파

고구려 보덕 백제에 불법을 전하고 열반종 개창(연개소문의 도교 장려에 대항)
혜자 일본 쇼오토쿠태자의 스승
담징 일본 호류사벽화, 먹, 붓, 맷돌, 5경 전함
혜관 일본에 삼론종전파
혜량 신라불교 교단 정비, 진흥왕이 신라의 국통으로 삼음
도현 일본세기 저술
소수림왕, 전진에서 순도가 전파  (고구려가 백제보다 10년 빠름)
백제 왕인 일본에 논어,천자문 등 한학전함
아직기 일본 토도치랑의 스승, 일본에 한자전파
노리사치계 일본에 처음으로 불교불상을 전함(성왕)
아좌태자 쇼오토쿠태자의 초상을 그림(아쇼초)
단양이,고안무 일본에 오경박사, 유학을 전함
혜총 일본에 계율종을 전함
관륵 천문, 지리, 둔갑술을 전함
침류왕, 동진에서 마라난타가 전파
신라 원광 수에서 열반종, 세속오계, 걸사표(진평왕)
자장 당에서 계율종 전함, 선덕여황에게 황룡사 9층목탑 건립을 건의
심상(통일신라) 일본에 화엄종 전함
의상 해동 화엄종의 시조
혜초 인도 기행문 저술(왕오천축국전)
눌지마립간, 고구려에서 묵호자가 전파, 이차돈의 순교로 법흥왕이 공인 (공인은 좀 늦음)

 

 

● 고대 불교 성격

 

1. 성격

현세구복적 : 내세적× (정토종(=아미타 신앙)은 내세적)

초부족적, 샤머니즘족 ⇒ 불교수용 후에도 원시신앙의 계속

 

2. 목적 : 왕권의 강화(중앙세력의 사상적 기반) - 왕즉불사상

 

3. 시기별

 

1) 삼국시대: 삼국은 모두 왕실과 귀족의 환영을 받으며 수용되어 왕권강화와 귀족의 특권을 뒷받침 해줌

삼국시대에는 승려들의 금욕적 생활을 강조하는 계율종이 가장 발달. 교리보다는 계율의 중시

⑴ 고구려: 대승불교적 성격의 삼론종(승랑, 사상의 이해 강조) *대승: 중생구제, 소승: 개인해탈

- 연개소문의 억불책에 반발하여 보덕은 백제로 건너가 열반종을 개창, 도현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세기 저술

백제 : 소승불교적 성격의 율종(계율)(겸익이 성왕 때 인도에서 율종의 불경을 가져옴---성왕 이름자체가 불교의 전륜성왕에서 나온것.)

⑶ 신라 : 불교와 왕의 밀착, 왕즉불 사상 특히 유행 ⇒ 업설과 미륵불신앙 중심

① 불교식 왕명 사용: 흥왕 ~ 진덕여왕 (법이 사실 불교용어)

                                                         ↱ * 고려 광종: 왕사ㆍ국사제도

② 교단 정비: 진흥왕이 고구려 승려인 혜량을 맞아 국통으로 삼고, 그 아래 주통ㆍ군통을 두고“전륜성왕”을 자처

③ 진평왕: 원광법사(걸사표(수나라에 군사 청하는 글), 세속오계(새로운 사회 윤리와 국가 정신 확립에 기여))

④ 선덕여왕(신라상대 끝낼때쯤): 자장은 대국통으로 신라불교를 통할, 계율종을 열고 황룡사9층탑 건립에 중요한 역할 (황룡사는 진흥왕때)

⑤ 중심교리: 귀족들의 특권 인정

- 업설: 왕이 곧 부처(왕즉불)라는 사상을 통하여 왕의 권위와 귀족들의 특권인정 (너희들도 전생에 잘했으니 지금 귀족이지)

- 미륵불신앙: 이상적 불국토 건설 → 화랑제도와 밀접한 관련, 매향의 본래적 의의(사천매향비)

⑥ 신라는 가장 늦게 불교를 공인 하였지만 왕실의 강력한 비호하에 호국불교로 발전, 인왕회 개최

 

2) 통일신라: 비로자나불과 약사여래상(밀교, 질병치료)이 유행

* 불교의 대중화원효의 아미타신앙,  의상의 관음 신앙,  진표의 점찰법회,  균여의 보현십원가,  밀교



● 5교와 9산의 개창자 [ 보열경, 자계통, 의상화부균, 법상진원도태 ]

5교 개창자 중심사찰 창건시기 9산 개창자
열반종 (통일전) 보 덕(고구려)
: 연개소문의 도교장려로 짱나서 백제로 옴.
경복사(완주) 650(백제 의자왕) 가지산파(장흥) 도 의
계율종 (통일전) 자 장  통도사(양산) 645(신라 선덕여왕) 사굴산파(강릉) 범 일
법성종 (통일후) 원 효 (6두품) 분황사(경주) 643(신라 선덕여왕) 봉림산파(창원) 현 욱
화엄종 (통일후) 의 상 (진골)
 → 균여
(의상은 대중화이긴한데..정치가에 가까움)
부석사(영주) 676(신라 문무왕) 성주산파(보령) 무 염
법상종 (통일후) 진 표ㆍ원측 금산사(김제) 599년(백제 법왕) 수미산파(해주) 이 엄

 

※선종은 전국각지에서 개창되어 경주중심의 문화를 극복하고 지방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

 

* 미륵신앙 이는 우리가 사는 이 지상이 정토가 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내세보다는 현실사회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지배자의 억압이나 사회체제가 동요될 때 미륵신앙은 현실사회를 개혁하려는 사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삼국시대 지배자의 이념이 되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유행하였고, 신라는 화랑도와 미륵을 일치시켰다. 후고구려의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하였고, 고려에 와서 매향의 풍습으로 향도와 관련, 조선후기에는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반란세력과 결탁하기도 하였다.



●  5교와 9산

  교종(5교) 선종(9산) : 통일직전에 수용
발달시기 신라 중대 중대에 전래, 신라 하대(신라말기)에 확산
대표 사상 화엄종(의상)
→ 통일이후에 민족을 융합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후원, 왕권 전제화에 기여
*화엄사상: 하나 속에 우주의 만물을 아우름
모든존재는 상호의존ㆍ서로 조화
도의: 선종9산의 처음 제창(가지산파)
- 수미산파(이엄): 고려 건국의 사상적 기반
*선종불교: 부처의 가르침은 말이나 문자로
표현될 수 없다. 스스로 본래의 마음을 발
견 하려고 할 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교종은 석가모니의 해탈 매뉴얼인 불경을 탐구하는거고)
성격 1) 교리(경전)의 연구(교관겸수, 지관)
2) 형식과 권위의 중시
1) 개인의 정신수양을 강조
2) 좌선(참선)의 중시 → 견성오도, 불립문자의 표방 → 교리, 경전연구배격
3) 실천수행의 강조: 사색
4) 혁신적->당시불교의 개혁요구와 일치
5) 불립문자, 교외별전, 견성오도
(* 정혜쌍수, 돈오점수: 고려代 지눌)
지지기반 왕실, 중앙귀족 진골+호족+6두품+풍수지리설+도교노장사상
영향 조형미술의 발달(탑과 절) 1) 조형미술 쇠퇴(탑비도 조형이긴 하나 신라중대에 비해선 쇠퇴), 승탑(부도)ㆍ탑비(승려 설명)는 유행
2)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힘
3) 한문학의 발달
고승 1) 원효 (원효 + 요석공주 = 설총) 결혼하니 일종의 파계승.
(화왕계 ⇒ 신문왕때 유교적 도덕정치 강조)
- 십문화쟁론 저술: 일심사상, 원융회통사상 다른 종파와 사상적 대립 조화, 교종의 통합시도, 화쟁사상
→ 물과 얼음 근원이 같다. 인간평등
→ 나무아미타불 → 불교의 대중화에 공헌
*아미타=서방정토

- 금강삼매경론소, 대승기신론소(요나라에 반포)
- 화엄경 저술 → 불교의 사상적 이해기준 확립
*화엄경들어갔다고 의상아님

- 아미타신앙(내세적) 전도 (정토종 보급, 창시X)
- 무애가, 소성거서
- 법성종(원효종, 해동종, 분황사) 개창
- 독자적 입장에서 화엄사상 정리
- 고려시대 의천에 의해서 화정국사로 추존


2) 의상(진골출신) : 일즉다다즉일 사상
- 5교중 가장 유력한 종파 창시
- 화엄사상 정립 → 전제정치의 뒷받침 (일즉다 다즉일:  삼국이 본래 하나였다. 문무왕에게 짜옹. 그리고 모든끝에 당신 문무왕이있다. )

- 아미타 관음신앙의 주도 → 불교의“민간화”
(현세구복적=관세음신앙: 귀족들은 현재가 좋은데 조금 더 좋을수 있다.) 
*관음이 합쳐지면 의상, 아미타만 나오면 원효

- 영주부석사ㆍ양양낙산사 등 많은 사원 건립

- 화엄종 개창(화엄사상을 바탕으로 교단정립)
- 화엄일승법계(달팽이처럼 그림처럼 돌아가면서 썼기에) 저술: 661년 당의 지엄 문하로 유학하여 671년 저술


3) 원측: 당의 현장에게 유식학을 배워 규기와
대항, 서명학파를 조직하여 유식불교 강의
- 백제 땅에서 법상종(미륵+유식불교) 개창


4) 혜초: 신라의 승려, 왕오천축국전 저술
- 고려후기의 직지심체요절과 함께 프랑스에 현존


5) 김교각 (696~794)  성덕왕의 아들로 중국 안휘성 구화산에서 화엄경을 설파,   입적 후 지장보살의 화신(다시태어남)으로 평가됨


5) 진표: 점찰법회, 백제유민과 관련, 법상종
선종승려들은 지방호족출신이나 중앙
귀족출신으로서 지방에 낙향한 사람이
많았고, 진골ㆍ6두품등 출신성분이 다양


*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 비문(도의)
승려 도의가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가 당나라
서당 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그러나 메추라기의
작은 날개를 자랑하는 무리들이 큰 붕새가
남쪽으로 가려는 높은 뜻을 헐뜯고, 마침내
북산에 은둔하였다.


* 아미타신앙: 원효가 직접 불교 대중화의 길을
열었으며, 아미타신앙(정토신앙)은 교리를
터득하지 못해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염불만으로 극락왕생할 수 있다 ⇒ 내세신앙


* 관음신앙: 의상은 화엄종단에서 아미타 신앙과
함께 현세에서 고난을 구제받고자 하는 신앙으로
현세에서 질병·재해 등 현실적 고뇌를 해결해
주는 신앙(관세음신앙) ⇒ 현세신앙


* 불교의 대중화: 원효의 아미타신앙, 의상의 관음
신앙, 진표의 점찰법회, 균여의 보현십원가

 

 

 

 도교

- 불로장생 사상, 현세 이익의 추구를 목적, 무위자연, 노자(도덕경), 장자(노장사상)“상선약수”

- 방법: 양생술, 숭무, 방술, 비법, 둔갑술, 신선사상, 무위자연사상

- 특징: 교단이 성립되지 못함(비조직적 신앙 → 고려 : 민간신앙으로 발전)

일관성의 결여, 불교의 요소가 강함

 

삼국시대
(고구려만 성행)
고구려: 강서고분의 사신도, 주몽신화, 을지문덕장군의 여수장 우중문 시(지족)
연개소문이 불교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장려(→보덕이 반발하여 백제가서 열반종(열받았종) 개창)

백제: 
산수무늬벽돌, 사신도, 

사택지적비(사택지적=의자왕의 대좌평한사람이 인생무상)

무령왕릉지석(지석의 의미가 매지권= 즉, 땅을 샀다)---사료: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이 토지신에 보고하고 무덤을 만듬: 거기서 토지신이 도교의영향), 벽돌무덤이면 중국남조 양나라와 교류했던증거 (반대로 양나라 쪽엔 양직공도가 증거로)

금동대향로

신라: 국선도ㆍ풍류도라는 화랑도 명칭

통일신라: 
향락적ㆍ퇴폐적인 지배층의 생활에 반발, 
김유신묘 12지신상, 
최치원사산비문

발해: 정공주묘 비문(불로장생이라는 용어)
고려시대 가장 성행했던 시기 - 참성단, 도관(도교사원)--교단은 성립안함(교리가 불분명해서), 팔관회, 묘청의 팔성단, 구월산 삼성사
조선시대 해동이적(홍만종), 마니산 초제(소격서) ⇒ 민족의식 높이는 기능//소격서폐지하자(조광조), 원구단

 

* 금동용봉봉래산향로 (금동대향로):  부여 능산리 에서 발견 (사비시대) 

봉황의 턱밑에 여의주ㆍ다섯악사ㆍ인면조신상ㆍ인면수신상ㆍ호랑이ㆍ코끼리ㆍ멧돼지ㆍ사슴----불교(하단) + 도교(상단)

 

* 원구단: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왕조에서 유교적인 의례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천단(하늘모양의 둥근 형태)

고대국가부터 제천의식이 행해졌으나 유교적인 예의 관념에 따라 제도화된 원구제는 고려시대 부터 실시

지금의 환구단은 1897년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고종이 제천의식을 하면서 다시 설치

 

* 삼성사(황해도 구월산): 단군을 제사하기 위한 단군사당

* 참성단(강화도 마니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

* cf) 만동묘ㆍ대보단(충북 화양동): 조선시대 명나라 황제를 제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

 

 

 

고구려의 도교 관련 유물

도교의 방위신을 묘사한 강서대묘 사신도

고구려 강서대묘의 사신도

강서대묘 - 굴식 돌방무덤

고구려 후기 : 굴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벽화

강서대묘(사신도), 무용총(수렵도)

 

 

② 백제

백제에도 고구려와 비슷한 시기에 도교가 전래

백제의 유물로는 도교의 이상 세계를 표현한 산수무늬 벽돌과 금동대향로

 

백제 산수무늬 벽돌

백제 금동대향로

 

금동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농부가 밭을 갈다 우연하게 발견

 

부여 사택지적비

의자왕, 노장사상

 

③ 신라

신라 화랑도는 국선도, 풍류도

국선도, 풍류도는 도교의 무위자연, 신선사상이 반영된 별칭

 

최치원은 난랑비 서문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것을 풍류(風流)라고 한다. … 자랑함이 없는 일을 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주사의 뜻이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것은 축건태자의 교화이다”

- 『삼국사기』 -

 

 

기출문제 키워드 - 도교

고구려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도교의 방위신을 그린 것이다.

연개소문이 반대 세력을 견제하고자 도교를 장려하였다.

백제의 산수무늬 벽돌, 금동대향로에는 도교 사상이 반영되었다.

금동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화랑도는 도교 사상이 반영된 국선도, 풍류도로 불렸다.

 

 

 풍수지리설

신라말기 도선과 같은 선종 승려들이 중국에서 수입 (유교사상과 적대적)

지기쇠왕설, 비보사탑설 관련, 신라정부의 권위 약화

고려시대 1) 송악길지설: 고려왕조의 사상적 배경
2) 개경길지설ㆍ서경길지설(고려시대) ⇒ 남경길지설(한양명당설)
3) 훈요십조(서경길지설, 비보사찰: 호국+풍수지리)
4) 성종: 분사제도, 3경(개경ㆍ서경ㆍ동경) → 남경길지설(문종): 북진정책의 침체 + 풍수지리
5) 인종: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3경폐지후 3소제 설치
6) 관련서적 : 도선비기, 해동비록(예종, 풍수지리설 집대성, 전하지 않음), 산천비보도감, 잡업의 지리업
조선시대 1) 한양명당설(조선의 수도선정)
2) 16C 산송문제 3) 정감록ㆍ토정비결(예언서): 조선후기 도교와도 관련

도선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견

세조(용건)가 급히 따라가서 도선과 만났는데 …. 도선이 말하기를, 

“이 땅의 지맥은 북방 백두산 수모 목간으로부터 내려와서 마두 명당에 떨어졌다. 당신은 또한 수명(水命)이니 마땅히 물의 대수를 따라서 삼십육 구의 집을 지으면 천지의 대수에 부합하여 다음 해에는 반드시 슬기로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에게 왕건이라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 고려사 -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신라 정부의 권위는 약화

경주의 지력이 다했기 때문에 신라가 망할 때가 되었다는 것

반면 호족들은 풍수지리를 이용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세력을 확장

 

기출문제 키워드 - 풍수지리설

신라 말기 도선이 전래한 풍수지리는 지방 호족의 성장에 기여하였다.

 

 

 선종 + 도교 + 풍수지리 사상 ⇒ 고려 개창의 사상적 토대

 

 

 

 Q  삼국시대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①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백제대향로에는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이 조각되어 백제인의 신선사상을 엿볼 수 있다.

② 삼국 불교의 윤회설은 왕이나 귀족, 노비는 전생의 업보에 의해 타고났다고 보기 때문에 신분 질서를 정당화하는 관념을 제공하였다.

③ 신라 후기 민간사회에서는 주문으로 질병 치료나 자식 출산 등을 기원하는 현실구복적 밀교가 유행하였다.

④ 고구려의 겸익은 인도에서 율장을 가지고 돌아온 계율종의 대표적 승려로 일본 계율종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

 

【해설】 정답 ④

백제의 겸익은 529년(성왕 4)에 인도에 다녀와서 (계)율종을 개창하였다

 

 

 

 

 Q  삼국시대의 불교에 대한 서술 중 옳지 않은 것은?

 

①신라는 삼국 중 불교수용이 가장 늦었고, 그 과정에서 전통 사상과 마찰을 빚었다.

②삼국은 중앙집권체제의 확립과 지방세력의 통합을 힘쓰던 시기에 불교를 수용하였다.

③신라불교는 왕실의 강력한 비호 아래 호국불교로 진흥하였다.

④고구려는 '왕즉불(王卽佛)'사상을 수용하여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였다.


【해설】 정답 

신라 : 법흥왕~진덕여왕. 

일연 삼국유사 : 중고

 

 

 Q  삼국시대 불교에 대한 다음 설명 중 가장 옳은 것은?

 

① 불교의 전파는 사신도, 산수무늬벽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② 신라 진흥왕이 황룡사를 짓고 대규모의 9층탑을 만든 것은 불교의 호국신앙적 성격을 보여준다.
③ 삼국의 불교는 왕실에 의해 적극 수용되었으나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공인되지는 못하였다.
④ 삼국의 불교는 모두 왕실에서 먼저 받아들여지고 점차 민간에게로 전파되었다.

【해설】 정답 
① 도교와 관련이 있다.
③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가 들어온 직후에 공인되었으나, 다만 신라에서 처음에 귀족들의 반대가 있었다.
④ 삼국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 중심이고, 통일 무렵에 민간에 전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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