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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의 변질, 환국,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옥사

Jobs 9 2023. 2. 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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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붕당정치의 변질

1) 원인
-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17세기 후반이후 장시의 발달과 화폐의 전국적인 유통
- 지주제와 신분제의 동요: 서인과 남인의 공존관계가 깨지고, 향촌사회에서의 지주제와 신분제의 동요에 따라 사족중심의 향촌지배가 문란, 붕당의 정치적 기반이 무너짐
- 정치적 쟁점의 변질: 사상적인 문제 -> 군사력,경제력 확보에 필수적인 군영 장악에 역점

2) 변질양상
숙종때 경신환국에 의해 남인 실각, 서인정권 수립 -> 일당전제화 -> 노론,소론 분열
- 왕이 환국을 주도, 왕실외척,종실 등 왕과 직결된 집단의 비중 높아짐
- 3사와 이조전랑의 정치적 비중 감소, 정쟁의 초점이 왕위계승문제로 변화
- 비변사 기능 강화
- 몰락양반은 지방에 서원 남설

※환국
1) 경신환국(1680): 허적의 어용장물 사용사건, 남인축출, 서인중용
2) 서인의 분열: 남인처벌문제(소론-온건파, 노론:강경파)
3) 기사환국(1689): 장희빈의 왕자(경종)를 세자로 책봉하는 과정, 남인중용
4)  갑술환국(1694): 서인계의 폐비 민씨 복귀과정, 남인실권 -> 이후 소론과 노론의 대립양상 전개

경신환국 서인  윤휴, 허적, 유악사건
기사환국 남인  장희빈
갑술환국 서인  인현황후


 
2. 탕평론의 대두
1) 숙종의 탕평책: 편당적인 인사관리로 환국이 일어남, 숙종말기에는 노론과 소론의 대립격화

2) 영조의 탕평책: 소론과 일부 남인 강경파는 노론정권에 반대 -> 이인좌의난 발생
새로운 탕평파 육성 , 붕당을 없앨것을 내세움, 산림 존재 인정안함
서원대폭정리, 이조전랑 권한 약화
한때, 노론, 소론 공존 -> 나주괘서사건 발생, 사도세자의 죽음 -> 노론이 절대적우세

3) 정조의 탕평책
영조때, 사도세자의 죽음을 계기로 노론은 시파,벽파로 분열 - 시파등용
영조때의 탕평파 대신들을 엄격하게 비판했던 노론,소론 일부와 남인계열 중용

 

3. 세도정치

1) 순조: 정조때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노론벽파세력이 주도, 장용영 혁파, 훈련도감을 정상화시켜 장악, 안동김씨에 의한 세도정치 시작
2) 헌종: 외척 풍양조씨...
3) 철종: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폐단
- 개혁능력 부족
- 사회변화에 소극적
- 사회통합에 실퍠: 남인, 소론, 지방선비들 배제
- 정치기강 문란
- 상품화폐경제의 성장둔화
- 고증학에 치우쳐 개혁의지 상실

 


3. 일진일퇴의 환국정치, 일당전제기

일당전제기는 1674년 왕실에서 공복을 입는 기간 문제로 일어난 갑인년 복제논쟁을 군주권 강화에 이용한 숙종 즉위년부터, 1729년 영조가 일당전제 정치를 끝장내겠다고 선언한 기유대처분 이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는 보통 일진일퇴 정국, 환국에 의한 일당독재, 역모조작과 정탐정치 등으로 표현되는 격렬한 당파싸움의 시기다. 전후 여덟 차례 정도 일진일퇴하는 환국정치에 의해 일당독재가 반복되었다.

◎서인 VS 남인

서인과 남인의 공존은 평화롭기도 했지만 불안정하기도 했다. 그 불안정함이 '폭발'한 것이 바로 예송 논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예송논쟁  서인 : 효종은 차남이야. 무조건 1년상! / 남인 : 차남이지만 왕됐으니 장남 대접 받아야 되는거 아니야? 당연히 3년상이지.

왕실에 적용할 상례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벌인 논쟁으로서, 1659년(현종 즉위년) 논쟁과 1674년(현종 15) 논쟁 두 번이 있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효종과 효종왕비의 상사 때, 어머니 자의대비가 큰아들의 예로서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 둘째 아들 이하의 예로서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였다. 이는 효종의 형인 소현세자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파견된 분조에서 사실상 아버지 인조를 대신하는 소군주로서 권한을 행사했지만, 국내에 돌아온 이후 의문 속에 죽음으로써 왕위를 계승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였다. 2차 예송논쟁은 결국 숙종 즉위년부터 남인 주도 정권을 출범시켰다.

예송논쟁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는데 1차 논쟁에서는 서인의 주장이 채택되어 정권에 변동이 없었으나, 2차 논쟁에서 남인의 주장이 채택되어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 때, 남인은 서인에 대한 극형을 주장하는 강경파 청남과 이에 반대하는 온건파 탁남으로 분열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 정권을 잡은 남인은 그 전횡이 심하여 경신대출척, 즉 경신환국으로 집권한지 몇년만에 쫓겨나게 된다.


■ 경신환국1680년(숙종6) 남인 일당정권이 무너지고 서인 일당정권으로 바뀐 급격한 정권교체를 말한다. 이 정권교체는 남인정권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벌을 위한 새로운 군대인 체부를 설치함으로써, 당시 숙종의 신임을 받던 서인계 외척 김석주의 군사권을 약화시켜가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노론 VS 소론 VS 남인 


그러던 중 서인 사이에도 분열이 생겨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론과 윤증을 중심으로 한 소론으로 갈리게 되는데,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첫 사건이 바로 임술삼고변이다.

 

■ 임술삼고변
1682년(숙종8)에 일어난 사건으로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싸우기 시작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첫 사건이다. 훗날 노론이 된 왕실 외척 김석주, 이사명, 김익훈 등이 밀정을 파견하여 남인들에게 역모를 권유한 후 이를 밀고하는 등의 정탐정치를 자행한 사실이 드러나 큰 물의를 야기시킨 사건이다. 당시 서인 영수 송시열은 이를 자신이 스승의 후손들을 잘못 교육시킨 탓이라 하여 결국 정탐정치를 자행한 이들을 변호하려 하였고, 이를 서인 소장파 인물들이 탄핵하고 윤증 학파가 이에 합세함으로써 결국 서인이 송시열을 지지하는 노론과 반대하는 소론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서인이 분열 된 이후에도 환국은 계속 되는데, 서인이 물러나고 남인이 재등용되는 기사환국 이후 왕에 의해 남인이 쫓겨나고 서인이 재등용되는 갑술환국이 벌어져 남인은 재기불능의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갑술환국 이후로는 노론·소론이 대립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 기사환국
1689년(숙종15) 서인 일당정권이 무너지고 남인 일당정권으로 바뀐 급격한 정권교체를 말한다. 이 정권교체는 장희빈이 아들을 (후일의 경종) 낳자, 곧바로 왕위계승권자로 정하려는 것을 서인들이 반대함으로써 일어났다. 이로써 서인 영수 송시열은 사사당하였고, 서인 민유중의 딸 인현왕후 민씨는 폐출되었으며, 장희빈은 왕후에 봉해졌다.

■ 갑술환국
1694년(숙종20) 남인 일당정권이 무너지고 서인 일당정권으로 바뀐 급격한 정권교체다. 이 정권교체는 서인계와 남인계 일부 집단의 정탐정치 시도에서 발단되었다. 이로써 인현왕후는 복위되었고, 반면에 장희빈은 왕후에서 빈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왕세자(경종)의 보호 문제를 놓고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격화되어갔다.


그후 숙종의 후사문제로 인한 신임옥사가 일어나 노론 대신들이 대역죄로 몰려 죽게 되고, 노론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러한 당쟁을 몸소 체험한 후 왕위에 오른 영조는 당쟁의 완화와 각 파에 걸친 공평한 인재등용에 힘쓰는 이른바 탕평책을 내세워 재위 52년간에 정쟁이 크게 완화되었다.

■ 신임옥사

1721년(경종1) 12월에 노론 주도 정권이 소론 일당정권으로 급변한 신축환국과, 다음해 목호룡이 이른 바 노론 및 연잉군(후일 영조) 측근 인물들의 경종 시해음모를 고변함으로써 일어난 임인옥사, 이 두 사건을 합쳐서 지칭하는 것이다. 신축환국은 노론당이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한 직후, 다시 대리청정을 청함으로써 노론 정권을 공고하게 하려다가, 소론과 남인의 공격으로 실패함으로써 정권이 교체된 사건이다. 임인옥사로 당시 노론 최고 지도자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4인이 모두 사형을 당하였으므로, 노론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사건을 올바른 노론 붕당 선비들이 화를 입었다고 하여 신임사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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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일로 옳은 것은?

(가) 남인들이 대거 관직에서 쫓겨나고 허적과 윤휴 등이 처형되었다. 
(나)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노론과 소론이 정계에 복귀하였다 


① 송시열과 김수항 등이 처형당하였다. 
② 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에 걸쳐 예송을 전개하였다. 
③ 서인 정치에 한계를 느낀 정여립이 모반을 일으켰다. 
④ 청의 요구에 따라 조총부대를 영고탑으로 파견하였다. 

【해설】 정답 ① 
(가)는 숙종 때 허적의 유악 사건과 허견의 역모 사건으로 남인이 실각한 경신환국
(나)는 숙종 때 인현왕후가 복위되는 갑술환국
① 경신환국 이후 장희빈의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것을 송시열을 중심으로 노론들이 반대하다 사사당한 기사 환국이 일어나 남인들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② 현종 때에 해당하는 일로 (가) 이전 
③ 선조 때
④ 효종 때 나선 정벌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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