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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전성기 모습, 성덕대왕신종 명문

Jobs 9 2021. 12. 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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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전성기 모습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의 명(銘)

조산대부(朝散大夫) 겸 태자사의랑(兼太子司議郞) 한림랑(翰林郞)인 김필오(金弼奧)가 왕명을 받들어 지음.

무릇 지극한 도는 형상의 바깥을 포함하므로 보아도 그 근원을 볼 수가 없으며, 큰 소리는 천지 사이에 진동하므로 들어도 그 울림을 들을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가설(假說)을 열어서 삼승의 심오한 가르침을 관찰하게 하고 신령스런 종을 내걸어서 일승의 원만한 소리를 깨닫게 한다. 대저 종이라고 하는 것은 인도[佛土]에 상고해 보면 계니(罽膩)에게서 증험할 수 있고, 중국에서 찾아보면 고연(鼓延)이 처음 만들었다. 텅 비어서 능히 울리되 그 반향이 다함이 없고, 무거워서 굴리기 어렵되 그 몸체가 주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왕자(王者)의 으뜸가는 공적을 그 위에 새기니, 중생들이 괴로움을 떠나는 것도 그 속에 있다.

엎드려 생각건대 성덕대왕께서는 덕은 산하처럼 드높았고 명성은 해와 달처럼 높이 걸렸으며,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등용하여 풍속을 어루만지고 예절과 음악을 받들어 풍속을 관찰하셨다. 들에서는 근본이 되는 농사에 힘썼으며, 시장에서는 남용되는 물건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재물을 싫어하고 문재(文才)를 숭상하였다. 아들의 죽음에 상심하지 않고 나이 많은 이의 훈계에 마음을 두었다.

40여 년 동안 나라에 임하여 정사에 힘써서 한 해라도 전쟁으로 백성을 놀라게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방의 이웃 나라와 멀고 먼 나라가 오로지 왕의 교화를 사모하는 마음만 있었지 일찍이 전쟁을 엿보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연(燕)나라와 진(秦)나라에서 사람을 잘 쓰고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교대로 패업을 완수한 일을 가지고 어찌 나란히 말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돌아가실 날은 예측하기 어렵고 죽음은 쉽게 찾아온다.

돌아가신 지 지금까지 34년이다. 근래에 효성스런 후계자인 경덕대왕(景德大王)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때 큰 왕업을 이어 지켜 뭇 정사를 잘 보살폈으나,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어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이 일어났으며 거듭 아버지를 잃어 텅 빈 대궐을 대할 때마다 슬픔이 더하였으니, 조상을 생각하는 정은 점점 슬퍼지고 명복을 빌려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여졌다. 삼가 구리 12만 근을 희사하여 1장이나 되는 종 1구를 주조하고자 하였으나, 그 뜻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문득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의 우리 성군(聖君)께서는 행실이 조상에 부합하고 그 뜻이 지극한 도리에 부합되어 빼어난 상서로움이 과거보다 기이하며 아름다운 덕은 현재의 으뜸이다. 온 거리의 용(龍)이 궁궐의 계단에 음덕의 비를 뿌리고 온 하늘의 천둥이 대궐에 울렸다. 쌀이 열매 달린 숲이 변방에 축축 늘어지고 연기가 아닌 색이 서울에 환히 빛났다. 이러한 상서는 곧 태어나신 날과 정사에 임한 때에 응답한 것이다.

우러러 생각건대 태후께서는 은혜로움이 땅처럼 평평하여 백성들을 어진 교화로 교화하시고 마음은 하늘처럼 맑아서 부자(父子)의 효성을 장려하셨다. 이는 아침에는 왕의 외숙의 어짊과 저녁에는 충신의 보필을 받아 말을 가리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행동에 허물이 있으리오. 이에 유언을 돌아보고 드디어 옛 뜻을 이루고자 하였다. 유사(有司)에서 일을 준비하고 기술자들은 밑그림을 그렸다. 때는 신해년(해공왕 7, 771) 12월이었다. 이때 해와 달이 교대로 빛나고 음양의 기운이 조화롭고 바람은 따뜻하고 하늘은 고요한데, 신성한 그릇[鍾]이 완성되었다. 형상은 산이 솟은 듯하고 소리는 용의 소리 같았다. 위로는 유정천(有頂天)의 꼭대기까지 꿰뚫고 아래로는 귀허(歸墟)의 밑바닥까지 통하였다. 그것을 본 자는 기이하다고 칭송하고 그것을 들은 자는 복을 받았다. 원컨대 이 오묘한 인연으로 존엄한 영령을 받들어 도와서 두루 들리는 맑은 소리를 듣고 말을 초월한 법연에 올라감에 과거⋅현재⋅미래를 꿰뚫는 뛰어난 마음에 계합하고 일승의 참된 경계에 머물게 하며, 나아가 왕손들이 금으로 된 가지처럼 영원히 번성하고 나라의 왕업이 철로 둘러싸인 산처럼 더욱 번창하며, 모든 중생이 지혜의 바다에서 함께 파도치다가 같이 세속을 벗어나서 아울러 깨달음의 길에 오르소서. 

신(臣) 필오는 졸렬하여 재주가 없음에도 감히 성스런 왕명을 받들어 반고의 붓을 빌리고 육좌의 말에 따라 그 서원하는 뜻을 서술하며 종에 명을 기록하노라. 

한림대(翰林臺) 서생(書生)인 대나마(大奈麻) 김부환(金符皖)이 쓰다. 

성덕대왕신종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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