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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농지개혁법 2

다루가치살해사건, 1232년, 몽고, 고려

1232년(고종 19) 몽고가 고려에 배치한 다루가치(荅嚕噶齊, darughachi)를 고려인이 살해한 사건. 다루가치는 몽고어로서, 그들이 경략(經略)한 지역의 민정을 감시하는 관원을 지칭하는 말이다. 1231년 몽고는 압록강을 건너 의주 등 북방요지를 휩쓸고, 서경을 거쳐 개경을 포위하였다. 그리고 별동부대를 남하시켜 광주(廣州)·충주·청주 등지를 유린하였다. 이것이 바로 몽고의 제1차 침입이다. 고려는 왕족 회안공 정(淮安公侹)을 몽고의 살리타(撒禮塔, 薩里台)가 주둔하고 있던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주 01)에 보내어 강화를 맺었다. 이 때 살리타는 개경과 그들이 경략한 주군(州郡)에 다루가치 72인을 두고 물러갔다. 그런데 그들이 이듬해 고려에서 모두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내용은 모두 원..

농지개혁(農地改革), 1949년 농지개혁법, 1950년 실시

농업경영의 합리화와 농촌의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토지소유권을 경작자에게 이양하여 경작인의 보호에 중점을 두는 개혁조처. 농지개혁은 1949년 6월 21일에 제정, 공포된 「농지개혁법」에 의거 1950년에 실시한 것이다. 당시 농지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는 첫째, 8·15광복 직후의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고 민주국가 건설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데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당시 우리 나라 농지의 소작비율은 전농지 222만6000㏊의 65%인 144만7000㏊가 소작지였다. 그와 같은 많은 소작지에서 가혹한 소작료를 지불하고 있던 농촌경제는 매년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민주의식과 평등의식이 고조되면서 사회적 혼란이 적지 않던 때에 일본인 소유농지였던 29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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