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한국사 사전

다루가치살해사건, 1232년, 몽고, 고려

Jobs 9 2021. 4. 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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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년(고종 19) 몽고가 고려에 배치한 다루가치(荅嚕噶齊, darughachi)를 고려인이 살해한 사건.

 

다루가치는 몽고어로서, 그들이 경략(經略)한 지역의 민정을 감시하는 관원을 지칭하는 말이다.

1231년 몽고는 압록강을 건너 의주 등 북방요지를 휩쓸고, 서경을 거쳐 개경을 포위하였다. 그리고 별동부대를 남하시켜 광주(廣州)·충주·청주 등지를 유린하였다. 이것이 바로 몽고의 제1차 침입이다.

고려는 왕족 회안공 정(淮安公侹)을 몽고의 살리타(撒禮塔, 薩里台)가 주둔하고 있던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주 01)에 보내어 강화를 맺었다. 이 때 살리타는 개경과 그들이 경략한 주군(州郡)에 다루가치 72인을 두고 물러갔다.

그런데 그들이 이듬해 고려에서 모두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내용은 모두 원나라 사료에서만 나올 뿐 고려 쪽 사료에는 보이지 않아 확실히 믿을 수는 없다. 몽고가 경략한 주현(州縣)이 20개 정도인데, 72인의 다루가치는 그 수가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 또한 이들을 모두 살해했다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믿기 어렵다.

그러나 『고려사』 세가(世家)에는 “1232년 5월북계(北界)의 용강(龍岡)·선주(宣州)주 02)에 다루가치 5인이 왔다.”라 적혀 있다. 그리고 그 해 7월에는 “내시 윤복창(尹復昌)을 북계의 여러 성에 보내어 다루가치의 궁시(弓矢)를 빼앗게 했는데, 선주에서 다루가치가 그를 사살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원이 다루가치를 배치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리고 그들의 행패가 심했음도 알 수 있다. 또한 8월 기록에는 “서경순무사(西京巡撫使) 민희(閔曦)가 사록(司錄) 최자온(崔滋溫)과 더불어 다루가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 서경사람들이 이를 듣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 서경이 평주(平州)처럼 몽고군사에게 전멸을 당할 것이다.”라 되어 있다.

이로써 다루가치가 살해당한 것도 분명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는 몽고에 대한 고려인의 억눌린 저항의식이 폭발한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72인의 다루가치를 모두 살해했다는 중국 측 사료의 내용은 다분히 과장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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