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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3

장건, 실크로드, 흉노, 한, 서역

장건(張騫, ? ~ 기원전 114년) 자는 자문(子文)이며 지금의 산시 성 성고현 사람으로 기원 전 2세기 중국 한나라 때 여행가이자, 외교관이었으며 탁월한 탐험으로 실크로드의 개척에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한나라 때 서역으로 가는 남북의 도로를 개척하였으며, 서역의 한혈마, 포도, 석류, 복숭아 등의 물품을 가져오기도 했다. 장건이 서역으로 떠난 이유 기원전 139년 한나라 건원 4년, 당시 한나라는 변방을 어지럽히는 흉노에 대항하기 위해 대월지에 대한 동맹을 맺으려 사자를 모집하였다. 장건이 지원을 해서 지원자 100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서역으로 가서 대월지국으로 향하였다. 이전에 대월지는 월지라고 불리었는데, 흉노의 묵돌 선우와 그 아들 노상 선우에게 패한 후, 서쪽으로 옮겨 이름을 대월지..

왕소군, 중국 4대 미녀, 흉노, 평성의 치

王昭君 양귀비, 서시, 초선과 더불어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 기원전 1세기경의 인물로,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鞮單于)의 처로 원래는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정확한 생몰연도는 불확실하다. 다만 호한야 선우와 결혼한 시기 등을 통해 출생 년도를 추정할 뿐이다. 본명은 장(嬙)으로 성과 합쳐 왕장이 본명이지만, 자가 소군이기에 흔히 왕소군이라 불린다. 또 호한야 선우는 왕소군을 녕호 연지(寧胡 阏氏)로 봉했다. 훗날 사마소의 이름인 '소(昭)'를 피휘하여 왕명군(王明君) 혹은 명비(明妃)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양귀비나 초선 등에 비하면 일반 대중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인물. 그러나 중국에서는 지지가 확고한 미녀이다. 포사, 양귀비 등 대부분 중국사..

거란, 여진, 말갈, 숙신, 선비, 돌궐, 흉노, 훈족

● 거란 5세기 이래 요하(遼河) 상류인 시라무렌(Siramuren) 유역에서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거주하였는데, 당나라 말기에 통일의 기운이 일어나면서 916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여러 부족을 통합한 다음 황제를 칭하고 거란을 건국하였다. 이에 물자가 풍부한 중원(中原)으로 진출하기 위해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화북의 연운(燕雲) 16주(州)를 획득, 947년 국호를 요(遼)로 개칭한 다음 계속 남진정책을 실시했으나 960년 송이 건국됨으로써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대제국을 형성한 거란은 북쪽의 초원지대와 남쪽의 농경지대로 구분되었기 때문에 이원적 호한분치제도(胡漢分治制度)를 형성하였다. ● 돌궐 투르크(Türk)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 처음에는 철륵(鐵勒:예니세이강 상류, 바이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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