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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2

견훤(甄萱), 후백제

남북국시대 후백제를 건국한 시조. 재위 892∼935. 본래 성은 이씨였으나, 뒤에 견씨라 하였다.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상주 가은현(加恩縣)의 농민 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되었다. 『이비가기(李碑家記)』에서는 진흥왕의 후손인 원선(元善)이 아자개라 하였는데 확인하기 어렵다. 어머니의 성씨는 확실하지 않다. 두 부인을 두었는데,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전해질 뿐이다. 견훤은 장자이며, 동생으로 능애(能哀)·용개(龍蓋)·보개(寶蓋)·소개(小蓋)와 누이 대주도금(大主刀金)이 있었다. 그런데 「고기 古記」에는 광주(光州)의 북촌에 한 부자가 살았는데 그 딸이 지렁이와 교혼(交婚)하여 견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는 어머니의 가문이 광주지역의 호족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

고창전투, 후삼국시대, 경순왕, 고려, 후백제

후삼국시대 고창군(古昌郡)에서 경순왕(敬順王) 4년(930년)에 고려(高麗)와 후백제(後百濟)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 고려는 고창전투(古昌戰鬪)에서 후백제의 시랑 김악(金渥)을 사로잡았고, 죽인 사람의 수가 8,000명이었다. 이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둠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싸움에서 입장이 불분명했던 안동·청송 일대의 30여 고을이 잇따라 고려에 귀부하였으며, 곧이어 명주(溟州)주 02)부터 흥례부(興禮府)주 03)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의 110여 성(城)이 역시 고려에 귀부하였다. 이에 고려는 이 전투에서 공이 많았던 김선평(金宣平), 권행(權行 또는 幸), 장길(張吉)에게 대광(大匡)과 대상(大相)의 관계(官階)를 주어 포상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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