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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퇴변척(晦退辨斥) 2

회퇴변척(晦退辨斥), 폐모살제(廢母殺弟), 광해군, 인조반정

회퇴변척(晦退辨斥) *회재 이언적의 ‘회’와 퇴계 이황의 ‘퇴’를 따서 ‘회퇴변척’이라 했는데‘변척’이란 분별하여 배척한다는 뜻입니다. 회퇴변척(晦退辨斥) : 1610년(광해군 2) 이황 등 5현의 문묘종사 결정에 정인홍(鄭仁弘)이 상소하여 이언적ㆍ이황 등을 비판한 사건. 남명 조식의 제자였던 정인홍이 5현의 문묘종사 결정에 불만을 품고 상소를 올려 5현 가운데 이언적과 이황을 배척하였는데 이때의 상소를 회퇴변척소라 합니다. 이 상소에서 정인홍은 이언적과 이황을 가리켜 시속을 따르는 부류로 칭하였습니다. 특히 이황을 집중적으로 비난하였는데, 이황을 가리켜 심지어 정자의 제자인 周行己에 비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주행기는 정자의 문인으로 기생과 관계를 가졌다가 나중에 스승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 짐승보다 못하..

회퇴변척(晦退辨斥), 1611년, 광해군, 정인홍, 조식, 이언적, 이황

1611년(광해군 3) 3월 정인홍이 무함을 받은 스승 조식의 변호를 위해 이언적과 이황의 행적을 거론하며 비판한 사건. 1611년(광해군 3) 3월에 우찬성 정인홍(鄭仁弘)이 스승 조식(曹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으로부터 무함 받은 것을 변호한다는 구실로 차자(箚子)를 올려 이황을 비판하고 아울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과오까지 지적하였다. 이에 이목(李楘) 등 500여 명의 유생이 단체로 소를 올려 이언적과 이황을 옹호하면서 정인홍의 ‘회퇴변척’을 공격하고, 그의 이름을 성균관의 유적(儒籍, 청금록)에서 삭제하였다. 이에 광해군이 유생들을 처벌하려 하자, 그들은 성균관을 나가 권당(捲堂)에 들어가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이후 관료들과 지방 유생들까지 양측으로 나뉘어 몇 달이나 시비 논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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