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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왕 3

통일신라 왕 업적, 무열왕, 문무왕, 신문왕, 효소왕, 경덕왕, 혜공왕, 원성왕, 경순왕

신라 중대의 왕 *무열왕 -최초의 진골출신 -상대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집사부 시중의 권한 강화 -비담의 반란 진압 , 알천과 경쟁 승리 -대원군 성격이었던 갈문왕제 폐지 -중국식 시호 -관리를 감찰하는 사정부 설치 *문무왕 -676년 삼국통일 완성 -중앙관제 정비 *신문왕 -상대등이자 장인이었던 김흠돌 사건 진압 -녹읍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 -9주 5소경 지방관제 정비 , 9서당 10정 군사조직 정비 (민족융합하기 위함) -국학 설립 *효소왕 -당과 일본과 수교 -최초의 의학박사 -서시전과 남시전 설치 -효소왕때 발해가 건국됨(698) *성덕왕 -국학 재정비 -당의 현종과 국교 재개 , 일본에 견신라사 파견 -정전 지급 (백성에게 지급하여 최소한의 생활 보장과 왕권 강화) -상원사종 (가장 오래된 범..

김지정의 난(金志貞─亂),780년,혜공왕,이찬(伊飡) 김지정

780년(혜공왕 16) 2월 이찬(伊飡) 김지정(金志貞)이 일으킨 반란. 『삼국사기(三國史記)』혜공왕(惠恭王) 16년조에 “왕이 어려서 즉위해 장성했는데 성색(聲色)주 01)에 음란하고 순류(巡遊)에 절도가 없어 강기(綱紀)가 문란했으며, 재이(災異)가 자주 일어나 인심이 반칙하고 사직(社稷)이 위태롭게 되어,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모반(謀叛)해 무리를 거느리고 궁궐을 포위해 이를 범하였다. 그런데 4월에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이찬 김경신(金敬信)이 군사를 일으켜, 김지정을 주살하고 혜공왕(惠恭王)과 그 후비(后妃)까지도 난중에 시해되었다”라고 하였다. 역사적 배경 혜공왕 대는 신라 중대(中代)의 전제 왕권이 한계점에 도달한 시기로, 진골(眞骨) 귀족들의 대대적인 모반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대..

구십육각간의 난(九十六角干─亂),768년,혜공왕, 신라 반란, 신라 관직명 각간(角干)

신라의 관직명 중에 친족공동체의 장(長)을 의미하는 각간(角干) 768년(혜공왕 4)에 일어난 신라시대의 전국적인 반란. 『삼국사기』에 의하면, 혜공왕이 765년에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해 모후인 만월부인(滿月夫人)이 수렴청정을 했는데, 실정(失政)을 거듭하자, 즉위 이래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768년 7월 3일에 각간 대공(大恭)의 난이 도화선이 되어 구십육각간이 서로 싸우는 대반란으로 확대되었다. 원인에 대해서 『삼국유사』에는 “태후가 조정에 임하니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도둑이 봉기해도 막을 겨를이 없었다. 임금이 여자될 사람이 남자가 되었으므로, 돌[晬] 때부터 임금이 되기까지 항상 부녀자의 놀이를 하고, 비단주머니를 차고 도류(道流)들과 놀았으므로 나라에 큰 난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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