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한국사 사전

구십육각간의 난(九十六角干─亂),768년,혜공왕, 신라 반란, 신라 관직명 각간(角干)

Jobs 9 2021. 4. 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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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관직명 중에 친족공동체의 장(長)을 의미하는 각간(角干)

768년(혜공왕 4)에 일어난 신라시대의 전국적인 반란.

 

『삼국사기』에 의하면, 혜공왕이 765년에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해 모후인 만월부인(滿月夫人)이 수렴청정을 했는데, 실정(失政)을 거듭하자, 즉위 이래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768년 7월 3일에 각간 대공(大恭)의 난이 도화선이 되어 구십육각간이 서로 싸우는 대반란으로 확대되었다.

원인에 대해서 『삼국유사』에는 “태후가 조정에 임하니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도둑이 봉기해도 막을 겨를이 없었다. 임금이 여자될 사람이 남자가 되었으므로, 돌[晬] 때부터 임금이 되기까지 항상 부녀자의 놀이를 하고, 비단주머니를 차고 도류(道流)들과 놀았으므로 나라에 큰 난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이는 경덕왕이 표훈(表訓) 대덕(大德)을 통해서 나라가 위태로워도 아들을 두어 왕위를 계승시키겠다는 고집때문에 여자가 될 혜공왕이 남자로 태어나 정치를 어지럽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경덕왕본기에 의하면, 경덕왕의 한화정책(漢化政策)과 절제없는 주색·낭비 등은 상대등 김사인(金思仁) 등의 상소와 이순(李純)의 간언(諫言) 등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그 결과를 어린 혜공왕이 이어받아 현명한 수습을 하지 못하고, 왕권이 약화됨에 따라 귀족들의 불평이 노출되었고, 마침내 각간 대공의 난을 계기로 거국적인 혼란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구십육각간이 서로 싸웠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반란군이었다기보다는 정부군과 반란군으로 나뉘어 싸웠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때의 반란은 왕도(王都)와 5도(道)와 주군(州郡)에 걸쳤다고 하였다. 『신당서(新唐書)』에는 3년간이나 끌었다고 했으니 당시 반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이 반란은 정부군파와 반란군파의 싸움으로 이후 많은 왕위계승 싸움의 효시가 되었다. 또한 신라의 집권체제를 약화시켜 중대(中代) 전제왕권의 몰락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난이 일어난 연대가 767년으로 되어 있어 『삼국사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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