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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丁若鏞) 3

정약용(丁若鏞),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조선후기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을 저술한 유학자.실학자.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치·..

고시(古詩), 정약용(丁若鏞)

고시(古詩) 정약용(丁若鏞) 제비 한 마리 처음 날아와 지지배배 그 소리 그치지 않네 말하는 뜻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집 없는 서러움을 호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묵어 구멍 많은데 어찌하여 그 곳에 깃들지 않니?” 제비 다시 지저귀며 사람에게 말하듯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쪼고 홰나무 구멍은 뱀이 와서 뒤진다오.” 燕子初來時(연자초래시) 喃喃語不休(남남어불휴) 語意雖未明(어의수미명) 似訴無家愁(사소무가수) 楡槐老多冗(유괴로다용) 何不此淹留(하불차엄유) 燕子復喃喃(연자복남남) 似與人語酬(사여인어수) 楡冗款來啄(유용관래탁) 槐冗蛇來搜(괴용사래수) 정약용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 ․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

정약용(丁若鏞), 조선후기,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여유당전서

조선후기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을 저술한 유학자.실학자.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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