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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행성 2

일본원정,1274년,1281년,충렬왕,여몽연합군,동로군,정동행성,태풍

1274년(원종 15, 충렬왕 즉위)과 1281년(충렬왕 7)의 2차에 걸쳐 원(元)나라와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려 했던 사건. 고려와의 전쟁이 끝나고 강화가 성립됨에 따라 원은 일본지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당시 원(元)세조(世祖)는 일본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기 위해 모두 6차에 걸쳐 고려와 원의 사신을 일본에 파견했다. 당시 원이 일본초유의 의도에 대해서 남송(南宋) 정벌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원은 남송의 양양성(襄陽城) 공격(1268∼1273)을 전후하여 일본초유를 시도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해상으로 연결된 남송과 일본의 통교관계를 끊어 남송을 고립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원의 요구에 불응하자 원은 무력을 동원해 일본을 굴복시키기로 하고 대규모의 원정군을 파견했다. 1..

쌍성총관부, 동녕부, 탐라총관부, 정동행성, 공민왕

원은 고려와 강화한 이후 한반도 서북면 일대에는 동녕부를 설치하고, 동북면 일대에는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였으며, 탐라에는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여 원의 직할 영역으로 삼아 직접 지배하였습니다. △ 원의 고려 간섭 쌍성총관부는 동녕부보다 앞선 1258년에 설치되었습니다. 동녕부는 고려에 곧 반환되었지만, 쌍성총관부는 약 100년 동안 원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여진족이 다수 거주하는 등 민족 구성과 역사가 복잡하고, 원이 고려를 침략할 때 길목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몽골과의 전쟁이 길어지자 동북면의 주민 조휘와 탁청이 병마사 등을 살해하고 고려를 배반, 몽골에 투항하는 자들도 늘어났으며, 여러 지역이 원에 항복하여 쌍성총관부가 설치되었습니다. 이에 원은 철령을 경계로 몽골에 항복한 조휘를 쌍성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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