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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첨 2

해주옥사(海州獄事), 1616년, 광해군, 이이첨, 대북, 소북

1616년(광해군 8) 집권 세력의 압력으로 인해 빚어진 역모 혐의자 처리 사건. 이 사건은 전 해에 일어난 ‘신경희(辛景禧)의 옥사(獄事)’로 소북 세력으로부터 적지 않은 공세를 겪은 이이첨(李爾瞻) 등의 대북 세력이 박승종(朴承宗)·유희분(柳希奮) 등 소북 세력을 누르려는 목적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한다. 대북 세력과 소북 세력의 대립을 통해 대북이 정권을 독점해가던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 빚어졌으며, 그 뒤 서인 세력이 집권한 뒤 사건의 전말이 재해석됨으로써 오늘날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략 다음과 같이 사건이 전개되었다. 당시 대북 세력은 반대 세력에 속한 황신(黃愼)·남이공(南以恭)이 황해도로 귀양간 때에 “구월산에 큰 도적이 숨어 있다.”는 말을 퍼뜨리고, 해주민으로 행실이..

인조반정,1623년,광해군,이귀,서인,이이첨,대북파,능양군 종(綾陽君倧)

1623년(광해군 15) 이귀(李貴) 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집권당인 이이첨(李爾瞻) 등의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 종(綾陽君倧)을 왕으로 옹립한 정변. 광해군은 즉위 직후 정세 변화에 따라 왕위를 위협할지도 모를 동복형 임해군(臨海君)과 유일한 적통(嫡統)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경계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임해군이 불궤(不軌)주 02)를 꾀하였다는 죄목으로 진도로 귀양보냈다가 다시 교동으로 옮겼다. 그 뒤 대북파 정인홍(鄭仁弘)·이이첨 등이 임해군의 처형을 주장하자, 이원익(李元翼)·이항복(李恒福) 등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감 이직(李稷)에게 살해하게 하였다. 그리고 칠서지옥(七庶之獄)주 03)을 일으키고, 이를 계기로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을 죽이고 영창대군을 강화에 유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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