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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2

임오화변(壬午禍變), 1762년, 사도세자, 영빈이씨, 영조, 한중록, 뒤주

1762년(영조 38), 임오년에 발생한 정치적 화변. 임오화변(壬午禍變)은 1762년(영조 38) 윤5월, 영조가 대리청정(代理聽政) 중인 왕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경종대 이후 당쟁은 군주 혹은 예비 군주를 선택하는 상황과 결부되어 한층 파급력도 크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영조는 이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하여 탕평책을 실시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세자와 갈등을 일으켜 임오화변이 발생하였다. 임오화변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의리(辛壬義理)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 다양한 원인을 배경으로 한다. 임오화변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노·소론 당쟁설과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 갈등설이 대립하는 가운데 뚜렷..

이인좌의 난,1728년,영조

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탈취를 기도한 사건. 이인좌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 하며, 무신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무신란이라고도 한다. 경종이 세자 때부터 질환이 심했으므로, 숙종은 세자의 왕위계승을 우려해 이이명(李頤命)에게 연잉군(延礽君)주 01)을 은밀히 부탁하는 정유독대(丁酉獨對 ; 1717년 숙종과 이이명 두 사람만의 만남)를 하였다. 경종은 숙종 말년에 세자청정을 할 때도 정사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고, 재위 중에도 국사를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웠다. 이에 노론측은 경종의 무자다병(無子多病)을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책봉(世弟冊封)과 세제대리청정을 서둘렀다. 그러자 소론측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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