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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4

조소우호협력및상호원조조약, 1961년, 북한, 소련, 군사동맹조약

1961년 7월 6일 북한과 소련 사이에 체결된 양국 간의 군사동맹조약. 정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 간의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이다. 이 조약의 특징은 유사시 군사적 자동개입을 규정한 양자동맹조약이라는 것이다. 김일성의 소련 방문 중 체결된 이 조약은 6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핵심 내용은 ‘체약 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연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조선·소련 양국 간의 경제·문화·기술의 원조·제공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당시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 등 다자간 안보조약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는 양자조..

전후복구삼개년계획,북한,1954년,전후복구,중공업우선노선,로력영웅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진행된 북한의 전후 복구 계획. 1953년 8월 5일 발표된 김일성의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에 관한 방침을 기본으로 시행되었다. 1953년 하반기 6개월의 준비단계를 거친 후, 1954년부터 1956년까지 3년간 진행되었다. 소련과 동구권, 중국 등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 기간 동안 연평균 42%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후 북한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기반이 되었다. 역사적 배경 1953년 8월 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모든 것을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하여’를 발표하고 전후 복구 계획의 기본 방향을 정립하였다. 이 계획의 기본 방향은 중공업우선의 경제건설 노선이었다. 이 보고에서 김일성은 “중공업 기업소들의 확장과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우리말다듬기사업,북한,한자어를 한글로,북한 언어

북한에서 한자어를 한글로 전환시킨 어휘 정리 사업. 북한에서는 정권수립기부터 언어 분야의 부르주아적 요소를 없애고 한자말과 일본말을 고유어로 바꿔 쓰는 방침을 시행해왔다. 1966년 평양말을 표준어로 제정하면서 문화어라 명명하였고, 문화어를 다듬기 위해 한자어를 고유어로 전환시키는 말다듬기사업을 전개하였다. 북한에서는 한자어와 외래어 어휘들이 민족적 사상 교양의 수단으로서 언어의 사회적 기능을 높일 수 없게 하며, 사람들 속에 사대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상을 침투시키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말다듬기사업이라는 어휘정리사업을 실시하여 이를 시정하고자 하였다. 역사적 배경 및 경과 북한은 1949년부터는 한글전용정책을 시행하였고, 1966년 5월에는 평양말을 새로운 표준어인 ‘문화어’로 삼게 되었..

범민족대회,1990년,남한,북한,해외동포,민간 통일행사,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한과 북한 및 해외동포가 참여한 민간 주도의 통일행사. 남한과 북한, 해외동포가 참여해 민간 주도의 통일운동 기틀을 다지기 위한 행사로 1988년 남측이 북한에 제안하고 북한이 이에 응하면서 논의가 진행되었다. 1990년 8월 15일 제1차 범민족대회가 열렸으나 남과 북에서 각각 진행되었고 이후 남한정부가 이를 반정부 행사로 규정해 대회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역사적 배경 1980년대 말 국제적 긴장완화 분위기 속에서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과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국내에서도 정부와 시민사회 내에서 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범민족대회 추진본부)’를 발족하고 북한에 범민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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