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북학의』·『정유집』·『정유시고』 등을 저술한 실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차수(次修)·재선(在先)·수기(修其), 호는 초정(楚亭)·정유(貞蕤)·위항도인(葦杭道人). 박율(朴栗)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승지 박평(朴坪)이다. 소년 시절부터 시·서·화에 뛰어나다고 이름을 떨쳐 19세를 전후해 박지원(朴趾源)을 비롯한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 등 서울에 사는 북학파들과 교유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이덕무·유득공·이서구(李書九) 등과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내어 문명을 청나라에까지 떨쳤다. 1778년 사은사 채제공(蔡濟恭)을 따라 이덕무와 함께 청나라에 가서 이조원(李調元)·반정균(潘庭筠) 등의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돌아온 뒤 청나라에서 보고들..